#4
밤 9시가 넘어가자,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다.
서로에 대한 한풀이로 가득찼던 장례장이 한풀 꺾이고,
가족들만이 주저앉아 손수건으로 눈시울 닦고,
멍하니 앉아 벌어진 입에선 간헐적인 신음이 새어 나올 뿐이다.
" 나 화장실 좀.."
적막과 들이마신 술을 좀 깰 겸 일어섰다.
1장례장입구엔 검은 구두들이 이리저리 섞여 있다.
#5
'제2장례장'
어쩔 수 없는, 장례식장이라 그럴까? 번호 순으로 이름을 매긴 명패를 보니
가슴 한구석이 씁쓸하다. 슬그머니 '제2장례장'을 들여다 본다.
'古 이선희'
영정사진은 보이지 않지만, 부모로 보이는 두분이 절규하고, 할머님이 주저앉아
'선희'라는 이름을 계속 되뇌이고 있다.
"선희야, 내새끼..아이고..내새끼"
#6
발인날 다시 올 생각으로,
무겁고, 축 처진
죽은듯, 살아있는 몸을 이끌고 막차에 올랐다.
어느덧 비는 그쳤고, 달리는 막차 창문을 활짝 열어 젖혀
후덥지근한 밤공기를 갈라버렸다.
어제 널어 놓은 빨래 냄새가 가득한 방에 들어 온 시간은 자정을 조금 넘은 시간.
우편함에서 꺼내온 청구서 뭉치를 식탁에 던져버리며,
샤워를 할 요량으로 넥타이를 풀어 헤치는 찰나.
밀린 전기세 요금청구서와 함께
섞여있던 하얀 편지봉투가 눈에 들어온다.
' from. 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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