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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정다방

하루키적 일상 1, 댄스댄스댄스

왠지 불온서적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란 생각이, 오늘 퇴근길에서 겪었던 낯뜨거운 경험을 무마시킬 수도 있다는 걸 안다. 무라카미상의 신작 소설이 일본에서 그야말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에서 하늘길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난 그의 전작들을 읽으며 기다리기로 마음 먹었다. 첫 작품으로 '댄스댄스댄스'를 택한 난, 출퇴근 지하철에서 꺼내 들고 읽은지 5일만에(중간에 주말이 끼었다) 2권으로 넘어왔다. 그게 일요일 아침이었고, 월요일 출근길에선 110페이지쯤을 읽었는데, 문제는 오늘 퇴근길 2권 140페이지, '7.국제적 콜걸 조직'이란 소제목을 가진 문단을 읽을때였다.

'나는 우아하게 선물의 리본을 푸는 것처럼 그녀의 옷을 벗긴다. 코트를 벗기고, 안경을 벗시고, 스웨터를 벗긴다. 옷을 벗기자, 그녀는 메이가 되었다. 어쩜, 이라고 메이가 말했다. 내 몸 멋지죠? 내가 대답할 틈도 없이 날이 밝았다.'

아마 펼쳐진 책의 왼쪽 상단의 위의 문단을 읽었던 까닭인 듯 싶다. 중년의 내 오른쪽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는 '에이구'를 제법 크게, 아이팟을 꽂고 있던 내가 못들을까 싶어 심하게 크게 내뱉곤 두 무릎위에 있던 가방을 탁탁 털며 반대편 출입문으로 갔다. 그리곤 계속해서 나를 멀찌감치서 측은하게 혹은 경멸하는 듯한 눈으로 쳐다 보았다. 그 여자의 시선을 의아하게 여긴 주위 사람들 -자식 하나쯤 있을 법한 중년의 아저씨들-은 자연스레 나에게 시선이 모아졌고, 난 돋보기가 모아 쏜 자외선에 그을린 듯한 얼굴이 되어 빨갛게 달아 올랐다. '댄스댄스댄스' 2권의 표지색과 오늘 입은 폴로셔츠의 세로 스트라이프는 빨간색이었고, 퇴근 후 맥주와 함께 먹은 곱창은 빨간 고추장 양념으로 맛이 썩 괜찮았다. 맥주 2캔째를 비우는데, 퇴근길 지하철 아주머니 생각이 잠깐 났고, 얼굴은 이미 빨개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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