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소개해 드릴 인터뷰는 미국의 라디오 방송사인 NPR에서 가진 하루키와의 이메일 인터뷰입니다. 이 인터뷰 역시 직전 포스팅을 통해 소개해드린 슈피겔지 인터뷰와 마찬가지로 <1인칭 단수>의 번역 출간을 기념한 인터뷰입니다. <1인칭 단수>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려는 핵심적인 내용만 잘 추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이런 질문들만 던진건지, 모든 질문 중 선별해서 웹페이지에 공개한 것인지는 모르겠네요. 그리고 이 내용이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전파를 탄 것인지, 웹 공개용인지도 확실치는 않습니다.
하루키 21년 4월 미국 라디오 NPR 이메일 인터뷰 "인생의 불특정한 다양한 경험 속에서" *원문 보기 |
Q: 무라카미씨의 새 단편집 <1인칭 단수>는 일종의 프랙탈적인(작은 이야기의 구조가 전체 큰 틀의 이야기 구조와 똑같은 형태의 반복)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화자인 중년 남성이 소설 속에서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독자들은 똑같이 듣게 됩니다. 그리고 때때로 그 이야기의 화자는 다른 이야기에도 동일인인 것 처럼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번 단편집에서는 1인칭 시점의 형식을 취하고는 싶었지만, 제 경험을 그대로 이야기에 녹이는 것은 원치 않았답니다. 그래서 저는 그 경험들을 형태를 바꾸고, 어떤 경우에는 제 이야기가 모델이 되었다고 독자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픽션화하기도 하죠. 이런 단계를 거치게 되면 경험 이면의 의미에 대해서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답니다. 소설을 쓴다라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당신 내면에 무엇이 있는지를 명확히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근대 일본 문학에는 이른바 사소설私小説 이라는 오랜 전통이 있습니다. 작가 자신의 진짜 삶에 대해 정직하고 또 공개적으로 소설에 대입하여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일종의 자기 고백을 하는 것이죠. 저는 일단 그런 관점의 소설은 원치 않았습니다. 저만의 1인칭 소설, 저만의 사소설을 쓰고 싶었답니다.
Q: 이번 단편집 <1인칭 단수>에서는 주인공의 이름을 특정하지 않는 형식 인데요. <야쿠르트 스왈로즈 시집>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주인공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작가 무라카미씨 본인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이전 질문에 대한 저의 답변과 모순되지만, <야쿠르트 스왈로즈 시집>에 나오는 이야기는 거의 모두 제가 직접 겪은 일이랍니다. 독자들은 아마도 이 이야기를 단편 소설이라기 보다는 짧은 에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야쿠르트 스왈로즈 시집'을 자비 출판했다는 것은 순수한 제 창작입니다. 제가 진짜 그런 시를 쓴 적은 없답니다. 모두 나중에 창작한 것이랍니다. 따라서 <야쿠르트 스왈로즈 시집>에는 제가 허구로 창작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적어도 픽션의 형태를 유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말이죠, 제가 방금 얘기한 것들이 진짜 사실일까요? 이것은 작가가 독자에게 제시하는, 실제 사실과 허구의 창작을 구분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챌린지가 될 수 있겠죠.
Q: 이름 혹은 이름이 없다라는 것이 이번 단편집의 이어지는 주제라고 보여지고,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에서는 이름을 훔치는 유쾌한 원숭이가 등장합니다. 전체 이야기를 유연하게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이름을 훔친다는 소재는 어떻게 떠올리신건가요?
15년전 쯤, 그가 흠모하는 여성의 이름을 훔치는 이야기인 <시나가와 원숭이>를 썼습니다. 그 원숭이는 도쿄 시나가와의 지하 세계에 살고 있었는데, 결국 사람들에게 포획되어 어느 산 속 깊은 곳에서 풀려나게 되는 이야기 입니다. 이 이야기 이후 그 원숭이는 계속해서 제 마음 속에 남아 있었고,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지 너무 궁금해서 속편을 쓰기시작했답니다. 첫 이야기 이후 15년 동안 원숭이는 제 마음 깊은 세계 속에 숨어 있었고, 다시 이야기로 나타날 때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 원숭이가 무엇을 나타내고 또 의미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는 확실하게 제 안에 존재했고, 저로 하여금 그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끔 했다라는 점만은 확실합니다.
Q: 무라카미씨의 이야기는 초현실주의적으로 흐르다가 불현듯 어떤 결말이 없이 무심한 방식으로 이야기가 끝나게 됩니다. 주인공들은 이야기 속의 많은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 할 뿐 어떤 결론에 도달하지 않죠. 독자들이 원숭이나 <크림>의 신비한 노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주길 바라시나요? 그리고 이야기의 끝까지 이런 것들을 명확하게 하지 않은채 놔두는 것이 무라카미씨의 작업 방식에서 중요한것일까요?
제가 쓰는 이야기가 특별히 초현실주의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전 사실적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고자 하고, 그런데 그 주제에 대한 핵심에 접근하면 할 수록 이야기는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물론 제가 그런식으로 흐르게 의도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전개 방식이 저에게 있어 자연스럽고 불가피하게 진행되는 느낌이에요. 생각해 보면, 살아오면서 이상한 경험들을 많이 해왔고 그런 모든 일들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 자체도 이상한 일이 아닐까요? 전 그런 종류의 이상한 경험들을 논리적으로 분석하지 않습니다. 소설의 역할은 분석이 아닙니다. 제가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이런 현실에서의 다양한 경험들을 픽션으로 전환 시키는 작업일 겁니다.
Q: 무라카미씨의 이야기는 많은 부분 시간과 공간의 경계 지점에서 진행되는데요. 지상과 하늘이 경계라고 할 수 있는 산꼭대기나 땅거미가 질 즈음이라던지, 계절이 변화하는 시점 - 특히 가을 - 이라던지 말이죠. 이런 것들이 이야기의 진행에 있어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을까요?
매우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글쓰기에 매우 집중하고 있을 때에는, 마치 이 세상에서 저쪽 세상으로 건너갔다 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일종의 직장인이 출퇴근을 한다는 느낌으로 말이죠. 저쪽 세계로 들어간 후 다시 돌아 옵니다. 가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돌아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해요. 돌아오지 못하면 끔찍할테죠. 9세기 초 일본 교토에는 오노노 타카무라라는 귀족이 있었는데, 낮에는 황궁에서 일했고 밤에는 지하세계 즉 지옥으로 내려가 염라대왕의 비서로 일한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매일 오가는 생활을 했던 거죠. 그가 두 세계를 오가는 통로가 바로 우물이었는데 그 우물이 아직도 교토에 있다고 하네요. 전 이 얘기를 아주 좋아합니다. 물론 그 우물로 내려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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