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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인터뷰

하루키 <동굴 속의 작은 모닥불> 2019 Lattes Grinzane Award 수상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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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이탈리아 보타리 라트 재단에서 수여하는 Lattes Grinzane Award의 2019년 La Quercia 섹션 수상자로 선정되어, 어제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수상 수락 연설을 했습니다. 제목은 <동굴 속의 작은 모닥불> 선사시대 부터 동굴 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며 이야기를 전해 오던 '이야기의 힘'을 믿는 한 명의 소설가로서의 고백과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이탈리아 화가이자 작가인 마리오 라트(1923~2001)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한 보타리 라트 재단에서 수여하는 국제 문학상이고, 하루키는 전 세계의 기성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La Quercia 섹션의 9번째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다. (아래 사진 밑에 링크된 재단 사이트에 가보시면 여러 사진을 보실 수 있고요. 수상 연설 원문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fondazionebottarilattes.it/lectio-magistralis-di-haruki-murakami-un-piccolo-falo-nella-caverna/

 


[동굴 속의 작은 모닥불] 

-무라카미 하루키 2019 Lattes Grinzane Award 수상 연설, 이탈리아 토리노

 

이야기를 쓰는 것. 오늘은 이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물론 지구 온난화 문제나, 핵무기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할 수도 있을 테지만, 오늘 만큼은 제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주제인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해서 조금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제가 처음 글을 써야 겠다라는 생각을 한 건 29살때 였습니다. 1978년의 일이었고, 그로부터 벌써 41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나이까지 저는 한번도 소설을 써보려고 시도하지 않았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고 부터 저만의 시간이 주어지면 몇 시간 동안이고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습니다만, 소설가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나 꿈은 꾸지 않았답니다. 물론, 나도 무언가를 쓰면 좋겠다라는 생각은 했지만, 작가가 될 정도의 능력은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학창 시절 저는 발자크, 도스토예프스키, 디킨스, 프란츠 카프카와 같은 작가들을 사랑했습니다. 제가 이 작가들처럼 글을 쓸 수 있다라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건 완전히 명백한 일이었기때문에 작가가 되어보려는 무의미한 시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소설은 제가 창작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대단한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 저에게 큰 즐거움을 주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이것이 문학을 향한 저의 순수한 마음이었습니다. 

 

책을 읽는 것 외에도 음악, 특히 재즈를 듣는 것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24세때 도쿄에 재즈바를 열었습니다. 그 당시 결혼을 한 상태여서, 아내와 함께 재즈바를 운영했답니다. 초기 자금 마련을 위해 은행과 부모님, 친구들로 부터 돈을 빌려서 도쿄 교외에 작은 재즈바를 열었습니다. 이 재즈바에 작은 피아노를 놓고 주말에는 젊은 음악가들의 라이브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거의 10년 가까이 재즈바를 운영했답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매우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재즈바를 운영하는 일상적인 일들은 상당 부분 육체적인 노력을 필요로하기도 하고 부채를 갚아나가야 하는 일도 포함되었지만, 당시 저는 젊고 활력이 넘쳤답니다. 그리고 아침부터 밤까지 좋아하는 음악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60년대 후반 일본의 강력한 혁명 운동을 겪고, 반문화 현상을 낳은 세대에 속합니다. 또한 이런 이유와 배경 등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기업에 취업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물론, 제 친구들 중 일부는 반문화의 상징과도 같았던 장발과 수염의 얼터너티브 룩을 버리고 재킷과 넥타이를 메고 사업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런 전공투 운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시적인 전공투 운동이 다시 잠잠해지면서 언제그랬냐는 듯이 온순하게 변한 학교와 사회의 분위기에 저를 그냥 포함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거대한 자본 속에서 다시 세워진 사회는 더 공고해졌습니다. 가능한 저는 사회적 기대를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제 개인적인 기대에 부합되게 일관성있는 개인으로서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제가 계속해서 해나가려고 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재즈바를 운영한 것도 사회 시스템안에 들어가기 보다는 개인적인 삶을 살고 싶었던 이유에서 였습니다. 재즈바는 경제적인 측면을 봤을 때, 꽤나 잘 운영되었기 때문에, 꽤 안정적으로 재즈바를 계속 운영할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29세가 되던 때 저는 갑자기 소설을 써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이유로 어떤 때에 저는 제가 어떤 하나의 소설을 쓸 수 있겠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발자크나 도스토예프스키와 같은 엄청난 작품까지는 못 미치겠지만, 어쩌면 저 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까지의 제가 겪은 삶의 경험이 무언가 이야기로서 가치있을 만한 것들을 축적했을지도 모를 일일이었습니다. 정말 안타깝게도 역시나 전 소설을 쓰려고 시도한 적이 없어서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써야할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편지 같은 형식으로 겨우 시작할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약 6개월 뒤 저는 소설과 비슷한 이야기를 만들었고 그 시점에 원고를 출판사에 투고했습니다. 그 결과 놀랍게도 문예지에 신인 작가들을 위해 주는 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난생 처음 쓴 소설로 상을 받다니,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첫 소설이 발표되었을 때,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6개월 후 3만부가 팔렸는데, 당시 데뷔 작가의 소설 판매량으로 볼 때 꽤나 놀라운 기록이었답니다. 제목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입니다. 그렇게 30살이 되면서 저는 더 좋거나 혹은 더 나쁘거나 어쨌든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2~3년간 재즈바 운영과 작가 생활을 병행했답니다.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하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고, 저는 글쓰기에 전념하기 위해 재즈바를 양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제대로 잘 운영되고 있던 사업을 포기하는 것도 역시 힘든 결정이었습니다. 친구들은 모두, 작가라는 직업은 너의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 안정적으로 보장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젊었고, 소설을 쓰고 싶다라는 욕망이 이미 커져버린 상황이었습니다. 작가로서 실패하면 또 거기서부터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답니다. 

 

첫 소설이 발표되고 40년이 지났지만, 그 이후 저의 소설을 쓰는 방식과 독자들에게 선보인 제 소설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여러가지 쓰는 방식의 변화를 거쳐 발전한 작품이라기 보다 소설을 쓰는 방법은 처음 부터 지금까지 동일했습니다. 다른 작가들이 어떤 방법을 택하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저의 글을 쓰는 스타일에는 몇가지 특징적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이야기를 쓸 때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저는 어떤 부분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으로 처음 소설을 시작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이 이야기의 줄거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상태입니다. 아직 전체적인 이야기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한 단계이죠. 그러나 그 단계에서는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이야기는 꽤 잘 진행되고 저는 계속해서 머릿 속에 있는 내용을 자연스럽게 써 내려갑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이야기들이 모두 자연스럽게 자발적으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마치 땅속 깊이있는 지하수가 나오듯이, 제 안 깊은 곳으로 부터 이야기가 나와 소설의 줄거리의 표면을 형성하게 됩니다. 

 

예를들면, 전 하나의 소설을 이렇게 시작한 적이 있습니다.

 

"22년전 봄, 스미레는 그녀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다. 그것은 토네이도 처럼 압도적인 사랑이었다. 토네이도는 큰 소용돌이를 지니고 지나가는 모든 길에 있는 것들을 휩쓸고 찢고 파괴해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그런 다음 힘을 잃지 않고 태평양을 건너 무자비하게 앙코르 와트를 파괴하고, 인도 호랑이가 살고 있는 숲을 불 태웠고, 페르시아에서는 사막 폭풍으로 변해 모래 아래로 이국적인 요새 도시를 묻어버렸다. 이례적인 특별한 사랑이었다. 스미레와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녀보다 17살이 많았고 결혼을 했다. 그리고 설강가상으로 그녀는 여자였다. 그것이 모든 것이 시작된 곳이고, 모든 것이 끝나버린 곳이었다."

 

저는 왜, 언제 그리고 어떤 목적으로 이런 문장이 제 안에 생겨났는지 알지 못합니다. 단지 어느 새벽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쓴 것이고, 때때로 이런 충동에 압도당합니다. 다시말해, 저는 제 안에 있는 이미지를 문학적인 형태로 바꾸고 싶을 때가 종종 생기고. 그러면 책상으로 가서 그 이미지를 텍스트로 바꿉니다. 그러면 다소 진정됩니다. 그리고는 그 페이지를 인쇄해서 제 서랍에 넣어둡니다. 제 작업실에는 이렇게 많은 '거의 사용하기 어려운' 혹은 생생하게 살아있는 문장의 조각들을 담아 둘 수 있는 몇 개의 서랍이 있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마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효라도 된 것 처럼 혹은 포도가 와인이 되기 위해 숙성이 되어가듯이, '거의 사용하기 어려운' 시트 중 하나가 제 작업실에서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그럼 저는 서랍에서 시트를 꺼내서 이야기를 쓰기 시작합니다. 방금 제가 읽은 문장은 제 소설 <스푸트니크의 연인>의 첫 단락입니다. 그 시점에서 그 문장은 더이상 쓸모없는 텍스트가 아니고, 소설의 시작으로서 역할을 해낸 것입니다. 

 

그렇게 제가 소설을 시작하면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스미레라는 젊은 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녀에게는 그녀가 미치도록 사랑하는 연상의 여자가 있습니다. 시작할 때는 이 정도로 소설을 시작하고, 그 뒤에 어떤 이야기나 사건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알지 못하고, 심지어 결말도 알지 못한 채, 이야기는 진행됩니다. 이야기는 거의 백지 상태에서 저의 작가적인 상상력과 직감, 제 안에 깊이 쌓여있던 것들이 표출되어 한 장 한 장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되어 나갑니다. 저는 이렇게 그 서랍 속에 있었던 문장을 확장 시켜 할 이야기가 있다고 확신했고, 그렇게 하나의 소설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이런 서랍 속의 문장 시트가 저에게는 필수 조건이 되었습니다. 

 

제 또다른 장편 소설 <태엽감는새>역시 <태엽감는새와 화요일의 여자들>이라는 단편으로 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이 소설의 첫번째 단락은 이렇습니다. 

 

"부엌에서 스파게티를 만들고 있는데, 낯선 여자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스파게티가 거의 완성되어가고 있는 순간이었고, 라디오에서는 로시니의 도둑까치 서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스파게티를 만들기 위해 완벽한 음악이었고, 나는 휘파람으로 음을 따라 부르고 있었다."

 

갑자기 영감을 받아 쓴 이 단락은 이렇게 써 두고 역시 서랍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요컨대 비디오 카메라로 영상을 찍고 아카이브에 보관하기 전에 필요한 장면만을 편집해 보관하는 것처럼 잘 정리해서 보관했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깨기 전 꾸었던 꿈을 기억하고 기록해두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요, 그와 같다고 할 수 있을 테고, 특별한 목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 단락은 잘 발효되어 단편 소설 <태엽감는새와 화요일의 여자들>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저는 잡지에 이 글을 기고했고, 단편 모음집에 포함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저는 이 단편을 매우 긴 장편 소설 <태엽감는새 연대기>로 발전시켰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짧은 단락은 이야기의 형태를 취한 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장편 소설로 팽창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2단계 발효를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일은 저에게 꽤 자주 발생합니다. 갑작스레 떠오른 생각은 짧은 단락으로 나타나고, 더 견고한 형태를 취할 때 까지 한 단계씩 자라나고 발전해나가는 일종의 화학 반응을 일으킵니다. 저는 전체 과정을 주시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만들어내어 그 일련의 과정을 따르게 됩니다. 저에게 있어 이야기는 자발적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야기는 부자연스러워지게되고 그렇게 되면 설득력이 떨어지게 될겁니다. 그럼 결국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위 이야기의 첫번째 단락과 관련하여, 단편으로 출간했을 때, 한 비평가로 부터 꽤나 거센 공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그 첫단락이 매우 비현실적인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일본 남자는 정오에 혼자 부엌에서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지 않아요."라고 했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그의 의견입니다. 그런데 저는 종종 혼자서 스파게티를 요리하는 일이 발생하고, 왜 그런지 정말 모르겠지만, 스파게티 면이 거의 다 익어갈때 쯤, 전화가 울립니다. 진심입니다.

 

어쨌든, 전 이런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전체 소설의 프로젝트를 염두해 두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진행시킵니다. 이 소설이 어떻게 끝나게 될지 너무 궁금한 상태로 이야기를 써나갑니다. 그리고 독자들고 그 답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함께 읽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처음부터 줄거리와 결말을 정했다면 소설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적어도 소설 쓰기란 저에게 이런 식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글을 씀에 있어서, 사다리와 같은 어떤 논리 구조나, 습관이나 관습에 얽매여 소설을 완성하는 프로젝트 아래 조화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에 의해 제한 받지 않는 것이 저에게는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왜 이렇게 작가에게 자유로움이 필요할까요?

 

자유롭다라는 것은 작가 자신의 무의식 영역에 접근하는 것이 더 쉽고, 이것은 처음부터 줄거리를 생각하지 않고, 제약없이 소설을 쓰는 방식에 있어서 매우 큰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작가의 작품의 궁극적인 목표는 일반적인 예술 분야의 창작자들의 그것과 비슷하게 자기 스스로에게 깊숙히 들어가는 것일 겁니다. 다시말해, 가장 안쪽에 숨겨진 어두운 곳의 무의식의 미로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럼으로서 마침내 당신은 당신의 안에 있는 실제 이야기에 도달할 수 있게됩니다. 논리의 법칙에 따라 당신의 머릿속에 세워진 이야기가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고 깊속한 곳에서 자발적으로 찾아낸 이야기입니다. 올바른 정직한 방법으로 말한다면 다른 누구와도 정신적으로 매우 깊게 소통할 수 있습니다. 이 놀랍고 유익한 꼭 필요한 효과는 바로 소설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혼자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바로 이점이 좋은 이야기, 따뜻하고 차분하며 자연스러운 일종의 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제가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저는 이 모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첫 소설을 쓰고 계속해서 작품을 하나 둘 써가며 제 자신의 문학 스타일이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작가가 소설을 쓸 때,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이 얼마나 근본적이고, 어느 시점에서 독자들과의 폭넓은 공감을 느끼는 것이 필요한지 점차 강하고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첫번째 언급한 장편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보면 저는 토네이도에 관한 짧은 단락을 썼고, 저는 그 시트를 서랍에 넣어두었습니다. 바로 이 순간부터 발효는 시작되어집니다. 저는 그 토네이도의 이미지를 제 의식에 더 깊이 담그기 시작했고, 그것이 의식 수준에 도달할 때 까지, 무의식의 심연 속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몇가지 요구 사항과 합쳐져 비옥한 보다 온전한 이야기의 성격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의식의 표면으로 돌아가는데, 전 바로 그 시점을 놓치지 않고 그렇게 표면으로 올라와 떠 다니는 것을 모아서 소설의 형태로 변환 시킨 것입니다. 

 

물론, 제가 서랍 속에 넣은 문장 시트가 모두 성공적으로 발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대부분은 그곳에 보관된채 잊혀져 있습니다. 적은 부분만 건져 올려집니다. 그러나 어떤 시트가 사용될지는 미리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시트가 건져올려질지 결과가 나오기전까지는 모르고, 마냥 어떤 단락이 올라온 결과만이 저에게 오게 됩니다. 저는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시간이 오래 흐르게 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도 자연적인 반응이 일어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많은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 얘기하면, 이 세상의 많은 중요한 일들도 그것을 이루는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자유로운 느낌의 중요성을 알게 해준 것은 실제로 문학보다 더 자유롭다고 여겨지는 음악이 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글이 재즈의 전형적인 즉흥 연주에서 강한 영감을 얻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정해진 테마에서 시작하지만, 연주자의 영감에 따라 연주는 무한하게 변주됩니다. 저는 어린 시절 부터 이런 재즈 음악을 들어서 글을 쓸 때도 똑같은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라는 강한 욕구가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음악으로 부터 배운 핵심 사항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것은 리듬입니다. 이야기를 계속해서 유지해 나갈 수 있는 리듬입니다. 때로는 단순하게 그러나 때로는 복잡하고 마법처럼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리듬은 음악에서 만큼이나 소설에서도 필수적입니다. 리듬이 살아있으면 스타일이 아름답고 이야기가 매력적이 됩니다. 활기차고 잘 선택된 리듬이 없으면 대부분의 독자들로 하여금 페이지를 넘기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기 어려울 겁니다. 글을 쓸 때는 항상 리듬의 중요성을 명심해야 합니다. 쓰고 있는 글에 맞는 리듬을 찾았다고 여겨지면 멈출 수 없이 계속해서 써 내려가게 됩니다. 

 

마지막은 멜로디입니다. 결국 멜로디가 독자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됩니다. 소설로 치자면 독자가 자발적으로 인용하거나 기억해두고 싶은 특별한 단락이 될 겁니다. 독자에게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아름다운 구절입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는 결국 타고난 재능에 대한 문제에 직면하고 맙니다. 아마도 멜로디를 작곡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가 태어날 때 부터 가지고 태어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멋진 멜로디를 작곡할 수가 없는 겁니다. 모차르트와 슈베르트가 만든 경이로운 멜로디가 모두 노력과 헌신의 결과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내면에 숨어있는 멜로디에 귀를 기울여 조심스럽게 시도해보면 재능 수준을 상당 부분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히 있습니다. 

 

즉흥 연주, 리듬의 중요성, 아름다운 멜로디를 구성하는 이 세가지를 저는 음악에서 배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매일을 음악과 함께 일했던 재즈바 시절이 저에게는 아마 소설가가 되기 위한 훌륭한 훈련이었을겁니다. 최소한 음악은 저의 문학적 스타일을 형성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저는 제 소설이 다른 작가들의 그것과 어떤면에서 공통적인 부분을 찾을 수 있는지 잘 모릅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각각의 작가들마다의 독특한 개인 스타일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설을 쓰는 표준적인 방법"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사람마다의 삶이 다르듯 작가마다 스타일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문학적인 스타일에는 그 기저에 있는 근본 발생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방금 얘기한 제 스타일을 찾기 위해 수행한 방법은 다른 작가들에게는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소설가는 자신만의 창작 스타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글을 쓴다는 행위 그 자체의 기저에 놓인 공통 요소는 찾을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심플한 단어를 선택하는 것이 "이야기의 기본적인 자신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은 수세기에 걸쳐 많은 시련을 거쳐 발전해 왔습니다. 소설은 인류에게 꼭 필요한 형태의 표현 형식이며, 우리 모두가 반드시 알아야할 표현 형식입니다. 소설에 대한 이 정도의 경외감이 없다면 독자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닿을 수 있는 책을 쓸 수 없을 것입니다. 소설의 기원, 즉 스토리텔링은 인류가 동굴에 살았던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눈을 감고 그 당시의 생활을 상상해보십시오. 해가지면 주위는 어두워집니다. 문자 그대로의 완전한 어둠입니다. 날카로운 송곳니와 발톱을 지닌 맹수들이 돌아다니는 위험한 장소에 놓여있습니다. 그 짐승들을 피하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동굴로 들어가 피난처를 삼고 불을 피워 기나긴 밤을 서로 가까이 의지하며 보내게 됩니다. 동굴안에는 모닥불을 피워 놓습니다. 몸을 따뜻하게 하고  야생 동물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합니다. 음식은 만성적으로 부족하여 굶주림으로 인해 잠이 잘 오지 않습니다. 

 

이때 어떤 시점에 한 남자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일반적으로 말을 시작하는 사람은 항상 같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말을 잘하는 법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주의 깊게 듣고 귀를 기울입니다. 반면, 당시에는 다른 여가라는 것이 없던 시대입니다. 그가 하는 이야기는 잠시라도 두려움과 굶주림을 잊게 해줍니다. 나레이터는 아마도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갈 겁니다. 그의 말에 귀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그 이야기에 관여하고 싶어지고 때로는 질문을 하거나 의견을 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레이터가 그들의 반응에 따라 이야기의 흐름을 점차 바꾸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서 이야기가 끝납니다. "그 뒤에는 어떻게 돼?"라고 모두가 묻습니다. 나레티어는 마지막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납니다. 그리고 모두 잠을 잘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마음 속에 방금 들었던 이야기에 대해 가만히 생각하다가 잠이 듭니다. 

 

아마 전 세계의 동굴에서 같은 장면이 반복되었을 것입니다. 유럽, 일본, 아프리카, 중동 등 모든 곳에 비슷한 동굴과 어둠이 있었을 것이고 아마도 같은 종류의 이야기가 같은 방식으로 들려졌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설의 형태로 표현 방식이 바뀌는 것은 수세기에 거려 형성되었을 겁니다. 구두로만 전해지던 이야기는 그래픽 기호를 사용하여 인쇄를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으며, 인쇄가 시작된 후 책이라는 출판물이 등장했습니다. 현재는 많은 사람들이 전자책 형식으로 화면을 통해 소설을 읽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설을 접하는 도구가 변해왔더라도 기본적으로 동굴에서와 같은 이야기의 흐름을 따르는 구조는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 소설가는 동굴 속에 있던 이야기꾼의 후손입니다. 길고 깊은 어둠, 작은 모닥불, 하나의 마음이 되는 여러 사람들, 짧은 시간이지만 두려움과 굶주림을 잊을 수 있는, 기본적으로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고대와 비교하면 지금 세상은 훨씬 더 밝은 곳이 되었습니다. 빛이 닿지 않은 곳이 거의 없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도시의 밤은 빛으로 인해 밝아질 수 있지만, '어둠'은 항상 깊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영혼의 진짜 어둠은 새벽 3시에 온다."라고 에세이에 썼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종류의 어둠입니다. 고대와 오늘날에는 이런 어둠을 밝힐 수 있는 작은 모닥불이 항상 필요합니다. 그건 아마도 소설만이 제공할 수 있는 빛일 것입니다. 그 모닥불을 염두해두고 40년 동안 중단 없이 계속해서 글을 썼습니다. 제가 쓴 이야기가 전 세계의 많은 곳에서 많은 동굴 속의 어두운 구석을 밝히는 것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또 앞으로도 계속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기쁜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 자리에 오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간 문학상 수상 연설이나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 사회 문제에 대한 발언을 적절하게 섞어서 얘기하던 하루키가 이번 수상 연설에서는 오로지 자신의 본업인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만 집중해서 했습니다. 물론, 작가의 사회적 책임을 느끼며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 언급을 해오며 팬들로 부터 지지도 많이 받았지만, 일본 극우 세력에 의해 그런 발언들이 노벨 위원회를 향해 꼬리를 흔드는 행동이라는 공격도 받았는데요. 그런 부분이 작용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이번 연설에서는 오로지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자신의 본업인 작가로서의 역할에 대해 진중하게 연설을 한 하루키. 잠시 숨을 고른다고 느껴진 그의 진심이 느껴지는 혹은 회고록과도 같은 연설이었습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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