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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소개해 드릴 인터뷰는 하루키의 지난 2월 르몽드와 가진 인터뷰입니다. 하루키는 올 2월 니나가와 유키오씨가 연출한 그의 동명 소설 <해변의 카프카>의 프랑스 공연에 초대되어 프랑스를 방문하였고, 그 마지막 공연이 있던날, 프랑스 관객들과 좌담회도 개최했답니다. 그 모든 행사가 끝나고 극장의 한 자리에서 르몽드지와 엄격한 시간 제한을 두고 약 1시간 정도 인터뷰를 했다고 하네요. (웃음) 

 

https://thevinylfactory.com/news/haruki-murakami-radio-show-playlist-listen/

 

Q: 무라카미씨는 글을 써야겠다라고 욕구가 생기는게 언제이신지요?

저의 유년시절 가장 중요했던 것은 고양이, 음악, 그리고 책이었답니다. 이 세가지 중 중요한 순위는 언급한 순서대로에요. 학창시절 작문 수업에 있어서 좋은 성적을 받았었지만, 작문에 대한 특별한 흥미는 없었어요. 전 외동아들로 혼자 자라와서 자연스레 책을 읽기 시작했고, 책은 제 삶에서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했죠. 하지만 음악에 대한 저의 열정 만큼은 아니었답니다. 1974년 성인이 되고 대학생이 었던 저는 도쿄에 '피터캣'이라는 재즈바를 오픈했거든요. 저는 때때로 어떤 형태의 창조 욕구를 느끼긴 했지만, 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고, 그럴만큼 특별한 재능이 있지도 않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죠. 훌륭한 창조자들의 창작물들을 제 안에 함양시켰어요. 그런데 29세의 어느날 불현듯 제가 글을 쓸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말그대로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온 계시와도 같은 것이었어요. 그 이후로 지금까지 줄곧 멈추지 않고 소설을 쓰고 있답니다. 

 

Q: 말씀하신 '계시, 현상'이 야구 경기장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이제 유명한 얘기입니다.

네 맞아요. 당시 집근처의 야구 경기장에 갔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시즌 첫 경기였고, 타자의 경쾌한 안타가 나왔어요. 배트에 의해 공이 타격이 되어 '딱' 하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저는 소설을 쓸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답니다. 

 

Q: 무라카미씨의 말에 따르면, 이 '계시'가 타자의 아름다운 타격과 경쾌한 타격 소리 이 모든 것 때문인건가요?

네 맞아요. 그때는 봄이었고, 매우 행복감이 들던 순간이었어요. 큰 경기장에서 이런 행복감도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경기장안에는 타격 소리와 함께 관중들의 함성도 함께 있었죠. 그리고 저는 맥주를 마시고 있었어요. 아마도 그 역시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을 겁니다. (웃음)

 

Q: 무라카미씨는 음악에의 열정을 간간히 말씀하시는데요. 음악가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나요?

저는 음악은 좋아했지만, 노래는 잘 부르지 못하고 연주도 크게 재능이 없습니다. 저는 재크클럽을 운영하면서 좋은 음악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어요. 1960년대 존 콜트레인과 마일스 데이비스 같은 가장 위대한 뮤지션들을 접했죠. 동시대를 살았던 그들로 인해 모두들에게 좋은 자극제, 활력소가 되었죠. 당시에는 예술적으로 재즈나 락 등 에너지가 넘쳤던 시대였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번에 파리에 온 김에 페르라세즈 공동묘지에 가서 저의 우상이었던 도어스의 짐모리슨의 묘지에 가보고 싶습니다. 아직 못가봤는데 꼭 시간을 내서 가보고 싶어요. 제가 대학에 입학했던 스무살 때, 도어스의 1967년 데뷔 앨범인 <Light My Fire>를 듣곤 했어요. 그는 마법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그 앨범을 듣고 있으면, 그 시대의 느낌이 훅하고 다시 저에게 전해집니다. 29살 야구 경기장에서 소설가로서의 가능성을 스스로 느끼기전 까지 재즈 카페를 하면서 가득했던 당대의 예술가, 창조가들의 영향을 받아 저도 조금조금씩 창조에 대한 열망이 자라나고 있지 않았을까요. 

 

Q: 글을 써보자라는 결심은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 되었나요?

피터캣을 하면서는 글쓰기 위해서 준비된 그 어떤 것도 없었기 때문에, 가장 먼저 펜을 사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잉크펜을 사서 피터캣을 마감한 후 새벽, 부엌 식탁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답니다. 바로 이 첫 순간은 저에게 매우 아름다운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어요. 저는 소설을 어떻게 써야하는지도 몰랐고, 그냥 쓰기 시작했어요. 페이지는 채워져 나갔지만, 제가 그것을 다시 읽어보면 전혀 흥미롭지 않다는 것을 알았죠. 그런 와중에 먼저 영어로 써볼까라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왜 영어였을까요. 그건 제가 소설가로서의 어휘가 제한적이라는 판단때문이었답니다. 일본어 보다 덜 풍부하고 직접적이고 덜 복잡한 구문으로 제 이야기를 표현해야 했어요. 오직 영어로만은 한 챕터만 썼고, 그 이후엔 다시 영어를 일본어로 번역한다는 생각으로 써 내려갔답니다. 그렇게 저는 저만의 스타일을 찾아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탄생했답니다. 외국어로 글을 쓰는 것은 매우 중요한 훈련이었어요. 헝가리 출신이지만 프랑스어로 소설을 썼던,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마치 영어로 글을 쓴 것 처럼 느껴진답니다. 당시 제가 했던 작업과 그녀의 작업 사이에는 유사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문장은 짧고, 어휘가 많이 제공되지는 않지만 이 방법의 글쓰기는 캐릭터의 감정을 좀 더 진실되게 표현이 가능해진다는 점이 있습니다. 

 

Q: 보통 작가들은 첫 작품보다 두번째 작품이 더 쓰기 어려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무라카미씨의 경우에도 그랬나요?

아니요. 저의 경우에는 두번째 소설 <1973년의 핀볼>의 경우 오히려 더 수월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세번째 소설에서 나타났죠. 사실 <1973년의 핀볼>의 경우 첫 소설의 후속편 같은 성격이었죠. 그러나 세번째 작품에서는 앞에서의 반복을 다시 할 수는 없었어요. 매우 다른 형태의 소설에 도전했죠. 그렇게 세번째 소설 <양을 쫓는 모험>을 썼고, <1973년의 핀볼>을 쓰고 재즈 카페를 양도하기로 결심했죠. 그렇게 저는 세번째 소설 부터 전업 작가로 작품에 온전히 집중 할 수 있었어요. 그 전까지는 재크 카페를 운영했기 때문에 유흥이라던가 다른 흥미로운 일들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피터캣을 팔고 나서 부터는 담배를 끊고, 매일 조깅을 하기 시작했죠. 그것은 진정한 혁명과도 같은 일이었어요. 

 

Q: 그런 결정이 무라카미씨의 작가 활동에 있어서 도움이 되셨나요?

처음의 두 소설을 저에게 자신감을 주었답니다. 저는 더 잘 쓸 수 있을 것이락 스스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일에 집중해야만 했죠. 제 지인들은 재크클럽을 양도하는 일에 대해 반대가 심했어요. 일정한 수입원이 되어주던 재즈카페를 팔고 전업 작가로 전향하는 것은 리스크가 큰 일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저는 제가 시작한 일에 계속해서 도전해 보고 싶었어요. 분명히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답니다. 저는 재즈카페를 운영하고 있을 때는, 저의 작가적 역량을 20~30% 정도 밖에 발휘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 이후로, 매일 밤 9시, 10시에 잠에 들고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러닝을 하고, 글을 썼습니다. 달리는 일은 저에겐 없어서는 안되는 일이랍니다. 매년 마라톤에 참가해요. 파리에 오기전 교토 마라톤을 뛰고 왔답니다. 

 

Q: 이런 삶이 무라카미씨의 창조 활동에 전적으로 필요한 일인가요? 

저는 새벽에 일어나 날이 밝기전 모두가 잠은 시간에 매우 일찍 소설을 쓴답니다. 작가의 작업이라는 것은 그의 의식의 가장 밑으로 내려가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일은 매우 고독하고 많은 집중이 필요합니다. 제 주변에 소음이 있으면 좀처럼 하기 쉽지 않죠. 헤밍웨이와 같은 일부 작가들은 전쟁, 투우, 사냥, 파티 등의 외부 사건에 의해 작가적 창작 자극을 받지만, 그럼면에 있어서는 저는 정반대에 위치해 있습니다.

 

Q: 무라카미씨의 근작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는 주인공이 영감을 얻기 위해 찾아 떠나는 매우 깊은 의식의 여정이 다양한 은유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점이 무라카미씨의 예술적인 창조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만약 당신이 당신의 의식의 바닥으로 내려갈 때, 당신이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들이 있을 겁니다. 그것들은 모두 우리가 다시 표면으로 나올 때 가져 나올 수 있는 재료가 될겁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눈에 보인다면 잘 정렬해서 정리해두세요. 이런 작업들이 어떻게 수행되는지를 물어보신다면, 저의 대답은 잘 모르겠는 미스테리와 같다는 입니다. 논리적으로 접근해버리면, 그것은 더이상 이야기가 아니고, 단지 '확인'하는 작업물에 그치게 될 겁니다. 이야기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많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문학에서는 오래전 부터 사소설로 일컬어지는, 개인의 내면의 감정에 대해 표현하는 소설이 주류를 이뤘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제 작품은 오로지 상상력에 의해 창조되어 지며, 모든 작품은 그런 상상력의 발전 속에 있습니다. 처음 제 작품이 일본에서 출간되었을 때, 그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소설이었기 때문에, 일본 문단에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제 의식의 밑바닥으로 가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찾아 모은 요소들을 가지고 소설을 쓰기 때문에, 독자들도 소설을 읽는 동안 공감을 느끼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해요. 저와 독자의 두개의 의식이 심연에서 만나 느끼는 공통된 감정이 생기는 것이죠. 그렇게 작가와 독자사이의 그렇게 연결되는 의식의 지점에 대해 관심이 큽니다.  

 

Q: 그런 무라카미씨의 창작의 신비에 과정에 이해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신가요?

아니요. 그 과정에 대해서는 더 알고 싶어하지 않아요. 제 소설은 제 자신이나 독자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작업이지 소설을 이해하기 위한 작업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에 특별한 관심이 없어요. 정신분석가들은 저의 작품을 그들의 연구에 레퍼런스로 활용하고, 저를 심포지엄 같은 자리에 초대하곤 하지만, 저는 결코 그런 자리에는 나가지 않습니다. 저는 설명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잘하지 못한답니다. 그런 일들을 하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답니다. 제 역할은 텍스트의 의미를 찾기보다는 텍스트를 제안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 이론은 작가와 독자가 서로의 의식의 밑단으로 내려가 깊이 빠져들 때, 서로의 관계를 발견하면서 예술적이고 더 근본적인 또한 더 활기찬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동정심이나 공감을 얘기할 때, 그것은 물론 이 지구상에는 존재하는 개념인 것 같지만, 그것은 피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Q: <오자와 세이지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에세이에서는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씨와 상당한 내공의 깊은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시는데요. 다른 분야의 창작자들과의 어떤 관심이 있으신가요?

사실, 이 에세이에서는 음악의 하나의 특별한 분야를 계속 얘기하고 있죠. 즉, 모든 다른 분야의 창작자들과는 교류할 수 있는 즐거움이라는 것은 부족할지 모릅니다. 오자와 세이지씨는 제 친구랍니다. 개인적으로 볼 때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는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에세이를 진행하고자 마음 먹었을 때는, 오자와 세이지씨의 음악 세계를 제대로 알아야 했기에 일로서 접근할 수 밖에 없다고 스스로에게 납득 시킨 후, 그때 부터 많은 음악을 듣고 공부했습니다. 그의 음악 세계에 대한 저의 명확한 의견이 없으면, 대화를 이어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음악은 록이나, 클래식, 재즈 위주로 반복해서 듣고 있어요. 또한 지금 일본의 FM라디오에서 DJ도 하고 있답니다. 음악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매우 바빠서 2개월에 한 번 정도로 진행하고 있지만, 이미 4번 정도 방송을 진행했네요. 

 

Q: 어떤 음악들을 들려주시나요?

대부분 록음악이나, 소울, 재즈도 있습니다. 집에있는 CD나 레코드를 가지고 와서 튼답니다. 제가 원하는 음악을 내보내고, 거기에 맞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무심코 던집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저는 앞으로 이제 소설을 쓰는 것에만 전념하겠다라고 생각했는데, 70세의 나이도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기에 좋은 나이라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작가로서 너무 틀에 잡혀있고, 공식적이고 규격화된 삶을 살기만 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소설을 쓰는데 크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여러가지 새로운 것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DJ 자리를 제안해준 것은 아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DJ를 시작했답니다.

 

Q: 이와 같은 다른 종류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으신 것이 있으신가요?

특별히 생각해 둔 것은 없지만, 만약 기회가 된다면 제가 예전 부터 신경이 쓰이던 부분인데요. 젊은 시절 제 작품을 좋아했던 독자들은 저를 '컬트' 작가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런 부분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저는 조금 조금씩 일반적으로도 읽혀지는 대중 소설가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제가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고도 말합니다. 이런 말들은 저를 꽤나 복잡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저는 사실 아무 심플한 것을 좋아하거든요. 바로 이점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을 흥미롭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해요. 저는 다양한 요리를 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리고 번역도 좋아해요. 제 작품을 쓰지 않을 때는, 다른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고, 번역하지 않을 때는 제 소설을 씁니다. 때로는 DJ를 하기도 하고요. 때로는 달립니다. 음, 저는 어쩌면 일 중독일지도 모르겠네요. (웃음)

 

Q: 계속 여행하며 지내시나요?

저는 여행도 많이하고, 외국에 체류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일본에 기반을 두고 살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많은 나라를 다녔지만, 아무래도 이제는 조금 줄어 들었습니다. 저는 이제는 좀 더 제가 태어난 나라에 더 지내고 싶습니다. 특히 어머니가 아직 일본에 계시기도 해서 어머니를 뵐 기회를 더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제 레코드를 수집하러 외국에 나가고 싶은 욕구도 많이 줄어 들었답니다. (웃음) 저는 몇개의 소설을 외국에 체류하면서 썼답니다. <노르웨이의 숲>은 이탈리아와 그리스에서, <태엽감는새>는 미국 프린스턴에서 썼죠. 글쓰기에 집중함에 있어서는 해외에서 보다 더 집중 할 수 있었습니다. 소설가로서 위대한 점은 글쓰기에 집중함으로서 다른 사람이 되고, 또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해변의 카프카>를 1년 반 동안 집필했는데, 그 시기 동안 저는 철저하게 15세 소년이 되었답니다. 저는 15세 소년이 느낄 수 있는 바람을 느꼈고, 15세 소년이 볼 수 있는 세상을 보았답니다. 

 

Q: 사회 정치적인 발언은 여전히 많이 하지 않으십니다.

저는 소설가이고, 제 직업은 이야기를 제안하는 것이지, 어떤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제 의견을 제시할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카탈로니아상 수상 연설을 통해 소설가가 아닌 시민으로서의 자국의 핵발전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제가 너무 많은 말을 해버리면 소설가로서의 직업이 손상될 것입니다.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이슈는 포퓰리즘과 극우의 부상입니다. 저는 그 부분에 대한 제 의견을 제시해야할 것 같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할 말이 정해지면, 시간을 내어 단어의 무게를 측정하여 하고 싶습니다.

하루키가 르몽드지 인터뷰를 통해 다시 한 번 자국의 극우주의, 역사 수정주의에 대해 일침을 놓았는데요. 이 인터뷰가 진행되기 전인, 연극 <해변의 카프카> 관객들과의 좌담회에서는 일본의 전쟁의 역사를 다음 세대에 객관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얘기했죠. 그의 다음 작품에는 이런 부분이 어느 정도 더 담기게 될 것으로 기대해봅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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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2019.09.11 02:48

    이때까지 하루키가 부모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인터뷰는 잘 보지못한거 같은데

    이번에는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인터뷰에 나타나는군요.. 나이가 들어서 변한건지

    항상 잘 읽고있습니다!

    • finding-haruki.com 2019.09.11 21:51 신고

      네 맞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전 극적으로(?) 화해도 했고, 교토에 계신 어머니가 연로하셔서 꽤 자주 뵈러 가는 것 같습니다. 최근 2-3년 인터뷰를 보면 알 수 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