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6일 하루키가 18년만에 일본 내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 공개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장소는 하루키가 가장 좋아하는 달리기 코스인 가모가와강이 있는 교토의 교토대학교였는데요, 2007년 세상을 떠난 일본의 융학파 심리학자로 정평이 나있는 가와이 하야오 학예상 제정을 기념하여, 가와이 하야오 재단의 요청에 따라 성사된 것입니다. 하루키와 가와이 하야오 선생은 친분이 두터운 사이였고, 1996년 <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란 대담집을 내기도 했었죠. 이 책에서는 하루키가 도쿄 사린 테러와 고베 대지진으로 인해 디태치먼트적인 무관심, 개인주의적인 성향에서 사회에 관여하려고 하는 커미트먼트로의 전환이 이뤄지는, 작가로서의 중요한 시기에 이뤄진 대담이 담겨 있답니다. 그렇게 커미트먼트로의 전환에 가와이 하야오 선생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만큼 두 사람의 관계는 중요하다고 느껴집니다. 실제로도 그렇겠죠? :)
이야기는 영혼의 깊은 곳으로 부터
이번 공개인터뷰는 사전 신청한 사람 중 추첨하여 500명이 참석했고 (저도 신청했는데 떨어졌답니다..) 일체의 녹음이나 촬영, 사진 등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는데요. 몰래 녹음을 한 건지 받아적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날의 공개 인터뷰 전문은 니케이 신문사에 의해 회원 전용으로 공개가 되었고, 그 내용을 위의 사이트에서 블로깅 형식으로 재공개를 하였습니다. 전 그 블로그 내용을 번역해 보았습니다. 시작하죠~! :D *오,의역 감안 해주세요.
사진은 당시 현장 사진이 아닌, 자료 사진입니다.
*강연은 편의상 3부로 나눌게요. 1부 하루키의 가와이 선생에 대한 일화, 2부 문학평론가와의 대담, 3부 참가자의 질문, 답변으로 구분하여 정리해보았습니다.
1부: 강연을 시작하며 - 가와이 하야오 선생과의 추억
지금 이 자리에 모여주신 여러분들은 첫 대면이라고 생각됩니다만, 모처럼의 기회이므로 오늘은 느긋하게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평소 TV나 강연자리에 나서는 것을 꺼려하지만, 이번 자리는 가와이 하야오 선생의 학예상 창설을 기념하는 자리의 의미가 있어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람들 앞에 너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종종 '까마귀 텐구'(전설 속의 요괴)에 비유되기도 하지만, 전 지극히 보통 사람입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헌책방이나 편의점 등 인근에 쇼핑을 나가기도 하는데, 그럴때마다 사람들로부터 얘기를 듣는 것을 싫어해, 더 알려지지 않게 TV에 나가지 않는 것 뿐입니다. "그럼 왜 (얼굴이 알려지지 않는) 라디오에는 나오지 않나요?"라는 질문을 받게 되기도 하는데, 글세요. 전 글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질문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실제로 귀찮은 일들이 많이 생깁니다. 집 근처에서 조깅을 하고 있으면, 한 사람이 "이 근처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집이 있다고 하는데, 모르시나요?"라고 물어왔던 적이 있는데, 전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얼른 그 자리에서 도망쳤던 기억도 있습니다. 또 한가지 재밌는 일은 운전 면허 갱신을 하러 갔는데, 창구의 여직원이 "무라카미 하루키씨!"라고 부른 후 저를 보더니(알아보지 못하고) "동명 이인이시군요"라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네 맞아요. 항상 곤란한 일이 많이 생긴답니다"라고 말했었죠. 또 한번은 교토의 간코스시 앞을 지나다가 손님 안내를 하고 있는 청년이 저를 알아보고는 "아, 무라카미씨 아니세요? 안들어가고 뭐하고 계세요."라며 권유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제 작품을 모두 읽어 준 팬이었답니다. 그 때는 소바를 먹고 싶었던 상황이었는데, 그만 그대로 간코스시로 들어가 버렸죠. 저를 '이리오모테야마 고양이'(일본 오키나와현의 천연기념물 삵쾡이)와 같은 멸종 위기의 동물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보여도 손으로 만지거나 하지 않으셨으면 한답니다. 손을 내밀면 위협을 느끼고 물어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시고 조심해주세요.
그런데, 지금 제가 가와이 하야오 선생과 비슷한 말투를 쓰고 있는 것 같군요. 저는 보통 '아무개 선생님'이라고 사람을 부르지 않습니다만, 가와이 하야오씨에 한해서는 항상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습니다. 가와이 선생께서는 '가와이 하야오'나 '가와이 선생님'을 잘 구분하여 사용할 법한 사람이라는 인상이었지만, 가와이씨는 제 앞에서는 끝까지 '가와이 선생님'이었습니다. 저희 둘은 끝까지 '소설가'와 '심리요법가'라는 옷을 벗지 않고 상대를 대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남처럼 서먹한 사이였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어느정도의 틀이 있는 것이 각자의 영역에서의 전문가로서 솔직하고, 명쾌하게, 기분 좋은 긴장감을 가지고 이야기를 진행해 나갈 수 있습니다. 물론 가와이 선생이 심리요법가라는 옷을 벗은 채 오직 당신으로서만 있는 상태에서도 아주 흥미있었답니다.
제가 가와이 선생을 알게된 것은 1993년으로 20년 전 이네요. 당시 가와이 선생은 프린스턴 대학의 객원 교수로 재직 중이셨습니다. 전 선생께서 프린스턴으로 오시기 직전까지 프린스턴에 체류하고 있어서 당시에는 엇갈리게 되었죠. 당시 저는 터프츠 대학에서 일본 문학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었죠. 당시는 가와이 선생을 몰랐고, 심리 치료라는 것도 몰랐었죠. 다만 제 아내가 가와이 선생의 책을 열심히 읽고 있었죠. 어느날 그녀가 "가와이 선생의 책을 일부러 읽을 필요는 없지만, 선생님을 한 번 만나보면 어때요?"라고 얘기했습니다. 이럴 때 여성의 직감이 날카롭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답니다. 전 가와이 선생의 책은 별로 읽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융, 평전>이나 <미래의 기억 (하)> 밖에 없습니다. 소설가의 역할은 텍스트를 공용으로 제공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텍스트를 독자는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소설가가 자신의 작품을 분석하기 시작하는 것 만큼 좋지 않은 상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가와이 선생의 '융'에 관한 저서에도 굳이 거리를 두어 왔습니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처음 만났을 때, 상당히 어두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심상치 않았죠. 저는 소설가이기 때문에 사람을 관찰은 하지만, 판단은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때도 선생의 모습을 관찰만 하고, 어떤 사람일까라는 판단까지는 하지 않았습니다. 눈이 가라앉아 보인다거나, 왠지 무겁고 어두운 느낌 그런 것들만 보았죠. 저는 열심히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스타일은 아니어서, 처음 봤던 그 날은 대화 보다 침묵이 많았습니다. 그 알 수 없는 선생의 눈빛이 지금도 제 기억 속에 박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만났을 때는 아이의 눈 처럼 맑은 눈동자로, 매우 유쾌하게 말씀을 하셨죠. 사람이 어떻게 하루만에 이렇게 바뀌는지 생각이 들기보다 어제는 선생 스스로를 통제하여 비우고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저 자신이 때때로 그런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만, 특히 인터뷰 할 때는 뭔가 저 역시 스스로의 의식을 비우고 있는 상태가 된답니다. 저는 <언더그라운드>을 집필 할 당시, 지하철 사린 테러 사건에 대한 취재를 했지만, 그 날 가와이 선생과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에 수긍이 갔습니다. "아, 이런 것을 직업(심리 요법, 치료가)으로 하고 계시는 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후 몇 차례 더 만나서 기분 좋은 대화를 이어갔지만, 대부분의 대화 내용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생히 기억나는 것 중에 한 가지는 가와이 선생의 개그였습니다. 형편 없었습니다만, 이런 류의 개그입니다. "문화청 장관을 하고 있었을 때였는데, 회의를 하는데 늦게 도착한 당시 오부치 총리(일본의 과거 역사를 사과한 김대중 대통령과의 담화문으로 유명하죠.)가 영어로 사과를 하는거에요. 아임 쏘리. 아임 쏘리라고요" 제 추측이지만, 직업으로의 임상가로서 많은 사람들과의 대면을 통해 때때로 어두운 장소에서 때론 심리적으로 위험한 사람들과의 대면도 있을 것이고 그런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이렇게 형편없는 농담이라도 해야,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는 임상가로서의 직업을 계속 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엑소시즘 이라든지, 해독제 같은 느낌으로 말이죠. 저 역시 매일 매일 조깅을 하면서, 소설을 쓸 때의 어두운 마음에 대한 지불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가와이 선생과의 대화에서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고 말했습니다만, 저는 그것으로도 좋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가와이 선생과 저는 '이야기'라는 개념을 공유하기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가장 깊은 곳'으로 부터 나오기 때문에, 그것을 공유하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을 깊은 곳에 묶어 둘 수 있습니다. 굳이 말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서로 그런 뭔가의 공감대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깊은 공감을 공유 할 상대는 가와이 선생 외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최근 저는 '이야기'라는 말이 자주 입 밖으로 나오게 되지만, 그 이야기라는 것을 온전히 받아 주고 이해해 준 사람 역시 가와이 선생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던진 볼을 제대로 양손으로 받아 주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매우 감사한 일이었고,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문학의 세계에서는 그런 것은 별로 없었으니까요.
끝으로, 가와이 하야오 선생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제정된 학예상이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하겠습니다.
2부: 대담 - 문학평론가 유카와 유타카
Q1. (유카와 유타카) : 하루키상, 방금 전 가와이 하야오 선생에 관한 일화 재밌게 들었습니다. 하루키상은 <해변의 카프카> 출간 당시의 인터뷰에서 "인간은 2층으로 이루어져있고, 1층, 2층 외에 지하실이 있고 그곳에 기억의 파편이있다"고 하셨죠. 게다가 "진실한 이야기는 그곳이 아니다. 더 깊은 곳에 지하 2층이 있고, 그곳에 진짜 인간 드라마와 스토리가 있다"고요. 그것을 듣고 "과연"이라고 생각했어요. 이것을 가와이 선생과는 '이야기'라는 컨셉으로 공유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되는군요.
하루키: 저는 이전 부터, 지하 1층 아래에는 알 수 없는 공간이 펼쳐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많은 소설과 음악(작가와 음악가)이 기억과 영혼의 잔해가 남아있는 지하 1층에 방문해서 쓰여지지만, 그러면 사람의 마음을 붙들어 매는 것은 탄생할 수 없습니다. 미국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는 다른 소설을 쓰고 싶다면 사람들과 다른 언어로 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재즈 피아니스트인 세로니아스 몽크는 "어떻게 하면 그런 소리가 나오나요?"라는 질문에 "건반은 88개가 있죠. 모두 이것으로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라고 답하지만, 그 속에서 영혼을 울리는 연주가 나옵니다. 가장 아래까지 가는 통로를 찾아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실제로 지하 1층까지만 가서 나온 결과물들은 논리적인 비판이 쉽습니다. 작곡가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경우를 봐도 그렇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좋게 평가된 것은 살리에리였을지 모르지만, 무언가를 더 제대로 만들고 싶으면 지하 더 안쪽까지 가야 합니다. 가와이 선생도 이해하고 있었다고 생각되지만,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문학 세계에서 많지 않습니다. 저는 글을 쓸 때, 정신 상태를 유지하면서 지하 깊숙히 내려가고 싶다고 항상 생각합니다.
Q2: 무라카미씨는 초기 작품은 아포리즘(경험과 깨달음을 통한 경구)과 디태치먼트(초연함, 무심함)의 성향이 3번째 소설인 <양을 쫓는 모험>의 스토리텔링에 반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때 '스폰데이니어스', 즉 '자발적인'것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 같은데, 그것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하루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의 초기 2편의 장편과 단편집 <중국행 슬로보트>는 재즈 카페를 하는 와중에 썼기 때문에, 결정된 스토리를 가지고 쓸 여유가 없었다랄까요. 이야기의 조각 조각을 이어서 쓰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참신하다고 평가되었던 것 같지만, 그전에 제대로 쓰고 싶단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무라카미 류의 <코인로커 베이비즈>를 읽고 이렇게 쓰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고 가게를 그만 두게 되었죠. 결말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원하는 만큼 충분한 시간을 들여 이야기를 써 나가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저 스스로 이런 방식이 맞다고 느끼게 되었죠. 4번째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세계의 끝'을 먼저 발표했을 때, 100장 정도의 소설이었습니다. 스스로 재미있다고 느꼈지만, 만족하지는 않았어요. 독자를 끌어들이는 강한 힘이 없다랄까요. 그때 생각난 것이 이야기를 동시 진행되는 2개의 병렬 구조로 가져가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와 '나'를 인칭을 나누어 자신을 분열 시키고, 끝에 가서 다시 통합되는거죠. 순서대로 써 나가면 어떻게든 될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그때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이상하게 호응하고 있다라는 것을 알게됐죠. 당시를 생각하면 뭔가 스스로 '신 들린 듯한 느낌'이었어요. 당시에 치료를 받았으면 좋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웃음)
Q3: <태엽감는새>는 이야기 중심의 스토리로 좋았다고 생각됩니다만, '제 3단계'로서의 작품이라고 보통 평가를 하는데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하루키: <양을 쫓는 모험>이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다음은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될까?"라고 저 스스로 즐겁게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위 2 작품 보다 세계를 더 분할하고 분산 시켜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인칭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분할은 좀 어려운 문제지만, '추억', '기억', '편지', '일기' 등을 조합해 좀 더 중층적인 세계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죠. <태엽감는새>에서 주인공이 벽을 빠져 나가는 장면이 나오지만, 그것은 은유가 아니라 진짜 저의 체험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소설은 리얼리즘과 비리얼리즘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지만, 작가 자신에게는 모두 '리얼리즘'입니다. 콜롬비아 작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작품을 '매직 리얼리즘'이라고 하지만 저게는 단순히 리얼리즘으로 느껴집니다. 서양 문학에서는 리얼리즘과 비리얼리즘을 논리적으로 나누어 구분하려고 하지만 저는 마르케스의 리얼리티를 느낍니다.
Q4: 무라카미씨의 얘기에 따르면, 이야기는 첫번째 영혼의 깊은 곳에 있는 것이고, 두번째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하루키: 디태치먼트(무관심)에서 시작된 저는 커미트먼트(참여)로 이동해 왔습니다. 지금은 영혼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죠. 아이들은 동화를 읽고 검을 들고 숲으로 뛰어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각각을 주인공으로 하는 복잡한 이야기를 가지게 되죠.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이 영혼 속에 있는 깊이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것은 진실한 이야기와는 다른 문제입니다. 이야기로 상대의 영혼을 터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가의 작품은 그 모델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이 독자에게 공감을 받아 감응을 이끌어 내면 그것이 확산되어 네트워크가 형성됩니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떨리지만, 그것은 소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이야기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제 경우에도 독자로 부터 "어떻게 제 생각을 훤히 들여다 보시죠?"라는 얘기를 들으면 기쁩니다.
Q5: 19세기는 소설의 시대였지만, 20세기는 소설이 경시되었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루키: 저는 10대 시절에 19세기의 소설을 많이 읽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디킨스, 발자크 등을 읽었죠. <전쟁과 평화>는 3번, <카마라조프의 형제들>은 4번을 읽어서 몸에 배어 있었어요. 이야기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입니다. 20세기에 들어서 계급 투쟁이든지,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 덕분에 심리 소설 같은 것도 나왔죠. 1980년대에 미국 작가 존 어빙이 등장하고 "오! 이것은!"이라고 생각했어요. 그의 소설은 이야기가 자꾸 자꾸 앞으로 나아가잖아요.
Q6: 무라카미씨는 존 어빙과 대담을 한 적이 있으시죠?
하루키: 그는 디킨스의 매니아더군요. 센트럴 파크에서 그와 함께 달리며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죠. 1983년의 일입니다만, 상당히 좋은 경험이었어요. 당시에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느낌도 있었어요. 센트럴 파크에는 마차가 함께 달리고 있어서 말똥이 떨어지곤 했죠. 그것을 일일히 지적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있어요. 존 어빙은 레슬러이기도 해서 몸을 단련하기 위해 달리고 있었던 것 같아요.
Q7: 전쟁 전에는 나쓰메 소세키(1867~1916)의 사소설이 융성했는데, 처음에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경시되었는데요.
하루키: 저는 나쓰메 소세키의 팬이에요. 문장도 능숙하고 재미도 있죠. 저 역시 처음에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독자가 제대로 읽어주었다고할까요.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팬들이 30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것 같아요.
Q8: <1Q84>는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있는 대장편인데요. 현실과 비현실,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한편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의 순례의 해> (*이하 다자키 쓰쿠루)는 <노르웨이의 숲> 이후의 리얼리즘 소설 인 것 같은데요.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은 순수 리얼리즘 소설을 목표로 한 작품이에요. 이전 소설에서 위의 단계로 가지 않으면 안되겠다라든지, 다른 작가들과 같은 씨름판 위에서 겨루지 않은면 안될 것 같다라는 기한을 걸고 나름대로 잘 써나간 것 같아요. 본래 제가 쓰려던 소설이 아닌 상태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어 압박을 느꼈었죠. 하지만 <노르웨이의 숲>을 쓰지 않았다면, <태엽감는 새>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Q84>는 전부 3인칭으로 작성하여 세계가 전개됩니다. 3인칭은 어디든 갈 수 있고, 누구의 것도 쓸 수 있죠. 마이크로코스모스(우주)를 정렬하여 서로 반응을 주고 받는 것도 가능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을 염두해 두고, 그러한 종합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1Q84>는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포맷으로 써나갔던 것 같아요. <다자키 쓰쿠루>는 현실과 비현실로 나뉘어져 있는 것을 전부 현실의 씨름판 위에 올리면 어떨가 하고 쓴 작품입니다. 머리와 의식이 별도로 움직이고 있었다랄까요. 양 사나이와 커넬 샌더스는 등장하지 않지만, 바닥(밑) 쪽을 향해 이야기가 나아갑니다. <노르웨이의 숲>은 문학적 후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실험이었어요. 이번 신작도 일종의 실험으로 새로운 시도를 한 것입니다.
Q9: 신작 <다자키 쓰쿠루>는 논의가 많을 것 같은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을 방불케 합니다.
하루키: 제 안의 일종의 대화 소설입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문제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들은 혈육 관계가 아니죠. 그렇기 때문에 논쟁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소설을 쓸 때 대화로 진행해 나가는 것에 있어서 고생을 한다기 보다 오히려 즐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화를 그릴 때 체온이 변화하고 있는 듯한 리듬이 없으면 안됩니다.
Q10: 이번 신작은 아포리즘(경험이나 깨달음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경구)이 많다고 느꼈습니다만.
하루키: 저 스스로는 별로 의식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독자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텍스트를 제공하는 측면이기 때문입니다.
Q11: 신작을 읽은 후 든 생각인데요, 주인공 '쓰쿠루'가 시간을 더듬어 가는 사건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극적인 것이 없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쓰쿠루 내면에는 매우 심각한 드라마가 있죠. 시간적인 힘과 이야기는 다른 것인가요.
하루키: 확실히 그것을 줄거리로서 묘사하면 재미가 없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사건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 속에 사건을 정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독자의 의식 흐름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이 어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번 소설에서 처럼 인간을 제대로 쓴 것은 처음입니다. 첫번째 <다카키 쓰쿠루>는 짧은 소설로 쓸 생각이었습니다. 나고야에 사는 4명의 인물에 대해서까지 설명하려고 생각지 않았습니다만, 쓰고 있는 사이에 아무래도 쓰고 싶어졌다랄까요. '사라'가 '쓰쿠루'에게 "가세요", "(과거와) 마주치세요" 라고 하는 것은 저에게 "쓰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녀(사라)는 저도 이끌어 왔기 때문에 분명히 대단한 존재입니다. 저에게는 지금까지 그런 경험은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예전 잡지에서 핀란드에 가본 적도 있고, 그 후에 핀란드 장면이 떠올랐죠. 핀란드에 가지 않고 써내려갔지만 비교적 고스란히 묘사했다고 생각해요. 렌트한 폭스바겐도 감색이었죠. 저에게 있어 어떤 '이끄는 힘'이란 것은 중요해요. 이끌림에 체험하고 제 자신이 더 강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제 자신이나 소설 속 등장인물이 강해지는 가운데, 그것이 독자에게도 전해지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Q12: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것이 이야기의 역할이고 소설 속 장면 장면에 그에 대한 질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루키: 지금까지는 잘 쓰지 않고 생략을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최근에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관심이 많이 생겼습니다. '아카(빨강)'에서 '아오(파랑)'으로 마음대로 움직이죠. (*<다자키 쓰쿠루> 등장인물) <1Q84>는 그런 힘에서 나온 것 같아요.
Q13: 이번 소설의 경우 5명의 등장인물 이라는 새로운 포맷에서, 매우 상징적인 '아오'라는 출세 인간을 그리고, 리얼리티도 느낄 수 있는데요. 어떤 곳에서 영감을 받으셨나요?
하루키: 제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모델이 있는 것이 아니고, 모두 제가 직접 직장이나 말투 등을 직접 만들었습니다.
Q14: '쓰쿠루'는 어릴적 친구들의 모임에서 절교 당하고 왜 이렇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반년간 괴로워합니다.
하루키: 저 역시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지만, 그럴때 사람은 그런 경험을 숨기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사람은 상처를 받고 시간이 지나면 모두 극복하여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반복 속에 살고 있지 않는가란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결국 그런 것을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Q15: 핀란드의 재회 장면은 2-3번 정도 밖에 '악령'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시로(흰색)'와 '쿠로(검정)'의 삶을 생생하게 상징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하루키: 저는 은유로서 귀신이 아니라, 정말로 귀신이 있다는 것을 의식해 '악령'이라고 썼습니다. 그러한 것은 정말 빠져드는 사람이 있고 정말 무서운 것이에요. 메타포릭으로서 읽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제 안의 인간을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의 진짜 유령을 생각하고 쓴 것입니다.
Q16: '엘리(검정)'가 쓰쿠루에게 포옹을 해달라고 할 때, "아픔과 고통에 의해 연결되는 것이다."라는 말에 두 사람이 서로의 육체를 갖고 싶어했다고 느꼈는데요.
하루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 아닐까요. 작품을 제가 다시 읽은 것은 아닙니다만. 제 책 <언더그라운드>를 다시 읽었을 때는 항상 눈물이 나옵니다. 인터뷰 당시에는 싱글벙글하면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떠나고 나서 1시간 정도 눈물이 나왔었죠. 그러한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17: 이번 작품을 집필할 때, 19세기 소설에 대한 의식이 어딘가에 있었을까요?
하루키: 전혀 없었어요.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무렵은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것이 많았지만, 조금씩 쓸 수 있는 것들을 늘려갔죠. 어떻게든 쓸 수있게 된 것이 2000년 경. <해변의 카프카>를 쓰면서, 비로소 제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을 제대로 쓸 수 있게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Q18: <다자키 쓰쿠루> 집필 기간은 얼마나 걸렸나요?
하루키: 반년간 제 1원고를 썼고, 또 반년간 제 2원고를 썼습니다. 아침에 소설을 쓰고 낮 부터 번역 작업을 했기에, 아침에 집중하여 빨리 써내려가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재작성을 선호하는 편인데요. 제1원고와 2원고는 전혀 다른 것이 되기 마련이죠. 제 1원고는 컴퓨터에 남아있지만, 빨리 버리고 싶습니다.
Q19: 소설 속 피아노 연주곡 Le Mal du pays의 라자르 벨멘 피아노 연주곡을 사용한 의도는 무언인가요?
하루키: 저는 아침에 클래식을 듣습니다. 밤에 자기 전에 내일 들을 LP를 정해 두죠. 거기서 우연히 위 연주곡을 듣게 되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잘 설명할 수 없지만, CD 보다 아날로그 LP 쪽의 소리가 일을 진척시키는데 더 좋습니다. 전 음악으로 부터 응원을 받아가며 일을 해나가고 있어요. 지금까지 계속 재즈를 들어와서 리듬곡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문장을 써 내려갈 때도 리듬을 타며 씁니다. 저는 소설을 독학으로 배웠지만, 리듬을 타며 문장을 써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제 소설을 읽고 '울었습니다'라고 말하는 독자가 있는데, 저는 '웃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기쁩니다. 울다라는 슬픔은 개인적인 감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지만, 웃음은 더 일반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전 독자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유머에 웃게되면 사람은 마음이 편안하게 상대에게 펼쳐집니다. 슬픔은 자기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기 때문에, 자신 먼저 열어야 합니다. 유머가 곳곳에 녹아있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3부: 강연 현지 참가자와의 Q&A
Q1: 마라톤에 대한 앞으로의 비전은 어떻게 되시나요?
하루키: 지금까지는 풀마라톤을 뛰며 어떻게든 시간을 단축하려고 노력했지만, 지금은 늙어도 계속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Q2: 하루키상의 독서 경험으로 볼 때, 사춘기에서 청년기에 버팀목이 되었던 작품이 있다면요?
하루키: 초등학교 3학년때 효고현의 니시노미야 도서관에서 닥치는 대로 읽었던 것 같아요. 중학생 부터 19세기 문학을 읽었고, 부모님이 일본 문학을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에 그로 부터의 도망이랄까요. 세계 문학만 읽었고, 대학에 가서 일본 문학을 접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는 나쓰메 소세키, 다니자키 준이치로, '제3의 신인' 입니다.
Q3: 전 여대생인데요, 제 대학생 남자친구는 유머가 없고 깊이 있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아요. 재치있는 농담도 할 줄 모르고요.
하루키: 저는 젊은 시절 전부 그랬습니다. 젊은 시절 그런 것은 확실히 무리에요. 기대하지 마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Q4: 무라카미씨는 최근에 가본 좋아하는 술집이 있으신가요?
하루키: 최근에는 가는 곳이 없네요. 요즘엔 단골집만 가게 됩니다.
Q5: 지금까지 마셔 본 맥주 중 최고는 무엇인가요?
하루키: 어떤 맥주라도 갈증이 날 때 마시는 차가운 맥주는 최고에요. 최근에 마셔본 맥주 중에는 하와이 마루이 브로이 맥주가 맛있더군요.
Q6: <해변의 카프카> 상권은 일본어로, 하권은 영어로 읽었습니다. 모두 좋았습니다.
하루키: 이야기가 강하고 점차 퍼져나가는 것은 번역하기 쉽습니다. 반면, 문장이 길고, 농밀한 묘사가 있는 것은 번역하기 어렵기 마련이죠. 제가 쓰는 것은 결과적으로 번역이 쉽다는 얘기는 아니지만요.
Q7: 영어로 번역된 하루키상의 작품을 다시 읽으시나요?
하루키: 그렇습니다. 그러나 번역과 원문의 차이는 저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냥 읽어 버리는 만큼 받아 들여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Q8: 영어 이외의 번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루키: 작은 나라에 가서 제 책이 있는 것을 보면 기쁩니다. 아이슬란드나 핀란드어로도 번역이 되고 있어요. 독자층이 적고, 책으로 인한 수입도 적지만, 자신들의 언어에 대해 자부심이 있고 무라카미 작품을 자신들의 언어로 번역하고 싶다고 생각해 주는 것은 정말 기쁜일 입니다.
Q9: 교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루키: 저의 아버지는 교토의 스님의 아들이었어요. 전 2세 정도에 한신으로 이사를 갔지만, 난젠지 등은 지금도 자주 갑니다.
Q10: 미국 야구팀을 응원하시는 팀이 있으신가요?
하루키: 보스톤에 살고 있었으므로 레드삭스의 경기를 자주 보러갔어요. 오랜 팬인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아오키 선수가 브루어스에 갔기 때문에, 브루어스도 응원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야쿠르트와 DENA의 경기에서 장외홈런을 봤는데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린 시절에는 한신 타이거즈 회원이었죠. 저는 보통 거주하고 있는 현지팀을 좋아하여 지역 구장에서 응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요즘엔 진구 구장의 레프트 스탠드에 있습니다. (웃음)
Q11: 하루키상이 악기를 연주하거나, 밴드를 하게된다면요?
하루키: 어린 시절 피아노를 오래 배웠지만 지금은 손이 따라가 주지 않겠죠. 화음 악기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몽크의 화음은 매우 어렵고 찾아 보기 힘든 것이에요.
끝으로, "이번엔 실망했지만,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좋습니다. 저 자신은 모두 좋다고 생각하며 쓰고 있지만, 아무래도 독자 여러분 모두에게 닿지 않는 곳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계속 읽어주는 독자가 있다는 것은 책이 몇 만부 팔리는 것보다 즐거운 일입니다. 열심히 몰두해서 쓰고 있습니다. 부디 제 다음 작품도 읽어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긴 인터뷰 내용이었습니다. 한 포스팅에 모두 담았으니 충분히 시간들여서 읽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D
'하루키 인터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루키 제24회 '노이슈타트 국제문학상' 후보로 선정 (0) | 2013.07.28 |
---|---|
하루키 '일상의 여백' 사진전 관람기- 이은 [인천 배다리] (2) | 2013.06.18 |
하루키 원작, 연극 <해변의 카프카> 관람 후기 (8) | 2013.05.22 |
보스턴 마라톤 대회의 아픔을 위로하며-하루키 뉴요커지 기고 (3) | 2013.05.05 |
하루키 신작 제목 발표 <색채가 없는 다사키쓰쿠루와 그의 순례의 해> (6) | 2013.0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