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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인터뷰

보스턴 마라톤 대회의 아픔을 위로하며-하루키 뉴요커지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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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지 원문 기사(링크 클릭) *illustration by ED Nacional


*얼마전 일어난 보스턴 마라톤 테러 사건으로 세계가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 트위터의 하루키 팬들이 하루키도 있던 것 아니냐는 걱정도 하는 걸 볼 수 있었는데요, 그만큼 보스턴 마라톤 대회하면 하루키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역시 하루키가 뉴요커지에 보스턴 마라톤 테러 사건에 대해 비통한 심정을 글로 전했습니다. 그 원문을 번역해 보았습니다.  *오,의역 감안 해주세요.


보스턴에게, 러너라 불리길 원하는 세계 시민의 한 사람으로 부터
-무라카미 하루키; 뉴요커지(2013.5.3) 기고글


*난 30년 동안 서른 세번의 풀마라톤에 참가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마라톤에 참가해 왔지만, 누군가가 "어느 마라톤 대회가 가장 좋았나요?"라고 물어보면 저는 주저 없이 보스턴 마라톤 대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보스턴 대회에는 모두 6번 참가했었네요. 보스턴 마라톤 대회의 무엇이 멋지냐고요? 대답은 역시 간단합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대회이면서 코스가 매우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마라톤 대회가 자연과 함께 하고 자유롭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네요. 보스턴 마라톤 대회는 하향식(top-down)의 대회가 아닌 상향식(bottom-up)의 대회로 오랜 시간 동안 보스턴 시민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마라톤 대회가 유지되고, 계속 개최 되기를 희망하는 시민들의 의지로 가득차 있습니다. 매번 코스를 달릴 때 마다 시민들에 의해 잘 가꾸어진 코스의 모습들에 감사하며 달리곤 했거든요. 따뜻한 빛을 품고 나를 지나쳐가는 풍경들을 바라보는 모습은 그야말로 환상적입니다. 물론 다른, 뉴욕 마라톤이나 호놀룰루 마라톤, 아테네 마라톤도 훌륭하지만 (다른 마라톤 조직위원회 관계자분들께는 사과드립니다만) 보스턴 마라톤 대회는 그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있습니다.


마라톤이 멋진 일이라는 것은 보통, 경쟁이 없다는 것에 그 이유를 둘 수 있습니다. 물론 월드 클래스 수준의 선수들에게는 치열한 경쟁의 기회가 될 수 있겠죠. 그러나 저 같은 (그리고 많은 러너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만) 사람에게는 마라톤 대회는 경쟁이 없는 평소 뛰던 일상의 달리기 정도일 것입니다. 당신이 레이스로 들어가 26마일을 달리는 동안 혼자 달리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작과 함께 작은 고통이 찾아 올 것이고, 그리고 더 달리면 고통이 점점 커지죠. 그러나 레이스가 끝남과 동시에 그 고통은 다시 출발 직전의 즐거움으로 돌아가 있습니다. 마라톤의 즐거움 중의 일부는 이런 혼란스러운 과정을 주위의 다른 러너들과 공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6마일을 혼자 뛰어 보면 알 수 있게 되지만, 그건 정말 고문 그 자체 입니다. 전 처음 풀마라톤을 뛰고 나서는 다시는 이런 고통스러운 일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었죠. 그러나 같은 거리를 다른 러너들과 함께 뛰면 덜 힘들게 느껴지게 됩니다. 물론 도저히 육체적으로는 견딜 수 없다고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다른 러너들과의 연대와 화합의 기운은 당신을 어느새 결승점까지 이끌고 있을 겁니다. 만약 마라톤이 경쟁 혹은 싸움으로 생각되어진다면, 그것은 자신 스스로와 싸워서 얻는 보수라고 생각해 버리면 되겠죠.


보스턴 마라톤 코스의 막바지에서, 보일스턴의 히어포드 거리 코너를 돌아 곧장 큰 도로까지 가면 코플리 광장의 배너가 보이게 되는데, 바로 그때 흥분과 뭔지모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오늘 걸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 기분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엄청난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가진 것들에 의해서 형성되어 집니다. 그리고 동시에 당신 주위의 것들에 의해서 영향을 받으며 나아갑니다. 마라톤 역시 많은 자원봉사자들, 도로에 일렬로 늘어서 응원하는 사람들, 당신 앞의 러너와 뒤에 따라오는 러너 이 모든 사람들이 함께 마라톤을 뛰고 있는 당신을 만들어 줍니다. 이런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없으면 당신은 레이스를 완주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막바지 보일스턴에 진입해 전력질주를 시작하면서, 심장으로 모든 종류의 감정들이 상승하여 폭발하고 긴장과 함께 얼굴이 찡그러지지만, 동시에 해냈다는 미소도 함께 머금게 되어질겁니다.


저는 보스턴 외곽에서 3년간 지낸 적이 있습니다. 터프츠 대학에서 스콜라쉽으로 2년간 방문했던 적이있고, 이후 짧은 방학이 있은 후 하버드 대학에서 1년간 있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매일 아침 찰스강변을 혼자 달렸습니다. 보스턴 마라톤 대회가 이곳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죠. 그들에게 보스턴 마라톤 대회는 보스턴 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의 원천이 되고 있고, 보스턴의 많은 제 친구들은 정기적으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고 자원봉사자로 활동해 오고 있습니다. 심지어 멀리 떨어져 있던 저도 이번 대회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으로 충격을 받고 낙담한 보스턴 친구들과 시민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상상이 되는데, 그들이 받은 충격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번 폭발 현장에서 물리적인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또 다른 방향으로-감정의 상처-도 생각해야 합니다. 저 역시 스스로 러너라고 부르는 세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순수한 무언가가 훼손되고 상처를 입었습니다.


이런 실망과 분노, 절망이 조합된 슬픔을 해소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저는 1995년 <언더그라운드>를 집필하기 위해 도쿄 지하철 사린 테러 사건의 피해자와 가족들을 인터뷰하면서 그 기분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정상적인 생활을 다시 시작하면서 상처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 내부적으로는 계속 피를 흘리고 있을 것입니다. 고통의 일부는 곧 사라지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다시 새로운 고통이 생겨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런 고통을 우리는 밖으로 표출해 정렬시키고, 구성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여서 그 고통의 가장 위에 새로운 삶을 구축해야 합니다. 


하루키집에 있는 91년 뉴욕 마라톤 골인 사진. photo & article : Atsushi Kondo


**실히 보스턴 마라톤의 코스 중 가장 유명한 곳은 레이스 막바지 4마일에 걸쳐 있는 언덕의 마지막 고비인 'Heart Break Hill(심장을 터뜨리는 언덕)'입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러너가 가장 체력적으로 고갈되는 기분을 느끼는 지점일텐데요. 117년의 마라톤 역사 동안 모든 종류의 전설들은 이 언덕 주변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레이스를 달려보면, 이 언덕이 생각만큼 가혹하거나 포기를 생각할 만큼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대부분의 러너들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 보다 쉽게 언덕을 오릅니다. 뛰어 본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봐, 그 언덕이 아주 나쁘진 않던데?"라고요. 레이스의 막바지에 다다른 당신은, 자신도 모르게 그 높은 언덕을 오를 수 있게끔 정신적으로 준비가 되어있던 것 아닐까요. 그것을 넘기 위해 충분한 에너지를 저장해 두고, 어떻게든 그 언덕을 통과할 수 있던 것입니다. 진짜 고통은 '심장을 터뜨리는 언덕'을 정복한 직후 내리막길을 지나 도심의 평평한 거리로 들어왔을 때 나타납니다. 결승선을 향해 마지막으로 뛰어 갈 때 최악의 순간을 겪게 되죠. 갑자기 온 몸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고, 근육은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하며 당신의 다리는 납 처럼 무거워 집니다. 적어도 제가 보스턴 마라톤을 매번 참가했을 때 마다 느꼈던 경험으로는 말이죠. 


감정의 상처도 이와 매우 유사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진짜 고통은 최초의 충격이 어느 정도 극복되고 관련된 일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게 되면서 시작되어 집니다. 높은 언덕을 극복한 후 급작스런 고통이 찾아 오듯, 이번 보스턴 폭탄 테러로 인한 장기적인 정신적 고통도 뒤에 숨어 있을 것입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란 물음으로는 도움을 줄 수 없을 거란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왜 이런 마라톤 같이 평화롭고 행복한 일이 그런 끔찍한 피흘리는 방법으로 짓밟혀야 하는지 물음을 던질 수 밖에 없습니다. 가해자가 확인되었지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증오와 타락은 우리의 마음과 가슴을 심하게 훼손시켰습니다. 비록 답을 얻는다하더라도 훼손된 마음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런 종류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릴 뿐더러, 그 시간 동안 우리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앞만 바라봐야 합니다. 상처를 숨기고, 극적인 치료를 찾겠지만 실질적인 해결과는 연결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복수하는 방법을 찾는 것은 더욱이 안정과 극복을 가져오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상처를 기억해야 합니다. 상처로 부터 시선을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정직하게, 양심적으로, 차분하게 우리 자신의 역사를 축적해야 합니다. 그것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시간은 우리의 협력자입니다. 저는 매일 혼자 달리는 시간 속에서, 보일스턴 거리에서 부상을 입고, 삶을 잃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비통해합니다. 이것이 그들에게 전할 수 있는 유일한 제 개인 메세지입니다. 이것이 충분치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제 목소리가 전달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보스턴 마라톤 대회가, 이번의 크나큰 상처로 부터 회복되어, 보스턴의 26마일의 아름다움, 자연 그리고 자유로움이 다시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13.5.3, 무라카미 하루키- (일본어 원문을 필립 가브리엘이 번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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