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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카미 하루키가 스페인의 카탈로니아 자치정부가 제정한 '카탈로니아 국제상'의 2011년 수상자로 선정되어 어제 수여식을 가졌습니다. (미리 수상자로 공표된 것은 일본의 지진이 일어나고 1주 뒤 였죠.) 작년에는 200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미국 전 대통령 지미 카터가 수상하기도 했죠. 그만큼 이 상의 위상을 알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하루키가 요코 여사와 함께 바르셀로나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 등이 언론을 타는 것으로 시작하여 스페인 언론은 종일 하루키의 스페인 방문에 대해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인상이 었습니다. 

바르셀로나의 가장 붐비는 비스베 거리에 <1Q84>를 들고
 
탈로니아 국제상은 과학, 문화 분야에서 인간에 대한 연구의 업적을 기리는 상으로 카탈로니아 자치 정부의 대통령이 직접 수여했고, 하루키는 8만 유로(1억2천만원)의 상금과 조각상을 받았습니다. 상금은 전액 기부키로 하였고, 수상 스피치에서는 '유일하게 핵 공격을 당한 나라에서 그 위험성을 무시한 채, 핵 시설을 유지한 것'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한 것으로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 내용은 오늘 국내 언론에서도 기사화했고요. 스피치 전문은 찾아 보기 힘들어 직접 하루키의 수상 스피치 전문을 번역해 보았습니다. 출처는 카탈로니아 자치 정부 홈페이지 입니다.

카탈로니아 대통령으로 부터 상패를 수여 받는 무라카미 하루키

*번역은 구글 번역의 도움을 받아 흐름에 맞게 수정하였으며, 오역의 가능성도 높으니 감안해 주세요. 
 

'비현실적인 몽상가'
무라카미 하루키 제23회 카탈로니아 국제상 수상 연설 전문 
 




는 바르셀로나에 2년전 봄에 처음 방문 했었습니다. 당시 진행했던 이벤트 중에 많은 독자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엄청 많은 독자들이 긴 줄을 만들었고, 저는 1시간 반 동안 독자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행사에 참여했죠. 꽤 긴 시간이었지만, 많은 독자들을 만나기를 원했기 때문에 즐겁게 행사를 치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사인을 해주면, 독자들은 키스 인사를 해야만 했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렸었죠. 지금까지 전 세계의 많은 도시에서 사인회를 열었지만, 독자가 제게 키스를 하고 싶어하는 곳은 이곳 바르셀로나 뿐이었습니다. 그 날 전 이 도시에 대해 매력을 느꼈습니다.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 것은 수 많은 일화 중 하나 일 뿐이지만요. 역사와 문화가 깊은 이 곳 아름다운 바르셀로나에 다시 오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늘 스피치의 주제를 키스로 계속 하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오늘 제 스피치는 조금 더 심각한 얘기를 하려 합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3월 11일 오후 2시 46분에 일본의 동북 지방은 심각한 지진 피해를 입었습니다. 지구 자전축이 움직여 하루가 백만분의 1.8초 빨라졌을 정도의 강력한 지진이었습니다. 지진도 큰 피해를 입혔지만, 뒤이어지는 해일이 끔찍한 흔적을 남겼습니다. 몇몇 장소에서는 해일의 높이가 39m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9층 높이의 건물에서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살아남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란 것이죠. 

출 할 수 없었던 해안 근처에 있던 주민들을 포함한 예상 사망자수 2만 4천명, 그 중 9천명은 여전히 실종 상태입니다. 이 사람들은 해일에 의해 실종되었으며, 아직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은 차가운 바다 속에 깊이 빠지게 됩니다. 그 주민들을 발견했을 때의 상황을 상상해 보면 제 가슴에 큰 응어리가 생깁니다. 또한 대부분의 생존자는 가족 및 친구, 집과 소유물을 완전히 잃었습니다. 삶의 기초를 형성하는 사람과 지역사회를 잃은 것이죠. 일부 마을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요.

명히, 일본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자연 재해와 함께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매년 여름의 끝과 가을의 시작까지 일본의 거의 모든 지역은 태풍을 겪게 됩니다. 이는 매년 많은 인명, 재산 피해를 입히게 되죠. 일본의 전국토는 화산 활동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진도 수시로 발생합니다. 일본 열도와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는 4개의 지각판이 접하고 있어, 사실 우리는 지진의 둥지에 살고 있는 것이나 만찬가지입니다. 태풍은 비교적 정해진 시기에 왔다가 가지만, 지진은 첨단의 예측 장비를 가지고 있다해도, 막을 수도 없고 어떤 지점에서 발생할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한가지는, 가까운 시기에 지진이 또 있을 것이라는 이 사실 뿐입니다.

지어 내일, 아마도 가까운 미래에 말이죠. 결코 이번 지진이 마지막이 아닐 것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20~30년 사이 도쿄 지방에 진도 8이상의 강력한 지진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을 내 놓기도 했습니다. 만약 도쿄와 같은 조밀하고도 거대한 도시에 지진이 덮친다면, 그것이 어느 정도의 피해를 초래하게 되는지, 정확히 아무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도쿄에서만 1천3백만명의 사람들이 일반적인 일상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만원 전철을 타고 출퇴근하며, 고층 빌딩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번 지진 후 도쿄의 인구 수가 줄었다는 이야기는 들리리 않습니다. 

? 어떻게 그럴 수가? 라고 여러분은 의문을 가질지 모릅니다. 왜 그런 끔찍한 장소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는지. 두려움으로 인해 머리가 이상해져 버리지 않을까 하고요.

본어에는 무상(無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것들은 곧 소멸하고, 그치지 않고 변하게 마련이죠. 영원한 안정이라든지, 불멸 불변의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것은 불교의 세계관이지만, 이 무상개념은 종교와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일본인의 정신에 강하게 속해 있는 민족 정신 구조로 고대로 부터 계속 전해져 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간 것'이라는 관점은 이른바 '포기의 세계관'입니다. 사람이 자연의 흐름에 반해서는 결국은 쓸모 없는 일이라는 관점입니다. 그런 일본인들은 자연 흐름 속 인간의 욕심을 포기하면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아름다움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연에 대해 말해보면, 우리는 봄이 되면 벚꽃을, 여름에는 반딧불을, 가을이 되면 단풍을 사랑합니다. 그것도 집단적으로, 습관적으로 이렇게 구경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처럼 말이죠. 각각의 명소에는 계절이 되면 혼잡하여 호텔을 잡기도 여간 힘든게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꽃도 반딧불이도 단풍도 아주 짧은 시간 속에 아름다움을 상실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한 때의 영광을 목격하기 위해 멀리까지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단지 아름다운 모습 뿐만이 아니라 눈 앞에서 덧없이 흩어져 작은 등불을 잃고 선명한 색을 빼앗기는 것을 확인하고 오히려 안심하는 것이죠. 아름다움을 보면서 스스로의 사라짐을 극복하고 안심하는 것입니다. 모든게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죠.

런 관점이 과연 자연 재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나 우리가 계속해서 밀려오는 자연 재해를 극복하고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피해를 집단적으로 극복하는 형태로 살아 온 것은 확실합니다. 혹은 그 경험들이 일본인들의 미의식에 영향을 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번 대지진으로 모든 일본인들이 심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무리 평소에 지진에 익숙하다고 하지만, 그 정도의 피해 규모에 지금도 주춤하고 있습니다. 무력감을 안고 국가 장래에 대한 불안 마저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정신을 재구성하고 부흥을 위해 일어나 나갈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 저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긴 역사를 살아남아 온 민족입니다. 언제까지나 충격 속에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부서진 가옥을 일으키고, 무너진 도로도 복구 할 수 있습니다. 

국 우리는 지구라는 행성에 마음대로 정착하여 살고 있는 것입니다. 지구로 부터 이곳에 살아 달라고 요청 받은 것이 아니죠. 그렇기에 지구가 조금 흔들린다고 불평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흔들리는 것이 지구의 특성 중 하나이기 때문이죠. 좋던 싫던 관계없이 그런 자연과 공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건물과 도로와 달리 쉽게 고칠 수 없는 사물에 대해서 입니다. 그것은 예를 들어 '윤리' 라든지 '규범'입니다. 그들은 형체를 가진 물체가 없습니다. 일단 손상되면 쉽게 복구하기 어렵습니다. 장비가 준비되고 일손이 모여지고, 자재가 있으면 바로 복구되는 것이 아니죠.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입니다.

러분도 아마 아시다시피, 후쿠시마의 지진과 해일로 피해를 입은 여섯 기의 원자로 중 적어도 세 기는 복구되지 않은 채 여전히 주변에 방사능을 뿌리고 있습니다. 주변의 토양 오염은 물론, 상당한 농도의 배수가 근해에 휩쓸려 나가고 또한 바람이 방사능을 실어 갑니다. 수백에 달하는 주변 주민들이 강제 퇴거 조치 되었습니다. 그들의 터전이었던 밭이나 목장, 공장, 상가, 항만은 무인 상태로 버려져 있습니다.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은 두 번 다시 그 땅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 피해는 일본 뿐만이 아니라, 정말로 죄송하지만 이웃 나라에도 미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런 비참한 사태가 초래되었는지, 그 원인은 명백합니다.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큰 해일의 도래를 상정하지 않은 채 발전소를 건설한 것이죠. 물론 몇몇 전문가들은 예전의 큰 규모의 해일이 이 지역에 덮친 것을 근거로 안전 기준의 재검토를 요구했지만, 전력 회사는 그것을 심각하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몇 백년에 한 번 올 까 말 까한 큰 해일을 위해 거액을 투자하는 것은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피하고 싶은 일이죠. 또한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 대책을 엄격하게 관리해야 하는 정부 역시 원자력 정책 추진을 위해 안전 기준을 낮추었다는 것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리는 그런 상황을 조사하고, 만약 잘못이 있었다면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 잘못 때문에 수 많은 사람들이 토지를 버리고 생활을 바꾸는 것을 강요당했습니다. 우리는 화를 내야 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일본인은 원래 화를 잘 내지 않습니다. 참는 것에는 자신있지만,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죠. 그런 부분은 바르셀로나 시민들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본 국민들도 심하게 화를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이러한 왜곡된 구조의 존재에 대해 무심하고, 묵인해 온 것에 대해 스스로 규탄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이번 사태는 일본인들의 윤리와 규범에 깊이 들어간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시다시피, 우리 일본인은  역사상 유일하게 핵 폭탄이 투하된 경험이 있는 국가입니다.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두 도시에 미군의 폭격기에 의해 원자 폭탄이 투하되고, 20만명 이상의 인명이 손실되었습니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비무장 민간인이었죠.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는 그것에 대한 시비를 되 묻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당시 폭격 직후 사망한 20만명 뿐 아니라 살아남은 많은 사람들이 그런 방사능 피폭의 증상에 시달리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죽어갔습니다. 핵폭탄이 얼마나 파괴적인 것이며, 방사능이 세계, 인간의 몸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기는지 그 희생 위에 배웠습니다. 


후, 일본의 행보는 두 가지 큰 근간이 있습니다. 하나는 경제의 활력이고, 다른 하나의 전쟁 행위의 포기입니다. 어떤 일이있어도 다시는 무력을 행사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풍부하게 되는 것, 그리고 평화를 희망하는 것 그 두가지가 일본이라는 국가의 새로운 지침서가 되었습니다. 

로시마 원폭 사망자 위령비에는 이런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편히 잠드십시오. 과오는 반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은 말입니다. 우리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입니다. 위령비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핵의 압도적인 위력 앞에서는 누구나 피해자이자 가해자입니다. 그 힘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모두 피해자의 입장이고, 또한 그 능력을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또한 그 권력 행사를 막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가해자 이기도 한 것이죠. 

리고 원폭 투하 66년이 지난 지금, 후쿠시마의 한 발전소는 세 달 동안 계속해서 방사능을 뿌리고 있습니다. 주변 토양과 바다와 공기 오염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언제 어떻게 멈추게 할 수 있는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이것은 일본이 역사상 두번째로 맞게 된 크나큰 핵 피해입니다. 이번에는 누구에 의해 폭탄이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일본인 자신이 그 상차림을 하고 스스로의 손으로 잘못을 저지르고, 우리 자신의 국토를 손상하고 우리 자신의 생활을 파괴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체 왜 그렇게 된 것인가요? 전후 오랫동안 우리가 계속 안고 온 핵에 대한 거부감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죠? 우리가 일관되게 요구하고 있던 평화롭고 풍요로운 사회는 무엇에 의해 손상되고 왜곡된 것입니까?

유는 간단합니다. "효율" 입니다. 

자로는 효율적인 시스템이라고 전력회사는 주장합니다. 즉 이익이 상승할 수 있는 시스템인거죠. 또한 일본 정부는 오일 쇼크 이후 원유 공급의 안정성에 의문을 가지고, 원자력 발전을 국책으로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전력 회사는 엄청난 돈을 광고비로 집행하며 선심성 미디어를 인수하고, 원자력 발전은 어디까지나 안전하다는 환상을 국민들에게 심어 왔습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을 때에는 일본 발전량의 30%가 원자력 발전에 할당되어 있습니다. 국민이 잘 모르는 사이에, 지진이 많은 섬나라 일본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원전이 많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렇게 까지 된 이상, 되돌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기정사실입니다. 원자력 발전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에게는 "그럼 당신은 전기가 부족해도 좋다는 말이네요."라는 위협과 같은 질문이 쏠리고 있습니다. 국민들 사이에도 '원전 의존도, 뭐 어쩔 수 없지 않은가.'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습니다. 고온다습한 일본의 여름철에 에어컨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은 고문과도 같아서 상상도 못할 일이기 떄문입니다. 이렇게 원전에 의문을 나타내는 사람에게는 "비현실적인 몽상가"라는 딱지가 붙여지게 됩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효율적이었을지는 모르는 원자로는 이제 지옥의 뚜껑을 열어 버린 것 같은 끔찍한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자력 발전을 추진하는 사람들의 주장인 "현실을 직시하라"라고 말한 현실이 진짜 현실이든 아니었든 단순한 표면적인 편의에 불과했습니다. 그것을 그들은 '현실'이라는 말로 바꾸고 논리를 바꿨습니다. 그것은 일본이 그토록 오랫동안 자랑해 온 기술력 신화의 붕괴이자, 그런 '바꿔치기'를 용서해 온 일본인의 윤리와 규범의 패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전력회사를 비난하고, 정부를 비난합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고 또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스스로를 고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가혹하게 바라보고 뼈저리게 느끼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또 어딘가에서 같은 실수가 반복될 것입니다. '편히 잠드십시오. 과오는 반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을 다시 마음에 새기지 않으면 안됩니다.

버트 오펜 하이머 박사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원폭 개발의 중심이 된 사람이지만, 그는 원자 폭탄이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준 참상을 알고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트루먼 대통령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대통령님, 저의 두 손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습니다.

루먼 대통령은 잘 접혀진 하얀 손수건을 건네며 말했습니다. "이걸로 닦으세요." 그러나 물론 그 만큼의 피를 닦아 낼 깨끗한 손수건은 세상 어디에도 없겠지요. 우리 일본인은 핵에 대해서는 "아니오"를 외쳐야 합니다. 이것의 저의 일관된 의견입니다.

리는 높은 기술력을 결합하여 예지력을 발휘하고, 사회 자본을 투입해, 원자력 발전을 대체 할 효과적인 에너지 개발을 국가 차원에서 추구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비록 세상이 "원자력 만큼 효율적인 에너지는 없다.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 일본인은 바보 같다."라고 조롱해도, 우리는 원폭 체험을 이식된 핵에 대한 알레르기를 날려 버리지 않고 계속 유지해야 합니다. 핵을 사용하지 않는 에너지의 개발은 일본의 전후 행보의 중심 명제에 자리잡았어야 합니다. 

것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죽은 많은 피해자에 대한 우리의 공동의 책임입니다. 일본에는 그러한 굵직한 윤리와 규범, 그리고 사회적인 메세지가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일본인이 세계에서 진정으로 공헌 할 수 있는 큰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급속한 경제 발전의 도상에서 "효율적"이라는 안이한 기준에 휩쓸려 그 소중한 이치를 우리는 놓치고 말았습니다. 


서 언급했듯이, 얼마나 비참하고 심각한 상황이더라도 우리는 자연 재해의 피해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것을 극복함으로써 사람의 정신이 더 강하고 깊어 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든 그것을 해낼 것입니다. 깨진 도로와 건물을 재건하는 것은, 그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그러나 손상된 윤리와 규범의 재생을 시도할 때, 그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 됩니다. 우리는 죽은 사람들을 애도하고, 재해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그들이 입은 고통과 상처를 잊지 않는 마음가짐으로 이 작업을 진행해 나가야 합니다. 그것은 소박하고 묵묵히 끈기를 필요로 하는 수공예와 같은 작업입니다. 화창한 봄날 아침 하나의 마을 사람들이 모여, 밭에 나가 땅을 갈고 씨를 뿌릴 수 있도록 모두 힘을 모아 그 작업을 진행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각자의 위치에서 각각의 역할을 하면서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런 대대적인 공동 작업에 있어서 '메세지'를 전문으로 하는 우리 직업적인 작가들이 맡아야 할 몫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윤리와 규범과 새로운 단어를 연결시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생생한 이야기를 발아시켜서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여야만 합니다. 씨를 뿌리고, 노래 처럼 사람들을 격려하는 율동이 있는 이야기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한 때 전쟁에서 초토화된 일본을 재건했습니다. 그 원점에 있는 지금, 우리는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무상이라는 무수히 변화하는 덧없는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태어난 생활은 변해가면서 곧 예외 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큰 자연의 힘 앞에서 사람은 무력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허무의 의식은 일본 문화의 기본적인 이데아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멸망한 것에 대한 경의와 그런 위기의 연속인 세계에 있으면서도 그래도 생생하게 살아 남기 위한 조용한 결의, 그런 적극적인 긍정의 의지도 우리에게 내재해 있습니다. 

작품이 카탈로니아 독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이런 훌륭한 상을 받게 된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서로 살고 있는 곳은 멀리 떨어져 있고, 말도, 문화도 다릅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세계 속의 우리는 같은 문제를 동시에 짊어지고 같은 슬픔과 기쁨을 함께 안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 작가가 쓴 글이 번역이 되어 이곳 카탈로니아 독자들에게 까지 읽히는 것이죠. 전 이렇게 하나의 이야기로 멀리 떨어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것이 너무나 행복합니다. 꿈꾸는 것은 소설가의 몫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그 꿈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 꿈을 공유하지 않고서는 작가라고 할 수 없습니다. 

탈로니아 여러분 역시 지금까지의 역사 속에서 많은 고난을 겪고 극복하면서 혹독하게 부딪히면서도 힘차게 살아나가 풍부한 문화적 자산을 지켜 온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사이에는 틀림없이 공유할 수 있는 많은 부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본이 카탈로니아 여러분과 함께 "비현실적인 몽상가"가 될 수 있다면, 그런 국경과 문화를 넘어 열린 '정신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다면 정말 멋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최근의 각종 심각한 재해와 비참하기 짝이 없는 테러를 겪어 왔던 우리 세계 모두의 재생에 대한 출발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꿈꾸기를 두려워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발걸음을 "효율"과 "편의"라는 이름을 가진 재앙이 따라잡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힘차게 앞으로 나갈 때 "비현실적인 몽상가"가 사라져서는 안됩니다. 사람은 언젠가 죽어서 사라집니다. 그러나 'humanity'는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언제까지나 이어지게 됩니다. 저는 인류의 그런 힘을 믿습니다.

으로, 이번 상금은 지진 피해와 원자력 발전소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기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신 카탈로니아 독자들과 주정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지난 스페인 로르카 지방의 지진 희생자 분들에게도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고자 합니다.



상 연설을 마치고, 정부 관계자들 및 심사위원들과 피로연도 가진 것 같네요. 하루키는 스페인에 1주일 정도 머물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 이후엔 파리로 떠난다는 현지 신문 기사를 본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네요. 일단 당장 우리 나라 시간으로 오늘 새벽에는 일반 팬들과 사인회로 만나는 시간을 가졌네요. 그 소식도 접하는 대로 포스팅으로 다시 찾아 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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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음.. 2011.06.11 15:49

    역시 작가라 연설문도 재밌,다고 해도 괜찮을려나... 아무튼 그렇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2. 해변의카프카 2011.06.11 17:54

    나카타 생각나네요.
    잘 봤습니다^^

    • Favicon of https://finding-haruki.com BlogIcon finding-haruki.com 2011.06.11 23:02 신고

      그쵸. 나카타..번역하면서 연설문을 읽는 내내 저도 해변의 카프카 생각이 났어요..하루키의 자국민에 대한 애정에 짠하기도 했구요..^^

  3. 음료수 한잔 그리고 책 2011.06.15 01:15

    역시 세계적인 작가라서 그런지 연설문도 하나의 작품이네요^^
    하루키씨 연설문 속에 함축적인 문학성이 내포돼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포스트 잘보고 갑니다^^

  4. alons 2011.06.20 19:29

    페이스북 링크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