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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스스로를 소설가이자 번역가 (러너는 직업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기에)라고 말하곤 합니다. 일본 위키피디아에도 하루키의 직업은 소설가이자 문학 번역가랍니다. 하루키팬이라면 주지하고 있듯이 그는 미국 문학을 접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고, 그 영향을 토대로 하여 작가가 될 수 있었다고 고백하기도 하죠. 하루키는 소설을 집필을 하지 않는 기간에 집중적으로 번역을 합니다. 물론 소설을 쓰는 기간에도 리프레쉬를 위해 하루의 일정 시간을 번역에 할애하기도 하고요.

 

그 중에 가장 의미있는 번역 작업은 그도 얘기하듯이 J.D. 샐린저의 작품을 번역한 일인데요. 하루키가 <호밀밭의 파수꾼>의 팬인 것도 잘 알려져 있죠. 하루키는 샐린저의 그 다음 작품인 <프래니와 즈이>를 2004년에 번역 하면서 출판사 홈페이지를 통해 쓴 글이 있는데요. 그 글을 이번 포스팅으로 전해드리겠습니다. 2004년 <프래니와 즈이>를 번역 출간했을 때, 신쵸사 특설 페이지와 번역본 서문에 넣은 글이랍니다. 특별히 웹페이지를 통해 번역자 서문을 공개한 이유는 하루키의 글의 처음에 나온답니다. 하루키의 선배 작가를 사랑하는 마음과 그에 비해 절대 부족하지 않을 독자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가득 담긴 글입니다. 

 

 

<프래니와 즈이를 번역 하며> - 무라카미 하루키

 

 


J.D.샐린저는 본인 소설의 번역본에 번역자의 서문이나 후기 같은, 본인의 글이 아닌 다른 글을 싣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특설 페이지를 통해 조금 바뀐 형태로라도 번역자인 저의 메세지를 독자 여러분께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불필요한 것은 넣지 마세요. 독자는 오로지 본래 작품만 있는 것이 좋습니다."라는 샐린저씨의 기본 자세도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지만, <프래니와 즈이>는 이미 문예작품으로서 고전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미국에서의 첫 출간이 1961년 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에게 어느 정도의 기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번역자로서의 하나의 책무라고 생각했답니다. 책만 던져주고 "자, 읽어보면 알 수있을 거에요."라고 하는 것은 역시 조금 불친절한 것 아닐까요. 동시대적인 책이라면 그래도 좋겠지만, 고전에 대해 말하면 그 책에 대한 어느 정도의 당시 시대상이 가지는 의미나 방향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에 대한 제 개인의 생각과 어떻게 이 소설이 쓰여지게 되었는지의 완성 과정 등에 대해 고인의 평화로운 잠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간단하게 언급하려고 합니다.

 

제가 <프래니와 즈이>를 처음 읽은 것은 대학에 입학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 였습니다. <캐쳐 인 더 라이>(호밀밭의 파수꾼)를 읽고, 젊은 시절의 혼돈을 그린 작품들은 더 이상 읽지 않게 되었답니다. (대체로 다른 독자분들도 그런 순서로 소설을 읽어 온 것이 아닐까라고 추측이 됩니다) 이 소설을 읽었다라는 행위 자체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캐쳐 인 더 라이>와는 다른 의미에서 이상할 정도의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갔습니다. 마치 통과의례 처럼 말이죠. 그러나 반면에, 소설의 어느 지점에서 내가 끌렸고 마음 속에 오래 남아 있게 되었는지를 재차 추궁 당한다면 그 부분은 또 확실하지 않습니다. 이야기 속의 어떤 장면 장면들은 매력적인 정경으로 머리에 남아 있는데 (예를 들면, 초반부의 역에서의 장면이라던지, 즈이가 목욕하는 곳이라던지) 이야기 전체의 구심력과 같은 부분은 쉽게 얘기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10대 시절 제 독서 경험을 평가절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캐쳐 인 더 라이>보다는 좀 더 파악하기 어려운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종교적인 색채는 당시 처음 읽었을 때를 기억해보면, 다소 부정적인 생각도 남아 있었죠. 이야기의 후반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둘러 앉아, 종교의 원리나 근원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울거나 소리를 내며 진지하게 토론하는 장면들은 당시의 저에게는 조금 지루하고 난해했던 기억이랍니다.

 

이 소설은 말하자면 '토론 소설'이며 바로 그 부분이 소설적인 매력으로 발휘돼 작가의 실력 발휘의 기회가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당시의 어린 저에게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변명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꽤 난폭한 정치적인 시절이었고, 프리 재즈나 아트 락, 해프닝 예술이 맹목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시대여서 저로서는 좀 더 힘차게 매력적인 스토리에 빠져 이야기를 읽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번역본으로 한 번 쭉 읽어보고는 "이 책은 이 정도로 됐다."랄까 원문까지 찾아 읽어보자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답니다. 책은 계속 가지고 있었지만, 다시 읽어 볼 기회가 아예 없었습니다. 그러고보면 저는 불행히도 이 소설에서 만큼은 좋은 독자가 아니였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프래니와 즈이>의 신 번역본을 내 보는 것이 어떠냐는 출판사의 제안을 받고 "음, 어떻게 할까."라고 고민하면서 시험 삼아 원문을 읽어 보았는데 그만 "뭐지,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 였어!."라고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처음 읽고 거의 45년 정도가 경과한 나이가 되어, 이 소설을 마침내 납득했던 것입니다. 무언가 눈에 몇 겹 씌여져 있던 것이 떨어져 나간 기분이었답니다. 그렇게 한참 열중해 새로운 발견들을 즐기면서 단번에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프래니와 즈이>라는 소설의 어느 부분이 그렇게 재미가 있는지, 한 소설가로서 솔직하게 의견을 말하게 해주신다면, 이 소설의 재미는 뭐니뭐니해도 그 매력적인 문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이퍼적인 문체이면서 동시에 계산적인 문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스토리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전 부터, 문체의 힘으로 그대로 치고 나가버립니다. 이것은 물론 <캐쳐 인 더 라이>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부분이긴 합니다. 어쨌든 문체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샐린저는 문체로 자신의 차량을 제대로 셋팅하고 거기에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좌석에 밀어 넣고 낌새를 차리기 전에 스타트 버튼을 눌러버립니다. 그렇게 샐린저의 제트 코스터가 시작됩니다. 우리는 그 차에 몸을 싣고 놀라운 숨을 삼키며 제트 코스터에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됩니다.

 

먼저, 프래니의 부분은 문체가 상당히 억제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좋은 정갈한 문장이지만, 어느 쪽인가하고 생각해보면 매우 거친 리얼리즘 소설의 문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사용해 온, 도시적이고 세련된 즉, 잡지 <뉴요커> 스러운 문체에 가까운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1950년대 미국의 동부 엘리트 대학에 다니는 부유한 집안의 남녀 대학생의 모습이 풍속적으로 생생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물론, 프래니의 정신적 난조가 이야기의 중심 주제로 이야기 자체는 그렇게 얌전하게 나아가지는 않지만, 문장 자체는 그야말로 솔직하고 흐름이 좋답니다. 묘사는 물론이고 대화의 리듬과 정확한 비유가 이야기 속에서 시원시원하게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엔진을 예열하는 단계이고 악셀은 적당히 밖에 다루어 지지 않고 있는 단계랍니다. 이 상태로 이야기가 술술 나가는 것일까라고 기대하고 있는 와중에, 의외로 프래니의 부분은 짧게 끝나 버린답니다. "어라?"라는 느낌으로 말이죠. 그리고 그 이후 한 숨 놓고 있는데, 그만 악셀을 왈칵 밟아 버려 엔진의 회전이 솟구쳐 오르며 샐린저적인 요설이 즈이 챕터와 함께 바로 전개되며 튀어 오릅니다. 

 

이번에 <프래니와 즈이>를 원문으로 읽고, 감탄하고 기절한 것은 바로 즈이 부분의 문체의 재미였습니다. 어쨌든 샐린저는 즈이의 응어리진 부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 '응어리' 상태를 제대로 번역해 옮기는 것은 솔직히 매우 어려운 작업입니다. 원문의 정교한 숙련된 기술을 최대한 살리면서 그 날카로운 문장의 칼끝을 둔하게 하지 않도록 하면서, 일본어로 적당하게 좋은 표현으로 바꾸어나가는 것은 상당한 연구를 요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제가 10대 시절 한 번 읽고 다시 읽지 않은 것은 그 탓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번역의 잘잘못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문장의 리듬의 번역자 마다의 개인 궁합의 문제 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럼 저의 번역이 샐린저의 원문 분위기를 제대로 전하고 있는지를 반대로 물으신다면, 물론 거기까지는 자신이 없습니다. 자신이 있다 없다 얘기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저로서는, 계속해서 고속 회전 하며, 여기저기 정신없이 이동하는 샐린저의 문장을 객관적으로 계속 쫓아갈 수 있을 만한 자세를 확보하고 유지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그의 문장을 끈질기게 따라갔습니다. 샐린저의 문장은 계속해서 자유자래로 변화해 갑니다. 저쪽을 생각하고 있으면 다시 또 여기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렇게 눈부신 트위스트와 문장의 축회전에 현혹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리듬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공시적 체험을 동시대적인 경험에 연결해 나가는 것, 그것이 제 번역 작업의 기본 자세 였습니다.   

 

즈이 부분은 글라스 가문의 차남인 버디가 지금 시골에서 이 소설을 쓰고 있다는 (버디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홈무비를 찍고 있다.) 설정입니다. 소설 첫 부분에 그런 내용이 잠시 나오긴하는데, 즉 샐린저는 즈이 부분에서 버디 글라스라는 가상의 작가의 문체를 차용한 소설을 쓰고 있는 셈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야기는 처음 부터 중첩적인 색체를 띠게 됩니다. 물론 버디는 샐린저의 투영이지만, 버디는 그대로 샐린저 자신은 아닙니다. 샐린저는 버디라는 작가의 문체를 날조하고 있습니다. 그 양쪽의 문체의 차이는 처음 부터 끝까지 제대로 꼼꼼하기까지 하면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샐린저는 그런 의도적인 문체의 차이를 충분히 즐기면서 소설을 쓰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이면서 자신이 아닌 기쁨 같은 것을 소설 여기저기에서 기분 좋은 듯이 자연스럽게 분출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작업은 매우 수준 높은 문장력을 요하게 됩니다. 제가 처음 감탄한 것은 그러한 문장 기술의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레 이뤄지는 작가는 좀 처럼 없습니다. 

 

이런 기교적인 문체에 질세라 또 마구 분출되는 것이 주인공 즈이 (글라스 가문의 다섯째)의 매우 기발한 말투입니다. 버디의 문장 스타일도 매우 요설이고 기교스럽지만, 즈이의 언변도 매우 하이퍼적으로 독특합니다. 그 두 특징적인 보이스가 얽혀 서로 자극하면서 이야기 속을 종횡무진합니다. 그런 재치와 압도적으로 강력한 문장으로 전개되는 것이 <프래니와 즈이>라는 소설의 원동력입니다. 어디까지나 갇혀진 이야기이고, 까다로운 논의 투성이의 이야기입니다만, 이야기의 발걸음이 멈춰 버리는 일은 좀 처럼 없습니다.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을 다 읽었을 때, 프래니 부분은 분명히 매력적인 이야기이지만, 결국은 즈이 부분의 더욱 매혹적인 이야기에 이르는 준비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라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겁니다. 샐린저는 분명히 즈이 부분의 재집필에 있어 상당히 오랜기간 할애했을 겁니다.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 과정이었을 것이라고 추측이 가능합니다. 구석구석까지 정성스럽게 결코 방심하지 않고 써내려간 윤기가 흐르는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즈이 부분의 문장들이 <캐쳐 인 더 라이>에서 처음 접했던 그 감격적이고 신선한 문체에 필적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캐쳐 인 더 라이>의 문체는 역시 범접하기 힘든 강력한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 소설은 1인칭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라 소설적인 기교에 있어서는 좀 더 간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나 즈이는 3인칭으로 쓰여졌죠. 거기에다가 즈이는 소설적인 재미도 있고, 샐린저 작가 본인의 야심도 분명히 담겨 있습니다. 이제는 <캐쳐 인 더 라이>와 같은 소설이 아닌 다른 방식의 소설을 쓰고 싶다라는 작가적인 야심 같은 것 말이죠. 그리고 그의 의도는 훌륭하게 성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명력 넘치는 풍부하고 강인한 문체를 샐린저는 그 이후 다시 보여주지 못합니다. 왜 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그런 문장들로 보여질 수 있는 세련미에 더는 관심이 없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문체는 너무 기교가 넘치는지라 일종의 '과시'로 보일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글래스가의 프래니라면 이렇게 생각했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작가로서 하나의 지점에 그대로 머물러 있고 싶지는 않다라는 샐린저의 의지는 나름대로 이해가 되는 부분이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물론 작가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지만, 그 생생하게 살아있는 문체가 이후 원리주의적인 느낌으로 조금은 갇혀졌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한 개인의 독자로서의 의견이지만, 조금 유감인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프래니와 즈이>의 종교적인 색체에 대해서는 솔직히 지금 다시 읽어봐도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있습니다. 작가 자신이 당시 동양 철학에 깊이 빠져 있었고, 그 교리를 실천하는 형태로 인생 중반에 은둔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고, 어떤 글을 써도 모두 종교적인 색체를 가지게 되어 버리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당시의 샐린저는 '잃어버린 운동화'를 주제로 소설을 썼더라도 결국은 종교적인 교리에 도달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종교적인 색체'는 이야기 곳곳에서 다소 도식적인 흐름으로도 진행되고, 일반적인 독자들로 하여금, 처음 읽었을 때의 제가 그랬듯이, 싫증나게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이 점이 이 소설의 유일한 약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얘기해두고 싶은 것은, 당시 1950년대 미국에서의 동양철학과 초기 기독교 교리는 아마 지금 보다 훨씬 절박한 현실적인 존재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미국의 1950년대 비트 세대로 이어지는 하나의 사상적인 유행이라고 할 수 도 있습니다.(물론 샐린저의 경우에는 단순한 유행에 지나지 않고 좋던 나쁘던 그것을 체득하여 본인의 작품에 포함시켜나갔지만) 그 종교성이 의미하는 것은 반물질주의, 반실용주의 이며 압도적인 번영을 누리고 있던 미국 사회에 대한 'NO'였습니다. 차갑고 경직된 아카데미즘과 상상력이 결여된 획일적 미디어에 대한 'NO'이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태평양 전쟁에서 수많은 격전 속을 뚫고 온 샐린저에게는 깊은 트라우마의 절실한 치유의 수단이었고, 휴머니티 회복을 위한 중요한 길이 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당시 미국의 그런 종교적인 움직임이 오늘날 볼 수 있는 특정 컬트 종교 집단의 폐해로 까지는 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독자분들이 지금 다시 <프래니와 즈이>를 읽을 때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소설 속 나오는 종교적인 담론을 실천적인 것인 방법론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역사적인 인용이나 일종의 정신적인 메타포로서 받아들이며 읽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읽어 나가면 독자는 표면적인 '종교적 색체'에 현혹되는 일이 없이 이야기의 핵심에 비교적 쉽게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샐린저가 말하려고 하는 것도 종교의 고정된 교리가 아니라 오히려 유동적이고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신성에 닿기 위한 인간의 의지에 가깝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이유에서 종교적인 용어와 배경에 대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만 따로 주석으로 뺐고, 그다지 깊고 세밀하게 주석을 넣지는 않기로 했답니다. 그것은 소설을 읽는 즐거움의 상당 부분을 빼앗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 것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직접 문헌을 찾아 보는 것을 권해 드립니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그런 세부적인 내용을 모르더라도, 이 소설이 정말 이해하지 못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샐린저의 죽음 전후 시기에 대한 그의 전기와 그에 대한 회고록이나 평론이 몇 권 새롭게 출간되어 지금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이 밝혀졌답니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프래니와 즈이>의 완성 전후 사정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려고 합니다. 1951년 출간된 장편 <캐쳐 인 더 라이>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이례적으로 크나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후, 1953년 출간된 단편집 <Nine Stories>도 독자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두 책으로 샐린저는 일약 미국 문단의 최고봉으로 서게 됩니다. 그리고 1955년 초에 <프래니와 즈이>의 프래니 부분이 독립된 단편 소설로 뉴요커지에 발표됩니다. 이 시점에 독자들이 앞으로 소설이 어떻게 확장되어 나갈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태였죠. 그러나 단편 <프래니>도 명성을 떨치게 됩니다. 작품은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어, 뉴요커지는 불티나게 팔리게 되죠. 그런데 이 작품은 일반 독자에게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기에는 뭔가 쉽지 않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레인 코텔의 인물 설정은 너무 개성없이 유형적이고 아카데미즘으로 대표되는 동부의 엘리트에 대한 저자의 적대감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프래니 가문은 어떤 의미에서 미숙하게 독선적이고, 그녀가 열중해서 읽고 있는 책 <순례의 길>이라는 책의 존재 의미도 불명확합니다.

 

그러나 훌륭하게 정확한 묘사와 스토리텔링의 기술, 설정된 상황의 발랄함과 화려함이 이런 문제들을 온전히 커버하고 있습니다. 당시 뉴요커의 독자들은 깊게 까지는 제쳐두더라도, 소설을 신비적인 요소를 포함한 하나의 작품으로 받아들여 열렬하게 환영했습니다. 그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컸고, 작품을 둘러싸고 곳곳에서 다양한 견해와 비평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수의 독자들은 (비평까지 포함해서) 프래니의 신체적 질병과 실신하는 것을 그녀가 임신한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그런 오해는 섬세하고 예민한 샐린저의 신경을 자극하게 됩니다. 당연한 결과 였을 겁니다. 프래니에게 닥친 '실존의 위기'가 임신이라는 신체적인 문제로 치부되면 작품의 의미가 다소간 옅어지게 됩니다. 그런 오해가 해소되기 위해서는 속편 즈이 부분을 기다려야 했죠.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프래니'라는 작품은 샐린저가 어딘지 모르게 본인의 작가로서의 위치를 결정하지 못한 인상이 엿 보입니다. 샐린저는 세련되고 지적인 뉴요커지의 바램대로 인기작가로 계속 지위를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과(실제로 뉴요커가 지불해주는 높은 원고료는 그의 중요한 소득원 이었습니다.) 더 진지하고 문학적으로 성숙한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함께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프래니>는 말하자면, 그 중간 지점에서 태어난 작품 처럼 보입니다. 작가는 아직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눈을 돌리고 있는 상태였던거죠. 그러나 그런 그의 고민은 결코 소설의 약점으로 전이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미묘한 '흔들림'이 매력적인 부분으로 기능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속편 격인 <즈이>의 착수 단계에서는 샐린저는 이미 명확하게 마음을 정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일련의 문학적 성공 이후, 그는 자신의 재능에 확실한 자신감을 가지고 더 야심찬 진지한 소설로 자신이 영혼에 정직한 소설을 쓰는 것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샐린저는 <즈이> 부분에 착수하기 전, 어쩌면 그 준비 단계 랄까, 중편 소설 격인 <목수들아 대들보를 높이 올려라>를 쓰게 됩니다. '글래스가 일대기'의 일부를 이루는 것으로, 이 소설의 주인공은 차남인 버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종국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장남 시모어도 이 소설의 시점에서는 살아 있죠. 소설은 뉴욕시에서 열리는 시모어의 결혼식이 무대이지만, 주인공은 시모어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가 사라진 것이 바로 이 소설의 주요 주제 이죠. 정말 능숙한 문체로 쓰여진 이 작품은 뉴요커지 1955년 11월 19일 호에 게재되어 역시 독자들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의 문체에는 양질의 유머가 있고, 매우 읽기 쉬운 작품이지만, 지적인 배려가 이야기 구석구석 충실하게 독자에게 전달됩니다.

 

1955년은 샐린저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해입니다. 1955년 2월 샐린저는 클레어 더글라스와 결혼하고 그해 12월 둘 사이에 딸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클레어는 프래니의 원형이라고 여겨집니다. 클레어는 샐린저 보다 15살 연하의 아름답고 영리한 그리고 에너지가 넘치는 여성으로 동부 엘리트 대학인 래드클리프에 수학 중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한적한 뉴 햄프셔의 콘월에서 종교적 교리를 실천하기 위해 세상에서 고립된 청렴한 생활을 추구하게 됩니다. 샐린저는 <즈이> 집필에 1년 반의 시간을 할애합니다. 상당한 공을 들인 셈이죠. 그로서는 이 작품이 '글래스가 일대기'의 장대한 이야기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고 집필했겠지만 (글래스가 일대기가 완성되었다면, 중세의 거대한 성당과 같은 위용을 자랑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우선은 이야기의 흐름이 프래니와 시간적으로 이어지고 있답니다. 그렇게 프래니와 즈이 부분을 합쳐서 <프래니와 즈이>라는 형태로 출판하기로 한 것이죠. 

 

그러나 이런 샐린저의 의욕작인 <즈이>는 뉴요커지로 부터 게재를 거절 당하게 됩니다. 그 하나의 이유는 작품 길이가 너무 길었다는 것인데요. 당시 뉴요커지에 실리는 단편의 보통 길이의 4배가 길었습니다. 그 이후 이 작품이 실린 1957년 5월 17일호에는 다른 작품을 게재할 여유가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뉴요커가 이 작품의 게재를 꺼린 또 다른 (혹은 더 큰) 이유는 작품의 내용이 지나치게 종교적이라는 이유 였습니다. 이 작품은 종교적인 신앙과 문학적인 성과, 즉 메세지와 이야기가 혼연일체가 되어, 해부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뉴요커라고 하는 세련된 도시적인 잡지의 특성에 맞지 않았을 겁니다. 문예 담당 편집자들은 게재를 주저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만장일치로 이 작품의 뉴요커 게재 불가 방침을 세웠죠. 그러나 편집장 윌리엄 숀은 샐린저라는 희귀 작가와 자신이 일하는 뉴요커 잡지와의 관계를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여(실로 타당한 생각이었죠) 편집자들이 결정한 사항을 편집장의 권한으로 전격 <즈이>의 게재를 결정하고 샐린저에게 거액의 원고료를 지불하게 됩니다. 그리고 편집장 스스로가 담당 편집가가 됩니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죠) 그리고 샐린저와 함께 작품의 교정 작업에 몰두합니다. 숀은 상당한 괴짜로 알려져 있지만, 문학에 대한 예리한 후각을 갖추고 있으며, 많은 작가들로 부터 존경을 받고 있었답니다. 편집자들도 그에게 이의를 제기할 순 없었을 겁니다.

 

샐린저는 콘월에서의 은둔 생활을 종종 중단하고 뉴욕의 숀 사무실로 나와 문장을 철저하게 가다듬어 작품을 더 완벽하고 컴팩트하게 바꾸어 나갔습니다. 두 사람은 이 교정 및 단축 작업에만 6개월이 소요되면서 덕분에 작품은 당초보다 상당히 짧아지게 되었습니다. 원래 작품의 길이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지금에 와서는 알 수 없는 일이죠. 그렇게 뉴요커지에 게재된 <즈이> 역시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일부 비평가의 난해하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샐린저의 새로운 작품이고 게다가 <프래니>의 속편을 볼 수 있다라는 생각에, 종교적인 색체는 그다지 (뉴요커지의 문예 담당자가 한 것과 같이) 신경 쓰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 한가지 샐린저는 이미 수 많은 고정 팬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서 샐린저는 단순한 소설가라기 보다는, 오히려 전설과도 같은 존재가 되기 시작했답니다. 모르긴 몰라도 소설 속에 포함된 종교적인 내용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멀리하게 만들기 보다는 샐린저 본인의 전설을 더욱 강화하는 역할을 했을 겁니다. 원리적인 종교 논란을 문학의 영역에까지 순조롭게 승화 시키는 작가의 특이한 혹은 변칙적이 힘에 독자들이 혀를 내두른 것이죠. 

 

또한 1950년대 아이젠하워 대통령 치하의 미국의 강력한 냉전 체제와 획일화된 자본주의의 예찬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모색하고자 하는 많은 젊은 독자들이 샐린저가 작품을 통해 제시하는 청렴한 정신주의에 마음이 끌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샐린저는 일련의 비트 문학에서 이미 앞서가고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캐쳐 인 더 라이>의 홀든 콜필드가 외친 사회에 대한 통렬한 거부인 'NO'의 메세지는, <즈이>속의 즈이가 글래스가의 영혼을 쥐어짜며 '예수'로 승화한 듯한 그런 극적인 전환은 많은 독자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주인공들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작가 샐린저 자신의 모습과 중첩되는 것을 피하기는 어렵고 일체화해 나가기로 한 듯 보입니다. 이러한 작품이 성립된 경위를 살펴보면, 샐린저가 단행본 <프래니와 즈이>의 첫머리에 윌리엄 숀에 대한 다음과 같은 뉴요커파 작가 같은 세련되고 왕성한 감사 메세지를 쓴 것도 당연한 일인 것 같습니다. 윌리엄 숀이 없었으면, 그의 뛰어난 열정이 없었으면, 지금의 형태로 <프래니와 즈이>는 없었을 겁니다. 당시의 뉴요커는 그만큼 박력과 혁신이 있었던 겁니다. 그런 잡지가 또 있을까요? 

 

"별로 가치가 없어 보이는 내 작품을 사랑하고, 많은 작품을 쓰지 못하는 작가를 위해주고, 가혹할 정도로 절망적인 글을 아껴주는, 타고난 예술가이자 뉴요커의 수호신임에도 더 없이 겸손한 그에게는 무척이나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이 작품을 받아줄 것을 강하게 요청합니다."

 

<즈이>의 개정작업에 밤낮으로 몰두하면서 샐린저와 윌리엄 숀의 우정과 신뢰는 더욱 깊어졌지만, 아내 클레어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는 아이의 고립된 심해지게 되면서 그것은 바로 가정의 붕괴와 부부의 이별을 가져 오게 되었습니다. 샐린저는 그토록 <즈이>라는 작품에 심하게 빠져들어 있었던 것이죠. 그는 자신의 실제 가족 보다 글래스 가문이라는 가상의 가족을 택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샐린저 본인이 생생한 현실 생활 보다는 아름다운 관념적인 혹은 인공적인 설정을 스스로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살아있는 인간이 가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실제적인 삶의 질감 같은 것이 그에게 큰 압박으로 다가온 것일 겁니다. 아내와 아이를 떠나 보낸 후, 샐린저의 고립은 실제 생활에서도 문학적으로도 점점 심각한 상황으로 전개됩니다. 그의 문체와 주제의식은 점점 옅어지게 됩니다. 그의 이야기는 과거의 자유롭고 활발한 움직임을 빠르게 잃어 가고 맙니다. 그리고 독자들과의 괴리도 생기게 되고, 아마도 우리는 이 작품 <프래니와 즈이>가 샐린저가 고립화 혹은 내향화 되기 직전에 쓴 놀라운 곡예와도 같은 걸작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앞에서 제가 얘기했듯이 그 작품의 완성까지의 과정은 정말 우여곡절이 많으면서 그 문학적인 성취 혹은 담겨진 의미는 상당히 제대로 문학적으로 우뚝 서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 균형은 마지막 순간에 아름답게 유지되고 있답니다. 마지막을 앞둔 직전이라 아름다운 것일까요. 

 

번역자로서 <프래니와 즈이>가 앞으로도 시대를 초월한 고전이자 동시대적인 의미를 가진 작품으로 오랫동안 읽혀지게 되는 것을 희망합니다. 젊은 독자는 젊으니까 읽고, 나이든 독자는 나이든 시점에 읽는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탁월한 문예 작품이라고 믿습니다. 우직한면도 있고, 기술적으로도 매우 고급스럽고 근원적인 동시에 어디까지나 부드러운 영혼을 가진 매력적인 소설입니다. 정성스럽게 그려 넣은 듯한 인상을 받고 세부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무심코 독자로서 마음을 빼앗겨 버리게 됩니다. 내용적으로 <캐쳐 인 더 라이>처럼 모든 독자들을에게 다가가기 쉬운 소설을 분명히 아니지만,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인생에서 한 번 혹은 두 번은 읽어 볼 만한 작품입니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읽어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희귀한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즈이> 부분에 등장하는 멋진 주인공들은(고양이 블룸버그를 포함하면 딱 3명입니다!) 분명히 당신의 인생에서 마음 속에 언제까지나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이 책 <프래니와 즈이>의 번역에 관해서는 <캐쳐 인 더 라이>때와 마찬가지로 시바타 모토유키씨의 신세를 졌습니다. 언제나 처럼 제가 번역 원고를 완성하고, 초고가 나오기까지 둘이서 하루 종일 번역문을 검토했습니다. 아침 10시 부터 밤 8시 까지 거의 휴식 없이 이마를 맞대고 이쪽 일까 저쪽 일까 쉽게 결론이 안나고 계속 주고 받고 했습니다. 시바타씨와의 번역 세션은 정말 좋은 공부가 된답니다. 이 책의 번역 제목은 지금까지 <프래니와 조이>가 일반적이었습니다. 'Zooey'라는 발음을 여러 미국인들에게 물어봤지만, '즈이'로 발음하는 사람도 있고, '조이'라고 발음하는 사람도 있어서 번역자로서 쉽게 어느쪽으로 정할지 막막했답니다. 그런데 '즈이'로 발음하는 문학자들이 많았고, 2013년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샐린저>에서도 '즈이'라고 발음이 통일되어 있었다는 점, 마지막으로 제가 예전 부터 개인적으로 '즈이'라는 어감을 더 선호한 이유도 있어서, 이번 번역본에서는 <즈이>라고 쓰게 되었습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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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2.29 11:28

    안녕하세요. 이번에 처음으로 도쿄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쿨 사이다님 블로그 덕에 마지막 날은 오이소를 방문해서 하루키의 저택도 둘러볼 수 있었네요. 밤에 불이 꺼진 걸로 봐서는 다른데 계신 것 같았어요. 그래도 정말 멋진 동네더군요. 아시야 처럼 부촌은 아닌것 같아도 그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동네였어요. 전망도 정말 멋지구요.
    그 전 쯤에는 오기쿠보에 6 mention 이라고 하루키 팬들이 모여서 토론 하는 카페를 다녀왔습니다. 일본에서는 하루키 팬으로 유명하신 분이 운영하는 카페라고 하더군요. 뭐 구경삼아 간건데 오늘은 영업을 하지 않는다 해서 아쉽게도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왔지만 어쩔 수 없죠. 나중에 골든가이도 가보고 dug인가 하는 카페도 가봤습니다. 뉴 dug라고 간판을 새로 달아놔서 혹시나 했는데 하루키가 다니던 바가 맞다고 하시더라구요.
    쿨사이다님이 올려 놓은 글들 보고 나름대로 유익한 여행을 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내심 아쉬운 마음은 있네요. 하루키 살롱을 여신다는 공지가 있던데. 무척이나 기대가 되네요. 일본에 그 분이 있다면 한국에는 님이 제가 보기에는 가장 열성적인 팬 같거든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참석해 보고 싶습니다.

    • finding-haruki.com 2020.02.29 15:39 신고

      안녕하세요. 뮤님. (닉네임이 반갑네요.)
      도쿄 여행을 다녀오셨다뇨. 더욱이 파인딩 하루키 스팟을 다녀오셨다니 반갑습니다. 그리고 부럽습니다. 오이소는 저도 한 번 가보고 아직 다시 가보지 못했거든요. 그때, 꽉 찬 스케쥴에 오이소에서 식사 한끼를 못했던 것이 아직까지 아쉬움에 남거든요. (여행은 아쉬움이 반이라고는 하지만요.) '하루키 살롱'은 조금 기다려 주시면, 진행 상황을 더 공유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