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하루키의 2009년 작품인 <1Q84>가 아사히 신문에서 120명의 선정 위원의 설문 결과에 따라 일본 헤이세이 시대(1989~2019) 최고의 소설 베스트 30에서 1위를 차지 했습니다. <태엽감는새>는 10위에 선정되어, 30위안에 하루키 작품 두 편이 선정되었네요. 선정된 기념으로 아사히 신문과 하루키의 인터뷰가 진행했습니다. 그 내용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사진 출처: https://www.nytimes.com/


헤이세이 시대를 되돌아 보며

-하루키 헤이세이 시대 최고의 소설 선정 기념 인터뷰, 아사히 신문, 2019.3.7 (원문 클릭)


아사히 신문: 헤이세이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 작품으로 <1Q84>와 <태엽감는새>가 많은 지식인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하루키: 헤이세이 시대가 시작된지 얼마되지 않은 1991년 1월 프린스턴 대학의 객원 연구원으로 초빙되어 미국으로 건너갔었습니다. 당시 미국은 걸프 전쟁을 시작했고, 그런 어두운 시대 속의 미국에서 <태엽감는새>를 쓰기 시작했죠. 다시 시작해보자라는 마음이 강했답니다. 쇼와 시대 끝 무렵인 1987년 <노르웨이의 숲>을 썼고, 생각지도 못하게 베스트 셀러가 되어 당시에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답니다. 그래서 다시 일본을 떠나 일본 사람이 없느 곳에서 내면에 집중한 채 다음 작품을 쓰고 싶었어요. 그렇게 <태엽감는새>는 저에게 상징적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의욕적인 소설이랍니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벽을 통과하는 것'의 첫 등장이라고 생각해요. 주인공은 우물의 바닥에 앉은 채 깊은 생각에 빠지고, 이내 벽을 통해 다른 세계로 넘어가게 되죠. 깊은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 다른 세계의 입구를 찾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태엽감는새>에서 처음 나타나게 된 '벽을 통과하는 것'은 저의 소설적 상상력을 해방 시켜 앞으로의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있어서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사히 신문: <태엽감는새>는 폭력과 보이지 않는 악에 대해 그리겠다라는 의지가 담긴 작품으로도 보입니다.


하루키: 예전 부터 '무라카미씨의 작품에는 악이라는 게 나오지 않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은 이후, 그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전 순수하게 개념적인 악에 대해서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죠. 도스토예프스키나 발자크, 디킨스 같은 작가들도 모두 소설 속에서 악을 잘 그리고 있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동경하고 있었고요. 제 자신은 소설 속에서 악의 감각에 대해 다소 부족한 면이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태엽감는새>를 통해 제 상상력 속에 있는 악을 과감하게 드러내 표현했던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도 저에겐 중요한 작품입니다. 


아사히 신문: 그 후 1995년 한신 대지진과 도쿄 지하철 사린 테러 사건이 일어납니다.


하루키: 1995년은 제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베 지진은 제가 자란 집도 파괴했답니다. 미국 생활을 끝내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야 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그 두 가지 사건에 대해 작가로서 어떻게든 발언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라는 생각을 했죠. 개인적인 신념으로 소설가가 모든 작품에서 누구나 다 아는 올바른 말만 하면 작품이 변변치 않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작가이지만 동시에 일반 시민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 일반 시민으로서 올바른 일을 하고 올바른 말을 해야 하죠. 그러면서 동시에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잃으면 안되는 것이죠. 즉, 작가로서의 상상력이 훼손되지 않는 상태에서 올바른 말을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작가에게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균형 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사히 신문: 1997년에는 도쿄 사린 테러 희생자들을 인터뷰한 논픽션 <언더그라운드>를 출간하셨죠.


하루키: 인터뷰를 하면서 처음 부터 끝까지 차분하게 경청했습니다. 태어났을 때의 얘기부터, 학교, 가정, 결혼, 직장 등 그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그 지하철 사린 테러가 어떤 한 조각으로 들어가 영향을 주었는지 알고 싶었어요.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 내용만을 작품에 실었죠. 제 의견이나 생각은 철저히 배제했어요. 제 의견을 말하지 않으면서 논픽셔으로서의 가치에 대해 비판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아사히 신문: 1999년 발표한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을 춘다>은 지진의 영향이 느껴지는 연작집인데요.


하루키: 이 작품은 두 가지의 원칙 하에 썼습니다. 먼저, 고베를 배경으로 할 것, 그리고 지진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말 것, 이렇게 2가지 였죠. 이렇게 구체적인 상황이나 대상이 표현되지 않음으로 해서 범용성이 확대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예를들어, 누군가가 유고슬라비아 내전에 휘말리게 된다는 상황과 비슷한 상황으로 볼 수도 있는것이죠. <언더그라운드>와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을 춘다> 이 두 작품은 헤이세이 시대의 한 가운에 놓여져 제가 소설가로서 나아갈 방향을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사히 신문: 세계적으로 볼 때, 폭력적인 비참한 어떤 사건 뒤에 무라카미씨의 작품이 더 널리 읽히는 경향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루키: 기존에 존재하던 것들이 무너지거나 사라져 버렸을 때, 제 작품이 더 읽히는 일이 많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일본의 예를 들면, 헤이세이 시대가 되고 버블이 붕괴되고, 한신 대지진과 도쿄 지하철 사린 테러가 있고 나서 부터, 제 작품이 더 본질적으로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답니다. 2002년 작품 <해변의 카프카>에서 가장 쓰고 싶었던 것은 불안의 진동이었습니다. 지금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도 느끼고 있는 그런 불안 말이에요. 중요한 것은 주인공의 15세의 소년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물과 세계에 대한 이해는 떨어지지만, 이해하려고 하는 의지는 충만한 상태이죠. 기성 세대의 선험적인 것을 배제하고 세계를 파악하려는 시도입니다. 사물 그 자체에 의해, 그것이 어떤 식으로 보이고 들리는가에 대해 그 지점에서 혹은 지금 이 시점에서 어떤 식으로 그 진동을 느낄 수 있는지가 중요해요. 그 진동을 종합하여, 각각의 독자로 하여금 현상의 본질을 정립할 수 있게끔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제가 하고자 했던 작업입니다. 저와 독자의 공동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사히 신문:2009년 예루살렘상 수상 연설 '벽과 계란'이나 2011년 카탈로니아 국제상 수상 연설에서의 동일본 대지진, 원전 사고에 대한 언급이 화제가 되었죠.


하루키: 어느쪽이 좋은지 나쁜지가 잘 판단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무엇이 중요한지를 생각합니다. 원전을 폐지하라고 직접적으로 발언하는 것 보다, 그 사고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 소설가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일본 상황 처럼, 포퓰리즘 세력이 어느 정도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말을 아껴야 할 수 도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은 포지션이 어느 정도 분명한 시대라고 생각되는데,  저 역시 포지션이 분명하여 이런 시대에는 무라카미씨가 이런 말을 하겠지라고 대중들이 생각하기 쉽상이죠. 저는 그런 존재는 되고 싶지 않습니다.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것도 물론 괴로운 일입니다만, 제 생각을 차분히 응축시켜 더 이상 침묵하면 안되겠다고 생각이 들면 그때는 말하게 됩니다.  


아사히 신문: <1Q84>는 3권으로 완결일까요?


하루키: <1Q84>와 <태엽감는새>의 공통점은 2부까지 한 번에 쓰고, 시간을 두지 않고 3부를 바로 썼다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하나의 작품으로 정리했죠. 그런데 결론은 내리지 않았습니다. <1Q84>는 1830년대 만담가인 산유테이 엔초의 작품과 같이 기나긴 인연에 대한 이야기에요. 덴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덴고와 아오마메가 정말 코스타리카에 가게 될 지, 혹은 두 사람 사이의 딸에 관한 일 등 이야기는 마무리가 되었지만, 재즈에서 기본음을 생략해 버리는 것과 같이 공백을 남기고 싶습니다. 다른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의 터널에서 연결되는 만다라와 같은 것을 좋아한답니다. 


아사히 신문: 사회 불안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계신가요?


하루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공포와 분노에 자극 받아 행동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심층 의식에 내재 되어 있는 분노와 공포는 사람을 움직이는 동기로는 매우 좋지 않습니다. 물론 선한 것이나 올바른 의식으로 움직이는 사람도 많지만, 악과 선이 불문명하게 얽혀 있는 상황도 있고요.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9.11 이후 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고요. 공포와 분노를 일부러 억누르고 숨기려고만 하는 사회 분위기도 한 몫 할 수 있습니다. 나치의 가스실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수정주의자들 같이 말이죠. 소설을 쓸 때, 절대 그런 것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사히 신문: 선인지 악인지 잘 판단할 수 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하루키저는 SNS는 하지 않지만, 조금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는 섬뜩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런 섬뜩함을 없애고 줄이려는 데 이야기의 힘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어두운 상황이더라도 어쨌든 말이나 글로는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문장이나 단어는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날카로운 무기가 될 수 있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실감하지 못하는 것인지, 의도적으로 무기로 사용하려고 하는 것인지 판단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지가 문장가 특히 이야기를 만드는 저를 포함한 소설가들이 풀어야 할 과제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fin.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Kafka on the shore 2019.03.21 23:21

    늘 잘 읽고있습니다^^ 근데 해변의 카프카가 빠진건 의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