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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수요일 Japan Times 인터넷판에 하루키의 작가 인생 40주년 및 필리핀에 <기사단장 죽이기>의 출간 기념 교도 통신과의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모두 1,2부로 나뉘어 실렸는데요. 인터뷰어는 문학 평론가인 유카와 유타카씨와 교도 통신의 기자인 고야마 데쓰로씨입니다. 이 두분은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하루키 평론집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오후>의 공동 저자이기도 하답니다. 원문 기사에 <기사단장 죽이기>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라는 문구가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D

 

https://www.vulture.com/2017/05/what-is-it-about-haruki-murakami-that-mesmerizes-people.html

 

Q: 올해는 무라카미씨의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출간된지 정확히 40년이 되는 해입니다. 

정확히 40년전인 5월 군조신인문학상을 수상했었죠. 정확히는 5월 8일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도쿄 신바시에 있는 다이이치 호텔이었어요. 

Q: 40년동안 작가 생활을 꾸준히 해왔다는 건 대단한 일인 것 같습니다. 나쓰메 소세키도 10년 정도 작가 생활을 했죠. 정말 놀라운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매 10년 마다 전환점을 가져갔다고 생각해요. 그런 각각의 전환점에서 제 작문 스타일이나 이야기의 유형이 다소 바뀌었답니다. 그래서 글쓰기가 결코 지루하지 않았어요. 항상 새로운 목표가 있었죠. 그런점이 작가 생활을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에 좋은 작용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Q: <기사단장 죽이기>의 문고본이 이번에 출판되었는데요.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요.

제가 가지고 있던 것은 소설의 타이틀 '기사단장 죽이기' 뿐이었어요. 물론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에서 온 것이지만, "킬링 코멘다토르"라고 읽히는 묘하면서 불안정한 느낌의 공명에 매료되어, 이 타이틀로 일본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갈 수 있을지 궁금했답니다. 타이틀.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어요.

Q: 단지 타이틀만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는 말씀이시죠?

<해변의 카프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어요.  먼저 타이틀이 정해졌죠. 그런 다음 <해변의 카프카>라는 제목으로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질까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런 다음 소설을 쓰기 시작했죠. 그래서 오랜 시간이 걸리기 마련입니다. 아마 <노르웨이의 숲>만이 유일하게 반대 상황일텐데요. <노르웨이의 숲>은 마지막까지 제목이 정해지지 않았었답니다. 

Q: 저는 'The Garden in the Rain'도 <노르웨이의 숲>의 잠재적인 타이틀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저는 18세기 작가인 우에다 아키나리의 <이세의 인연>의 요소를 포함할 수 있을지 궁금했답니다. 

Q: 우에다 아키나리 사후 유작으로 발견된 <하루사메 이야기(봄비 이야기)>에 수록된 <이세의 인연>에 나오는 즉신불 - 금욕을 실현하려 산 채로 미이라가 되기 위해 땅 속 무덤으로 내려가는 -이 실제로 있지 않나요? 

네 도호쿠 지역을 여행 할 때, 여러 종류의 미이라를 실제로 봤어요. 그리고 소설을 쓰면서 교토의 중고 서점에서 여러 관련 책들을 읽었고, 미이라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는지 등을 접했죠.

Q: 우에다 아키나리의 또 다른 이야기집인 <우게츠 이야기(비와 달의 이야기)>-는 <해변의 카프카>에도 등장합니다.

저는 우에다 아키나리 작가의 작품을 좋아해요. 특히 <이세의 인연>를 좋아하죠. 스스로 미이라가 되기 위해, 즉신불이 되기 위한 수행의 과정으로 무덤으로 내려가서 수양을 하다가 미이라가 된 후, 다시 환생하여 다른 삶을 살게된다는 이야기이죠. 우에다 아키라니는 세상에 대해 냉소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다소 비뚤어진 이야기를 그렸다고 봅니다. 단순히 우리 주위에 있을 수도 있는 그런 평범한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Q: 음, 그렇군요.

아버지의 집은 교토의 정토 사원의 불교 사원인데요. 아버지 장례를 치를 때, 사원의 승려께서 불교 경전을 낭독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그 사원 경내에 교토 출신이었던 아키나리의 무덤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죠. 저는 장례를 집행하시는 제사장께 아키나리의 무덤을 보여줄 수 있겠냐고 물어보았고, 무덤을 보러 갔는데. 그의 무덤위에는 게가 새겨져 있었답니다. 이유를 물으니, 항상 세상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던 아키나리는 그가 죽을 때, 자신의 무덤에 오직 옆으로만 걸을 수 있는 무언가를 새겨달라고 했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Q: 놀라운 이야기네요.

들어보니, 그 사원은 아키나리 사후 수 년간 사당에 모셨다고 합니다.  

Q: <기사단장 죽이기>와 <이세의 인연>의 이야기는 동일한 플롯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사단장 죽이기>의 주인공이 그가 살고 있는 집의 덤불을 파헤치고 구덩이로 내려갈 때, 과거로 연결되는 '구멍'이 나타납니다.

기본적으로 제 소설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무의식 혹은 잠재의식을 탐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음의 바닥으로 내려가는 거죠. 우리는 의식적으로 '마음의 바닥'을 깊이 탐구함에 따라, 어둡고 그로테스크한 세계로 내려가 맨 밑바닥에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즉 본능에 의존해서 그 어둠으로 부터 무엇을 끌어내야 할지 결정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식에 대한 모든 부분을 더 면밀히 분석하면서, 자신의 본능에 따를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형성되어 있는 '논리'나 '이전 사례'들에 의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양을 쫓는 모험>에서 그것은 '양 사나이'였고, <태엽감는새>에서는 '우물을 통과하여 다른 세계로 가는 행위'이고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는 '잉클링'이죠. 이제 우리는 <기사단장 죽이기>를 통해 '기사단장'을 갖게 되었습니다.

Q: 저의 경우엔 소설을 읽어 나가면서, 기사단장이 등장하기만을 기다리며 읽었습니다. 그는 60cm 정도의 키고 그래서 매우 귀엽게 느껴집니다. 

기사단장이 너무 커버리면 주인공이 그와 모종의 작업을 해 나가기에 어려웠을 것이고, 또한 위협적으로 보일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는 작기 때문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다루기도 용이하죠. 모든 부분이 비례하여 작아집니다. 그는 분명한 존재감이 있지만, 일상생활과는 확실히 분리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Q: <해변의 카프카>에서는 인간이 아닌 캐릭터인 커넬 샌더스 대령이나 조지 워커가 나오긴 합니다만, 이번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처럼 인간이 아닌 캐릭터가 자주 등장하고, 이야기의 흐름을 이끌어 나가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맞아요. <기사단장 죽이기>의 '기사단장' 처럼, 소설 속에서 계속해서 등장하는 경우는 처음입니다. 

Q: 기사단장은 스스로를 '이데아'라고 부릅니다. 간단히 말해서, '개념'이죠.

네. 하지만, 기사단장에게 단 하나의 확실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타당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전 이 소설을 끝내고 생각해 봤어요. 기사단장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요. 저는 기사단장은 주인공의 변형된 또 다른 자아의 형성물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아마도 다른 캐릭터들의 다른면을 반영하는 거울과도 같다고 볼 수도 있어요. 또는 역사적인 연결고리이거나 과거로 부터 온 메신저 일 수도 있죠.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가능성이며 무엇이 맞는건지는 확실치 않아요. 이 부분은 오로지 독자들에게 맡겨야 하는 문제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Q: 또한 기사단장을 '중립적인 존재'라고도 표현하셨습니다. 

저는 기사단장은 선한 존재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만, 그렇다고 악한 존재도 아닙니다. 그는 그런 경계를 뛰어 넘은 '가이드'의 역할을 맡고 있어요. 그리고 그는 모든 사람에게 보이지 않죠. 그를 볼 수 있는 사람만이 볼 수 있어요.

Q: 기사단장의 말투는 독특한데요 예를 들어, 있지 않다라는 말을 'ara nai 아라 나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말이에요. 영문판에서는 'negative'로 번역되었지만요. 그리고 그는 단수인 주인공 나에게만 말을 하는데, 항상 '제군'이라는 복수로 말을 걸곤 합니다.

번역가들이 실제로 이런 기사단장의 말투를 번역하는 방법을 결정하기에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해요.  

Q: 계속해서 '제군'이라고 불리워지는 주인공 '나'는 기사단장의 이데아 세계에는 2인칭 단수 개념이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ara nai'는 aru (있다)의 부정적인 형태이며, 이는 기사단장이 개념적인 존재라는 것을 암시하기도 하는 듯 보입니다.

네. 그건 마치 독일 철학 서적의 번역본 같은 느낌도 드네요. 'ara nai'는 독일 단어 'nicht sein' (비존재) 처럼 읽히기도 하죠. 저도 오랫동안 번역을 해와서 다양한 방식으로 말을 만들어내는데 익숙하답니다. 아마도 그점이 그들이 자연스럽게 제 마음 속에 나타나는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단어의 울림 공명은 저에게 매우 중요해요. 이는 제 작업이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이유이기도 할 겁니다. 

Q: 무라카미씨는 번역 작업도 꾸준히 해오시고, 해외에도 자주 나가곤 하십니다. 장기간 체류하기도 하셨죠. 그러나 모든 소설은 일본으로 설정됩니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이고요.

그것은 아마도 제가 기본적으로 '내부'와 '외부'를 교환하는 것에 관심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예를들어, 이 소설에서 기사단장은 서양인이어야 하죠. 그런데 고대 일본 아스카 시대의 복장을 입고 나타납니다. 그로 하여금 독자들이 불협 화음을 접하면서 의아해하고 궁금증을 가지게 만들게 되죠. '돈 조반니'에서 묘사한 옷을 그대로 입고 나타났다면, 그것은 이야기가 아니지 않을까요.  

Q: 네 맞는 말씀이시네요.

제가 작가 생활을 시작할 무렵, 많은 소설들이 외국을 배경으로 쓰여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것에 별로 끌리지 않았죠. 저는 의미를 교환하거나, 영적인 것을 서로 맞바꾸는 것을 묘사하는데 더 관심이 있었답니다. 초기에는 문학적으로 무언가 확립되기 전이기때문에 어떤 문학적 스타일을 구사하기는 힘들고, 문학적 어휘들을 재배열하는 작업 부터 시작한거죠.

Q: 그렇게 일본을 배경으로 쓰여진 작품들은 나중에 외국어로 번역이 됩니다.

일본 고대 시대의 복장을 입은 '기사단장'이 구현한 '이데아' 혹은 '개념'이 문화적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를 뛰어넘어 받아들여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다른 한 편으로는 비록 우리 모두에게 동일한 하나의 개념이더라도, 내재된 의미는 우리 모두 각가가 뿌리를 박은 토양의 유형에 따라 다 다를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소설을 써 내려가는 동안 이런 것들이 각기 다른 독자들에게 어떻게 펼쳐나가거나 혹은 오버랩되거나 하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Q: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소설 속에서 기사단장은 죽습니다. 기사단장은 오페라 돈 조반니의 시작으로 부터 살해되고, 소설에서 다시 한 번 살해 됩니다. 

제 소설 중에, '죽이다'라는 의미의 단어가 제목에 나타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일거에요. 예를들어 <노르웨이의 숲>에서는 자살하는 등장인물이 몇 있죠. 자살은 말 그대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소설에서는 'killing' 즉 누군가를 살해한다는 것이죠. 이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의 '세계의 끝'으로 들어가는 것은 죽음과 같은 일이죠. <해변의 카프카>의 카프카 소년이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Q: <1Q84>에서는 컬트 종교 지도자는 여자 주인공인 아오마메로 하여금 그를 죽이게 만들었죠. 그는 그녀의 사랑의 대상인 남자 주인공 덴고를 살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는 기사단장이 주인공 '나'에게 실종자 마리에를 구하기 위해 자기를 죽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는 기사단장의 작은 가슴에 부엌칼을 꽂습니다. 

저는 분명히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지만, 살해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육체적인 감각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해변의 카프카>에서 조니워커는 고양이를 메스로 죽입니다. 그런 격렬한 물리적인 감각은 실제 처럼 중대하고 확실한 감각이에요. 

Q: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어요?

살인이라는 행위는 신화적인 의미에서는 '부활'이라고 볼 수 있어요. 무언가 죽임을 당했고, 무언가 다시 태어납니다. 부친을 살해하는 신화적 이야기도 있죠. 새로운 존재는 무언가를 죽임으로써 태어납니다. 신화에서 종종 나타나는 이야기이죠. 예를들어 새싹은 죽은 뿌리에서 자라납니다. 일본 고대 신화인 <고지키>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죠. 

Q: 죽음과 부활에 대한 이야기군요. 

현실 세계에서 우리는 살을 찌르고 피를 흐르게 상대를 죽일 수는 없지만, <기사단장 죽이기>와 같은 이야기를 통해 '살인'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야기의 중요한 역할이며, 이런 특정 이야기에서 '이데아'를 구현하는 기사단장을 죽이는 것은 필수적인 상징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어요. 

Q: 이 부분은 무라카미씨의 다른 작품에도 해당될까요?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래로, 저는 제가 쓰는 문장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신체적인 반응을 즉각적으로 촉발시키기를 갈망했어요. 예를 들어 많은 독자들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읽고, 맥주를 마시고 싶다고 얘기했던 것 처럼요. 

Q: <노르웨이의 숲>의 경우도 해당되는 부분이 있을까요?

<노르웨이의 숲>에서는 남녀의 성관계 중에 일어나는 여러 육체적인 감각들을 가능하면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하려고 했어요. 직설적으로 표현했죠. 그런 점 때문에 많은 비판도 받았지만, 저에게는 독자들에게 최대한 사실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그것 없이 이야기를 쓸 수 없어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현대 일본 소설을 보면 레이먼드 카버와 같은 사실적인 묘사의 힘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작품이 별로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들도 모두 번역하면서 그러한 작품들로 부터 조금씩 배워나갔다고 볼 수도 있을 거에요. 

*하루키의 교도통신과 가진 따끈따끈한 인터뷰 1편이었습니다. 확실히 해외 인터뷰 보다, 같은 언어를 쓰는 국내 평론가와의 인터뷰가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가 오고 가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이번 인터뷰는 하나의 질문에서 한 번 더 깊게 들어가는게 쉽지 않은데, 그 점을 잘 파고드는 듯한 인터뷰여서 꽤나 농밀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한 하루키가 하나의 인터뷰에서 본인의 과거의 다수의 작품을 예로 들어가면서 친절히 설명한 적도 없었던 것 같아 더 흥미있는 인터뷰라고 생각됩니다. 숨 한 번 고르고 2편 포스팅으로 이어가겠습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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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石田 2019.06.11 10:05

    제 능력으로는 찾지도 못할 그런 글을 올려주실 때마다 소중히 읽고 있습니다.
    혹시 일본에 살고 계신 건가효??

    • finding-haruki.com 2019.06.11 23:35 신고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방문해주셔서 인터뷰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루키의 인터뷰가 더 많은 분들에게 닿는 것 만으로도 즐겁네요. 저는 한국에 살고 있답니다. ^^

  2. 2019.06.26 09:15

    늘 잘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