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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인터뷰

하루키 05년 조지아 리뷰 인터뷰 - 꿈에서 시작되는 작가적 책임

이번 인터뷰는 2005 년에 진행된 조지아 리뷰와의 인터뷰입니다. 조지아 리뷰는 1947 년 설립된 조지아 대학에서 발행하는 문화 전반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전달하는데 목적을 둔 문예지인데요. 지금까지의 하루키 인터뷰 중 전세계 팬들이 인정하는 파리 리뷰지 인터뷰에 버금가는 깊이를 자랑합니다. 인터뷰 내용이 너무 어려워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여느 인터뷰 번역 포스팅 보다 오역이나 의역이 좀 더 많을 것 같으니, 영문 독해에 능하신 분들은 원문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D 또한 이 인터뷰는 2011 년 하루키의 13 년간의 18 번의 인터뷰를 모은 대담집 <꿈을 꾸기 위해 나는 매일 아침 일찍 눈을 뜹니다>라는 책에도 수록된 인터뷰입니다.(국내 미발매) 2005년 8 월 하루키의 도쿄 사무실과 오이소 자택에서 두 번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꿈 속에서 저의 작가적 책임이 시작됩니다

하루키 2005 년 조지아 리뷰 인 터뷰 (원문 클릭)


조지아 리뷰 : 무라카미 씨의 대학 졸업 논문 '미국 영화에있어서의 여행에 대한 고찰'에 흥미가 있습니다. 어떤 내용인가요?


하루키 : 음, 그건 30 년 전 1973 년 년 1974이나 정도에 쓴 거죠. 오래전 일이에요. 그 논문에 대한 정확한 기억은 없어요. 그 논문은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 쓰여진 것은 아니 었답니다. 그 당시에 제 마음 속에는 미국인들의 문화에 대해 매우 독창적 인 움직임들을 느끼고 있었다 랄까요. 특히 비교적 쉽게 접할 수있는 영화와 소설을 통해서 말이죠. 미국인들은 예로부터 미개척지를 개척해 나가는 개척 정신이 강 하잖아요. 그들의 대부분의 시간을 이동하는데 할애 하죠. 그건 바로 정체에 대한 두려움이있는 것처럼 보여요. 이건 미국 문화의 장점이자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 당시 엔 말이에요. 이게 당시 대학생으로서 제가 느꼈던 점이에요. 그렇게 주제를 정하고 3 ~ 4 일을 논문을 써 내려 갔던 걸로 기억 해요. (웃음) 그리고 A +를 받았 답니다.  


조지아 리뷰 : 그 논문은 확실히 훌륭한 것이 었다고 생각 해요.


하루키 : 그 논문을 평가 한 당시 교수님은 저에게 작가가 될 수있을 거라고 얘기 했어요. 전 전혀 그런 생각을 가져 본 적이 없었기에, 처음에 듣고는 매우 놀랐죠. 저는 당시 제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말이 단순히 농담이라고 생각 했답니다. 그런데 제가 30 살에 소설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적 잔히 놀랐죠. 난 내가 무언가를 쓰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그녀가 맞았어요. 하지만 당시의 졸업 논문은 당신도 잘 알고 있겠지만, 단지해야할 일, 과제로서의 페이퍼에 불과하다고 생각 해요. 그 논문은 저에게있어 많은 것을 의미하고 있지는 않아요. 


조지아 리뷰 : 1984 년의 이죠. 무라카미 씨는 레이먼드 카버를 만나 셨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 이미 당신은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을 번역하기 시작 하셨죠. 무라카미 씨는 카버를 일컬어 "가장 가치있는 선생님", 혹은 "가장 위대한 문학 동지"라고도 하셨는데요. 어떻게 레이먼드 카버와 친구가 되셨고, 그에게서 어떤 것들을 배우 셨나요?


하루키 : 그는 작가처럼 보이지 않았어요. 그냥 평범한 보통 사람 이었죠. 공장 근로자 나 수위 혹은 세일즈맨 일 거라 생각 했답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저에게 그는 작가처럼 보이지 않았어요. (웃음) 보통 사람들 중에 한 사람 일 뿐이 었죠. 전 20 대부터 일을 시작 했어요. 결혼을해서 실제 가족을 구성한 상태에서 일을 했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전 블루 칼라 노동자가 된거에요. 전 7-8 년간 물리적으로 고된 일을 아내와 함께 했답니다. 그건 정말 고된 일 이었어요. 


레이먼드 카버 씨를 처음 만났을 때, 그도 저와 같은 상황에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무언가를 쓰는 일, 무언가를 창조하는 일은 매우 고된 작업입니다. 우리는 제가 20 대에했던 근로자가 아니라 작가가되어 있다는 것에 행복해했습니다. 그 사실에 감사 드렸죠. 전 그의 말과 행동 모든 것에서 글 쓰는 직업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는 매우 겸손하고 절대 거만하지 않았 답니다. 전 그를 작가로서, 인간으로서의 신뢰가 생겼고, 그건 매우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 해요. 그런 신뢰의 느낌을 마음 속에 품게 된 사람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그의 작법이나 스타일 역시 저에게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레이먼드 카버 씨와 저는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제가 그에게서 기술적 인 것들을 배우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의 스타일은 기본적으로 리얼리즘, 현실주의에 바탕을두고 있죠. 저는 아니에요. 저는 좀 더 초현실적이에요. 하지만 우리가하고있는 일은 기본적으로 매우 유사 하죠. 이 유사성과 차이점을 설명하기 란 여간 힘든게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가급적 쉬운 단어를 선택해 소설을 쓰려고 노력 해요. 그러나 그 쉬운 단어 속에서 더 깊이 들어가는 이야기를 찾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레이먼드 카버 씨와 저는 같은 일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는 매우 성실하고 열심히 일합니다. 이런 것들이 제가 그를 친구 혹은 문학적 동지로 생각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조지아 리뷰 : 무라카미씨는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씨에 대해서도 존경하는 작가 중 한 명이라고 얘기하셨죠. 일본 태생인 그가 '단일 문화를 경계를 넘어서' 어떤 의미있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말이에요. 이런 그의 작업이 무라카미씨에게는 어떤 의미일까요? 가즈오 이시구로 작가는 일본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계속 생활했습니다. 


하루키 : 가즈오씨는 본인은 일본어를 못한다고 얘기하지만, 그의 아내의 말에 따르면 가즈오씨는 일본어를 꽤나 잘한다고 하더군요. (웃음) 제 생각에는 그가 더이상 일본어를 쓰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특히 일본에서는 그의 일본어가 (영국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대화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아닐까요. 전 그의 문화적 배경에 관심이 있어요. 왜냐하면 그는 백퍼센트 일본인이거든요.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영국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어떤면에서 그에게 있어 모순이지 않을까요. 그가 소설 속에서 일본이나 일본 문화에 대해 쓸 때는 약간 이상한 느낌을 받기도 해요. 그건 마치 외국인이 일본에 대해 설명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런데 반대로 그가 귀족이나 집사 같은 영국에 관한 것들을 쓸 때는 또 일본인의 눈으로 영국 문화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든단말이에요. 그는 분영 영국인 인물을 묘사하고 있지만, 읽다보면 일본인 인물인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매우 이상하죠. 이런 모순점이 저에게는 흥미있게 다가옵니다.


물론 그는 영국에서 살고 있는 일본인 작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잖아요. 동시에 우리속에 모순점도 다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가즈오씨만의 위에서 말한 세계에 대한 접근 방식도 하나의 방향성으로서 일반화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제가 그의 작업을 통해 느끼는 점이에요. 그의 이런 시도는 문학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우 어렵고도 진지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전 이런 그의 태도와 쓰는 기술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고 있답니다.


조지아 리뷰 : 무라카미씨는 최근 JD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번역하셨죠. 무라카미씨는 언제 처음 그 작품을 읽으셨는지 궁금하고요. 또 그의 작품을 통해 지금까지 어떤 영향을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하루키 : 열여섯살 때인가 열일곱살 때 였을거에요.


조지아 리뷰 : 저랑 비슷한 시기에 읽으셨네요. (웃음)


하루키 : 처음 읽었고 난 후, 꽤나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나 당시 저는 제가 무언가를 쓰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전 단지 그냥 그 작품을 즐겼던 거죠. 그런데 처음 읽고 나서 다시 읽지는 않았어요. 책장에 들어가고는 계속해서 그곳에 보관되었죠. 그러나 그 책은 제게 중요합니다. 전 <호밀밭의 파수꾼>의 솔직함을 높게 평가해요. 매우 아름다운 문장을 지니고 있고, 동시에 매우 거칠죠. 전 2년전 <호밀밭의 파수꾼>을 번역하기 위해 준비했고, 이번에 번역본을 내게 되었습니다. 전 번역하는 과정을 정말 즐겼어요. 정말 재밌었어요. 그런데 제가 <호밀밭의 파수꾼>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있는 것 같지만, 전 단지 <호밀밭의 파수꾼>을 소설로서 사랑할 뿐이랍니다.  


조지아 리뷰 : 무라카미씨는 80년 후반 부터 90년 초반까지 유럽에 머무르시다가, 다시 미국 대학에 스콜라쉽으로 머무셨는데요. 당시에 일본을 떠나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외국에 체류하면서 당신의 글쓰기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하루키  : 가장 큰 첫번째 이유는, 제가 일본에 있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죠.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세계 어디서든 일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제가 당시 일본내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웃음) 당시 일본안의 작가들과는 너무나 달랐던 거죠. 전 당시 일본 문학계에서의 검은양 같은 존재였어요. 물론 독자들은 제 작품을 사랑하고 많이 읽었습니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문학계 사람들은 저를 좋아하지도 제 작품을 읽지도 않았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저를 공격하기도 했어요. 그들은 제가 일본 문학 전통을 파괴한다고 얘기했죠. 네 제가 그랬죠. 그들이 말한 것 처럼 일본 문학의 전통을 파괴했어요. (웃음) 그러나 그건 건설적인 파괴였다고 생각합니다. 전 분명히 제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죠. 그래서 저는 단지 이곳 일본을 떠나고 싶었답니다. 전 바깥의 소음에 신경쓰지 않고 저를 아는 사람이 없는 조용한 곳에서 계속해서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처음 결정한 곳이 유럽이었습니다. 


당시 로마에 친구가 있었는데, 그녀의 초대로 우리 부부는 처음에 그리스로 갔다가 로마로 넘어갔죠. 유럽에 체류하기로 한 결정은 정말 좋은 결정이었어요. 저는 저를 아는 사람이 없는 그곳에 너무 만족했습니다. 전 1986년~1987년 무렵 부터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는데요. 사람들은 저를 그전에 발표했던 소설들로 저를 컬트 작가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고, 전 그런 것들로 인해 더 노출되고 싶지 않았답니다. 전 그래서 일본을 떠나 정말 홀로가 되고 싶었고, 그래서 진지하게 저를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로 삼고 싶었어요. 그 즈음 제 초기작품들이 몇몇 유럽 국가에 번역되었죠. 물론 제가 유럽까지 유명세를 알리고 있는 상황은 아니었고요.  


조지아 리뷰 : 무라카미씨는 아무도 자신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편안함을 느끼시는군요 혼자 있는 상태도 물론이고요?


하루키  :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것 같은데요. 외국에서 사는 게 쉬운일은 아니었어요. 사람들도 다 다르고, 복장도 다르죠. 음식도 다르고요. 유럽에 거주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적어도 전 자유로움을 느꼈죠. 그건 정말 좋았어요. 대단히 좋았어요. 그곳의 생활 방식에는 점차 맞춰나가게 됐죠. 저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웃음) 저 역시도 마찬가지였고요. 다만, 두부나 소바는 정말 그리웠답니다. 그게 전부에요.  


조지아 리뷰 :  무라카미씨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미국이라는 나라의 본질 같은 것은 크게 중요치 않았겠지만, 미국의 어떤점들이 당신이 바라보는 유리창을 통해 영향을 끼쳤을까요. 무라카미씨의 눈에는 미국이나 미국문화가 어떻게 다양한 작업에 영향을 주었을까요. 미국 문학을 번역하실 때 어떻게 투영될까요?


하루키  : 1960년대 전 10대였죠. 당시는 외국으로 나가는 일이 어려웠어요. 지금은 미국으로 가는 일이 어렵지 않잖아요. 1960년대는 외국에 나가는 일은 꿈에 가까웠으니까요. 전 미국 티비쇼를 보거나 미국 문학을 많이 읽었어요. 당시 미국 문화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거든요. 그러나 미국이라는 나라에 가지는 못했죠.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고요. 그건 일종의 좌절감 같은 것이었어요. 하지만 전 그런 좌절을 즐겼어요.  전 당시 그런 상황을 소설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전 그 소설을 즐겼고 그건 저에게 정말 재밌는 일이었죠. 그러면서 전 미국이라는 나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졌던 것 같아요. 제가 가진 '소설적 창'을 통해 미국, 미국문화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 가지 않아도 문제될게 없어 진거죠. 멋진 일이었죠. 제 방에 그런 소설화한 것들을 배치하는거에요. 1960년대 미국 문화는 밝고 강렬했어요. 우리는 아이비리그 스타일의 버튼 다운 셔츠를 입었고(웃음), 비치보이스나 엘비스프레슬리 같은 미국 음악을 들었어요. 1965년 이후 비틀즈와 롤링스톤즈로 대변되는 영국 음악이 침공해왔죠. 하지만 그 전에는 확실히 모든 음악은 록큰롤의 미국 음악이 장악했었어요. 미국 문화는 정말 강했죠. 그건 제가 선택한게 아니에요. 그것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전 고베 출신이에요. 고베는 항구 도시죠. 고베 도시에는 많은 외국인 선원들이 있었어요. 중고 서점에서 선원들이 가지고 온 미국 소설 페이퍼백들이 즐비했죠. 가격도 매우 저렴했어요. 고등학교때 부터 영어로 된 미국 소설들을 읽기 시작했답니다. 미국 소설을 원서로 읽는 것을 좋아했어요. 저에겐 새로운 세계였죠. 


조지아 리뷰 : 미국에 몇 년 간 거주하시면서 보게 된 미국은 기존에 무라카미씨의 창문으로만 보던 미국과는 다른점이 많았나요? 


하루키  : 미국에 처음 거주했던 곳은 메사추세츠의 프린스턴 대학교였어요. 당시 저에게는 가상 세계나 다름 없었죠. (웃음) 그곳은 저에게 아이비리그가 있는 특별한 곳이었어요. 그리고 그 후에는 캘리포니아의 롱비치, 보스턴 지역에 거주했죠. 정말 큰 도시를 경험했어요. 그들은 그 큰 도시별로 각기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더군요. 모든 도시가 다 달랐어요. 조금 극단적인 의견일 수도 있겠지만, 미국이라는 나라는 일종의 저에게는 여전히 가상의 나라인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소설 속에서 미국이라는 나라를 각색한 것은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올바른 접근법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조지아 리뷰 : 살만 루시디(역주: 인도계 영국인 작가로, 무슬림의 전체주의를 비판하며, 이란 종교 지도자의 사형 선고를 받아 10여년간 은둔하기도 함 사람이 집을 떠나게 되면, 그 장소는 빠른 속도로 상상 속의 고향이 된다라고 했습니다. 상상을 통해 실제 집이 되는거죠. 살만 루시디의 말이 무라카미씨가 일본을 떠나 미국에 체류하게되면서 겪은 상황과도 비슷한가요? 


하루키  : 미국에 4~5년간 체류하면서 전 확실한 모순을 발견하게 되었답니다. 왜냐하면 미국으로 가면서 독립적으로 생활하기를 바랬기 때문이에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독립적으로 지내게 됩니다.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죠. 독립을 하게 되면 무엇을 할지 생각해야만 했어요. 독립한다는 것이 삶의 목적은 아닙니다만, 그건 제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특히 미국에서는 말이에요. 독립적으로 살기 위한 사람에게는 몇 가지 방향성이 있어야 해요. 그게 제 인생의 새로운 컨셉이었다고나 할까요. 일본에서는 소설가로서 저만의 '가상 세계'를 구축해 왔습니다. 전 제가 구축한 세계 속에 있었고, 그곳에선 저 혼자였죠. 그래서 당신은 제가 미국으로 가게된 것을 일종의 탈출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거에요. 하지만 전 탈출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제가 내면 속에서 구축한 가상의 세계는 엄연히 바깥 세계의 테두리 안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저의 일본에서의 생각이 미국에서는 충분치 않다고 느꼈어요. 저는 미국에서 좀 더 긍정적이고 좀 더 건설적인 무언가를 구축해야 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죠. 그래서 쓰기 시작한 작품이 <태엽감는새>였어요. 전 <태엽감는새>가 더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작품이라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전 그 작품을 통해 많은 부분 변화했습니다. 전 당시 제 삶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찾고 있었거든요. 그건 터닝 포인트였어요. 그런 의미에서 미국에서 생활하게 된 것은 정말 저에게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미국은 좋은 측면과 좋지 않은 측면이 동시에 존재할 것입니다. 그래서 나만의 두 눈으로 미국이라는 곳을 바라본거죠. 미국은 제게 더 긍정적인 영감을 불러 일으켜줬어요. 당신은 그런 사회에서 탈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일일거에요.


조지아 리뷰 : 무라카미씨는 일본에서 일어난 커다란 두 가지 사건, 5천명이 넘는 사람이 희생당한 한신 대지진과 도쿄 지하철 사린 테러 사건이 있은 후, 일본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두 사건을 논픽션과 픽션의 두 가지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연작 소설집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을 춘다>와 피해자와의 인터뷰를 담은 <언더그라운드>가 그것인데요. 이 두 사건을 어떤식으로 작가로서 풀어낼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나요?


하루키  : 한신 대지진과 사린 테러를 미국에서 접하고 전 일본으로 돌아가 뭔가를 해야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나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답니다. 전 일단 작업을 시작하면서 장르를 정하지 않았어요. 저는 일본으로 돌아가면 제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일본 현지로 가서 일본의 현재 상황을 둘러보자라고 생각했어요. 처음 시작한 작업이 <언더그라운드>였어요. 그러나 그 작업이 논픽션이라고 생각지는 않았어요. 이 작업은 픽션은 아닙니다. 그런데 논픽션도 아니었죠. 전 <언더그라운드>를 이야기의 모음집 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더그라운드>의 인터뷰이들, 피해자들의 그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담는 작업이었어요. 그들은 그들이 겪은 '사실'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하지만 그것은 100% 사실은 아니었어요. 그 '사실'들은 그들이 직접 겪은 것을 바탕으로 나옵니다. 그게 바로 그들만의 이야기죠. 그런데 그들은 저와 마주 앉아 이야기하기 전까지 다른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해요. 그러나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매우 신중하게, 천천히, 친밀하고 따뜻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고 자신합니다. 그건 매우 어려운일이에요. 그들은 저의 태도를 평가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 놓죠. 논픽션은 기본적으로 사실과 진실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 보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존중하기로 했답니다. 그들은 역동적이고 신선했고 정직한 그들만의 이야기를 풀어놓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수집하고자 했던 부분이에요. 몇몇 논픽션 비평가들은 <언더그라운드>에 대해 소설과 다른점을 잘 모르겠고, 논픽션으로서 비판할 거리 조차 없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얘기했듯이 전 오직 그들의 정직한 이야기를 모으고 싶었던 것 뿐이에요. 그들의 이야기는 사린 테러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데 필요치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전 상관하지 않았어요. 그들이 저에게 그들의 경험을 얘기한 대로가 저에게는 '사실'이었습니다.


조지아 리뷰 :  무라카미씨가 말한, 논픽션이지만 논픽션이 아닌 <언더그라운드>의 피해자들의 당시의 기억들이 지금 현재도 동일할 것 같으신가요? 이 점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하루키  : 네, 그들이 내게 해 준 이야기의 일부가 잘못되었다고 해도 저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정보의 통합은 진실의 영역을 넓혀준다고 생각해요. 전 <언더그라운드> 작업을 하면서 경험한 이야기의 방식으로 인해 많은 부분 바뀌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저에겐 새로운 경험이었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기만 하는 작업 방식은 저를 많은 부분 변화시켰답니다. 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데만 꼬박 1년이란 시간을 할애해야 했어요. 매우 어려운 일이었죠. 그러나 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그리고나서 한신 대지진에 관한 연작 소설집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을 춘다>를 시작했습니다.  이 작업을 하기 전 정해 놓은 세가지 원칙이 있었어요. 첫번째, 3인칭 시점으로 작업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이는 제가 처음으로 3인칭으로 쓴 작품이라는 얘기입니다. 두번째, 한신 대지진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직접적으로 '지진'을 표현하지는 않기로 했고요, 세번째, 한신, 고베 지역을 배경으로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결국 전 스스로 지진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지진에대해서는 쓰지 않기로 했던거죠. 사람들은 지진을 겪고 그 아픔에서 빨리 회복하는 듯 보였어요. 그것은 일종의 도전과 같은 것이죠. 전 이 세가지 룰을 즐기면서 연작 소설 작업을 진행해 나갔죠. 제 생각에 이런 방식은 결과적으로 좋았다고 봅니다. 다른 측면으로 이런 룰은 제가 얼마나 지진의 여파에 대해 설명하고 싶었고, 지진으로 고통 받고 있는 거리의 사람들에 대해서 쓰고 싶었는지 느끼게 해주기도 했습니다. 지진의 아픔이 고베라는 도시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나라, 또 더 나아가 세계 전체 적으로도 존재하는 것이고,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지구는 단단한 곳이 아니기에 어느 순간 뒤집혀 버려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도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 연작집이 미국에서 번역된 것은 2001년 9/11 직후 였어요. 미국의 독자들로 부터 엄청난 편지를 받았죠.  지진의 아픔과 동일시 하고 있었고, 상황은 비슷한 것 같았어요. 단단한 땅이라는 게 뭘까요? 즉, 상호 공감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조지아 리뷰 : 즉, 지진이라는 것은 은유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하루키  : 네 그래요. 1995년 당시의 일본 사람들은 일본 사회의 안전망, 경제에 대해서 매우 불안해 하고 있는 상태였죠. 지진은 바로 이런 불안 심리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어요. 지하철 사린 테러 공격으로 증폭된 불안감은 점점 커지기만 했죠. 제 생각에는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사람들은 이 시기를 또 다른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렀죠. 저도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건 정말 잃어버린 10년이었어요. 미국 사람들은 1930년대가 비슷한 시기를 겪었잖아요. 우리는 새로운 가치나 삶의 원리를 추구해야만해요. 전 소설가로 살아 온 지난 10년간의 작업을 바탕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계속 고민을 해나가려 합니다. 


조지아 리뷰 : <언더그라운드>에서 무라카미씨는 개인이 선하고 악하다는 것을 쉽게 정의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서 경고했는데요. 무라카미씨의 소설 속 폭력의 묘사를 보면 전부 비슷하게 모호한 부분이 있습니다. 독자는 그런 상황 속에 놓인 주인공들을 쉽게 판단하지 못하고, 소설 속 폭력이 정의인지 그렇지 않은지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무라카미씨는 '악'에 대해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하루키  : 악에 대해 정의한다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위험성'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은 어느 장소에서는 비슷하게 나타날 수 있어요. 전 소설을 쓸 때면 항상 어두운 장소로 내려갑니다. 지하실이나 우물의 바닥과 같은 곳으로요. 그곳은 어둡고, 축축하고 때론 위험하기도 하죠. 감사합니다. 당신은 그 어둠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 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전 그 어둠 속으로 들어가야 해요. 왜냐하면 제가 소설을 쓸 때 어두운 곳의 느낌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가야 하기 때문이에요. 그 어둠 속에서 좋은 것을 찾고, 나쁜 것, 위험한 것들도 찾을 수 있고, 그것들을 소설로 묘사하게 됩니다. 제 소설 속에서 악으로 표현된 대표적인 캐릭터는 <태엽감는새>의 병사의 살갗을 벗기는 보리스로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소설을 쓰기 위해 어둠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어둠을 보고 그것들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들의 숨소리를 느낄 수 있습니다. 때때로 겁이 나기도 합니다. 전 그들을 가급적 정직하게 묘사하기 위해 노력해요. 그것들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을 비교적 정확하게 느낄 수 있어요.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옴진리교의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가 악의 상징이 되겠죠. 전 아사하라 쇼코를 '순수한 악'으로 정의합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파괴시켰어요. 그런데 그게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겠어여. 아사하라 쇼코 안의 악마인지, 악마 마인드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는 이 사회 시스템을 파괴하려고 했어요. 그는 난폭하고 뒤틀렸죠. 그는 그 안의 커다란 어둠의 공간을 지니고 있었어요. 전 <언더그라운드>를 쓰면서 그는 악의 존재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어요. 순수한 악으로서 말이에요. 정말 무섭습니다. 책이 출간되고 나서, 전 계속해서 아사하라 쇼코의 '악함'이 과연 무엇일까 알아내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했습니다. 아사하라 쇼코는 정말 예외적인 캐릭터에요. 물론 그는 미쳤습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도 그와 같은 미친 정신이나 옳지 못한 종류의 것들이 내재되어 있다고 봅니다. 저 역시도 제가 소설을 쓰기 위해 들어가는 어둠 속에서 제안의 그런 옳지 못한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점이 제가 <언더그라운드> 작업을 마치고 하려고 했던 부분이에요. 소설을 쓴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당신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꿈의 과정을 경험하는 것과 같아요. 당신은 스토리라인을 바꿀 수는 없겠죠. 당신은 이런 꿈을 경험하는 것(독서)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것 정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완벽하게 당신의 자유 의지 하에 말이에요.


우리 소설가들은 깨어 있어야 겠죠. 우리는 그 꿈을 보려고 할 때, 잠들어 있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꿈을 보기 원하는 만큼 의도적으로 깨어있으면서 계속해서 그 꿈을 들여다 봐야 해요. 전 집필에 집중하고 있을 때, 제가 원하는 만큼 계속해서 꿈을 꾸어 나갈 수 있어요. 그 꿈은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까지도 제가 원하면 계속해서 이어갈 수도 있습니다. 이건 정말 대단한 경험이에요. 그러나 이 작업은 때론 위험합니다. 꿈을 꾸면 꿀 수록 계속 깊어지고, 어둠 속으로 점점 더 내려가게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만약 당신이 훈련 없이 꿈을 꾸려고 하면 위험하게 되요. 당신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강한 상태가 아니라면 매우 위험합니다. 육체와 정신을 단련하지 않은채, 어둠의 세계로 들어가면 당신은 악몽을 꾸고 울면서 깨어나게 될거에요. 하지만 우리는 인내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악몽을 계속해서 경험해야 해요. 사실, 전 스토리를 바꿀 수는 없어요. 이야기는 매우 독립적이기 때문이죠. 제가 꿈을 따라가면서 즉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쫓으면서 저 역시도 이 어둠 속에서 어디까지 따라왔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답니다. 


조지아 리뷰 : 무라카미씨는 <언더그라운드>에서 "우리는 다른 방향에서 오는 단어가 필요하다. 새로운 이야기에는 새로운 말이 필요하다. 현재의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로 정화된다" 라고 하셨는데요. 이런 말씀을 하셨을 때, 무라카미씨에게는 새롭거나 오래되었거나가 어떤 유형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하루키  : 제가 그렇게 말한 부분은, 우리의 이야기와 그들 오움 진리교의 이야기의 충돌을 얘기한 것이에요. 그들의 이야기는 컬트 이야기잖아요.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강력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강한 설득력도 가지고 있죠. 그건 많은 인텔리들이 그들의 컬트적인 요소에 이끌렸다는 것에서 알 수 있죠. 그들은 아름다운 영혼의 왕국의 존재를 믿죠. 그런 그들이 평범한 기존의 세계를 공격한거에요. 그들이 생각하기에 우리의 기존의 세계는 손상된 세계이죠. 그래서 그들이 지하철을 공격한 이유입니다. 방해를 하기 위함이었죠. 그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믿었기 때문에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절대적으로 결정적으로 옳다고 믿었기 때문에,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잘못된 것으로 규정, 손상하고 파괴하려고 시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때때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기존 시스템 역시 혼돈한 세계 속에서 잘못된 부분이 없는지 종래의 우리의 이야기도 손상된 부분이 없는지 혼란스럽긴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이야기는 우리가 지니고 있는 것이죠. 민주주의나 결혼제도 같은 것과 같이요. 물론 이런 것들도 완벽한 것은 아닐겁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 우리 손안에 있는 것이죠. 이것은 일종의 테스트라고 생각해요. 전 단지 우리가 우리 손에 어떤 이야기를 지니게 될지 알고 싶어요. 그게 제가 <언더그라운드>를 통해 실제 이야기들을 모은 이유입니다.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니죠. 그러나 그 이야기는 실제 이야기였어요. 그리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거고요.


<언더그라운드>를 마치고는 옴진리교에 가담했는 컬트 피플을 만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좋아하고, 매우 유창하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 보다 더 흥미롭고, 영리하고 지적인 사람들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들이 하는 이야기들을 대부분 잊어버렸어요. 그들이 하는 얘기는 매우 얕고, 피상적이었어요. 강한 바람이 불면, 그 이야기들은 모두 날라가 버렸죠. 그러나 실제 세계 사람들(피해자)의 이야기는 남아 있었고요. 그들은 자신의 물질을 지니고, 자신의 중량을 지니고 그들이 이야기를 유지하고 있어요. 그들은 영리하거나 지적이지는 않습니다. 또 이야기가 때로는 지루하지만, 그들은 바로 그 자리에 실재합니다. 60여명을 인터뷰하고 나서 느낀 점들이에요. 그들은 내 영혼에, 내 가슴에, 내 마음에 지금도 남아 있어요. 제가 <언더그라운드> 작업을 통해 배운건, 이야기가 강하면 그것이 영리하지 않더라도 어색하더라도 계속해서 유지된다는 것이에요. 


조지아 리뷰 : 무라카미씨는 지하 홀, 통로, 우물과 같은 상상력에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인데요. 이것은 프란츠 카프카가 얘기한 '책은 우리의 얼어 붙은 마음이 깨는 도끼여야 한다'라는 말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정신분석가라면 아마도 '무의식'으로의 연결을 시도할테고요. 무라카미씨는 왜 계속해서 이런 이미지들을 소설을 쓰는데 활용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하루키  : 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쪽에서 얘기한 것 같은데요. 문학적으로, 전 소설을 쓸 때 항상 어두운 홀로 내려갑니다. 그 이미지는 절대 잊혀지지 않아요. 그들은 저를 떠나지 않죠. 점점 내려가게 되요. 그런데 그 어둠 속에는 많은 좋은 것들도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이런 저의 작업 방식을 보고 심리학자 융의 방식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전 그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어요. 전 그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요. 그건 정신분석가가 할 일이겠죠. 전 소설가인걸요. 전 제 직감을 믿어요. 이론이 아니라요. 이게 융의 저작을 많이 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계속해서 저의 작업과 융의 작업이 유사하다고 얘기하지만, 전 단지 저의 제 안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이지, 융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제가 처음 소설을 쓸 때, 전 소설을 쓸 시간도 별로 없었고, 이야기의 플롯도 없었어요. 전 단지 어떤 장면이나 이야기의 조각을 가지고 혹은 일부의 등장인물들의 대화나 어떤 소결말 등에 대해서만 가지고 있었죠. 전 제 책상에 앉아 소설을 쓰기 시작했거든요. 전 어떤 이야기를 쓸까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알지 못했어요. 전 단지 제 마음속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따라가기만 했답니다. 저의 무의식을 믿고 따라갔어요. 무의식의 세계를요. 모든 것을 믿고, 제가 따르는 세계를 믿었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러가는건 제가 소설을 쓸 때 가장 중요한 요소에요. 자유로운 상황에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당신은 이런 방식을 글을 쓰면서 스스로 치료를 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얘기할지도 모르겠어요. 전 제 마음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그 안에서 많은 것들을 찾아내려고 계속 노력해요. 당신도 알겠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치료가 되지는 않아요. 그것은 단지 계속해서 당신의 꿈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작업일 뿐이에요. 좀 더 깊이, 좀 더 정직하게 말이죠. 당신의 꿈은 당신을 배신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내부에서 나옵니다. 소설도 같은 거에요. 소설도 제 안의 세계에서 나오게 됩니다. 독자들은 제 내부의 세계를 공유할 수 있는 거고요. 전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공유하기 위해 돈을 지불합니다. 멋진일 아닌가요?


조지아 리뷰 : 무라카미씨의 작품에서 등장인물의 자제력, 결정력을 가지고 있는 관점은 긍정적인 경험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예를 들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주인공은 그림자를 따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로 다시 탈출하지 않고, 세계의 끝에 남는 것을 택합니다. <양을 쫓는 모험>에서도 주인공은 양사나이란 존재에 의해 구속되어 있지만, 종국에는 자신의 삶을 재평가하도록 유도되죠. 무라카미씨는 계속해서 주인공 이전의 어떤 존재 혹은 안정적인 유지를 통해 자신을 전멸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해 두고 작업을 진행하시는지요?


하루키  :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쓸 당시에는 저 역시도 결말이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해서 생각이 없었어요. 결말에는 4가지의 경우가 있었죠. 그림자가 남고 주인공이 나오느냐, 주인공이 나오고 그림자가 남느냐, 아니면 둘 다 나오거나 둘 다 남아 있는 경우가 있었겠죠. 전 그 4가지으 경우 모두 쉽게 선택할 수 없었어요. 마지막 챕터를 끝내가는데 여전히 어떻게 결말을 이끌지 감이 오질 않았죠. 전 3가지의 결말 버전을 썼고, 어떻게 지금의 결말로 결정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없어요. 지금의 생각과는 달랐을 지도 몰라요. (웃음) 그런데 어쨋든 결말은 정해졌고, 소설에 반영됐죠. 그 결론은 당시에는 가장 자연스러운 결말이었어요. 만약 제가 다시 쓴다면 글세요 결말은 아마도 달라지지 않을까요. 잘 모르겠네요. 아무것도 알 수 없어요. 전 항상 제 소설은 언제든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주인공들이 자신의 전멸을 담보로 행동하는 것에 대해서는 저는 계속해서 그 방향을 바꿨던 것 같아요. 제가 어렸을 때, 저는 지금 이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어딘가로 옮겨가는 것을 의식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작가로서 저는, 제 내면의 조용하고 신성한 장소를 찾았습니다. 이 현실의 혼돈의 세계에서 탈출 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말이에요. 그건 제 꿈이었어요. 그런데 그 이후로 전 조금 변화했습니다. 전 좀 더 긍정적으로 되었고, 이야기도 최근 20년 동안 많은 부분 변화했고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1985년 1986년애 걸친 약 20년전에 쓰여진 책이거든요. <양을 쫓는 모험>도 1983년에 썼는데, 20년도 넘은 작품이죠. 그때와 지금의 전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지금 말한 작품들이 <태엽감는새> 출간 이후에, 소개 되었는데요. 그게 작가인 저로서도 참 혼란스럽습니다. 독자는 제가 일본에서 발표한 순서로 접하는게 아니잖아요. 제가 시간 순서대로 변화하면서 쌓아온 캐리어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죠. 일단은 말이에요. 두 작품은 제가 30대 중반에 쓴 책이랍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죠. 전 제가 30대 작가 시절 왜 그렇게 지금의 세계가 아닌 다른 어딘가로 가고 싶어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전 단지 제 안에 있는 다른 세계에 대해 궁금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작업이 때로는 꽤 위험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곳은 탈출을 위한 장소가 아니에요. 전 그 안에 긍정적인 무언가를 쌓아올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생각에 이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소설가로서 이런 시도를 통해 조금은 성숙해졌다고 생각해요. 그냥 궁금했어요. 제 마음에 어떤 세계가 존재하는지 말이에요. 큰 헛간을 찾아 헤메는 소년 같다고나 할까요.  헛간에 무엇이 있을까요? 그곳에는 소년에게는 새롭고 이상한 물건들이 많을테죠. 전 단지 호기심 많은 소년이었던 것 같아요. (웃음) 어떤 느낌인지 아시겠어요?


조지아 리뷰 : 무라카미씨는 종종 소설 속 등장인물의 이름을 한자 보다는 카타카나를 더 많이 사용하시는데요. 예를 들면 조니 워커나 카프카 같은 이름들이 있는데요. 이런 이름들은 독자에게 읽는 순간 주인공에 대해 모호한 이미지를 주기도 하고 때때로는 연상되는 여러가지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이렇게 주인공의 이름을 정하는 이유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하루키  : 처음 소설가가 되었을 때, 단순히 주인공의 이름을 정하는 것을 꺼려했던 것 같아요. 너무 기존의 방식 같다랄까요. 제 이름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를 예로 들면, 무라(村)는 마을을, 카미(上)는 위를, 하루(春)는 봄을, 키(樹)는 나무를 의미합니다. 각 단어는 한자로서 하나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죠. 전 이렇게 주인공 이름이 어떤 의미로 특정지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어요. 당신이 얘기한 것 처럼 카타카나로 이름을 지으면 좀 더 모호해지겠죠. 일종의 상징이 되는 거죠. 기호가 되는거고요. 이건 프란츠 카프카가 주인공 이름을 K로 사용한 것과 같은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건 어느 누구나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될 수도, 내가 될 수도 있는 상징의 메세지에요. 하지만 K나 M이나 F 같이 상징 기호를 많이 넣게 되면 그건 바로 카프카의 방식이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할 수는 없었고, 카타카나를 많이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노르웨이의 숲> 등장인물 중 주인공의 선배인 키즈키가 나오는데요. 카타카나로 봐도 특이한 이름이죠. 중국 번역가가 키즈키가 한자로 어떻게 쓰냐고 물었던 적이 있어요. 전 모르겠다고 얘기했죠. (웃음) 그래서 저는 발음에 맞는 당신이 원하는 한자를 사용하면 된다고 했답니다. 전 지금도 키즈키가 어떤 한자인지 모르겠어요. 아직도요 (웃음) 


조지아 리뷰 : <해변의 카프카>의 조니워커나 커넬 샌더스 대령 같은 캐릭터는 어떤 의도였나요?


하루키  : 그 등장인물은 단지 상징이었어요. 당신도 알고 있는 캐릭터잖아요. 전 단지 풍자를 하고 싶어서 그런 등장인물의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조지아 리뷰 : '무라카미 하루키'는 거의 일본의 브랜드 처럼 느껴집니다. 당신의 소설은 전세계에 엄청난 독자를 거느리고 있죠. 동시에 당신의 작품에 대해 얘기하고 해설하는 다양한 저작들도 동시에 수없이 등장하는데요. 이런 '무라카미 산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루키  : 전 왜 그런 책들이 나오게되는건지 잘 모르겠어요. 물론 제 소설이 일본의 다른 작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쓰여진다는 점이 하나의 이유라고 본다면, 제 소설을 읽을 때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일정의 단서를 제공하기 위함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제 소설은 대부분 실재하지 않는 장소에서 이뤄질 때가 많은데요.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어해서가 아닐까라고 생각해 볼 수 도 있겠네요. 그런데 전 소설을 쓰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이 장소가, 이 인물이 어떤 상징이고 어떤 의미인지 너무 많이 고민하게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요. 다만 수 많은 독자들 각자가 받는 느낌은 다르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각기 다른 해설 자료들이 나오는 것과 같이 말이에요. 


조지아 리뷰 : 그렇다면 무라카미씨는 본인의 이름이 다른 사람의 돈벌이에 이용되는 것에 대해 불편하시겠네요. 


하루키  : 제가 그런 해설서들을 읽어 보지 않아서, 그들의 의견이나 작업 방식 등에 대해 잘 모릅니다. 전 저의 독자들과 인터넷을 통해 질문을 주고 받는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종종 해왔는데요. 제 독자들은 저의 소설 작품을 읽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적어도 한 작품을 서너번 읽은 독자들도 많고요. 그들은 소설을 몇 번이고 재독하면서 소설의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는 걸 알게 되었죠. 전 그런 독자들이 있다는 점에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소설을 해설해주는 류의 서적들은 그다지 반갑지는 않은게 사실입니다. 전 확실히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으로 브랜드화되어 사용되는 것이 달갑지 않아요. 그러나 거기에는 작가와 비평가라는 관계의 끊지 못하는 영원성의 관계가 있는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하자면, 오만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작가는 비평가가 필요치 않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독자가 필요하고, 독자는 비평가가 필요하죠. 그래서 이 3자간에는 어떤 상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는 소위 말하는 유명세나 인기에 대해 의식하지 않습니다. 전 지하철을 타고, 쇼핑을 하고, 산책을 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는 그런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싶어요. 전 오로지 책상에 앉아 소설을 쓰고 있을 때만 내가 작가라는 의식을 하게 됩니다. 만약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이 브랜드화되어 사용된다면 그건 저와는 분리된 독립적으로 사용된다는 것과 전 그런 작업들과 일체의 연관도 없으며,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려고 한다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조지아 리뷰 : 무라카미씨의 영문 번역가이신 제이루빈씨에 따르면, 무라카미씨의 아내인 요코여사에게 무라카미씨의 글쓰기 작업에 기여하는 점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했는데요. 제이 루빈에 따르면 요코여사는 당신 작품의 첫 독자라고 하던데요. 그녀는 어떤 유형의 독자인가요?


하루키  : 전 보통 한 작품을 탈고하기 전에 9~10번 정도 다시 쓰기를 반복합니다. 초안을 완성하면 바로 아내에게 보여주죠. 그녀는 3~4번째 다시 쓰는 작업까지 읽고 그녀의 의견을 얘기해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며칠을 그 소설에 대해 얘기를 나누죠. 그리고는 다시 쓰는 작업을 시작하고, 또 그녀에게 보여주고, 그녀는 또 의견을 얘기해주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저는 또 다시 씁니다. 이런 일이 보통 세네번 일어나죠. 이 일은 <태엽감는새>와 같이 긴 소설일 경우 더 힘든 작업이 되죠. 그러나 그녀는 언제나 제 소설을 읽는 것을 좋아해요. 그리고 그녀는 매우 솔직합니다. 우리는 부부로서 30년을 넘게 같이 생활해 와서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답니다. 그녀는 매우 강한 비평 의식을 지니고 있어요. 그런면에서 전 매우 행운을 가진 사람인거죠. 그러나 그녀는 공정해요. 그녀는 제 아내이지만, 한편으로는 독자입니다. 그녀는 그런면에서 매우 중립적이고 독립적으로 제 작품을 평가해 줍니다. 이건 제가 공정한 환경하에서 작품을 쓰고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요. 그녀는 창작을 하지 않아요, 그런 타입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비평에 있어서는 탁월합니다. 때때로 그녀는 매우 심각하게 비평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때때로 저는 매우 기분이 좋지 않거나 불편한 심정이 될 때도 있답니다. 그녀의 의견은 제가 작품을 다시 써나가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요. 그녀는 가끔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다시 쓰는게 좋을 것 같다고 조언할 때도 있습니다. 때때로 동의하지만, 동의하지 않는 경우도 많겠죠. 그럴때 우리는 논쟁을 하게 됩니다. 논의를 하고 다시 분쟁을 겪죠. 이런 작업은 밤을 새서 진행될 때도 있습니다. 보통 저는 일찍 잠자리에 들지만, 이럴 경우엔 새벽까지 5~6시간을 이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계속 나누기도 합니다. 전 이 과정을 기꺼이 수행합니다. 저에게 매우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이에요. 전 그녀가 저의 첫 독자이고, 첫 편집자이기에 정말 행운아라고 생각합니다. 전 작가 생활을 하는 동안 정말 훌륭한 편집자들과 함께 일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출판사에 속한 직원이기에 저와 작업하다가도 다시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서 가기도 하죠. 그런 편집자들은 내 편인것 같기도 하지만 회사편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일본에서는 특히 출판사가 매우 강한 회사이기 때문이죠. 그게 시스템이니까요. 그들이 시스템 속에 있으면서, 제 편집자인거죠. 그건 때때로 복잡한 상황을 가져오기도 하죠. 그러나 요코는 제 아내이고, 완전히 내편입니다. 그녀는 좋든 나쁘든 저 곁에 있습니다. (웃음) 그녀는 안정적으로 항상 제 곁에 있습니다.


조지아 리뷰 : 무라카미씨도 말씀하셨지만, 독자들과의 교류 사이트를 열어 질문과 답변을 해주셨는데요.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으신가요?


하루키  : 음, 독자와의 교류 사이트를 개설하면, 보통 3~4개월 동안 진행하는데요. 이 사이트를 운영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했죠. 사이트가 열리면 전 정말 열심히 이 일에 임합니다. 열정적으로 독자들의 생각들을 읽어 나가죠. 보통 6천건의 질문이 온다면, 적어도 1천5백건 정도는 회신을 하려고 합니다. 그건 정말 고된 일이에요. 가장 흥미로운 질문은 청소년이나 20대에서 나옵니다. 그들은 제 나이가 그 학생들의 부모님 나이뻘이라는 걸 알게되면 많이들 놀랍니다. "무라카미씨는 어떻게 제가 가지는 느낌을 이해하는지 신기해요. 저희 부모님은 제가 생각하는 것을 이해못하시거든요. 그게 너무 신기해요." 라고 말해요. 그런데 재밌는건 그 학생들의 부모님도 동시에 제 소설을 읽는다는 거에요. 한 가정에서 제 책을 부모님과 자녀들이 돌려 읽는 거죠. 전 이건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얘기를 들으면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그들은 제 책에 대해 함께 얘기를 나눕니다. 제 책을 매개체로 부모와 자녀들이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이 벌어지는 거죠.  


조지아 리뷰 : 많은 사람들이 이메일이나 인터넷과 같은 신기술로 인해 미래의 문학이 위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무라카미씨도 동의하시나요?


하루키  : 네. 그러나 소설, 이야기라는 포맷은 수천년동안 전해져 내려온 전통과 경험이에요. 그리고 우리는 항상 무언가에 의해 도전을 받아왔고 또 살아남았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전 티비나 영화, 인터넷, 워크맨이 없었던 19세기가 더 나은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페라를 보거나 책을 읽는 일 뿐이었죠. 오페라는 3~4시간 정도 공연을 하고, 도스토예프스키나 디킨스를 읽기 위해선 한 달정도는 걸려야했죠. 전 그 시기가 그리워요. 그러나 어찌되었든, 우리는 지금 이 시대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말이죠. 어떤 작가들은 사람들이 예전과는 다르게 더이상 책을 읽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전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이런 시개에 살고 있는 것 뿐입니다. 우리는 살아남아야해요. 저는 어떤 강한 경쟁상대, 유혹이 있더라도 반드시 책을 읽는 확실한 독자들은 항상 있다고 생각해요. <노르웨이의 숲>은 일본에서 2백만부가 팔렸죠. 그러나 제 핵심 독자층은 20만~30만 정도에요. 그들은 제 열성 독자층입니다. 그 나머지 1백만이 넘는 독자들은 단지 부유하는 독자들이에요. 그들은 보통은 책을 읽지 않지만, 한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라가면 관심을 갖고 책을 사서 또 읽어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20~30만의 제 독자들은 항상 찾아서 읽죠. 전 그 2~30만 독자들을 존경해요, 어떤 유혹이 있어도 독서를 유지합니다. 전 그들을 믿습니다. 물론 그들 때문에 제가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기도 합니다. (웃음) 


우리 작가들은 생존하기 위해 다른 미디어와 경쟁을 해야합니다. 일본에서는 출퇴근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책을 손에 들고 있습니다. <언더 그라운드> 인터뷰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 왕복 4시간을 지하철로 출퇴근한다는 것도 알게되었죠. 일본의 경우 지하철에서는 휴대전화 사용이 금지이고, 소음 때문에 음악을 듣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지하철안에서 TV도 볼 수 없죠. 그래서 사람들은 책을 손에 들고 읽습니다. 책은 매우 원시적이며 그래서 매우 간단한 매체입니다. 간단하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가장 확실한 대안은 출퇴근 지하철이라고 생각해요. 자의든 어떤 상황하에서든 여전히 책을 읽는 독자들이 있기에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조지아 리뷰 : 무라카미씨는 예전에 당신의 책이 일본 스럽지 않다고 비판한 비평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신 적이 있다고 알고 있는데요. 무라카미씨는 작가도 각 나라의 스타일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하루키  : (긴 침묵) 전 물론 제 소설을 일본어로 씁니다. 그리고 대부분 일본에 사는 독자들을 위해 글을 쓰고요. 그래서 전 자연스럽게 일본 소설을 쓰는 일본인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저에게는 가장 자연스러워요. 만약 누군가가 일본어가 아닌 번역본을 가지고 비판을 하면, 전 글세요. 어떻게 반응을 할 수가 없어요. 전 외국 생활도 오래해서 일주일에 쌀밥을 먹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아요. 전 쌀밥과 스시 없이도 살 수 있습니다. 일본에 있을 때는 한 2주정도 쌀밥이나 스시를 먹어야 겠다라는 생각을 안 한 적도 많습니다. 전 아무렇지 않지만, 이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에요. 일본인이라면 쌀밥과 스시를 먹어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먹고 안먹고는 내 자유죠. 이건 제 인생이에요. 제 소설이 일본스럽지 않다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로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요. 전 미소라 히바리 같은 엔카도 안듣습니다. 엔카를 듣지 않는 건 제가 엔카 형식의 노래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또 어떤 사람들은 비판합니다. 무라카미는 엔카를 듣지 않는다고 말이에요. 당신은 일본인이 아니죠. 그러나 전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전 슈베르트를 더 좋아하거든요. 그게 내 인생이에요.


조지아 리뷰 : 무라카미씨의 작품 중에는 음악과 관련되거나 음악이 자주 등장하는 작품이 많죠. 가장 유명한 것이 <노르웨이의 숲>이 있고,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이나 <해변의 카프카>도 그렇고요. 음악이 소설을 집필하시는데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지 궁금합니다. 


하루키  : 네, 음악은 정말 많은 도움을 줍니다. 20대때 재즈바를 경영했을 때, 일주일 내내 아침부터 자정까지 가게에서 재즈를 들었어요. 음악은 제 몸과 마음 전부를 적셨죠. 그게 지금까지 계속해서 남아있어요. 제가 처음 무언가를 쓰기로 결정했던 때가 29살이었는데, 전 소설을 쓰는 경험이 없었기에 도대체 어떻게 써나가야 할 지 알지 못했죠. 전 일본 문학의 훌륭한 독자도 아니었고, 소설을 쓰는 방법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어요. 그때 든 단 하나의 생각이 마치 음악을 연주하는 것 처럼 소설을 써보자 였답니다. 좋은 음악이 요구하는 것은 좋은 리듬, 좋은 하모니, 좋은 멜로디 라인이죠. 이 세가지에요. 글쓰는 작업도 동일합니다. 리듬과 하모니와 멜로디가 중요해요. 어느 순간 제가 이것을 깨달았을 때, 글 쓰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어요.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마치 제가 연주하는 듯한 느낌으로 써 내려간 작품이에요. 지금까지도 제가 스스로 생각하는 제 작품의 좋은 점은 좋은 리듬 감각과 유머 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운전 중에 엘빈 존스(드럼)의 연주를 듣는 걸 좋아하는데요. 그의 연주를 봤다면, 매우 조심스럽게 그의 심벌즈가 같은 리듬으로 차분하게 유지되는 것을 볼 수 있을거에요. 반면에 그의 두 팔은 미친듯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는 야성적으로 드럼을 치고 있지만, 그의 심벌즈는 항상 동일하게 유지됩니다. 이게 바로 제가 원하는 바에요. 전 당신이 말한대로 음악으로 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어요. 많은 예술가들이 그들의 결과물로 일종의 픽션을 씁니다. 또 많은 뮤지션도 픽션을 구성하려고하죠. 그런데 전 뮤지션은 다른 예술가 보다 더 픽션을 구성하는데 능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예술가들은 자기애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죠. (웃음) 뮤지션은 계속해서 자기 일을 해나갑니다. 그들은 자기애를 갖기에는 너무 바빠요. (그래서 전 뮤지션과 같이 꾸준하게 리듬을 유지하며 소설을 써나가고 싶습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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