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인터뷰는 2006년 프랑스 잡지 르익스프레스지와의 인터뷰 입니다. 하루키가 2005년 부터 1년간 하버드 대학의 'artist in residense' 프로그램에 초빙되어 체류 중일 때의 인터뷰로 하버드대학에서 진행되었네요. 이전 제 포스팅을 보시면, 같은 기간에 진행된 하버드 대학 학생회와 진행된 인터뷰도 있으니 이 시기의 하루키를 이해할 수 있는 추가 자료로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루키 05년 하버드대학 인터뷰 http://finding-haruki.com/590
고독한 여행자 무라카미 하루키 (Murakami voyageur solitaire)
하루키 2006년 프랑스 르익스프레스지 인터뷰 (원문 클릭) *오,의역 감안해주세요.
lexpress: 얼마전 2004년 작품이죠. <해변의 카프카>의 주인공 타무라 카프카 소년은 무라카미씨와 닮은 점이 있나요?
하루키: 저는 외동아들이었고, 책과 음악 그리고 고양이들과 대화를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일면 카프카 소년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죠. 제가 즐겨 읽었던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디킨스, 발자크 등 거장 작가들의 긴 장편 소설을 좋아했어요. 그래야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오래 곁에 둘 수가 있죠.
lexpress: 고베에서 무라카미씨 아버지는 일본 문학을 가르쳤죠.
하루키: 네, 그런데 저는 주로 다른 세계에 관심을 가졌고, 외국 작가들에게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챈들러, 보네거트, 카포티 등 미국 작가의 작품을 발견하고 즐겨 읽었는데요. 고등학교때 영어를 배우지 않았다면 저는 분명히 프랑스 문학과 문화에 더 큰 관심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12살 정도에 처음 읽은 소설은 스탕달의 <적과 흑>이 었고, 트뤼포의 영화들도 당시의 저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답니다.
lexpress: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 말씀하시는 거죠.
하루키: 제가 <해변의 카프카>의 서문에도 언급했듯이, 다무라 카프카 소년은 트뤼포의 영화 <400번의 구타>의 소년 앙투완 드와넬과 동일하다고 생각해요. 그들의 나이나, 그들의 두려움, 그들이 추구하는 것 등 그 둘은 비교 가능하죠. 전 대학을 졸업했을 때, 내 의지대로 대기업에 취직한다거나 공무원이 된다거나 하는 것을 거부했을 때, 외로움을 느끼긴 했습니다. 30년전 일본은 지금보다 더 엄격했죠. 엄격하게 정해진 사회에서 벗어나기를 결정했을 때 이미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앙투완 드와넬과 같이 말이죠..
lexpress: 무라카미씨의 작업 방식은 소위 말하는 그리스 극작의 비정형적인 면이 많이 보입니다.
하루키: 전 대학에서는 시나리오를 공부하기 위해 영화를 배웠습니다. 그러나 곧 내가 쓴 시나리오는 쓰일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죠. 전 일본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학생일 뿐이 었죠. 1968년 일본의 대학가는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이상주의하에 대학 캠퍼스내에서 경찰과 대치했습니다. 그러나 사회 체제는 너무 견고했고 모든 것이 빠르게 정상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런 빠른 전환 속에서 저는 모든 것을 놓아 버렸어요. 대학을 졸업할 때 까지 저는 거의 8년 동안 제대로 그 무엇도 쓸 수 없었고 그렇게 재즈 카페를 개업하게 되었죠. 저는 작가로서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재즈 카페를 하면서 수 많은 손님들을 상대하면서, 정말 다양한 종류의 사람에 대해 느끼고 경험할 수 있었죠. 그리고 제 나이 29살의 어느 4월의 좋은날 야구 경기 중에 일종의 계시가 있었습니다.
lexpress: 왜 야구 경기장에 있었어요?
하루키: 따뜻한 봄날의 오후 였죠. 한 손에는 맥주를 들고 야구장 외야석 스탠드에 있었어요. 제 인생의 멋진 순간을 선택해야 한다면 전 그 순간을 선택할 거에요. 저는 그날 마침 펜을 가지고 갔고, '자연스럽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lexpress: 자연스럽다는 말은..?
하루키: 이야기꾼이죠. 제 이야기는 중국과 한국, 프랑스 등 다양한 나라에서 읽여지고 있습니다. 좋은 이야기는 문화와 지역을 뛰어 넘는 모국어가 다른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위해 형성되는 '링구아 프랑카'와 같은 역할을 하는거죠. 그 이야기가 설사 어둡고 고통스러운 쉽지 않은 길이라도 독자들은 기꺼이 같이 그길을 갑니다. 저는 항상 제 감정의 열쇠를 독자들에게 쥐어주고 싶어요. 그것은 제가 슈베르트 소나타로 부터 어떤 해설을 얻는 것이 아니라 어떤 깊은 감정을 받는 것과 같은 것일거에요.
lexpress: 무라카미씨는 소설 속에 자극적이고 다소 충격적인 묘사 방식을 사용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하루키: 폭력과 섹스에 대한 묘사는 제가 40세가 되기 전 까지는 소극적으로 사용했어요. 그런데 40세가 넘어서 쓰게된 <태엽감는새> 부터는 일종의 충격 요법을 저와 독자들에게도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전 <해변의 카프카>에서 어린 시절 부터 친밀하게 지냈던, 고양이를 잔인하게 죽이는 장면들을 묘사할 수 있었답니다. 또한, 일본이 만주 지역을 침략, 점령하고 있던 시절 군인이었던 아버지로 부터 들은 전쟁의 이미지만 기억하고 있어요. 그러나 우리의 양심을 일깨워주기 위해서는 저는 그 침략 전쟁에 대해 <태엽감는새>와 같은 소설을 통해 얘기합니다. <해변의 카프카>에서는 또, 아돌프 아이히만의 얘기를 하면서 2차 세계 대전 중 자행된 기계적인 대량학살과 같은 일을 벌일다면, 누구나 1995년 발생한 도쿄 지하철 사린 테러를 사주한 종교 지도자 처럼 교수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lexpress: 무라카미씨는 해외에 계속 체류하다가, 1995년 일본에서 발생한 큰 두 가지 충격적인 사건인 고베 대지진과 도쿄 지하철 사린 테러 사건이 후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는데요.
하루키: 1980년대 일본은 고도 성장을 하며 부자가 되고 그러면서 강력해지고 오만해졌어요. 경제 위기와 함께 이 2가지 사건으로 저는 많은 혼란의 감정 속에 빠지게 되었어요. 저는 사린 테러와 관련한 2개의 논픽션인 <언더그라운드>와 <약속된 장소에서>를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의 시선으로서의 감정들을 제 독자들고 공유하면서 제 모국에서 작가로서의 무언가 다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답니다.
lexpress: 일본 내 다른 작가들과의 관계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하루키: 없어요. 전 일본 문학계에서 보면 말썽꾸러기 같은 존재일 겁니다. 그들은 내 스타일을 비난하고, 일본 문학의 전통적인 규율과 같은 것과는 너무나 다르죠. 저는 그런 이유 때문에 일본을 부분적으로 떠나게 되었죠. 저는 일본어를 쓰는 일본인으로 우선적으로는 일본 독자를 위해 소설을 쓰지만,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개인'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 말하는 서구화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통주의자도 아닙니다. 저는 단지 '자유로운 사람일' 뿐이에요.
익스프레스지의 집요한 요청으로 진행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터뷰 내용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기사의 서문에 인터뷰를 꺼리는 소극적인 무라카미씨로 하여금 인터뷰 공포증을 벗어 던지도록 해냈다고 나름의 기쁨을 표현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인터뷰 길이도 다른 인터뷰에 비해 길지 않은 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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