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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인터뷰

하루키 2005년 호주 The Age.com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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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포스팅 할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인터뷰는 2005년 호주 신문사인 The Age.com과의 인터뷰입니다. 인터뷰는 하루키의 아오야마 사무실에서 진행되었네요. 인터뷰어인 Stephen Phelan 기자는 하루키와 인터뷰하기전 일본 시내에서 만난 독자들에게 하루키에 관해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하는 준비성을 보여주기도 했답니다. 2005년은 <애프터 다크>를 집필한 직후이고요, 그 전 장편은 2002년 <해변의 카프카>입니다. 인터뷰 바로 보시죠.  



Photo: Eiichiro Iwasa


제 소설에 정답은 없어요. 오직 꿈만 있습니다.

하루키 2005년 호주 The Age.com 인터뷰


TheAge.com: 오늘 이곳에 오기전 하루키씨의 작품을 읽는 여러 독자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데요. 그들은 모두 하루키씨 작품을 잘 알고 있었고, 무언가 손에 잡히지 않는 모호함이 있지만 역시 매번 새로운 작품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어요. 무라카미씨의 세계로 탈출을 시도한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더군요.


하루키: 많은 독자들이 제 소설을 마쳤을 때, 그들이 받는 지금 이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얘기하는 걸 많이 들었답니다. 그건 아마도 제 소설이 어둡고, 복잡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소설을 읽고 있는 중간에는 온전히 무라카미의 세계에 들어와 제가 펼쳐낸 이야기 속에서 즐거워 합니다. 그건 그대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TheAge.com: 무라카미씨는 아마도 전 세계의 55세의 사람 중 가장 건강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됩니다. 매년 풀 마라톤을 뛰시고 매일 달리기나 수영을 하시죠. 그리고 미국의 고전 문학을 일본어로 번역하여 출간하기도 하십니다. 무라카미씨가 얘기하는 것들은 역시나 수수께끼 같은 것들이 많아요. 예를 들면 무라카미씨의 토템이랄까요? 꿈, 어두움, 친절함 등 말이죠. 


하루키: 세계는 메타포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그 속에서 소설을 쓰는 것은 더 꿈과 같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가는 깨어있을 때에도 꿈을 꿀 수 있어야 합니다. 매일 꾸는 꿈 속에서 어제의 꿈을 가지고 오늘 계속 써 내려갈 수 있는 것이죠. 왜냐하면 그 꿈이 있어야, 이 세계의 많은 모순들을 조정해나가는 작업을 할 수 있답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본질적인 '꿈'은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TheAge.com: 무라카미씨의 2002년 소설 <해변의 카프카>는 15세 소년 카프카의 여정 속에서 다양한 인물과 사건들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요. 의식의 통로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하루키: 전 소설을 집필하고 있을 때는, 현실과 초현실을 구분 짓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현실로 인지한 채 소설을 씁니다. 그것이 바로 무라카미의 세계라고 당신은 말할 수 있을 겁니다. 


TheAge.com: 무라카미씨는 일상이 매우 규칙적이신데요. 소설 속에서는 대부분 비현실적인들이 일어나죠. 그리고 주인공들은 대부분 규칙적인 직업이 없고, 자유로운 사상을 가진, 결혼 하지 않은 20대 후반인 것 같아요. 무라카미씨는 이렇게 삶이 모호한 시점의 주인공들로 부터 영감을 많이 받으시는 것 같습니다.


하루키: 당신이 바로 그 27살, 28살 인가요? 그 나이대는 정말로 터프하게살고 있을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죠. 그런 세대에 항상 동정심을 가지고 있어요. 


TheAge.com: 무라카미씨는 그 나이대에 재즈바를 오픈하셨고, 무라카미씨의 세대는 전후 미국의 통치가 진행된 미국 문화가 계속해서 영향을 준 세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 즈음 1949년 교토에서 일본문학을 가르치던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셨죠. 또한 그 당시는 하이퍼 자본주의의 시대라고도 할 수 있고요. 


하루키: 네 부모님은 불교 신자였고, 학교에서 일본 문학을 가르치던 분들이었어요. 대부분의 젊은 남자들은 대기업에 취업을 하며 샐러리맨이 되었죠. 그러나 전 어느 집단에 소속되지 않은 개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싶었어요. 


TheAge.com: 무라카미씨는 10대 시절 부터 소위 위대한 작가들을 섭렵하셨죠. 도스토예프스키, 카프카, 플로베르, 디킨스, 레이먼드 챈들러 등 말이에요. 그리고 재즈바를 열고 재즈바 안쪽에 앉아 재즈를 듣고 서양의 책과 재즈의 온기에 최대로 노출된 삶을 영위하기를 원하신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일종의 '깨달음'이 왔던 것 같아요.  


하루키: 네, '깨달음'이란 단어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아요.  


TheAge.com: 그건 바로 진구구장에서 데이브 힐튼 선수가 2루타를 치는 순간이죠. 그 순간 스스로 내가 소설을 쓸 수 있겠다라고 느끼신거죠.


하루키: 정말 이상한 일이었어요. 제가 살아오면서 겪은 유일한 이상한 일이었죠. 제가 소설을 쓴다고 했을 때, 재즈바 단골 손님들은 믿지 못했고, 제 아내는 깜짝 놀랐죠. 제가 읽은 책들은 정말 위대한 작품들이기에 전 제가 소설을 쓸 수 있으리라는 야망을 애초에 갖지 않았다는게 맞을 겁니다. 제가 공부해 온 소설을 기준이 너무 높았던 거죠. 그러나 그 일은 일어나 버렸고, 전 그날로 바로 펜과 원고지를 사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TheAge.com: 무라카미씨는 특정한 플롯이나 의미를 두지 않고 이야기를 진행시킵니다. 이름 없는 소설 속 나레이터는 맥주를 마시며 비치보이스를 듣고 낯선 소녀를 만납니다.  


하루키: 모든 것이 지나가는 한 과정입니다. 누구든 지금에 머물려고만 하면 얻는 것이 없을 겁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TheAge.com: 무라카미씨는 독자층이 두텁기도 하지만, 일본 내 비평가로 부터는 혹평을 듣기도 하셨죠. 그런 만큼 무라카미씨는 더욱 더 '어두움의 한 가운데'로 계속해서 들어갑니다. 데뷔작 이후의 이야기도 계속해서 터널, 도서관, 미로, 어두운 복도, 우물 등과 같은 세계를 구축합니다. 그리고 아마도 무라카미씨 자신으로 여겨지는 이름없는 나레이터를 통해 한없이 헤매일 도시의 한복판에서 어딘가의 심연으로 계속해서 내려가죠. 그러면서 무라카미씨 스스로도 확실한 변화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소설 속 주인공이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에요. 


하루키: 그 장소는 어둡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멋지고 조용한 장소에요. 당신의 영혼의 지하 장소이죠. 그 장소를 문을 열고 어둠 속으로 들어갑니다. 인간의 마음 속의 위험한 장소이죠. 어둠 속으로 들어가면서 매우 조심해야해요. 그 속에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찾고 다시 현실 세계의 표면으로 올라오는 겁니다.  


TheAge.com: 그 지하 세계는 무서운 곳인가요? 거기서 찾아낸 이야기를 쓰면서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나요?


하루키: 만약 그 이야기가 악한 이야기라면, 저 역시 두려움을 느꼈을 겁니다. 그러나 전 그 지하 세계에서 얻은 이야기는 선한 마술(white magic)이라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 어둠 속에서 '악한 것'들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아, 이렇게 얘기하니 '반지의 제왕'을 얘기하는 것 같네요. (웃음) 이런 얘기를 하고 있자니 조금은 어린 아이가 된 기분이 드네요. 


TheAge.com: 말씀하신 '악한 것'은 무엇일까요?


하루키: (잠시 침묵) 아마 '죽음'일 겁니다. 전 지금 55살인데요. 그것은 곧 제가 죽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를 생각하곤 합니다. 한 작품에 약 3년이 걸립니다. 그것은 마치 카운트 다운과도 같답니다. 그래서 전 매번 작품을 쓸 때마다 기도합니다. 제발 이 이야기를 마칠 때까지만이라도 살아있게 해달라고 말이죠. 


TheAge.com: 무라카미씨의 가장 열렬한 팬들과 비평가들은 모두 일본에 있습니다. 그런데 무라카미씨는 일본에서는 불편함을 느낀다고 계속해서 말씀하시죠. 문학계와 관계를 형성해나가는 것은 일본에서는 중요한 작가로서의 성공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이라고 생각되어지는데 말이죠.


하루키: 일본에서는 개인으로서 살기 매우 어렵습니다. (한숨) 그들은 저에게 원하는 확실한 것이 있지만, 저는 그들의 바램에 응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매스미디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제가 이라크 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기를 원합니다. 물론 저도 이라크 전쟁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저만의 견해가 분명히 있습니다만, 매스미디어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서 그들은 저를 오만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TheAge.com: 1987년 <노르웨이의 숲>을 발표하시고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두셨죠. 그런데 3백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지만 무라카미씨 본인은 당시의 기억이 좋지많은 않으시죠.


하루키: 전 그렇게 엄청난 반응을 보고 충격이었어요. 제가 갑자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유명세를 타자 모든 사람들이 저를 미워하는 것만 같았죠. 그러면서 전 주위의 일부 친구들을 잃었답니다. 제가 변했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이었죠. 그건 제 인생에 있어 가장 불행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TheAge.com: 그 이후 일본을 떠나 유럽에 체류하시고, 프린스턴 대학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계시면서, 또 하나의 대작 <태엽감는새>를 집필하셨습니다. 


하루키: 그렇게 8년여 넘게 일본을 떠나 있으면서, 제가 태어난 나라의 최근의 역사에 대해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일본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라는 스스로의 물음에 답하고 싶었어요.  


TheAge.com: 그리곤 1995년 고베 대지진과 도교 사린 테러가 일어난 해, 일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루키: 도쿄 사린 테러의 희생자, 생존자들을 인터뷰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들에게는 일종의 공허한 무의 바다같은 것이 있었어요. 마치 멸종 위기의 동물 같이 센서티브한 상태였죠. 큰 팬더 같이 말이에요. 관심이 갔죠. 그리고 <신의 아이들은 춤을 춘다>라는 연작 소설집을 통해 고베 대지진을 돌아봤어요. 전 일본 소설가로서 일본 독자들에게 일종의 작가적 책임이 커진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TheAge.com: 무라카미씨의 미국 편집자의 말에 따르면, 무라카미씨의 주인공들은 모두 어떤 결정이나 방향성을 제시할 자아가 결여되어 있거나 그들이 정말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채 놓여있다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하루키: 네, 맞아요. 제 주인공들은 차분한 방법으로 존해하게 된다는 것에 고마워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들 주위에서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 그들은 적확한 이해 없이 중립을 유지한채, 그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습니다. 말씀하신 것 처럼, 어떤 사람들은 제 주인공들이 지나치게 수동적이라고 얘기하지만, 제 주인공들은 다른 종류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TheAge.com: 무라카미씨는 일본 뿐만 아니라, 대만, 중국, 러시아, 한국 등 심지어 시베리아의 길거리 가판대에서도 무라카미씨의 책이 있죠. 


하루키: 공산주의와 포스트공산주의의 국가는 각기 라이프 스타일이 다릅겁니다. 그런데 전 어느 국가의 젊은 독자들이던 제 소설로 부터 자유와 어떤 가능성의 의미를 얻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사회의 혼란 속에서 제 소설과 연결지어 질 수 있는 어떤 접점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잘 모르겠네요.


TheAge.com: 무라카미씨는 일전에 자신의 작품을 해결책이 없는 미스테리함이 주된 소재라고 하셨습니다. 인터뷰 서두에서는 삶 자체가 메타포라고도 하셨죠.


하루키: 전 지금 인터뷰를 하면서 당신에게 보다 정직하고 친절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마찬가지로 전 미스테리한 이야기를 쓰면서도 더 분명하게 더 깊게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게 신경을 쓰면서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제 소설 속 세계에는 정확한 답은 없어요, 하지만 그곳에는 독자들에게 전해지는 이야기의 친절함(선함)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전 어느 인터뷰에서도 접한 기억이 있지만, 매번 소설을 쓸 때마다 이 이야기가 끝나기 전에는 죽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는 하루키의 심정이 가슴 깊이 와닿는 인터뷰였습니다. (이 무더위에 살아남으시길 바랍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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