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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인터뷰

하루키 1999년 '간사이 타임아웃'紙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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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소개해 드릴 하루키 인터뷰는 1999년 인터뷰인데요, 1999년은 하루키가 9번째 장편인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같은 해 4월 일본에서 출간한 해랍니다. 그 직전 장편은 1994년의 <태엽감는새>이고, 인터뷰를 한 2년전 도쿄 사린 테러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언더그라운드>를 출간하기도 한 시점입니다. 간사이 타임아웃은 1977년 처음 발간된 하루키의 고향인 고베 지역 월간 문화지로 사회, 정치, 문화적인 내용을 다루었다고 합니다. (영어잡지 였다고 합니다.) 간사이타임아웃은 2009년 폐간되었네요. 인터뷰어는 하루키의 많은 해외 인터뷰를 함께 한 롤랜드 켈츠 도쿄대 교수입니다. 


Photograph: Sipa Press/Rex Features


거기 저 어두운 곳으로 (Down there, in the dark)

하루키 1999년 간사이타임아웃 인터뷰


롤렌드켈츠: 무라카미씨는 작가 데뷔전 재즈바를 운영하셨죠? 재즈바가 그립지는 않으시나요? 


하루키: 때때로는요. 재즈바를 7년 동안이나 운영했지만, 술에 만취한 고객은 참을 수가 없었죠. 전 그들과 싸워 가게 밖으로 밀어내야만 했답니다. 하지만 여전히 주말에 공연을 하던 뮤지션들은 모두들 거나하게 취해 몽롱한 상태에서 연주를 해야한다고 공표한 채 연주를 했었죠. 그런 엉망이었던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그러나 역시 재즈바를 하면서 저에게 있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었던 것 같아요. 적어도 10명 중에 1명의 바텐더는 정말 좋은 칵테일을 만드는 타고난 재주를 가지고 있더라고요. 전 그런 재능을 믿는 편이에요. 그런데 그와 동시에 그 타고난 재능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어요. 당신이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인생에 있어서는 꽤나 심각한 문제일 수는 있죠. 사람들이 도대체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냐고 정말 많이 물어봅니다. 그 질문을 받으면 도대체 어떻게 대답을 해줘야할지 난감한 상황이 되어버린 답니다. 그런데 만약 당신에게 재능이 없다면 그것은 분명 시간 낭비일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시간 낭비라는 것은 인생 전체에서 보면 그렇게 큰 부분은 아닐 거에요. 이렇게나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저도 잘 모르겠네요. (웃음)   


롤렌드켈츠: 인생에 있어서 시간의 낭비라는 것은 많은 부분을 차지 하는 걸까요?


하루키: 더 많을 수도 그 반대일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 시간을 즐기면서 보내면 된다고 생각해요. 저의 경우 재즈, 고양이..다른 사람에 따라서는 여자일 수도 있겠고요. 그리고 책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저로 하여금 인생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있답니다. 전 글을 쓸 수있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전 항상 저에게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도스토예프스키를 들 수 있는데요. 저에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제가 언젠가는 쓰고 싶었던, 또는 언젠가는 읽어보고 싶었던 그런 소설이랍니다. 저는 그 소설을 '절대적인 로맨스'라고 부르고 싶어요. 저도 언젠가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답니다. 그 중간 과정이 <태엽감는새>일 수 있답니다. 전 지금 단지 도스토예프스키의 발자국을 따라 가기 시작했을 뿐이랍니다. 그는 여전히 저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는 작가에요. 그는 아주 오랜길을 돌아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까지 갔죠. 전 이제 아주 조금 왔을 뿐이에요.


롤렌드켈츠: 어떤 부분이 무라카미씨로 하여금 작가 데뷔 초기 해외 생활을 하면서 글을 쓰게 만들었는지 궁금합니다.


하루키: 일본에서 작가 생활을 하려고 하니, 많은 부분들이 저로 하여금 가능하면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게끔 만들었어요. 일본에서의 시스템에 많은 문제가 있다고 느꼈어요. 정말 싫었답니다. 거의 5년동안 유럽을 포함해 미국에서 5년여 지냈어요. 작품도 여럿 썼죠. 그러다가 불현듯 일본이라는 나라와 일본인에 대해 쓰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때로는 과거에 대해 때로는 지금 현재에 대한 흥미가 더 높을때도 있고요. 일본을 떠나 다른 나라에 있다보면 자연스럽게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쓰기가 쉬어지게 되요. 멀리서 내가 떠나온 나라를 바라다 보는거죠. 이전에는 일본에 대해서는 쓰고 싶지 않았죠. 그저 주인공들의 세계와 그들이 속한 (내적인) 세계에 대해서만 쓰고 싶었어요. 


롤렌드켈츠: 일본은 무라카미씨가 태어나고 자란 교토, 오사카, 고베가 있는 '간사이' 지역과 도쿄, 요코하마로 대표되는 '간토'지역간의 지역감정과 경쟁의식이 심한데요. 무라카미씨는 간사이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간토 지역으로 터전을 옮기셨죠. 이 부분에 대해서 작품을 통해 얘기한 적도 없으시고, 이유가 있을까요? 


하루키: 전 18살에 도쿄에 대학을 가게 되면서, 지금까지 거의 30년 넘게 간토 지역에서 지내고 있어요. 전 대학에 들어갔을 무렵 간사이 지역에서 간토 지역으로 왔다는 단순하고 간단한 이유로 간사이 사투리에서 벗어나려고 했어요. 이와 같은 이치로 전 일본을 떠나고 싶어했던 거죠. 전 어디에있든지 언제나 그곳을 오랜기간 있지 않고 떠나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의 생각이지만, 저는 항상 새로운 언어 체계를 습득해 작가로서의 발전에 기여를 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이 저에게 있어서는 불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편한 것으로 작용하죠. 또한 저에게 새로운 세계라는 느낌을 주고요. 전 대학 진학을 위해 도쿄로 갔고, 그곳에서 지금의 아내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어요. 저만의 새로운 도쿄를 발견한거죠. 미국, 유럽 체류 기간을 빼고는 계속 도쿄에서 머물러 왔습니다. 제 아내는 도쿄 도심 출신이고요. 그러나 전 항상 도쿄 출신의 사람들 보다 간사이 출신의 사람들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롤렌드켈츠: 문화적으로요?


하루키: 네. 간사이 지방이 좀 더 복잡하고 지적이랄까요. 그러나 간사이 지역 사투리는 예를들면 형이상학에 대한 것과 같은 어려운 얘기는 쉽게 할 수 있을 것만 같죠.  도쿄 사투리에 익숙해질 무렵, 전 분명하고 간단하게 말하는 와중에 제가 성장하면서 써온 간사이 사투리의 그 복잡함을 섞어서 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이것은 정말 최상의 조합이에요. 간사이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말의 60% 정도 밖에 표현하지 않고, 자신에 대해서는 80% 정도 밖에 말하지 않을겁니다. 간사이 사람들은 도쿄 사람들을 대할 때는 무언가 닫힌 상태로 대하곤 합니다. 감정을 숨기고 모호하게 말하죠. 도쿄 사람들은 도대체 간사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곤 해요. 이런 혼란스러움은 교토에서 더욱 심해지곤 합니다. 제 아버지가 교토 출신인데요. 때때로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건지 이해할 수 없을때가 많았답니다. 


롤렌드켈츠: 무라카미씨가 이전 답변에서 말씀하신 "현실적인 언어적 재해석"은 대개 일본이 아닌 외국에서의 경향이 더 많다고 볼 수 있을텐데요. 특히 미국 문학에의 흥미, 열정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하루키: 전 많은 미국 작가의 소설을 번역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번역을 하면서 두 개의 언어 사이를 왔다갔다 하죠. 그건 정말 흥분되는 일이에요. 전 소설가가 되기전,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아무런 멘토도 없었어요. 그런데 번역이 바로 그 역할을 해주었죠. 번역은 소설가로서의 저에게는 선생님과도 같답니다. 번역을 통해 거의 모든 것을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트루먼 카포티, 레이먼드 챈들러, 스콧피츠제럴드, 레이먼드 카버. 정말 환상적인 선생님들이에요. 이 작가들을 통해 제가 번역을 하면서 소설을 써 나갈 때, 그들이 어떻게 쓰는 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거죠. 전 그렇게 조금조금씩 그들의 작업을 이해하고 모아 나가는 거에요. 마치 시계장치 말이죠. 


롤렌드켈츠: 미국 독자들에게 무라카미씨는 마치 뉴저지나 버몬트에서 살고 있는 주인공이 겪는 이야기 처럼 인지하여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부분이 큰다고 생각되는데요. 그러나 근작 <태엽감는새>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연인가요? 아니면 이제 부터는 일본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추시기로 결심하신건가요?


하루키: 사실, 전쟁에 대한 관심은 초기작에서 부터 있었어요. <양을 쫓는 모험>에 중국에서의 일본 군대의 공격에 대한 언급이 나오긴 합니다. 그러나 당시 초기 시절에는 그런 연대기를 쓰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죠. 하지만 이제는 작가로서 어느정도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역사에 관해 연대기를 쓸 수 있다고 스스로 믿습니다. 데뷔 초기 시절에는 특정 지역, 특정 인종 등에 대해서 쓰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전 미국 탐정 소설의 영향을 매무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어요. 나는 미국 탐정 소설의 스타일과 저자가 말하는 톤에 매료되었죠. 뭔가 환상적이에요. 29살에 미국 탐정 소설의 거의 모든 작품을 섭렵했죠. 그 책들은 저를 위한 것이었어요. 그런데 전 그렇게 탐정 소설을 읽으며 범인이 누구일까 추리를 하는 것 보다는 직접 소설을 쓰고 싶어졌던 것 같아요. 전 작가들의 작중 톤과 스타일, 이야기 구조 등을 차용했죠. 저의 스타일은 당시 일본 작가들의 그것과는 매우 다른 것이었죠. 그리고 제 이야기가 버몬트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있는 이야기라는 얘기에 동의합니다. 물론 전부는 아니고요.   


롤렌드켈츠: 전쟁 중 중국에서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비극적인 난징 대학살 사건에 대한 아이리스 장의 다큐멘터리 책 <난징의 능욕>이 최근 다시 출간이 중단되었는데요. 일본의 극우주의자 편집자와 번역자들이 위협을 가하기도 했죠. 그런데 일본의 어느 언론도 이런 출판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건에 대해 보도하지 않았더군요. 어째서 지금의 일본사람들은 그들 나라의 과거에 대해 제대로 설 수 없는 것일까요? 심지어 그 어떤 공개 석상에서의 논의나 토론이 진행되지도 않죠.


하루키: 당신의 말은 절대적으로 맞습니다. 백퍼센트 동의해요. 지금의 일본 사람들은 그들이 보고 싶지 않아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대면하고 싶어하지 않죠. 하나의 사건이 있다면, 그 사건의 밝은 부분만을 보려고 하죠. 그들 모두 스스로 피의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해요. 잘모르겠네요. 그런데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이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전 그게 너무 두려워요. 전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어요. 그런데 일본인들의 자신들의 역사적 과거에 대해 잊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에 그 확신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전 1960년대 일본의 이상주의가 만연해 있던 시절에 청춘을 보냈어요. 당시 우리는 우리 모두가 좀 더 잘하게 된다면 이 사회는 좀 더 나아질거라는 믿음이 있었죠. 우리들은 정말 열심히 노렸했어요. 그러나 역시 그 가운데 잃어버린 것도 많아요. 전 지금 작가로서 앞으로의 세계도 역시 계속해서 나아질거라는 이상주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솔직히, 지금의 역사적 수정주의론자들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전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은 아무 생각 없는 멍청이라고 생각해요.


롤렌드켈츠: 일본에서는 아이리스 장 작가의 작품을 싣는 출판사가 있다면 실제로 물리적인 위협을 받게 될까요?


하루키: 네, 만약 당신이 아리리스 장의 작품을 출간한다면, 당신은 당신의 사무실에 앞에 스피커로 무장한 울트라-우익 세력들의 시위 소리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샤워를 해야만 할 거에요. 그 시위는 하루에서 이틀, 삼일이 될거고 종국에는 거의 매일 시위를 하게 될겁니다. 그건 꽤나 효과적인 방법이거든요. 그들은 당신의 입에서 그래, 출간하지 않을게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할거에요. 이런 일은 이미 살만 루시디 작가에서 일어났죠. 이런 일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일어나게 될 겁니다. 


롤렌드켈츠: 그럼 무라카미씨도 <태엽감는새>에서 만주 사변을 묘사해서 어떤 위협을 받으셨나요?


하루키: 아니오. 울트라-우익주의자들은 제 책을 읽지 않거든요. 그들은 저에게 관심이 없어요. 저 역시 그들에게 관심 없는 것 처럼 말이죠.


롤렌드켈츠: 오움진리교에 의해 자행된 1995년의 지하철 사린 테러 사건의 피해자를 인터뷰한 <언더 그라운드>와 속편 격인 옴진리교 신도들의 인터뷰집인 <약속된 장소에서>의 두가지 작업을 통해 어떤 것들을 배우셨는지 궁금합니다.


하루키: 이 작업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랐어요. 그러나 저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이것은 내부의 문제이자 외부의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이것은 즉 제가 계속해서 작업해 온 내부와 외부 사이에 놓인 회로와 같은 것이었죠. 오움 진리교의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는 그의 신자들에게 이런 회로를 설치해 놓았어요. 신도들은 아사하로 쇼코가 펼쳐 놓은 시스템의 충격을 맛 본 후 그의 노예가 되어갔죠. 매우 위험해요. 제가 생각하기에 그는 매우 뛰어난 스토리텔러라고 생각해요. 그 스토리가 빈약한 사람들에게 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많은 사람들을 죽이게 했죠. 이건 비극이에요. 매우 슬프고 매우 잘못된 일이죠. 전 세상에 이 일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알리고 싶었어요. 


단순하게 이 일은 잘못되었다고만 하면 모두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피해자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목소리를 모았어요. 그렇게 이 책이 나오게 되었죠. 전 테러 당일 지하철에 있던 63명의 피해자들을 인터뷰했어요. 그들은 대부분 병상에 있는 상태였죠. 고통을 받아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였어요. 전 그들에게 그들의 어린시절과 그들의 첫사랑에 대해 물었어요. 그럼 그들은 이런 얘기는 그날의 일과는 상관없지 않냐고 불평을 하기도 했어요. 그럼 전 얘기합니다. "아니에요. 상관있어요." 전 그 피해자들이 어떤 사람인지가 궁금했어요. 그럼으로서 그 비극이 그들 개개인의 비극이라는 점을 알게 하고 싶었답니다. 만약 그날 아침 제가 지하철로 여행을 할 계획이었다면, 전 그 옴진리교 신도들을 증오했을거에요. 피해자들의 얘기를 듣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더욱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에요.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했죠. 그들 모두는 그들의 가족을 사랑하고 있고, 일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들은 매일 아침 복잡한 지하철로 회사에 출근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전 그들을 인터뷰하면서 일본의 열심히 일하는 샐러리맨들이 대단한 존재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답니다. 극단적으로 예를들면 이들은 국가가 일으킨 전쟁 때문에, 중국으로 건너가 많은 중국인들을 살해했던 군인들 처럼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그들은 매우 조직화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국가로 대표되는 어떤 시스템이 위압적으로 작동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의 개인의 의식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게 하고 싶었어요. 


롤렌드켈츠: 옴진리교 신자는 가해자이고, 일반 시민들은 피해자라는 이분법에 대한 경각심을 말하고 싶었던 부분도 있어보입니다. 옴진리교 신자들은그렇게나 위험한가요?


하루키: 네 위험해요. 그들은 살해를 명령 받으면 살해를 저지를거에요. 전 그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연민의 느낌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그들이 너무 두려워요. 잘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어요. 


롤렌드켈츠: 무라카미씨는 완전하게 미국의 소설적인 양식을 차용한 것이 아닌 일본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지닌채, 무라카미씨 본인의 판타지와 여러 미국 작가들로 부터 배운 재료들을 가지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신 것 같습니다. 자신만의 장르와 소설적 구조를 만드신 것 같아요. 이건 분명한 자기 확신의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하루키: 일본 문학의 주요 전통으로, 사소설을 들 수 있어요. 허구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일기와 비슷한 형식으로 써나가죠. 제가 첫 소설을 발표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요. 제 소설은 사소설과는 매우 다르죠. 불과 몇 명의 비평가만이 인정했던 걸로 기억해요. 비평가들 대부분은 여전히 저를 인정하지 않죠. 그러나 많은 독자들이 제 소설을 좋아하고 읽는 답니다. 당신이 당신의 책을 읽는 독자들을 발견할 수 있다면 당신은 바로 살아남은 겁니다. 이것은 일종의 원칙으로서 작용하죠. 첫 작품은 십만의 독자가 읽었어요. 그 독자들은 떠나지 않고 몇 년뒤 20만이 독자로 이어졌죠. 그리고 약 10년이 지난 뒤 <노르웨이의 숲>은 수백만의 독자가 제 책을 읽었어요. 이런 일은 인생에 있어서 한 번 일어날까 말까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 최근작 <스푸트니크의 연인>도 지금까지 30만부가 팔렸답니다. 전 아직 이 지구상에서 작가로서의 어느정도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롤렌드켈츠: 어떤 의미에서의 확보일까요? 정서적, 심미적 또는 상업적으로요?


하루키: 글세요. 당신도 알다시피 전 전업작가에요. 꽤 두꺼운 책을 쓰죠. 하나의 소설을 끝내려면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태엽감는새>의 경우 모두 4년이 걸렸죠. 그 긴 시간 동안 글을 쓰면서, 동시에 생활도 유지해야 해요. 이럴 때 돈은 역시 큰 도움이 됩니다. 만약 돈이 없다면 당신은 소설을 쓰는 일을 지속하기 위해 다른 일을 해야한 할거에요. 책상에 앉아 글을 써야 할 시간에 말이죠. 


롤렌드켈츠: 하나의 이야기를 쓰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나요?


하루키: 1주일이요.

 

롤렌드켈츠: 단지 1주일이요? 


하루키: 첫번째 스케치는 3일이면 끝나요. 그 3일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쓰기만 합니다. 그리고 3일 동안 수정 작업을 하죠. 그리고는 편집자에게 넘깁니다. 편집자들은 그들만의 주방이 있어서 계속해서 다시 쓰고 쓰고 씁니다. 여기에다가 최근에 쓴 또 다른 이야기가 다음을 기다리고 있죠. 그렇게 한 달에 약 3개의 이야기가 진행되게 되죠. 매주, 매주, 매주 말이에요.  


롤렌드켈츠: 이게 무라카미씨의 평소 페이스이란 말인가요?


하루키: 아, 아니요. 그건 정말 특별한 경우 였어요. 직전에 바로 연작 소설집 <지진 후에; 신의아이들은 모두 춤을 춘다>를 끝냈거든요. 그 작업을 한 후에 저도 정말로 탈진해버릴 지경이었죠. 1995년 일어난 고베 지진을 모티브로 쓴 6개의 단편 연작 소설이랍니다. 한 주인공은 고베 출신이기도 하고, 또 한 여자 주인공이 고베에 친한 남자가 있는데, 그가 지진으로 죽기를 바라기도 하는 이야기도 있고요..


롤렌드켈츠: 왜요?


하루키: 저도 모르겠어요. 그건 저도 설명이 안되요. 그들 사이에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난거겠죠?


롤렌드켈츠: 무라카미씨는 고베 대지진이 일어나 후, 고베에 가셨었죠?


하루키: 네, 도보로 여정을 짜고, 고베 지역의 독자들을 위해 아시야와 고베시에서 에서 자선 낭독회를 열었어요.


롤렌드켈츠: 그런 공식적인 행사는 자주 하시나요?


하루키: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제가 자신이 없답니다. 답하고 싶지 않은 수 많은 질문에 응해야 하고 수많은 사인을 해야만 하거든요. 


롤렌드켈츠: 무라카미씨는 트라이애슬론에 도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뉴옥 마라톤과 보스턴 마라톤에도 여섯번이나 참가하셨고요. 어떻게 한 달에 3개의 이야기를 쓸 수 있나요? 체력적으로 관리를 하기 때문일까요?


하루키: 네 일종의 훈련이죠. 당신이 무언가에 집중을 해야만 한다면, 체력을 길러야 하고 근육을 긴장시켜야 해요. 대부분의 작가들은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나 당신이 소설을 계속 쓰기 위해서는 체력적으로도 강해져야만 한다는 걸 깨닫게 될거에요. 당신이 젊은 시절에는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에요. 그러나 나이가 들어갈 수록 체력적인 문제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죠. 그래서 훈련이 필요한 겁니다. 그래서 전 두번째 소설을 쓰면서 담배를 끊었답니다. 


롤렌드켈츠: 흡사 예수의 고난의 시대 같은걸요?


하루키: 그런가요? 전 잘 모르겠네요. 다시 살아난 이야기 그거 맞죠?


롤렌드켈츠: 무라카미씨는 항상 틀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아오신 것 같은데요. 특히 여기는 일본인데도 말이에요. 어떤 문학 클럽 활동도 하시지 않고, 인터뷰도 잘 하지 않으시고 자신이 원하는 여행을 하며 글을 쓰며 자신만의 길을 걷고 계신 것 같아요. 이런 삶의 방식이 지금의 일본 젊은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으신 것 같으신가요?


하루키: 그들은 변화하고 있어요. 그들은 이전 세대와는 다른 세대에요. 때때로 그들은 바보같은 일을 할 수도 있겠죠. 제가 그 시절 시부야 지역에 있을 때, 밤새 놀고 마시는 젊은이들의 바보 같은 모습을 많이 봤어요. 매우 어리석게도 말이에요. 그런데 그들은 또한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런데 반면에 그들은 그 노력을 왜 해야하는지에 대한 목적 의식은 결여 되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그러나 분명 그들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건 사실입니다. 다만, 지금 일본의 민족주의 아래에서는 그들도 위험한 상태에 놓여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 단지 작가일 뿐이에요. 때때로 저 스스로 아무런 힘이 없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강력한 민족주의 우경화의 조류 앞에서 말이죠. 하지만 그런 슬로건들은 매우 빠르게 바뀌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훨씬 더 오래 살아남죠. 좋은 이야기 일수록 큰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훈련의 과정을 통해 남게 되는거죠.  


롤렌드켈츠: 지금의 일본 젊은이들은 버블 경제 이후 세대인데요. 


하루키: 전 베이비 부머 시대에 태어났죠. 그런데 우리 세대의 자식들 세대인 지금의 세대는 무언가와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다고 보입니다. 전 그 젊은이들에게도 많은 편지를 받곤 하는데요. 그들은 제가 자신들의 아버지와 나이가 비슷하다고 얘기하곤 합니다. 그럼 저는 얘기하죠. "난 자네의 아버지가 아니야!"라고요. 그들은 왜 자신의 아버지 세대와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되었는지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어요. 그들은 제 아버지는 나를 이해 못하고 저도 아버지를 이해 못한다고 말해요. 그런데 그들의 아버지와 같은 세대인 제 소설은 읽습니다. 그리고는 저에게 편지를 보냈죠. 제 생각에 지금의 젊은이들은 그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것에 대해 자신이 없는 상황인 것 같아요. 일본도 그렇고 세계도 그렇고 많이 변했고, 많은 부분 패러다임이 이동했어요. 그들을 잡아주고 지탱시켜 줄 사회 시스템이나 가치 기준이 흐려진 것이죠. 


그런데 말이죠. 이런 상황은 제가 젊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제가 20대에 느낀 것을 지금의 젊은이들도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 학창시절에는 이상주의 속에서 반전 의식과 반문화가 각광을 받았죠. 저 역시도 그에 참여했고요. 그렇게 70년대에 접어들면서 그 모든게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전 그때 부터 왠만해선 믿지 않기로 했죠. 그리고 전 스스로 약속했어요. 그 어떤 운동이나 'ism'에 현혹되지 말자고요. 저와 함께했던 그들은 저를 실망시켰고, 저를 배신했죠. 그렇게 전 그 당시 세대에서 느낀 상실감을 써 내려가기 시작한거죠. 그것이 저의 시작이었어요. 


그리고 그 이후, 저는 제 발 아래 동굴 같은 어두운 지하의 위험한 세계로 내려가 신비한 등장인물들을 만나게 됩니다. 당신이 그곳으로 내려가면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거에요. 그러나 거기에 무언가 있다는 느낌은 받을 수 있습니다. 때때로 그것들을 볼 수 있을 수도 있어요. 양사나이나 원숭이 인간 같은 것들 말이죠. 그들은 아무말도 안할 거에요. 단지 당신 앞에 서 있을 뿐일 겁니다. 그게 전부에요. 그러나 그들은 무언가 확실하게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는 거에요. 당신은 그 메세지를 분석하기에는 부족할 수 있지만,  충분히 무언가 깨달음을 얻게 될 수도 있어요. 때론 그 느낌이 매우 불편할 수도 있죠. 그래도 그 메세지에 차분히 다가가야 해요. 왜냐하면 바로 그것이 잠재의식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이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되면 전 제가 이야기를 끌고 나갈 수 있는 특별하고 중요한 구조를 가지고 나올 수 있게 됩니다. 


버블경제 시대로 들어가면서 반문화의 정서가 사라지고 모두들 회사에 취업해 열심히 일했어요. 일본 경제는 정점을 찍게 되죠. 그리고는 버블경제가 붕괴하며 드라마틱하게 하락하고 말아요. 그렇게 되면서 버블경제의 자녀들이 그들 아버지 세대를 믿지 못하게 된 거 아닐까요. 이게 바로 아버지 세대를 잃은 것이고, 그 이유가 경제적인 부분이라는 것도 안타까운 일인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접근말고도 지금의 모든 일본 사회는 어떤 사회적인 가치 자체를 잃어버린 상황이라고 봅니다. 일본 사람들은 지난 50여년동안 정말 열심히 일만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그 노력들이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죠. 그리고 그 자녀세대들 또한 외로움을 느끼며 상실감을 함께 떠 안게 된거죠. 


롤렌드켈츠: 이런 상실의 세대에 던져진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무라카미씨의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하루키: 네 제 작품의 주인공들은 기본적으로 매우 외로운 인물들이에요. 그러나 그들 모두는 적어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지닌채, 그들의 욕구를 위해 살아남고 있어요. 이건 의미하는 바가 커요. 그들은 왜 내가 살아야 하고 내 목표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죠. 그런데 그들은 지금 계속해서 살아가고 있어요. 일체의 감정을 억제하는 스토아 학파 같다고 할까요. 때때로 이것은 거의 종교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당신은 이런 점을 삶의 의미를찾기 보다는 내 취향과 스타일을 존중하는 일종의 포스트 모더니즘 같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제 독자들은 때론 놀라울 정도로 스토이시즘 경향이 강한 독자가 많은 것 같아요. 잘 모르겠지만요. 


롤렌드켈츠: 그런 외로움 속에서 살지만, 결국 주인공들은 무언가 그 속에서 추구하는 바를 위해 움직입니다.


하루키: 이야기는 일종의 치유에요. 당신은 좋은 이야기를 말한다면 당신은 치유가 될거라고 믿어요. <태엽감는새>는 많은 캐릭터들이 이야기하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집대성하려는 시도에서 쓰여진 소설인데요. 그들 주인공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서로에게 들려주면서 서로 치유를 받습니다. 소설은 치유의 한 형태라고 믿어요. 당신이 다른 세계의 혹은 다른 지평선의 문을 두드릴 때, 사랑이 당신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좋은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것 바로 이것이 사랑의 한 표현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제가 계속 소설을 쓰는 이유이고요. 그를 통해 저 역시도 치유를 받으려고 노력한답니다. 


*정말 긴 인터뷰였습니다. 많은 부분이 이전 인터뷰와 연결되는 얘기들이지만, 다 읽으신 분들은 느끼셨겠지만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분노 (멍청이들이라는 표현 등)가 이미 오래전 부터 하루키의 의식과 작풍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는 점, 그 의식이 얼마나 강하고 깊은 수준까지 하루키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인터뷰가 아닌가 싶습니다. 선한, 좋은 이야기의 힘을 믿는 그의 자신감은 언제 들어도 힘이 나는 것 같네요. 다음 장편이 너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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