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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인터뷰

하루키 2009년 이스라엘 예디오트 신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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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소개해 드릴 인터뷰는 2009년 2월 예루살렘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이스라엘로 건너가 이스라엘 신문사인 예디오트지와 가진 인터뷰인데요. 예루살렘상 관련해서는 이제껏 수상 연설만 보아왔는데, 신문사와의 인터뷰를 발견해 매우 기뻤답니다. 이 인터뷰는 히브리어로만 되어있고요. 한 일본 블로거의 친구가 영어로 정리해 놓은 글을 제가 다시 옮겨 보았습니다. 하루키가 예루살렘상 수상자로 결정되고, 다시 한 번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무력 공격이 개시되면서, 일본의 단체인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생각하는 모임'에서 공식적으로 하루키의 수상 거부를 요청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답니다. 많은 고민 속에 하루키는 결국 이스라엘로 건너가기로 결심하고, 예루살렘 수상식장에서 어떤 정치이념이나 사상과는 철저하게 분리된 '개인'의 입장에서 이스라엘의 공격을 비판하는 유명한 연설을 하게됩니다. (하루키 예루살렘상 수상연설)


이 인터뷰는 수상식 전날 저녁 요코여사와 같이 묵고 있는 숙소에서 진행된 인터뷰입니다. 하루키의 말은 직접 인용으로 되어있고, 기자가 계속해서 서술을 하고 있는데요. 편의상 제 포스팅으로는 모두 대화를 나누는 직접 인용 형식으로 구성해보겠습니다.


photo: www.tiptoplifestyle.com



예디오트: 무라카미씨는 가자 지구 공격 뉴스와 영상을 보시고는 예루살렘상 수상을 거부하시기로 마음먹으셨다고 알고있습니다. 수차례 고민 끝에 어떻게든 이곳 예루살렘에 오시게 되었는데요.


하루키: 이스라엘에는 제 독자가 많이 있습니다.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저의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수상 통보를 받고 난 후,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공격하자 수상을 사퇴하려고 했습니다. TV뉴스를 통해 가자 지구의 파괴된 모습, 아이들, 희생자의 영상을 두 눈으로 봤죠. 너무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었어요. 노인, 여성, 심지어 아이들까지 말이에요. 물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공격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알고 있습니다. 반대로 가자지구에서도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이 발사된다는 것도 알고있고요. 그런데 이건 균형의 문제로 접근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요? 이스라엘은 거대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죠. 팔레스타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보복의 정도가 너무 심한 것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이건 저만의 생각이 아니라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도 같은 생각입니다.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보복, 폭력 행위만을 비난하고 있는 겁니다.


예디오트: 이곳에 오시기 2주전에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생각하는 모임>에서는 다음와 같은 성명을 냈는데요. 

"우리는 매우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가한 공격으로, 지구상의 1,300명의 고귀한 생명을 빼앗고, 500명의 중상자를 포함, 5,300명 이상의 부상자를 발생시키고 수많은 사람의 삶의 터전을 파괴한 전쟁 범죄를 저지른 직후의 시기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당신 이스라엘의 외무성을 포함한 예루살렘 도시 전체가 지원하는 공식적인 행사인 국제도서전에 참가해 예루살렘상을 수상한다는 사회적, 정치적 의미를 심각하게 재고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또한 팔레스타인 전체가 극단적인 인종차별주의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의 피해자이며, 그들의 개인의 자유가 이스라엘에 의해 철저하게 핍박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상의 수여 이유 중 하나인 사회에서의 개인의 자유의 존엄성에 대한 공헌을 기리는 것은 더욱 우려스럽다."   


하루키: 그들은 제가 예루살렘상 수상을 사퇴했으면 매우 기뻐했을 것이고, 수상을 사퇴한 저를 향해 박수를 보내는 것으로 상황을 마무리 짓는 것이 저에게 있어서도 가장 쉬운 선택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결국 이곳 예루살렘에 오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작가입니다. 작가의 역할은 인간의 영혼에 대해 쓸 수 있지만, 정치적 과제 역시도 그 인간 또는 그 영혼이 사는 세계의 일부임은 거부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수상을 거부하는 것은 부정적인 메세지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안전하고 편안한 제 내면 속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죠. 여기 이스라엘에는 많은 독자들이 있습니다. 이곳에 와서 직접 얼굴을 보고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저의 의무입니다. 또한 작가로서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사실 전 상 자체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은 한낱 종이와 메달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독자가 없다면, 아무리 많은 상을 받는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독자들은 제가 계속해서 쓸 수 있게 만들어주는 파트너이며, 전 그 독자들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표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디오트: 여정이 꽤 피곤하셨을 것 같습니다. 오늘 도서전 행사도 있었고요. 내일 예루살렘상을 수상하시는데요.


하루키: 네 수상 연설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독자들을 향해 꼭 제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말하자고 다짐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디오트: 일본 NGO 단체의 수상 거부 요청에도 예루살렘에 오셨는데요. 앞으로의 불안감은 없으신지요.


하루키: 일본에서는 제가 시상식에 참석하면, 불매 운동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있는 걸로 알고있는데요. 그런 일은 생기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예디오트: 예루살렘상 수상 이유 중 큰 맥락이 '인간에 대한 애정과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높은 예술적 완성도를 보인 것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수상이 결정되었는데요. 이스라엘에서는 전체 작품의 반 정도가 번역되었고, <해변의 카프카>는 계속해서 베스트셀러입니다. 작품을 읽고 있으면 마치 만화 영화나 컴퓨터 게임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받을 수 있어요. 무라카미씨는 평범하지만은 않은 가정 환경에서 태어나신 걸까요? 


하루키: 부모님은 일본 문학의 교사였어요. 언제나 두 분이서 일본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죠. 전 그게 정말 싫었어요. 그렇게 저는 체호프, 도스토예프스키, 플로베르, 디킨스 등 서양 문학을 일본어로 번역한 소설을 읽기 시작했죠.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미국 문학과 서스펜스를 바탕으로 한 탐정 소설에 빠졌죠.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가지고 엘비스와 비틀즈를 듣는 순간은 매우 흥분해하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2차세계대전의 참전한 경험과 어머니는 미군의 폭격으로 집이 불에 탔다는 등의 얘기를 들려주시도 했죠. 


전 외동아들이었기 때문에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저라는 팽팽한 삼각관계 속에서 생활하고 있었어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상태였다랄까요. 유대인도 마찬가지겠지만, 일본에서는 특히 가족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만, 제 소설 속에서 가족은 그리 안심할 수 있는 장소로는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예디오트: 대학 시절 만난 요코여사와 재즈카페를 열고 가게 이름을 키우던 고양이 피터캣에서 따오셨죠. 고양이는 무라카미씨가 가장 사랑하는 동물이고, 소설 속에서는 이야기의 전조를 느끼게 해주는 묘한 판타지적인 동물로 자주 등장합니다. <해변의 카프카>에서는 인간과 말하는 고양이가 등장하기도 하죠. 


하루키: 제가 소설을 쓰는 행위에는 분명히 재즈를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작품을 쓰면서도 재즈의 리듬과 커팅 오프, 그리고 즉흥 연주가 녹아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제 자신은 리듬 감각이 없다면 소설을 쓰기 어렵습니다. 전 단지 재즈 처럼 즉흥적으로 글을 써내려가고, 문장이 서로 교차하고 문단을 만들어가면서 그렇게 흘러가버립니다. 미리 스토리와 구성을 생각해 두고 이야기를 쓰지 않아요. 앞으로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는 상황이죠. 


예디오트: 작품 속에서 주인공들이 재즈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재즈 연주곡을 차례대로 바꿔나가기도 합니다. 실제로 무라카미씨는 레코드 수집가로도 알려져있죠. 만약 무라카미씨 집에 불이나서 레코드 3장만 가져나가야 한다면 어떤 음반을 고르시겠어요?


하루키: (힘없이 손을 들면서) 세 장을 선택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해요. 전 고양이를 먼저 데리고 나가겠어요. 


예디오트: 무라카미씨는 좀 처럼 인터뷰에 응하지 않으시죠?


하루키: 네 인터뷰를 좋아하지 않아요. 재즈 카페를 경영한느 7년 동안 매일 밤 수 많은 손님들과 평생에 걸쳐 해야 할 이야기를 다 해버렸다고나 할까요. 카페를 경영하는 동안 몹시 지쳐있었죠. 제가 얘기하고 싶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야기하지 않기로 결심했답니다. 게다가 저는 작가입니다. 작가는 작품과 글을 쓰는 것으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디오트: 지금까지 이스라엘 작가와 만나신적이나 작품을 읽으신적이 있으신가요?


하루키: 아니오, 혹시 저에게 추천해주실 만한 책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디오트: 데뷔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쓰시고, 전업 작가가 되시고 일본을 떠나 꽤 오래 유럽, 미국 생활을 하셨죠.  


하루키: 데뷔 이후 일본 사회는 저에게 일종의 무거운 압박이었어요. 너무 단일적이고 1억 2천만명이 살고 있는 좁은 사회였죠. 그 속에서 저는 매우 이질적이었을 겁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그런 개인의 개성의 유지를 위해 싸워나가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예디오트: 서양 독자들과 일본 독자들의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하루키: 그럼요. 제가 쓰는 소설은 초현실주의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일본과 아시아에서는 왜 하루키의 작품 속에서는 이렇게도 이상한 고양이가 말하거나 하늘에서 물고기가 떨어지는지에 대해 큰 의문을 품지 않고 이야기 속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 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서양 독자들은 자세하게 분석하기를 원하죠. 이것이 바로 서양에서는 제 작품이 포스트모던이나 매직리얼리즘의 작품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예디오트: 작가인 무라카미씨는 계속 나이를 먹어가지만,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그렇지 않은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하루키: 첫 작품을 쓸 때 제가 30살이었고, 주인공 '나'는 20살이었죠. 전 올 1월 60세가 되었지만, 아직 젊은 주인공을 쓰는 것을 선호합니다. <해변의 카프카>를 쓸 때의 나이는 50살을 막 지난 시점이었는데, 주인공은 15살의 카프카 소년의 눈을 통해 사회를 보고 그가 받았을 느낌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 정말 아슬아슬했다는 느낌도 있답니다. 재작년에는 <애프터 다크>를 썼는데, 주인공은 18살의 소녀이죠. 전 18세의 여자도 될 수 있답니다. 일반적으로 독자는 작가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지만, 매우 예외적으로 저에게는 젊은 독자가 많이 때문에, 전 이 점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답니다. 


예디오트: 무라카미씨와 요코여사 사이에는 자녀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루키: 왜인지 궁금하신가요? 그 문제에 대해 얘기하자면 길어집니다. 전 글을 쓰면서 세계 여러 곳을 옮겨다니며 바쁜 와중에 이렇게 세월이 지나가 버렸답니다. 저에게는 독자들만 있으면 되요. 만약 아이가 있었다면, 제 작품을 읽은 젊은 사람들이 그들의 부모에게 무라카미 하루키가 친구 아버지라는 것을 알고 저희집에 놀라가고 싶다고 하는 일들이 일어날 것 같아요. 난처한 일이긴 한데, 실제로 그런일이 일어난다면, 저흰 아마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집으로 초대하게 될 것 만 같아요.


예디오트: 요코여사는 무라카미씨 작품의 최초의 독자이자 편집자이시죠?


하루키: 그녀는 매우 엄격한 사람으로, 저에게 많은 지적을 한답니다. 


예디오트: 무라카미씨의 소설 속 많은 주인공들은 무라카미씨 자신의 감정, 성격과 어느 정도 일치한다고 생각하시나요?


하루키: 제 초기 작품들의 주인공들은 모두 고독하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와 함께 타인과의 인간관계를 필요로 하게 변해왔다고 생각해요.


예디오트: 무라카미씨는 철저한 개인 관리로 유명하신데요. 새벽 4시에 일어나 정해진 양의 작업과 운동을 하고 일찍 잠에 드시죠. 마라톤도 1년에 한 번 꼭 참가하시고요. 최고기록은 3시간 27분이네요.


하루키: 나이가 들면서 마라톤 기록은 점점 안 좋아지는데요. 그런데 트라이애슬론의 경우엔 오히려 나이가 드니 더 좋은 기록이 나오더라고요.


예디오트: 달리기를 계속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하루키: 전 작품을 쓸 때는 정신, 의식의 깊은 영역까지 즉 무의식의 영역까지 내려가게 된답니다. 그곳은 암흑의 장소이죠. 만약 저에게 그 암흑을 견딜 충분한 체력이 없다면 전 위험한 상태에 빠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전 쓰는 행위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고 있는데 그건 분명히 깨어 있는 상태이지만, 꿈을 꾸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어요. 2001년 9.11이후 세계는 계속해서, 소설 속에서 제가 만들어낸 세계로 접근해 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초현실적이고 혼란스럽고 그리고 위험한 상태말이죠. 전 지금도 비행기가 무역센터 빌딩으로 자폭하는 영상을 보면 아직도 현실이라고 믿기 힘들답니다. 제가 소설 속에서 그려온 것들이 비관주의적이고 세상의 끝이었다고 하지만, 그런 것들이 현실에서 일어난 것이죠. 지금의 현실세계는 오히려 허구 같고 가상 세계인 것만 같고 제가 소설 속에서 그린 가장 끔찍한 악몽과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스라엘에서 벌어지는 일과 같이 점점 악화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것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진짜 세계라는 것이 아직도 믿을 수 없답니다.


예디오트: 역대 예루살렘상을 수상한 작가 옥타비오 파스, V.S.나이폴, J.M.코찌는 노벨상까지 수상하였는데요, 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하루키: (얼굴을 붉히며) 전 이제 60세입니다. 노벨상을 수상하게 될지 어떨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상을 받을지에 대해 생각하기 보다는 얼마나 많은 작품을 쓸 수 있을까를 생각한답니다. 전 도스토예프스키의 열렬한 팬인데요. 그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썼을 때가, 60세였죠. 전 일본판 <카라마조프>를 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 목표를 위해 글쓰기와 달리기를 동시에 시작했고, 제 인생에서 둘 중 하나가 빠져버리면 무라카미라는 작가는 없을 겁니다. 그렇기때문에 전 목표를 위해 70세에도 80세에도 계속해서 쓰고 달릴 것입니다.


*하루키에게 궁금한 것들은 세계 어느 독자나 기자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질문이 기존의 내용과 유사하지만, 제가 본 인터뷰 중에서 자녀에 대한 질문을 던진 두 번째 인터뷰 기사였다는 점은 새로웠고, 마지막 글쓰기와 달리기의 확고한 의지는 지금까지의 어느 인터뷰 보다 강하게 와 닿네요.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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