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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2008년 스웨덴 일간지 DN 인터뷰

category 하루키 인터뷰 2016. 6. 19. 17:20

이번에 소개해드릴 인터뷰는 2008년 하루키가 <1Q84> 1,2권을 출간하기 전 도쿄 오모테산도의 그의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입니다. 인터뷰어는 스웨덴 일간지 DN입니다. 인터뷰를 한 2008년 가을 스웨덴에서 <스푸트니크의 연인>이 번역 출간될 예정이었네요. 그에 맞춘 인터뷰인 것 같습니다. 이 인터뷰는 당시 스웨덴 일간지 지면에 특집으로 실렸던 기사이기도 합니다. 하루키의 말은 직접 인용으로 되어있고, 인터뷰어는 서술로 되어있는데요. 포스팅 편의상 모두 직접 인용으로 변형하여 포스팅할게요.


사진출처: http://hokuo.blogspot.kr/2008/05/dn.html



도스토예프스키를 꿈꾸다.


- 하루키 2008년 스웨덴일간지 DN인터뷰 (원문 클릭) -


DN: 무라카미씨는 야구장에서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하셨다고 하죠.


하루키: 네 당시 어떤 이야기의 조각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순간 (그 조각을 가지고) 소설이라는 긴 이야기로 들어갈 수 있는 디테일한 것이 포함되어 있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DN: 그 이야기가 무라카미씨의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되었고, 이후 전업 작가가 되셨죠. 글을 쓰기 위한 이미지, 문장, 느낌 같은 것들이 한 번에 잡혔다라는 느낌으로 봐도 될까요?


하루키: 제가 <해변의 카프카>를 쓰기 시작했을 때, 제 앞에는 15살짜리 소년이 있었어요. 14살도 16살도 아닌 15살 소년 말이에요. 그 소년은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 낯선 신비로운 땅으로 갑니다. 그냥 이렇게 작은 사실들로 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요. 이 사실이 그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제가 알고 있는 줄거리의 전부였어요. 15살을 맞이하면서 소년이 떠납니다. 15살 전이었다면 너무 빨랐을 거에요. 반대로 16살에 떠났다면 그것도 역시 너무 늦은 일이었을겁니다.


DN: 호놀룰루에서 돌아오신지 며칠 안되셨다고 들었습니다. 


하루키: 전 호놀룰루에 가면 거의 글을 쓰기 위해 갑니다. 그곳에서는 누구도 우리를 찾을 수 없죠. 가끔 신문사와 인터뷰를 하는 일도 생기지만, 거의 드물답니다. 전 그 어떤 작가와도 만나서 문학에 대한 토론을 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절 보고 따분하고 완고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죠. 하지만 제가 원하는 단 한가지는 바로 소설을 쓰는 거에요. 다른 건 없답니다. 


DN: 무라카미씨는 아내 요코여사와 여행을 다니고, 해외에서 체류하면서 작품을 집필하기도 하셨습니다. 주인공들은 무라카미씨의 나이와는 상관없이 스파게티를 만들고 REM을 듣고 그 주인공들이 일본에 있다는 걸 실감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죠. 이와의 연관성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반대로 무라카미씨는 일본 소설은 잘 읽지 않으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일본 작가 중에는 미시마 유키오, 가와바타 야스나리 같은 유명한 작가가 있잖아요. 


하루키: 솔직히 미시마 유키오는 읽지 못했어요. 읽으려고 시도는 했지만, 실패했죠. 그는 제가 읽고 싶은 작가와는 다른 유형의 작가에요. 전 그의 정치적 견해를 받아들이기가 어렵더군요.


DN: 무라카미씨의 남자 주인공들은 결점이 보이지 않고 게다가 유머 감각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그들은 스포츠나 레코드, 현재의 정치 흐름과 문학 등에 대한 주제도 쉽게 이야기 할 수 있죠. 무라카미씨는 원래 연극영화 전공을 하고 소설 보다는 오히려 극영화 쪽에 관심이 더 많으셨죠?


하루키: 안토니오니, 고다르, 파솔리니..당시 영화의 세계에 정말 푹 빠져있었어요. 전 그 영화의 역사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랄까요. 린치는 정말이지! <트윈픽스>를 매일 밤 애타게 기다렸어요. 그의 스토리라인과 연출 스타일은 정말 특이하고 또 예측불가능한 것이었죠. <트윈픽스>를 처음 보았을 때, 무엇인지 정확히 얘기는 할 수 없었지만, 데이빗 린치는 정말 저와 많이 가깝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의 이야기에 강한 친근감을 느꼈거든요. 그 누구도 그의 이야기 세계가 왜 그렇게 기이하면서 아름다운지 설명할 수 없을거에요.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아요. 그건 정말 대단해요. 전 그렇게 생각한답니다. 


DN: 무라카미씨의 작품 속에서는 유령과 영매와 같은 등장인물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곤 합니다. 사람들이 잠에 든 순간 그 세계로 들어가게 되죠. <해변의 카프카>에서 카프카 소년의 꿈 속에서 나타나는 사에키상 같은 존재말이에요. 


하루키: 일본에서는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과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 혹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을 구분하는 것이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영혼과 신들은 명백한 방식으로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죠. 내가 소설을 쓸 때 항상 반대편에서 무언가 저에게 다가온답니다. 이렇게 다른 세계와의 접촉 없이는 저는 소설을 쓸 수 없어요. 


DN: 무라카미씨는 1995년 고베 대지진으로 부모님이 교토로 다시 이사를 간 시기에 일본으로 돌아오셨고, 같은 해 일어난 도쿄 사린 테러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작업을 논픽션 <언더그라운드>로 펴내기도 하셨고요. 70명 가까이의 사람들을 인터뷰하셨네요.


하루키: 그분들에 의해 일본이라는 나라에 관해 제가 몰랐던 이야기들을 많이 알 수 있게 되었어요. 그들은 사린 테러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신 그들의 삶, 그들의 아이들, 그들의 꿈, 사랑, 하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답니다. 전 이 작업을 시작했을 때는 단지, 그 시간 그 지하철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가 궁금해서였어요. 그런데 전 그들의 삶에 대해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전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당시 사건에 대해서가 아니라 점점 오로지 그 사람들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했죠. 그들도 놀랐을거에요. 근 1년간 인터뷰는 계속 되었어요. 그 기간 동안 제 머릿속에는 그들의 목소리로 가득했죠.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제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을 위해 글을 써나갑니다.


DN: 무라카미씨의 <언더그라운드> 작업은 안톤 체호프의 <사할린 섬>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체호프는 모스크바의 문학계에 피로감을 느껴 사할린을 여행하고, 감옥도 방문 리스트에 포함되어있기도하고요. 그 기록을 3년여간 정리하여 책을 내죠. 


하루키: 당신이 체호프의 <사할린 섬>을 언급하니까 뭐가매우 놀랍네요. 체호프와 <사할린 섬>은 제가 지금 집필 중인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거든요! (역주: 인터뷰 시점에서 이듬해에 출간될 <1Q84>를 얘기하는 것 같죠. 작품 속에 체호프가 중요한 모티브로 나오게됩니다.) 그것과는 별도로 체호프의 작품은 저에게 매우 중요해요. 저 역시 사할린을 여행하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러시아 당국에 의해서 여행이 꽤나 제한적이었던 기억이 남아있네요. 전 발자크나 푸쉬킨, 모차르트와 같은 사람이 아니에요. 전 천재가 아니라는 말이에요. 발자크는 자신의 결과물을 위해 한 2인치 정도만 파면 되겠지만, 저는 그렇지 않아요. 전 매우 깊게 땅을 파야할거에요. 한 50미터는 파야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전 정말 훌륭한 굴착기랍니다. 땅을 파는 것을 귀찮아하지 않죠. 저의 무기는 인내심이 좋다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사진출처: http://hokuo.blogspot.kr/2008/05/dn.html



DN: 무라카미씨는 정말 열심히 훈련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루키: 네 맞아요. 훈련을 계속해 나가고 있어요. 혹은 당신은 저를 보고 인내심이 좋다고도 말할 수 있을 거에요. 전 일을 하거나 무언가를 참고 견디거나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답니다.  


DN: 그 기다림은 얼마나 오래까지 가능할까요?


하루키: 글세요. 오히려 어쩌면 2-30분 일지도 모르겠군요. (웃음) 


DN: 무라카미씨의 부인이신 요코여사는 무라카미씨의 첫 독자이자 혹독한 비평가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루키: 네 예를들어, 제가 긴 시간 작업을 어느 정도 마무리해서, 그녀에게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녀는 이건 당신이 한 것 같지 않아요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게되면, 전 순간 화가나서 그길로 문을 닫아버리고 제 방으로 들어가버리죠. 그리곤 잠시 그녀가 한 말을 곱씹어 봐요. 그러면 십중팔구 그녀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그녀는 항상 옳아요. 그럼 다시 수정 작업을 하게되고 그녀는 또 제 작업을 읽고 감상을 얘기하죠. 마치 레코드판들을 카테고리별로 정리하는 것과 비슷하다랄까요.


DN: 무라카미씨는 가파르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로서 성장하셨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러는 동안 빠른 성공에 일정 부분 자만에 빠지게 되는 취약점에 노출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것을 요코여사가 막아주었다고도 볼 수 있을것 같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키: 전 단 한번도 저와 제 작품을 부풀려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녀는 항상 절 지구의 땅 끝까지 내려놓곤 합니다. 그녀는 태생적인 뒷자석 드라이버에요.(Natural Born backseat driver)


DN: 무라카미씨는 번역가로도 활동 중이신데요. 레이먼드 카버, 존 어빙, 스콧피츠제럴드, 트루먼 카포티 등의 작가들을 번역하셨죠.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은 베스트셀러에도 오르기도 했네요. 


하루키: 제가 장편 소설 작업을 하는 가운데, 무언가 어려움이 찾아 오게 되면, 전 번역 작업을 합니다. 다른 작가들의 텍스트를 가만히 읽고 일본어로 옮기는 작업을 하는 동안 차분해지는 느낌을 갖게 되죠. 진정이 된다랄까요. 초기 소설을 쓸 때는, 제가 직접 영어로 문장을 써내려가고 다시 일본어로 번역하는 과정을 저 스스로 진행한 적도 있기도 합니다. (역주: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처음에는 영어로 썼다는 일화는 유명하죠.) 


DN: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하루키가 먼저 레코드에 관해 이야기하자고 제안)


하루키: 레코드에 대해 이야기 해 볼까요? 전 레코드 수집가랍니다. 몇 년 전 스톡홀름에 있게되었는데요. 전 도시의 모든 레코드샵을 다 방문했었답니다. 정말 엄청났죠. 3일간 정말 눈에 불을 키고 다녔었는데요. 무엇보다 스웨덴의 50년대 재즈 레코드를 구했던 것이 가장 기뻤답니다. 집으로 가서 바로 들었죠. Berndt Egerbladh, Åke Persson, Jan Johansson의 앨범이었죠.

 

DN: 무라카미씨에게 있어 음악은 정말 중요한 요소인 것 같습니다. 음악은 소년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시점의 어떤 단계이기도 했을까요? 무라카미씨는 2007년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란 에세이에서 '원칙적으로 나의 모든 작업은 음악에서 나온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음악에 집착하지 않았다면 작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도 하셨고요. 작가가 되기전 무라카미씨는 고양이 피터와 8년 동안 재즈바를 운영하기도하셨죠.


하루키: 요즘 전 구조화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작가는 해로운 경험을 해도 될 수 있을 만큼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매우 이상한 사람이 될 수 있을 만큼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작가는 말이죠. 


DN: 무라카미씨는 또한 열렬한 러너이기도 하시죠. 달리지 않고도 소설을 쓰실 수 있으실까요?


하루키: 그럼 전 지방을 얻게 되겠죠.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작가 -챈들러,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 모두는 알콜 중독이었네요. 전 1983년에 러닝을 시작했어요. 그때 부터 달리기와 글쓰기의 상호 연관성이 더욱 깊어졌죠. 전 매일 5-6시간 정도는 컴퓨터 앞에서 집중할 수 있어야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체력을 기르기 위해 매일 달리기나 수영을 해야하죠. 옛말에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말이 있죠. 그런데 전 좀 다릅니다. 저는 소설을 쓰는 동안의 건강하지 않은 정신을 위해서 건강한 신체가 필요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 어떤 유흥도 즐기지 않아요. 아침 4시에 일어나서 밤 9시에 잠자리에 듭니다. 지인이 극장이나 파티에 가자고 해도 전 9시에 자야하기 때문에 미안하지만 못간다고 하죠. 그래서 요즘은 아무도 저를 초대하지 않아요. 전 파티나 리셉션에 갈 수 없는 운명입니다.  


DN: 요코여사도 새벽 4시에 일어나시나요?


하루키: 네. 그건 우리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우리는 같은 리듬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가 재즈클럽을 운영할 때, 영업을 종료하고 새벽 3-4시에 잠에 들어 정오에 일어나는 일이 반복되었죠. 우리는 그런 생활 리듬이 쉽지 않았어요. 어렸을 때는, 자정 이후에는 무언가 흥미로운 일들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차 있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자정 이후에는 아무것도 흥미있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어요. 


DN: 죽음이라는 것이 무라카미씨의 초기작과 현재에서 의미하는 바가 많이 달라졌을까요? 


하루키: 죽음은 단순한 논리적인 진리로 저에게 존재해왔어요. 삶이 이 쪽에 있다면 죽음은 다른 쪽에 있죠. 전 여기에 있어요. 거기가 아니고요.  


DN: 그런데, <노르웨이의 숲>에서 키즈키가 죽은 그날 밤, 와타나베는 삶의 다른 측면으로 죽음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죽음은 항상 자신 안에 존재했고, 거기에 있어왔다라는 식의 표현이 있습니다. 


하루키: 제 친구 중 몇몇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어요. 전 때때로 그 친구들을 생각하면, 이 세상에서 살아남아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그래서 전 그들이 이어가지 못한 삶을 살아가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자살은 때때로 매우 아름다운 자발적 행위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DN: 무라카미씨는 죽음이 두렵지 않으신가요?


하루키: 젊은 시절에는 제가 영원히 살면서 수 천 권의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그것은 아니죠. 전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하지만 제가 목표로 하고 있는 특정한 혹은 특별한 작품을 쓰기 전에 죽는 것은 두렵습니다. 


전 이제 곧 도스토예프스키가 죽은 나이가 된답니다. 그는 60세에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내고, 그 이듬해에 폐출혈로 세상을 떠났죠. 그것은 즉 그는 죽기 직전까지 최선을 다해 글을 썼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환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대부분의 작가들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약해지고 또 약해지게 됩니다. 많은 작가들이 더이상 쓰지 못하게 되죠.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는 점점 더 좋아졌고, 죽기 직전에 최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죠. 전 이게 작가로서 매우 이상적인 삶이라고 생각해요.


*이상,  하루키의 2008년 스웨덴 일간지 DN과의 인터뷰였습니다. 기존 인터뷰에서는 보지 못한 내용들이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이 인터뷰를 할 당시에는 <1Q84>가 나오기 직전이었는데요. 하루키가 얘기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아직도 하루키 안에서 진행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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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 2016.06.23 10:34

    꾸준히 올려주시는 인터뷰 덕분에 하루키를 놓을수 없네요. 언제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