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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독일 유력 일간지 디 벨트지 (우리말로 세계)에서 수여하는 문학상의 2014년 수상자로 선정되어, 지난 7일 수상식과 연설을 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특별히 하루키의 팬인 미국 가수 패티 스미스의 공연도 있었네요. 이 상을 수상하면서 벨트지 편집자가 일본으로 건너가 진행한 인터뷰도 정리 중이었는데, 인터뷰 기사가 시상식 며칠 전에 공개되어, 별도의 수상 세레모니는 없는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하루키가 받아 본 수상식 중 가장 이벤트(?)가 많은 시상식으로 진행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메세지는 묵직하게 전해져 왔는데요. 그 전문을 벨트지 사이트에서 인용해 번역해 보았습니다.


Foto: Dominik Butzmann


상상의 힘을 믿고 벽에 맞서라

무라카미 하루키 - 독일 디벨트 문학상 수상 연설(원문링크)


를린 장벽이 붕괴된지도 사반세기가 지났습니다. 제가 처음 베를린에 방문했던 1983년에는 도시가 숨이 막혀버릴 것 같은 벽으로 동과 서로 나뉘어 있었죠. 여행자는 동베를린에 방문할 수 있었지만, 사전에 몇 가지를 체크하고 검문소를 통과할 수 있었고, 당일 자정까지 다시 서베를린으로 돌아와야만 했죠. 마치 무도회에간 신데렐라 처럼요. 그때 저는 아내와 지인들과 함께 동베를린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마적>을 봤어요. 음악은 물론 오페라 하우스 역시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오페라를 감상하고 자정이 가까워오자 서둘러서 다시 검문소로 뛰어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도착했었고, 제가 봤던 <마적> 중에 가장 스릴 넘치게 봤던 공연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다음 베를린에 다시 왔을 때는 동서를 막아서던 벽이 사라지고 세계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것 처럼 느껴졌답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가졌던 안도감은 아직도 제 가슴 속에 남아있습니다.  "냉전이 끝났구나"라고 생갔했죠. 세계는 점점 더 평화를 향해 나아갈 것이고, 거짓이 점철된 세계 속에서 희망을 보게 해줄 것이라고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긍정적인 생각과 조짐들은 오래가지 못한채 단명하고 말았습니다. 중동 전쟁과 발칸반도 전쟁이 이어졌고, 세계 곳곳에서는 테러 공격이 계속됐죠. 2001년에는 뉴욕의 세계 무역 센터가 공격을 받고 우리의 아름다운 희망을 지닌 채 무너져 버렸습니다.  


가인 저에게 있어서 '벽 wall'이란 것은 항상 중요한 소재로 작용해 왔습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란 작품에서는 한 번들어가면, 두 번 다시 나올 수 없는 높은 벽에 둘러 쌓인 (의식의) 세계를 그렸고, <태엽감는새>의 주인공은 우물 바닥에 앉아 두꺼운 돌벽을 통해 다른 세계로 갑니다. 2009년 예루살렘상 수락 연설에서는 '벽과 달걀'이라는 제목의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거대한 시스템인 벽에 부딪혀 깨지는 개인을 달걀에 비유했습니다. 그 벽 앞에선 우리들은 얼마나 무력한지 절실히 느끼고 있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연설을 하고 있는 순간에도 가자 지역에서는 격렬한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게 벽이란 것은 사람들이 각자 지니고 있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각자를 존중하는 의미로서의 각각의 사람들을 구분하는 것일 뿐입니다. 어떤 경우에 벽은 우리를 지켜주기도 하죠. 방패, 보호막 같은 역할로요. 그런데 벽으로 부터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타인을 배제해야만 할 경우도 있습니다. 이게 벽의 논리입니다. 벽은 다른 논리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은 채 때때로 폭력을 동반하여, 단단하고 견고한 시스템이 되어 버립니다. 그 벽의 논리가 가장 잘 드러났던 것 중 하나가 베를린 장벽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로 우리는 하나의 벽을 무너뜨리고는 다시 다른 벽을 쌓는 걸 반복합니다. 이것은 물리적인 힘에 의해서 실제 벽을 무너뜨릴 수도, 눈에 보이지 않는 의식에 국한된 벽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벽은 우리들이 올라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것도 있고 반대로 우리의 영역에 타인을 금지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벽의 논리를 가장 잘 보여주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겁니다. 세계는 바뀔 것이고,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러나 어디선가에서는 예상치 못한 벽이 다시 생겨나고 있습니다. 민족의 벽, 종교의 벽, 편협/불관용의 벽, 근본주의의 벽, 탐욕과 두려움의 벽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이런 벽들이 없이는 못 사는것일까요?


가에게 있어서 벽이란 것은 맞서서 싸워 무너뜨리지 않으면 안되는 장애물과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 소설가들은 이야기를 쓰면서 의식과 무의식의 벽을 뚫고 지나다니며, 반대쪽에 있는 세계를 탐험하고 자신들의 세계로 다시 돌아와 반대쪽 세계에서 본 것들을 이야기로 승화시켜 나가게 됩니다. 이것이 소설가의 일입니다. 독자가 어떤 이야기를 읽고 감동을 받았다면 그 독자는 작가와 함께 그 벽을 뚫고 나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에도 역시 읽는 장소는 변함 없을 겁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도 그대로 일테죠. 그리고 책을 읽었다고 해서 가지고 있던 어떤 문제가 확실하게 해결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우리는 반대편의 세계 어딘가에 다녀온 듯한 느낌이 듭니다. 정말 짧은 거리 10cm나 20cm 정도일 뿐이라도 처음 장소와는 다른 곳에 있는 것 같은 느낌말이죠. 누구나 경험해 봤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을 읽는 행위에는 무엇보다 그런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유로운 느낌을 지닌채, 벽을 뚫고 어디로든 갈 수 있다고 믿는 그런 실제적인 감각입니다. 저는 그런 감각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며 글을 써오고 있습니다. 독자들로 하여금 그런 감각을 지니고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의 가장 큰 관심사 입니다. 되도록이면 그런 글을 많이 쓰고, 그런 멋진 경험을 가능한 한 많은 독자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물론, 지금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은 우리 소설가가 추구하는 공통의 의식 형성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문학의 힘만으로는 그런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고 얘기하는게 정확할 것 같습니다.


레논이 노래했듯이 우리에게는 상상(imagine)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폭력적이고 냉소적인 현실 앞에서는 너무나 약한 존재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상상의 힘이 지금의 세계와는 다른 곳으로 우리를 이끌 것임은 분명합니다. 상상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순간의 절망감을 이겨내어 계속해서 노래하고 이야기를 만들고 전할 수 있게 해줍니다. 벽에 둘러 쌓인 현실 앞에 놓여있더라도 벽이 없는, 사라진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상상하던 것이 바로 우리의 눈 앞에 현실이 되어 나타날 것입니다. 전 이런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힘을 믿습니다. 2014년 이곳 베를린은 다시 한 번 우리가 이런 벽을 뛰어넘는 상상의 날개를 펴기에 매우 적합한 장소가 아닐까 합니다. fin.


이상 하루키의 벨트지 문학상 수상 연설이었습니다. 벨트지 사이트의 전문을 번역한 것인데, 일부에서 전해진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엇던) 홍콩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응원하는 직접적인 메세지는 전문에 없었습니다. 공식적 연설문이 아닌 시상식에서 한 말인 것 같기도 합니다만, 연설 전문을 소개하기 전 나온 다른 기사에서 편집자가 '그의 연설 마지막 문장은 홍콩의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메세지가 아닐까'란 식의 논평이 있었는데 이것을 하루키가 직접 언급한 것 처럼 기사가 나간 것 같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홍콩 시민들에게 하루키의 예루살렘상 수상 연설 '벽과 달걀'은 분명히 영감을 주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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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 2014.11.10 13:16

    인터뷰 번역에 늘 감사드립니다. 여전히, 늘 같은 이야기지만 늘 새롭고 저릿하네요. 다시 감사드립니다.
    (인터뷰 내용 링크했습니다.)

    • finding-haruki.com 2014.11.11 12:53 신고

      항상 부족한 번역 읽어주셔 저야말로 감사드립니다. 하루키의 다음 작품은 정말 기대가 되요. 올해 집필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계속 응원합니다 ^^

  2. 무명 2014.12.01 23:05

    아 나이들수록 멋있어지시네요 생각하시는것도 물론이구요. 좋은자료 감사드려요 ^^

  3. 하루한끼 2016.01.03 09:12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지 반세기가 지났다니... 사반세기겠죠.

    • finding-haruki.com 2016.01.03 10:05 신고

      안녕하세요. 말씀주신대로 25년 사반세기가 맞네요. 독일어 번역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습니다. 말씀 감사드립니다! 본문은 정정할게요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