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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를 미국에 처음 소개한 뉴요커지에 하루키의 단편이 종종 실리곤 하는데요. 이번에는 신작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실린 <셰에레자드>가 실리면서 이 작품과 관련된 인터뷰도 동시에 공개됐습니다. 메일 인터뷰로 진행한 듯 보입니다. 작품을 읽기 전에 혹은 읽으신 후 하루키의 인터뷰를 읽어 보시면 작품을 이해하는데 더 좋겠죠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일단 시작하시죠!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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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단편 <셰에레자드> 뉴요커 게재 기념 인터뷰

2014.10.6 뉴요커지 원문 클릭


뉴요커: 소설 속에서 하바라는 1주에 두 번 '하우스'에 오는 여성과 그의 성적 욕구를 해결합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다 읽은 독자들은 도대체 왜 하바라는 집을 떠나지 못하는지 알지 못하죠. 무라카미씨는 그 이유를 알고 계신가요?


하루키: 미안하지만, 저 역시도 그 두 주인공이 놓인 상황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알지 못해요. 물론, 저의 몇 가지 생각들이 이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은 분명하죠. 독자들도 또한 저와 마찬가지의 상황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는데, 전 일부러 이야기 속에서 그런 궁금증들을 남기려고 노력하지는 않아요. 전 만약 독자들이 저와 같이 추측, 가설과 함께 따라오는 그들의 생각을 쌓아간다면 작가와 독자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중요한 지점에 같이 서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것은 도대체 하바라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가 아니라,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뉴요커: 하바라가 그녀에게 붙여준 별명인 셰에레자드는 그와 섹스를 한 후 신기한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 끝까지 얘기를 해주지 않은 채 다음을 기약합니다. 그런데 무라카미씨 역시 우리 독자들에게 같은 방식을 취하는데요. 무라카미씨 역시 이 이야기에서 셰에레자드의 나머지 이어지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은 채 끝내버리죠. 왜 이런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좌절을 주시나요?


하루키: 이건 천 년이상 전해져 내려오는 스토리텔링의 가장 기본적인 기법이에요. 수 만년전의 어두운 동굴의 모닥불에 모여 이야기꾼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듣고 있는 모습이 상상되죠. 물론 저는 스토리텔러의 입장일 경우가 많겠지만, 저 역시도 마찬가지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합니다.


뉴요커: <셰에레자드>의 이어지는 속편이 있을까요?


하루키: 정말 아무 생각이 없어요. 전 단편을 완성할 때 마다, 그래 이건 이걸로 됐어란 생각을 가지곤 해요. 그런 와중에 몇 년이 지나 그 이야기가 저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특별히 무언가 이야기를 더 이끌어 낼 수 있는 경우도 있죠. 이런 경우는 보통 장편 소설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노르웨이의 숲>이 그랬고, <태엽감는새>도 같은 경우였죠. 사실 어떤 이야기가 시간이 많이 지난 후 좀 더 얘기를 하고 싶을 정도로 거듭나게 될 것 같다는 느낌 정도는 알 수 있기도 해요. 그런 면에서 <셰에레자드>는 조짐이 좋은 쪽에 속하긴 합니다.


뉴요커: 두 주인공인 하바라와 셰에레자드는 삶에서 우연하게 교차하게 되어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생각이 드는데요. 이는 익명의 누구나 마찬가지 상황에 놓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우연히 교차하는 상황을 어떻게 만들어 내시는건가요?


하루키: 저는 종종 사람들은 개인의 자유의지와는 무관하게 매일매일을 타인이 정해둔 기준과 조건에 의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 하곤 합니다. 개인이 결정하는 것도 다른 사람의 상황을 항상 염두해 두어야 하죠. 관계성으로 볼 때 최소한의 정도로는 필요할지 모르지만, 그와 같은 수동적인 생활 방식은 아예 상정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런 결정론적인 해석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역으로 그런 수동적인 반복 속에서 쌓여져 꽤 잘 숨겨져 있는 수동적이지 않은 것들을 뒤져서 찾아내는 것에 흥미가 있답니다.   


뉴요커: <천일야화>에서의 셰에레자드는 자신의 삶에서 일종의 구원을 얻습니다. 무라카미씨의 이야기에서는 하바라가 매우 위험한 상황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는데요. 하바라는 셰에레자드에 의해 구원을 얻을까요?


하루키: 글세요. 하지만 확실한 건 소설 속의 상황이 하바라에게 좋지 못한 것은 사실이에요. 그가 만약 잭리쳐라면 15명 쯤 되는 악당들을 쓰러뜨리고 석양을 향해 걸어가겠지만 그는 잭리쳐가 아니잖아요.


뉴요커: 셰에레자드는 그녀가 전생에 칠성장어라고 말합니다. 칠성장어는 송어에 기생해 살며 종국엔 다 먹어치우는 특성을 가지고 있죠. 셰에레자드는 하바라로 하여금 무엇을 하게 하려는 걸까요? 셰에레자드 자신을 계속해서 필요로 하게 만드려는 걸까요?


하루키: 저도 모르겠어요. 셰에레자드는 저에게도 수수께끼 같은 존재에요.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말이죠. 제가 아는 것은 셰에레자드가 하바라에게 어떤 메세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 뿐이에요. 그녀는 그에게 이야기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육체를 통해서도 메세지를 전달하려고 해요. 그녀의 메세지는 아마 다른 방법으로는 전달하지 못하는 것일 거에요.


뉴요커: 무라카미씨는 전생을 믿으시나요?


하루키: 지금 삶으로도 충분해요. 전 지금 생 이전이나 그 이후에 대해서 어떤 욕구도 없어요. 제가 죽게 되면 그저 평화로움 속에서 잠들고 싶을 뿐이에요. 


뉴요커: 셰에레자드를 칠성장어에 비유한다면 그녀는 생존해 나가기 위해 다른 기생할 수 있는 의존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하바라는 고립된 사막과 같은 그의 하우스에서 자급자족을 하며 지내는 데요. 무라카미씨도 하바라를 그런 관점에서 보시나요? 혹시 하바라도 셰에레자드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통해 다른 의미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까요?


하루키: 하바라는 그의 인생에서 돌이킬 수 없는 전환점을 경험한 사람이에요. 그 전환점이라는 것이 도덕적이고 법적으로 허용되는 수준이고,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혹은 심리적인 측면의 전환점인가요?  그는 자발적으로 그 코너를 돌게 되었거나 누군가의 힘에 의해 였을까요? 그 전환점을 돌아 나온 그가 과연 만족하고 있을까요? 전 이런 질문들에 답을 할 수 없어요. 단지 그가 전환점을 돌아 그 스스로의 무인도에 살게 되었고 그가 무엇을 하든지 다시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에요. 전 이 부분이 이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뉴요커: 칠성장어와 무인도 중에는 어떤 것이 이 이야기에서 더 중요할까요?


하루키: 아, 칠성장어도 물론 중요합니다. 


뉴요커: 단편 <셰에레자드> 최근 일본에서 펴내신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포함되었는데요. 어떻게 이 단편 시리즈의 영감을 얻게 되셨나요?


하루키: 제가 이 단편집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것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자면 고립, 고독(isolation)이에요. '여자 없는 남자들'이란 제목은 그 구체적인 예가 될 수 있겠죠. 제목은 아시다시피 헤밍웨이의 단편집과 같은 타이틀을 가져왔고요, 그리고 나서 이야기들이 자연스레 따라왔어요. 각각의 이야기들은 제목의 울림을 통해 그 진동이 전해져와 만들어진 거죠. 왜 <여자 없는 남자들>이냐고요? 저도 몰라요. 마치 바람이 흩날리던 씨앗이 땅에 내려 뿌리를 내리 듯 그렇게 제 마음 속에 저도 모르게 내려 제목이 생겨났다고 생각합니다.


모르는 것 투성이인 하루키의 단편 셰에레자드에 대한 뉴요커지와의 인터뷰였습니다. <노르웨이의 숲>이나 <태엽감는새> 처럼 장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다른 단편 보다 높다라는 언급을 하기도 했는데요. 글세요. <여자 없는 남자들>에서는 개인적으로 다른 이야기들이 더 재미있게 느껴졌는데요. 왜 하필 <셰에레자드>를 실어서 이런 질문들을 하냐고 투정 부리는 듯한 인터뷰 였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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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명 2014.10.20 12:24

    이야기를 미리완결짓는것이 아니라 쓰면서따라가는것.. 그래서본인도 이야기에나오지않은 스토라는모른다는것..이게하루키의매력인것같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