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하루키의 작가 데뷔 시절 부터 글과 그림으로써 환상적인 콜라보를 보여줬던, 하루키의 정신적 동반자인 안자이 미즈마루씨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긴급하게 주간 아사히의 특집본이 준비되었고, 하루키도 안자이 미즈마루씨에 대한 추억과 차마 펑펑 울지 못하는 심정을 꾹꾹 눌러 담담한 글을 실었답니다. 디지털 버전을 구매했지만, 하루키의 글은 빠졌고, 국내 대형 서점에서도 주간 아사히는 취급을 안해서 결국 일본 친구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읽게 되었답니다.
안자이 미즈마루씨는 이 세상에서 제가 마음을 줄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카와이 하야오씨(하루키의 작가적 커미트먼트로의 전환에 중요한 역할을 한 융학파 심리학자)도 그 중 한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제 주위의 사람들이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는 것은, 삶의 방식이기도 하지만 역시 괴로운 일입니다.
당시 저는 해외에서 지내고 있다가 3월에 길지 않는 시간 동안 잠시 귀국을 하여, 여러가지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3월 18일 일본을 다시 떠나는 일정 이었는데 그 전날 갑자기 그야말로 휑하게 시간이 비어서, "아, 오랜만에 안자이 미즈마루씨를 만나 함께 술이라도 마시고 싶은걸." 이라고 문득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오후에 아오야마의 안자이씨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보았죠. 전화를 받은 미즈마루씨의 비서 오시마씨가 "선생님은 오늘 4시 반에 나오실 예정이세요."라고 했고, 다섯시에 다시 전화했더니 "갑자기 몸 상태가 나빠져서, 오늘은 사무실에 못 오신다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원래 미즈마루씨는 그럴 때에는 "만나지 못해 서운하고 미안하다."고 연락을 주는 사람이었는데, 그날은 전혀 아무런 연락이 없어서, 어떻게 된 일인가 걱정하던 중에 갑작스레 부고가 전해져 왔습니다. 제가 전화를 했던 바로 그 날에 갑자기 쓰러져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채, 3월 19일에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뭔가 예감 같은 것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와 미즈마루 씨가 만난 것은 3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가 군조신인상을 받아 작가로서 데뷔하던 때 그가 36세, 제가 30세였죠. 연령적으로 말하면 형이지만 우리들은 그 이후 계속 일에서도 사생활에서도 거의 대등한 관계의 친구로서 편하게 지내 왔어요. 해가 진 저녁에 만날 때는 대체로(라고나 할까, 일단 100퍼센트) 술을 마셨던 것 같습니다. 다만 미즈마루씨는 술에 강한 사람이라, 같은 페이스로 마시고 있으면 제가 먼저 취해 버려서, 항상 저는 적당히 마시곤 했죠. 그렇지 않으면 몸이 견디지 못했으니까요.
우리가 만나는 곳은 거의 항상 아오야마 부근이었어요. 예전에는 가이엔니시 도리에 있는 작은 초밥집에서 자주 마셨답니다. 이 가게는 지금 미슐랭에도 소개되어서 예약하기도 힘들지만, 그 때에는 언제 들르든 거의 항상 자리가 비어 있었죠. 우리들은 초밥 집 카운터에서 만나 이런 저런 즐거운 이야기( 한심한 이야기랄까 공식적으로는 안 될 말 이랄까)를 나누면서 초밥을 먹고 니혼슈를 마셨습니다.
그리고는 가이엔니시 도리의 근처에 클럽풍의 신기한 가게가 있었는데, 초밥 집에서 먹고 나온 후 가끔 그 가게에 갔어요. 여자들이 있고, '댄스 타임'이라는 게 있었는데 전 그런 것에는 많이 서툴러서, 여자들이 같이 춤을 추자고 해도 항상 거절하고 있었죠. 한번은 미즈마루씨가 저에게, "저 그런데 무라카미씨, 여자가 같이 춤 추자고 할 때 사양한다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정색하면서 말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뭐 그것도 그런가" 라고 생각하고, 딱 한번 열심히 치크 댄스를 추었던 적도 있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무라카미씨 여자 꽤 좋아하는 거 있죠. 굉장히 흐뭇해 하던데요."이라는 소문이 업계에 퍼져 있었어요. 거참, 그런 엉뚱한 곳이 있는 사람이었답니다. 미즈마루씨. 본인은 더 열심히 췄으면서.
어쨌든, 미즈마루씨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사람이었어요. "어째서 이렇게 인기가 많을까."하곤 속으로 중얼중얼 거리곤 했죠. 주변에 항상 예쁜 여자가 있었어요. 그는 만날 때마다 언제나 부인 얘기를 했답니다. 술이 들어가면 "우리 아내는 멋진 사람이야." 라고 진지하게 저를 향해 자랑하곤 했죠. 그리고 실제로도 매우 멋진 사람이었고요. 미즈마루씨는 분명히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탁월한 여자운을 타고난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별 아래 태어났으려나. “하지만, 저는 정말 여성보다 남자가 좋아요."라고 말하는 것이 입버릇이었죠. 그리고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남자끼리의 교제를 매우 주의 깊게 아끼는 사람이었어요. 저도 그의 그런 세심한 배려를 항상 몸에 느끼고 있었으니까요.
술 중에서는 아무래도 일본 술을 좋아했답니다. 그 중에서도 니가타현의 '시메하리츠루' 술을 좋아하고 한때는 시메하리츠루가 없는 술집에는 안 갈 정도로 철저했어요. 제가 니가타현의 무라카미시에서 가을에 열리는 "무라카미 트라이애슬론"에 출전할 때에는 항상 일부러 신칸센을 타고 응원하러 와 주었답니다. 시메하리츠루가 바로 무라카미시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였다. 라고나 할까, 그것이 거의 유일한 이유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레이스가 끝나면 우리들은 항상 둘이서 시메하리츠루를 실컷 마셨죠. 온천을 하고 일본해의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맛있는 술을 마시고 있으면 아무것도 필요없이 더 없이 좋은 기분이 되죠.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은, 미즈마루씨의 취하는 방법이 약간 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만취해 의식을 잃거나 중심을 잃고 넘어지면서 얼굴을을 세게 치거나 하는 일이 많아졌죠. 괜찮을까 걱정하고는 있었지만 취하지 않을 때는 정정하고 건강해서 그만큼 진지하게는 걱정하지는 않았죠. 더 걱정했어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도 기분 좋게 취한 미즈마루씨의 모습이 옛날부터 너무 익숙해 있었던 거죠.
마지막으로 미즈마루 씨에게 일을 부탁한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몇 주 전의 일이었습니다. 올 여름 무렵에 <세로니아스 몽크가 있던 풍경>이라는 편역본을 내기로 되어 있고, 그 표지의 몽크의 그림을 미즈마루씨에게 그려달라고 부탁했죠. 미즈마루씨는 "좋아, 합시다."라고 흔쾌히 대답하면서 뉴욕에서 몽크를 만났을 때 얘기를 해 줬어요. 1960년대 후반, 그가 뉴욕에 살 때, 한 재즈 클럽에 몽크의 연주를 맨 앞 자리에서 듣고 있는데, 몽크가 다가와 그에게 담배를 달라고 했답니다. 미즈마루씨는 갖고 있던 하이라이트 담배를 하나 건네 주고 성냥으로 불을 붙여 주었고, 몽크는 그것을 한 모음 피우고는 "음, 맛있군" 이라고 말했다죠. 미즈마루씨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몽크에게 하이라이트를 준 것은 아마 나 밖에 없었겠죠."라고 기쁜 듯이 전화 너머로 말했답니다.
미즈마루씨가 그린 세로니아스 몽크의 그림을 보지 못하고 끝나 버린 것은 슬프고 또 안타깝습니다. 그 그림 속에서 몽크는 어쩌면 하이라이트를 피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그림을 잃은 것을 전 진심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사람의 죽음이란 어느 때에 그려져 있었던 한장의 그림을 영원히 잃는 것과 같지 않을까요. (미즈마루씨의 '그려지지 않고 끝 난 한 장의 그림' 처럼요.)
하루키다운 담담함이 가득 묻어나는 글인 것 같습니다. 담담하게 가만히 보면 냉철할 정도로 그 와의 추억을 얘기하고, 그 흔한 그곳에서도 편히 보내세요라는 말도 없이 묵묵히 추모하고 있다는 생각에 더 깊은 슬픔이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하루키가 어느 에세이에서 얘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안자이 미즈마루씨의 비서가 오시마씨라니, 해변의 카프카의 사서 오시마씨일까요. 하루키는 작품에 안자이 미즈마루씨의 본명 와타나베 노보루는 물론 그의 실제 비서 오시마씨도 등장시켰다면, 다시 한 번 이 두 사람의 말로는 다 설명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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