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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연말 뉴욕타임즈에서는 내년의 세계 정세를 내다보며 현 시점에서 필요한 도덕적 의무나 모색해야 할 방안에 대해 세계 유명한 석학들에게 얘기를 들어보는 특집 페이지를 마련합니다. '국제 헤럴드 트리뷴(International Herald Tribune)'이라고 불려지는 이 기사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2011년 패널로 등장했습니다. 'Reality A and Reality B'라는 제목의 하루키의 칼럼은 2010년 11월 29일자에 실렸으며, 일본어로 기고된 원문을 하루키 전문 번역가인 제이루빈이 영어로 번역 했습니다.

*이 블로그에 포스팅할 내용은 뉴욕타임즈 인터넷판 기사를 구글 번역 및 후보정을 통해 정리한 것입니다. 기사가 게재되자마자 포스팅을 준비했었는데, 연말연시 조금 바빠서 이제 포스팅이 완성되었네요. 칼럼은 역시 다소 무거운 느낌을 주지만, 글쓰기의 긍정적인 힘을 믿는 하루키의 굳건한 결의와 앞으로의 작품 활동에 대한 기대를 하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자, 시작합니다!

Edel Rodriguez


"Reality A and Reality B"   *하루키 뉴욕타임즈 기고문 원문

20세기와 구분되어질 수 있는 21세기의 정신적 충격을 가져온 사건으로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세계적인 관점에서 보면 첫번째, 냉전의 종식으로 인한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들 수 있습니다. 두번째,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가 붕괴된 것을 들 수 있겠죠. 첫번째는 밝은 희망으로 가득찬 기운이 절망에 차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습니다하지만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더 좋은 세계'를 갈망했던 우리는 10년을 갓 넘긴 해 많은 희생자들이 나온 9.11 세계무역센터 파괴로 완전히 재앙으로 반전 되었습니다이 두가지 붕괴의 행위는 밀레니엄의 새로운 국면의 전환에서 각각의 전혀 다른 운동의 사례를 보여줌과 동시에 우리의 정신세계의 큰 변화를 가지고 온 한 쌍의 결합물로서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습니다.

지난 30년간저는 다양한 단편부터 장편소설까지 창작 활동을 계속 해오고 있습니다제가 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에서 비롯 되었습니다각각의 이야기는 독특하지만 각각의 많은 부분이 서로 다른 이야기들과 공유되고 소통하고 있습니다이렇게 각각의 이야기가 서로 공유되고 있는 것은 각각의 이야기가 갖는 많은 유의미 한 요소들 중 중요한 하나의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야기는 각 세대 혹은 시대의 공기를 흡입하여 받아들임으로써 자유롭게 변화합니다문화의 전파 기능을 수행하는 매개체로서의 이야기가 매우 변화무쌍하게 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지요.

비유를 해보자면, 패션 디자이너 처럼 우리 소설가들은 이야기의 옷을 입힙니다어떤 유의미한 것에 적합한 언어를 사용하여 매일매일 변화하는 시대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입니다전문적인 관점에서 보면이런 것들은 새로운 세기의 문턱에서 시대가 교차될 때 발생한 이전의 어떤 변화들 보다 더우리와 이야기의 공간이 만나면서 엄청난 변화를 겪을 수 있습니다이것이 좋은 것인지환영 받지 못할 것인지 저는 일단 판단 보류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것에 관해 말할 수 있는 한가지는, 우리는 언제나 결코 원점으로 돌아가길 원치는 않는다는 것입니다솔직히 말해, 이 이유에 대해서 제가 강하게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제가 소설을 쓸 때 스스로 강하게 어떤 변화를 감지하는 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제 속에 있는 이야기는 꾸준하게 계속해서 새로운 기운을 들이키며형태가 변화해 갑니다저는 제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명확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또한 동시에제 작품을 받아들이는 독자들에게도 그 변화가 어떤 통로로 하여금 전달되는 것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소설가로서 변화해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럽과 미국의 독자들에게서도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지금까지 제 소설은 20세기의 관점에서 '포스트 모더니즘', '환상적인 리얼리즘', '오리엔탈리즘'으로서 그들의 마음의 문으로 들어갔습니다하지만 독자들은 새로운 세기를 받아들이게 되면서 그들의 가치관 체계에서 'ism'을 제거해버렸습니다그러면서 제 이야기가 속한 세계는 그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게 되면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유럽과 미국을 방문할 때면 이런 의식의 이동의 강한 기운을 느끼곤 했었죠그것은 독자들이 저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많은 부분에서 혼란 스럽고 시간의 논리적 개념을 깨뜨리는 구성, 현상 등을 통해 현실이 재배치 되어지는 것과 같은 부분을 포함해서 말이죠. 다시말해, 그들은 제 이야기 속의 혼란을 분석하기 보단, 그들 안으로 어떻게 하면 온전히 제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란 새로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육체에서 나온다는 불변의 진리를 증명해 나가는 하루키.

반면아시아의 독자들은 제 소설을 읽고 받아들이는데 어떤 문학적인 입문이 필요하지 않은 듯 보였습니다그들은 제가 작업을 시작했을 때 부터 친근한 것 처럼 자연스럽게 저의 소설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듯이 보였습니다우선 받아들인 후 분석을 합니다. (필요한 경우에 말이죠.반면서양 독자들은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다받아들이기 전에 문장에 대한 논리적인 분석이 선행됩니다이런 동서양의 차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각각에 영향을 주며 희석되어 왔습니다이것을 통해 최근 몇 년동안의 세계 흐름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재편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요한 정치경제의 재배치는 냉전이 종식된 이후 시작됐습니다정보 기술 영역의 재편성에 대해서도 조금 이야기해야 될 것 같습니다이것은 매우 놀랄만틈 전 세계적인 규모로 해체되었고다시 시스템이 설립되는 것을 반복합니다. 이러한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서분명 문학만이 혼자 재편성에 수동적이되거나 이런 시스템적인 변화를 피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심각한 어려움 혹은 풀어야 할 문제는 재편성의 종합적인 프로세스가 손실되는 것과 같은 것에서 나타납니다만약 이것이 일시적인 것이라면평가 척도의 표준 축에 의해 조정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같은 축은 지금까지 사물의 가치를 측정하는 신뢰할만 한 기본으로서 기능했습니다그들은 테이블의 머리맡에 앉아 집안의 가장 처럼 무엇을 따르고, 따르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해 온 것이죠.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 가정의 우두머리 뿐만 아니라 테이블 역시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이것은 지금 혼돈에 의해 삼켜졌으며 우리 주위에 일어났고,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저는 혼돈이란 말을 들으면자동적으로 9.11의 장면들이 떠오릅니다티비에서 백만번은 봤을 법한 끔찍한 장면들-두 대의 점보제트기가 쌍둥이 빌딩을 향해 돌진하고빌딩이 흔적도 없이 스스로 무너져 버린-이 장면은 백만번을 봤을 때까지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지금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현실을 'Reality A'라고 부르고,  9.11과 같은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은 세계를 'Reality B'라고 명명해 보겠습니다그러니까 'Reality B'의 세계는 'Reality A'의 세계 보다 더 합리적이고더 이성적인 세계라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 할 것입니다다른 용어로 표현하자면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는 비현실의 세계 보다 '더 낮은 레벨'의 현실 세계인 것입니다이런 사실을 '혼돈'이 아니면 무엇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런 시대에서 소설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그것은 또 어떤 목적을 가지게 될까요현실이 '진짜'로서 불충분할 때 이 세계는 얼만큼의 가상의 이야기를 가질 수 있는 것일까요? 

분명히 이 문제는 소설가들에게 직면해 있고혹은 이미 우리는 그 질문을 받아 들고 고민하고 있는 상태입니다우리의 마음이 새로운 세기의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작가들도 모두를 위해 현실의 한계를 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의 힘이 기존의 구조가 변화 될 수 있도록 압력을 행사하여야한다는 것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소설과 이야기의 주제는 확실히 계속해서 이전의 것과 다른 것이 되어갈 것입니다. 20 세기 소설은 19 세기 소설과는 명확하게 변화 되어왔고, 또한 독자들은 그것을 느끼죠.

이야기의 적절한 목표는 무엇일까요? 어떤 것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내부에 있는 가변적인 요소와 전통적인 요소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앞으로 나아가는지 여부와 개인적인 이야기와 공동의 이야기가 근본적인 것에서 부터 함께 진행되는지부를 확인해 나가는 작업입니다. 

다시말해이야기의 역할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 건설 되어 있는, 건전한 정신적인 다리를 계속 유지해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새로운 규범이나 도덕은 이러한 작업들로 부터 매우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되려면우리는 먼저, 현실의 공기 속에서 깊게 숨을 쉬며 살아가야 하고, 편견과 어떤 반대급부를 기대하지 말고 이야기가 우리 안에 변화하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응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우리는 그 변화의 호흡과 흐름을 새단어를 가지고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은 현재 큰 시험을 겪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며그것은 현재 역사상 유례없는 엄청난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소설은 항상 모든 시대를 다루면서 반드시 어떤 종류의 책임과 질문을 부여 받아왔죠. 그런데 지금 그 책임과 질문이 특히 더 엄청나게 작가들, 그리고 우리 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이야기의 선한 능력을 계속 보여주세요. 계속 달려주세요 하루키상.

이야기는 '모든 것들을 이야기 속으로 가져올 수 있는' 혼자 수행 가능한 고유의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주변의 사물과 현상들에 대해 은유, 비유의 방법으로 이야기의 틀을 만들고,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진실된 자연스러움을 제안하곤 합니다. 이것이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기능입니다.

저는 최근작 1Q84에서 조지오웰이 당시 가까운 미래를 묘사한 것과는 반대로 가까운 과거를 그렸습니다. 두 소설이 묘사하는 1984년은 다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원래 1984년이 아닌 것이죠. 1984년이 변형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가 갑자기 이런 세계에 던져진다면 어떨까요? 물론 우리는새로운 현실을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현실과 실제 현실이 전도된 지금 'Reality A'와 'Reality B' 세계와의 차이에서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주어진 가치를 보존 할 수 있을까요? 이 점이 이번 작품의 테마 중 하나 입니다. 3년 동안 이 작품에 몰두하면서 스스로 시뮬레이션을 해보며 가상의 세계를 지나왔습니다. 혼돈은 아직 그곳에 있습니다. 존재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말이죠. 하지만 시행 착오와 오류를 겪어 나가면서, 나는 마침내 이야기의 필수 조건을 얻을 수 있는 강력한 감각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혼돈은 애초에 거기에 없다라고 부정할 것이 아니라 천천히 혼란을 인정하고 수용하며, 근본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요소를 거부할 것이 아니라 '실제 사실'에 접근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너무 낙관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독자의 마음과 정신의 희망에 가득찬 겸손한 조종사로서 좋은 느낌을 가질 수 밖에 없고, 그래야 합니다. 세상은 역시 여러 시행 착오를 거쳐 확실히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신뢰를 주고 다시 앞으로 나아갑니다. 결국 이 세계와 이야기는 이미 여러 세기의 문턱을 넘어 오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존립을 위해 많은 이정표를 통과하며 해결책을 제안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fin.

*여기까지 스크롤 없이 읽어주셨다면 저와 정말 친한 친구가 되실 수 있으십니다. ^^ 허접한 번역 읽으시느라 고생많으셨어요. 번역이 뭔소린지 잘 몰라 이해가 안 간다 싶으시면, 원문을 클릭하셔서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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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흠흠 2011.09.05 22:07

    조금 어려운 이야기군요.. 1q84를 읽으면서 '결국 작가가 하고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를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려웟는데 이 인터뷰를 읽으면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솔직히 저로써는 9.11 테러떄는 어렸을때니 제외한다고 처도 원전사태를 보면서 별다른 충격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평소에 인류가 많은 세월동안 겪어야 할 수많은 변화에 상처입지 않고 잘 극복해 나갈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긴 하지만 원전사태가 큰 시각을 가지고 봐서는 별로 큰일은 아니라고 여겼거든요. 그것보다 아프리카의 한 나라의 경제발전이 1년 늦어져 그나라의 국민들이 받게될 고통이 더 클것이다. 그에비하면 한 나라의 재해쯤은 작은 생채기에 불과한 것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9.11테러나 원전사태의 경우는 그사건을 직접전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접하게 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순간에 적잖은 충격을 준다는 데에 있습니다. 일순간에 모든 세대의 마음의 표면에 동요를 일으키는 거죠. 그 파동은 곧 표면상에서는 사라지지만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하루키는 직관적으로 느끼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글자를 색깔로 느끼는 공감각이 발달된 사람처럼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직관비슷한 것이 있는지도요 ..저는 직관으로 보다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그렇구나.. 하는 정도지만요 .

    • finding-haruki.com 2011.09.05 22:55 신고

      전 이 글은 하루키가 현실A와 현실B를 구분지으면서 지금의 세상은 (테러나 인재에 의한 자연재해 등이 만연한) 사람들이 보통 바라는 정상적인 세상이 아님을 말하면서 그런 세상 속에서 작가인 본인 스스로 선한 이야기를 만들어 읽는이로 하여금 희망이나 꿈, 사랑 같은 개념들을 상기시켜 주려는데 있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아요. 저도 읽으면서 조금 두루뭉술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정치가나 행정가가 아닌 작가의 역할로서 좀 더 이상적인 얘기를 하는 것이 맞다고 봤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