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루키 인터뷰

하루키 요미우리 신문 고교 기자단 인터뷰 ('20 8월)

반응형

이번에 소개해 드릴 하루키 인터뷰는 조금 특별한 인터뷰입니다. 작년 8월이었죠. 일본 요미우리 신문사에서 활동하는 고등학생으로 이루어진 주니어 기자단과 하루키가 인터뷰를 진행했답니다. 단편집 <1인칭 단수> 출간 기념으로 성사된 인터뷰이긴한데요. 인터뷰어가 고등학생으로 아마도 처음이지 싶습니다. 어느쪽에서 먼저 제안을 해서 이뤄진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조심스럽게 하루키쪽의 제안도 먼저 있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인터뷰 따라 오시다 보면 그 이유에 대해 아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번 인터뷰 기사는 기본적으로 지류 신문 기사라 웹으로 공개된 내용은 극히 제한적이었답니다. 웹에 공개된 기사 일부와 일본 블로거의 리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해 보았습니다. 어떤 하루키의 메세지가 담겨 있을지 따라가 보시죠. 

 

 

[소설 창작의 비밀]

 

Q. 무라카미씨의 소설을 읽고 나면 결말이라던지 주인공의 의도라던지가 궁금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루키: 국어 시험을 볼 때면 이 문장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라든가, 이때의 주인공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가라든가를 자주 문제로 출제되곤 하죠. 그런데 그건 작가인 나도 모를 경우가 많아요. 왜냐하면 독자의 상상에 맡겨야 하는 문제니까요. 읽는 사람의 자유입니다. 

 

Q. 좋아하는 여자의 이름을 훔치는 시나가와 원숭이는 어떤 상징이나 무라카미씨의 작중 의도가 있을까요?

 

하루키: 원숭이가 왜 이름을 훔치는지는 정말로 그 원숭이 자신 밖에는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소설은 독자가 자신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은 것입니다. 종이에 쓰여진 내용과 독자의 의견이 달라도 문제되지 않는다. 누구나 공평하게 이야기에 다가갈 수 있는 권리가 열려있답니다. 각각의 이야기는 미리 줄거리나 큰 사건을 정해 놓고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아이디어가 떠다니며 자유롭게 써 나가게 된답니다. 작품을 다 읽고 난 뒤에 독자에게 작품의 '정경'만이 남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Q. <크림>은 한 소년이 동급생 소녀의 피아노 리사이틀에 초대된 사건으로 부터 이야기가 확대되기 시작합니다. 

 

하루키: 저는 남녀 공학 고등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10대 여학생들이 잔인하다고 생각하게 만든 몇 번의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겪을 수 있었죠. 그때 겪었던 10대 특유의 상처 받기 쉬운 마음 같은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요. 

 

Q. <크림>에 등장하는 '원 둘레가 없는 원'을 무라카미씨는 생각하실 수 있으신가요?

 

하루키: 그건 저 역시도 생각할 수 없네요. (웃음)

 

Q. <야쿠르트 스왈로즈 시집>은 야쿠르트 스왈로즈 구단의 팬인 무라카미씨 본인으로 추측되는 주인공 '나'가 쓴 재미있는 한 편의 시가 나오는데요. 실제로 시집을 출간하신 적이 있는건가요?

 

하루키: 시를 쓴 것은 처음 이었지만, 꽤 좋은 구절이라고 생각해요. '야쿠르트 시집'을 만들었다는 것은 꾸며낸 이야기랍니다. (웃음) 이 작품 속의 '나'는 거울 속에 비친 '나'라고 할 수 있죠. '나'로 이야기 속에 있지만 '나'는 아닌 일종의 나의 이중성을 가진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른 얘기지만, 올해 야쿠르트 스왈로즈는 투수진이 다소 약한 느낌인데요.. 물론 4번을 치고 있는 무라카미 무네타카 선수에게는 기대를 하고 있답니다. (웃음) 

 

반응형

 

[후대에 전하고픈 이야기]

 

Q. 올 4월에 무라카미씨 아버지의 만주 사변 당시의 전쟁 체험과 마주한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를 발표하셨는데요. 

 

하루키: 저는 아버지와는 계속해서 냉전 관계에 있었고, 돌아가시기 직전에 일종의 화해 같은 것을 할 수 있었지만 역시 아버지로 부터 직접적으로 전쟁에 대한 얘기는 들을 수 없었어요. 그런데 그 시대로 부터 70년 이상 지난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전쟁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로서는 그 당시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답니다. 

어느 시점 부터 계속 쓰고 싶었는데 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고양이를 버리다>의 첫 시작 부분인 고양이를 버리고 오던 아버지와의 에피소드에 대해 쓰지 시작하면서 그 때 부터 문장이 계속해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아버지 세대의 전쟁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각각의 세대에는 각각 전해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여러분 세대는 분명이 지금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 대해서 후대에 전할 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Q. 오랫동안 하고 싶으셨던 얘기셨군요.

 

하루키: <고양이를 버리다>를 통해 전쟁의 체험을 얘기하는 것이 터부시 되었던, 우리 세대를 넘어서 이제 후배 세대에는 이 경험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저와 아버지 세대에는 전쟁이 '악'이라는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전쟁 자체는 그다지 나쁜 것은 아니었다라고 생각하거나 심지어 미화하는 사람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말 위험한 것이고, 저는 이런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든 작가로서 무언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고양이를 버리다>는 그 일환의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과 보다 과정의  중요성]

 

Q. 무라카미씨는 지금 일본을 넘어 세계적인 작가로 성공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노력이 있으셨을까요? 저희들에게 조언을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하루키: 제 인생은 뭐랄까요, 그때 그때의 상황과 환경에 따라 물흐르듯이 왔다고 생각해요. 특별히 어떤 계획이나 꿈이 있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때 그때의 최선을 다하고 기다리는 것 뿐이다라는 것 말고는 해줄 말이 없을 것 같아요. 

 

Q. 우리 고등학생들은 한창 개성과 꿈을 지녀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시험 성적에 대한 압박도 받고요.

 

하루키: 음, 저는 고교 시절 음악과 책에 빠져서 학교 공부를 그다지 하지 않았어요. 국어는 원래 자신 있어서 친구의 독후감을 대신 써주고 점심을 얻어 먹기도 했죠. 영어나 세계사도 부담은 없었지만, 역시 수학이나 물리는 골칫거리였답니다. 

1년 재수하고 와세다 대학에 합격했지만, 간사이에 그냥 계속 있고 싶은 생각도 했었죠. 그러다가 와세다 대학 입학금 입금 마감 당일에 와세다 대학으로 가는 것을 결정했답니다. 당시 여자친구가 크게 화가나서 매우 힘이 들었었죠. 와세다 진학 후에도 대학가는 분쟁의 시대를 지나고 있었고 수업이 계속 이뤄지지 않아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했답니다. 

그리고는 대학 재학 중 결혼을 하고 재즈 카페를 시작했어요. 보통 사람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을 하죠. 저는 결혼을 먼저하고 일을 시작하고 대학을 졸업했네요. 순서가 정확히 반대였어요. 그런데 저는 기본적으로 안정적인 삶 보다는 자유로운 삶을 더 추구했던 것 같아요. 재즈 카페를 열고 빚을 갚아 나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일 일하고, 29세가 되고 어느날 갑자기 무언가 쓰고 싶어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쓰게 되었죠. 예를들어 21세 때 제가 뭔가 쓰려고해도 쓸 수 없었을 거에요. 어느 정도의 경험을 제 안에 축적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해요. 이런 자연스러운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그 이후 <양을 쫓는 모험>, <노르웨이의 숲> 등이 계속 베스트 셀러에 올랐습니다. 무라카미씨의 전환점은 옴진리교의 사린 테러 피해자 인터뷰를 정리한 1997년 논픽션 <언더그라운드>가 아니지 싶습니다.

 

하루키: 60명 정도의 분들과 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각각 자신만의 목소리가 있었어요. 그 목소리에는 모두 각각의 힘이 담겨 있었죠. 그 이후 제가 쓴 소설에는 '소리의 울림'이 남아있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Q. 작가로서의 일상 생활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하루키: 평소 생활은 평범해요. 아침 5시-6시에 일어나 소설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러닝을 하고 몸을 단련시키고 밤 10시경에 잠자리에 들죠. 소설을 쓰지 않을 때에는 번역을 한답니다. 저는 소설을 쓸 때 스스로 납득이 갈 때까지 시간을 들여서 쓰고 있습니다. 독자들이 반복 해서 읽고 싶어하는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그래서 생활의 모든 초점이 글을 쓰는 것에 맞춰져 있답니다. 

 

[쓰는 것 자체가 보상]

 

Q.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시고 수상 확률에 대해 점쳐지는 것이 화제가 되곤 하는데요.

 

하루키: 수상은 솔직히 별로 관심이 없답니다. 소설을 쓰고 있는 시간 자체가 저에게는 일종의 보상 같은 거랍니다. 작가 생활의 기쁨은 독자의 존재이죠. 전 벌써 40년 가까이 소설을 쓰고 있는데 계속해서 끊이지 않고 제 소설을 읽어주는 독자들이 있어요. 이것이 상 보다 훨씬 중요하답니다. 만약 학생이 한 여자를 좋아하고 있는데, 그 여자가 '미스 OO' 같은 상을 수상하지 못한다고 해서 더이상 좋아하지 않게 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것과 비슷한 것일지도요. 

 

Q. 코로나 펜데믹 상황이 작가의 삶에 영향을 끼쳤을까요?

 

하루키: 글을 쓰는 사람은 원래 재택 생활을 하게되니까 크게 변한 것은 없답니다. 이번 펜데믹으로 지금까지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취하는 형태나 생활 방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세상에 결정적이고 확정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Q. 코로나 시대에 대해 소설을 쓰실 계획도 있으신가요?

 

하루키: 코로나 시대에 글쓰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구체적으로 쓰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치환하여 이야기를 쓰기입니다. 저도 본업으로서의 소설가로서 글을 쓰고 있긴 하지만, 제 생각엔 다른 많은 작가들이 이미 관련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요미우리 신문의 웹 기사에서도, 이번 하루키 인터뷰의 타이틀을 '작가로서의 창작의 비밀'과 '과거 전쟁 경험의 전달'로 뽑았는데요. 이번 인터뷰가 성사된 것은 아무래도 후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루키는 그간 일본 내 혹은 해외 스피치를 통해 일본의 우익화에 대해서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며, 과거 침략 역사를 숨기거나 일본에 유리하게 바꾸려는 수정주의를 비판했었는데요. 이 인터뷰를 통해 후대에게 직접 얘기하는 형태를 띄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더욱이 자식이 없는 하루키는 일종의 이번 퍼포먼스를 통해 일본의 현재 정치인들과 후세에 대한 제대로된 교육을 해야할 의무가 있는 교사 혹은 부모 세대들에게 커다란 메세지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fin.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