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일본에서는 큰 2가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자연 재해인 한신-이와이 대지진과 사람에 의한 인재인 도쿄에서 발생한 지하철 사린 테러 사건이 그것인데요. 이 2사건은 모두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있어서 크나큰 영향을 주게되죠. 고베에 가서 상처를 입은 지역 주민들을 위해 이례적으로 낭독회를 하였고, 테러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 집단의 조직원들과의 긴 인터뷰를 몇 년에 걸쳐 혼신의 힘을 쏟아 <언더그라운드>와 <약속된 장소에서>를 집필했습니다. 이 작업은 하루키로 하여금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려고 하는 작가 본인의 내적 커미트먼트로 옮겨가는데 영향을 주었다고 스스로 고백하기도 하죠. 하루키는 기본적으로 사형 제도에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위 두 작품에서도 그 부분이 드러나고, 피해자, 가해자 집단의 구성원 모두를 하나의 사람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보이며, 시스템의 문제를 얘기하죠.
지난 7월 26일 옴진리교 사린 테러 외 몇 건의 사건에 가담한 하야시 야스오를 포함한 간부 6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 되면서, 같은 달 6일 교주인 아사하로 쇼코를 포함한 7명의 사형 집행 이후 이 사건에 대한 모든 피의자의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이 뉴스를 보면서 하루키가 글을 기고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3일 뒤인 7월 29일 마이니치 신문에 본인의 생각을 얘기했네요. 본 포스팅은 마이니치 신문의 영문판을 번역한 것입니다. 하루키의 생각을 들어보시죠. 몇 번 곱씹게 되는 명문이라고 생각합니다.
haruki murakami photo: getty image
7월 26일 옴진리교 간부 6명의 사형이 집행되면서, 일련의 옴진리교와 관련한 사건에 가담하고 사주한 간부들 13명의 사형이 모두 집행되었습니다. 모든 일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역주: 옴진리교와 관련한 형사 재판은 올 1월에 모두 종결이 되었죠.)
기본적으로 저는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을 죽이는 것은 중대한 범죄이며, 범죄는 당연히 그에 응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죽이는 것과 사회의 시스템이나 제도가 사람을 죽이는 것의 의미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죽음으로서 궁극적으로 살인에 대한 속죄를 대신 할 수 있다는 견해는, 세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완전한 합의가 이뤄지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잘못된 판결로 누명을 쓰게 되는 사건도 놀랄 정도로 많아서, 현재의 사법 제도는 기술적으로 혹은 근본적인 실수를 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형'은 문자적으로 치명적인 위험을 가진 제도로 생각되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한편, 지하철 사린 테러로 고통을 받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을 1년간 인터뷰한 <언더그라운드>라는 논픽션을 쓰면서 그들의 고통과 슬픔, 그리고 신선한 지금까지 보지 못한 분노를 제 두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저는 이 사건에 대해서는 "나는 사형 제도를 반대한다."라고 공개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유가족들의 깊은 고통의 아픔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가해자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으며, 가능한 빨리 사형이 집행되기를 원합니다."라고요. 이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삶의 방향이 한 쪽으로 혹은 여러 방향으로 바뀌어 버린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다시는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 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쓴 책을 나중에 다시 읽거나,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거나 한 적은 아직까지 없지만, 필요상 <언더그라운드>의 일부분을 다시 읽게 되는 경우에는 눈물을 흘리고 맙니다. 인터뷰의 분위기, 그들이 실제 제 앞에 있다는 존재감과 소리와 같은 그런 공기가 생생하게 돌아오고 저를 숨막히게 합니다. 저를 감정적인 사람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러한 자연적인 감정을 억압하고 싶지 않으며 가능한 경우 독자에게 전달하려고 합니다. 저는 <언더그라운드> 작업을 통해 제 안에 무언가가 분명하게 바뀌었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감정은 또 다르게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예를들어, 사고로 아내와 아이를 잃은 남자가 증언석에서 "가해자를 매우 증오한다. 한 번의 사형으로도 부족하다. 몇 번이고 사형을 원한다."라고 얘기한다면, 배심원들도 아마 사형 판결로 어느 정도 생각이 기울어 질 것입니다. 반대로, 남편이 "가해자를 너무나 증오해서 그를 목 졸라 죽이고 싶다. 나는 정말 그를 증오하고 증오한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그를 사형에는 처하지 말아달라."고 한다면, 아마도 배심원들은 사형 판결로는 기울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유족의 감정'이 한 인간의 삶이나 죽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공정한 것일까요? 저는 이 점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겠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언더그라운드>를 집필하고 나서 도쿄도내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에서 진행된 재판을 방청했습니다. 일 때문에 종종 해외에 가 있어서 모든 재판을 방청할 수는 없었지만, 도쿄에 있을 때는 시간이 허락 되는 한, 사린 테러에 대한 재판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주로 핵심 간부 였던 하야시 야스오의 재판을 방청했습니다. 그의 재판에 가장 관심이 있던 이유는, 그가 테러에 가담했던 나카메구로로 향하던 히비야선에서 가장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고, 사망자도 8명이나 됐기 때문입니다. 제가 인터뷰 했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 열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산 끝의 뾰족한 부분으로 사린 용액이 들어있던 검은 봉지 찌른 방법의 테러였는데, 다른 가해자들이 2개의 검은 봉지를 준비한 것과는 달리, 하야시 야스오의 경우 자발적으로 봉지 1개를 늘려 총 3개의 봉지로 테러를 감행했습니다. 그래서 사상자가 더 많았던 것이었죠. 하야시 야스오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는 왜 이렇게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을까? 저는 그에 대해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떠돌던 소문이 아닌 그로 부터 직접적인 정보를 얻고 싶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하야시 야스오라는 사람이 매우 복잡한 감정을 가진 개인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그는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저로서는 어렵습니다. 그의 재판을 여러번 방청했지만, 피고석에 앉아 있는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그의 진짜 마음을 알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자기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껍데기 속에 담아 두고, 타인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하려는 태도를 꽤나 차분하게 유지하고 있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이는 긴 시간의 도피 생활 중에 몸에 밴 자기방어적인 습성이 드러난 것인지도 모릅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상반된 여러 감정들을, 제대로 정리하고 풀어내지 못해 자신 안에서 마냥 끌어 안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 그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행위를 뉘우치며, 심리 진행 과정에서 시종일관 협력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들었습니다.
그의 옛 친구나 지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원래 그는 적극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성실한 사고 방식의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감정적으로 약한 부분도 있었지만, 자신을 적절하게 컨트롤 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호감을 가졌던 것으로도 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의 합리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활용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자기 자신을 제어하는 것이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이 점은 이 재판에서 판결을 받은 많은 옴진리교 신자들에 의해 공통적으로 증언된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수행'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개념이 그들의 선한 부분을 억누르고, 다른 방향으로 솜씨 좋고 효과적으로 그러나 결국은 악의와 함께 표출되게 한 것입니다.
저는 하야시 야스오의 재판에 대해 생각하면 항상 법정에 찾아 오던 그의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어느날 누군가 저에게 "저 사람이 하야시의 어머니에요."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왜소한 체격의 여성으로 제 앞에 항상 앉아 있던 분이었습니다. 그녀는 피고의 자리에 앉아 있는 아들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재판 중에 시종일관 움직이지도 않은채 피고석만을 바라보고 있었죠. 그녀가 법원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하야시 야스오의 판결이 내려지는 날 뿐이 었습니다. 아마도 그녀의 아들에게 사형이 선고될 것을 미리 예견하고 그것을 실제로 듣는 다는 것을 그녀 스스로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녀는 아직 건강히 살고 계실지, 이번 사형 집행 소식을 듣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옵니다.
하야시 야스오의 재판에 관해, 제가 인상 깊게 느낀 또 하나는, 담당 판사였던 키무리 키요시 판사가 매우 공정하고 신중하게 심리를 진행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실제로 가해자는 사형을, 운전을 했던 가담자는 무기징역이라는 무언의 지침이 재판 시작 전 부터 있던 상황에서 (히야시 이쿠오는 무기징역이 확정되었다는 예외는 있었습니다만) 재판을 진행하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방청하는 와중에 '이 판사라면 사형 판결을 내리더라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중하게 재판을 이끌어 나갔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지방 법원이든 고등 법원이든 경악을 금치 못하거나, 실로 아연실색 할 수 밖에 없는 장면을 종종 보았습니다. 일부 변호사나 검사, 판사는 저를 놀라게했고, 일반적 상식선에서도 뭔가 결함이 있는 것 아닌가란 생각이 들 정도의 놀라운 사람도 봤습니다. 이런식으로 재판을 받고 판결을 받게 된다면, 나는 절대 죄를 짓지 말아야겠다라고 강하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야시 야스오 재판의 판사였던 키무라 판사의 판결에 관한 한, 거의 모든 부분에 저도 수긍이 되었습니다. 그의 판결문은 고요하고 신중하며 인간적인 고려 사항들로 가득 찼습니다.
"자신이 따르기로 결정한 지도자를 잘못 선택한 것 만큼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피고 하야시는 불행하고 또 불행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략) 가능한 범위에서의 피고의 여러 상황을 최대한 고려하더라도, 법원은 피고에게 사형을 선고할 수 밖에 없습니다."
판사의 마음이 제대로 전해지는 다른 여지가 없는 판결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판결문은 희망의 여지가 거의 없었던, 이 기나긴 재판의 과정 속에서 겨우 빛을 발하는 광명과도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인생에서 '사형 선고'하는 순간을 처음 법정에서 듣고 나서, 며칠 동안 일상 생활로 돌아가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제 가슴 속에 무언가, '무거운 추'가 하나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판사의 입으로 부터 사형이 선고된 그 순간 부터 이미, 법정 안에 죽음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옴진리교 사건과 관련한 사형수 13명 전원에 대한 사형이 모두 집행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역시 그 당시와 같이 제 가슴 속의 '무거운 추'의 존재를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당시 법정에서 모습을 드러낸 죽음이 결국은 실제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저는 이번 사형 집행을 13명의 집단 처형 (이라고 감히 표현하고 싶습니다.)이 옳은 결정이었는지, 흑인지 백인지 판단하고 제 의견을 얘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의 감정이 여전히 제 주위에 떠돌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지금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이번 사형 집행으로 옴진리교 관련 사건이 종결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이제는 종결하자'라는 무언의 의도가 작용한 것이라면, 혹은 이번 사건을 기회로 사형 제도를 더욱 필요하고 당연한 것으로 이끌어가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며 그러한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옴진리교와 관련하여 우리가 - 물론 저 자신도 포함하여- 깨닫고 배워야할 것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고, 13명의 개인의 죽음으로 그러한 배워야할 문이 닫히지 않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죽음에 직면하여 영원히 사라진 그들의 삶의 무게를 느끼면서, '불행하고 불행한' 것의 의미에 대해 깊이 다시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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