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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인터뷰

하루키 X 가와카미 미에코 인터뷰집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일본 독자 리뷰 정리

지난 4월 일본에서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 오른다>라는 제목의 하루키 인터뷰집이 출간되었는데요. 이 책의 인터뷰어는 가와카미 미에코라는 아쿠타가와 수상 이력이 있는 일본 작가인데, 그녀는 하루키의 오랜 팬이기도 합니다. 하루키가 1993년 한신-이와이 대지진 이후 고베 지역 도보 여행을 하고 고베 지역에서 지역 주민을 위해 낭독회를 가진 적이 있는데, 당시 고교생이었던 그녀가 그 낭독회에 하루키 팬으로서 참석했었다고 하네요. 그 이후 작가의 꿈을 갖고 있던 그녀는 2007년 문단에 데뷔하고, 이듬해 두번째 작품 <젖과 알>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합니다. 




그런 그녀가 하루키의 팬으로서 인터뷰어가 되었는데요. 책속의 인터뷰는 총 네 개의 인터뷰가 수록되어있는데요. 첫번째는 하루키의 자전적 에세이인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출간 기념 인터뷰였고, 그 이후 세번의 인터뷰는 <기사단장 죽이기> 출간 이후 이 책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 오른다>를 위해 심층적으로 진행한 인터뷰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 책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오 오른다>는 출간되자마자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하루키가 기본적으로 매스미디어에의 노출을 극도로 꺼리고, 인터뷰도 겨우겨우 진행하는 느낌이 강한데요. 그나마의 인터뷰도 일본 국내가 아니라 해외 매체와의 인터뷰가 2/3 이상을 차지한답니다. 그런데 가와카미 미에코가 인터뷰한 이 책은 하루키의 모든 것을 끄집어 내는 인터뷰어의 역량과 그 결과물이 이슈가 되었죠. 즉, 여느 인터뷰에서는 그냥 넘어갔을 법한 질문에 대해 가와카미 미에코는 계속해서 연결되는 질문을 집요하게 해서 결국 하루키에게서 새로운 지금까지와는 다른 한 단계 더 들어간 답변을 들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예를들면, 여느 인터뷰에서 "무라카미씨는 소설 속에서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묘사를 자주 사용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라는 질문을 받으면, 대개 "저는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미리 생각하고 쓰지 않습니다."라던가 "주인공이 저에게 먼저 와서 그런 얘기를 들려준다" 혹은 "그런 묘사야 말로, 독자들을 바로 움직여 어떤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도의 답변을 받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기 마련인데, 이 책의 인터뷰어인 가와카미 미에코씨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래요?"라는 식으로 계속해서 추가적인 혹은 더욱 깊이가 있는 답변을 이끌어 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런면이 이 책이 가지는 강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하루키의 직접적인 언급은 아니지만, 그런 그녀의 집요함에 하루키도 뭔가 더 생각해보고 (진땀은 뺐을 지언정) 그런 과정에서 본인도 또 다른 답을 찾아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실제로, 하루키는 인터뷰 과정에서 얘기를 하면서, 혼자 곰곰히 생각에 빠지는 pause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야기론으로 읽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미야자키 하야오 - 10점
오쓰카 에이지 지음, 선정우 옮김/북바이북

그럼 이번 포스팅에서는 인터뷰어인 가와카미 에미코씨의 역량이 얼마나 발휘되었는지, 서평과 일본 블로거들의 코멘트 등을 정리해보도록 할게요. 이 책이 국내 번역 출간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다만, 한가지 고무적인 것은 <이야기론으로 읽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다소 어려운 해설서도 출간되는 것을 보면 이 책도 출간 가능성이 좀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럼 일본 매체의 서평과 일본 블로거들의 서평에서 드러나는 가와카미 미에코가 어떻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깊이 있는 답변을 이끌어 냈는지 정리해보겠습니다. 편의상 두 사람이 주고 받는 직접 인용 형식으로 포스팅 할게요.


하루키 인터뷰집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인터뷰 내용

가와카미 미에코 X 무라카미 하루키


가와카미 미에코: 어떻게 이런 저와의 심층 인터뷰에 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 2장)


무라카미 하루키: 일본의 버블이 붕괴되고, 1995년 고베 대지진(한신-이와이 대지진)이 있고, 2011년 3.11을 다시 겪고 원전문제까지 겹쳐서 다양한 문제가 순차적으로 드러났죠. 그런 일련의 시련의 과정을 통해서 일본이 좀 더 정교한 사회가 되어가지 않을까란 제 생각은 그것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위기감이 있었습니다. 그 위기감을 이제는 어떻게든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답니다. 그런데 소설로는 이런 문제 의식을 직접적으로 표출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이런 인터뷰도 하나의 시행착오로 봐주시면 될 것 같네요. 


가와카미 미에코: 무라카미씨는 주인공의 나이 설정에 있어서 30대의 보통 사람을 설정하시곤 하는데요. 어느 순간 부터는 그 30대의 주인공의 생활 수준이 보통 수준 이상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기사단장 살인>의 주인공은 30대 중반치고는 생활 수준이 꽤나 눈이 높아진 느낌인데요. 예를들어 주인공 나가 초상화 의뢰를 하는 멘시키씨의 집에 갔는데, 그가 내놓은 접시가 '고이마리' 제품이라는 것을 바로 알죠. 그러면서 실내에 놓여있는 것들을 눈으로 쫓으며 묘사하는 것을 통해 물건의 가치를 꽤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제 생각엔 다자키 쓰크루 부터 점점 그런 부유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번 소설 '나;의 경우에도 비록 수중에 가진 돈은 없을지라도 생활 수준은 정말 높은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죠.  (제 4장)


무라카미 하루키: 그렇게 순간 순간 묘사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거의 반드시 잊혀지게 되요. 하지만 우리는 시간을 우리편으로 만들어 시간을 잘 활용하려고 하죠. 그런면에서 시간을 존중하고 소중하게 여겨야 겠다라는 생각을 다시 해봅니다.  


가와카미 미에코: 무라카미씨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제 4장)


무라카미 하루키: 글세요. 죽음이라는 것은 본적이 없으니 단순하게 '무'의 상황이 아닐까요? 그다지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가와카미 미에코: 그런데 우리 인간은 확실하게 죽음이라는 것에 당도하게 됩니다. 도대체 어떤 무엇이 있을까요? (재차 질문)


무라카미 하루키: 음, 글세요. 아마 이렇지 않을까요. 신칸센이 기후하시마와 마이바라 사이의 터널에 영원히 갇혀 버린 상황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그런일을 겪게 된다면 정말 괴로울 것 같지만요. 역도 없고, 열차에서 나올 수도 없고, 복구할 전망도 전혀 없고 말이죠. 그런 상황 아닐까요. (웃음)


화장실은 혼잡하고 도시락도 나오지 않고, 에어컨은 꺼져있고 아이폰의 배터리도 곧 나갈테죠. 게다가 가지고 있는 책도 전부 읽어 버렸고요. 남아있는 것은 바로 '시간' 밖에 없는 느낌, 생각만이 견디고 남아 있겠네요.


가와카미 미에코: 무라카미씨는 옴진리교 아사하라 쇼코의 경우를 이야기의 나쁜 측면으로 말씀하시면서, 본인은 이야기의 선한 면을 추구하는 작가가 되고자 한다고 하셨죠. 그러면서 계속해서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나 구전 이야기들의 좋은 영향을 말씀하시는데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현대의 문학에서는 그런 신화와 역사적인 이야기들은 힘을 잃고 무력화되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런 이야기들이 지금의 작업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기에 어렵다고 느껴집니다만. (제 4장)


무라카미 하루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가와카미 미에코: 무라카미씨는 소설을 써내려갈 때 'no plan'으로 작업하시는 걸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무엇을 나타낸다'라거나 '그 관계가 사실은 이런 것이야'라는 식의 무라카미씨 안에는 그 정도는 있지 않는 것인가요? (제 3장)


무라카미 하루키: 없어요. 전혀 없답니다. 독자들은 현명하기 때문에 그런 장치가 있다면 분명히 알아차리게 됩니다. '아, 이것은 이런 복선이구나, 이런 장치가 있구나'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렇게되면 이야기의 영혼이 약해져 버리고, 독자의 마음 속까지 닿지 않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가와카미 미에코: <기사단장 살인>의 1편 부제는 "드러나는 이데아"인데요. 그래서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여, 예습을 좀 했는데요. 부제 "드러나는 이데아"에서 이데아는 어떤 의미로 사용하신 건가요?


무라카미 하루키: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라 전혀 생각 안해봤습니다. 


가와카미 미에코: 부제에 들어간 단어 '이데아'를 보고는 플라톤의 <향연>이라던가, <국가>를 복습했거든요. 


무라카미 하루키: 정말요?


가와카미 미에코: 제목에 쓸 단어에 대해서는 정리를 좀 해두자 라던가, 다시 좀 알아봐야겠네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무라카미 하루키: 아니오.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가와카미 미에코: 그렇군요. 무라카미씨의 자유로움에 정말 놀랐습니다. 


인용은 이 정도로하고요, 마지막 이데아에 대한 질문과 같이 집요하게 묻고 하루키는 방어하는 식의 질문이 꽤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사단장 살인>의 각각의 장면, 묘사, 배경 등에 대한 의미를 세세히 물어보면, 돌아오는 답변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하고 돌아온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꾸준히 계속해서 묻는 가와카미 에미코씨의 창과 하루키의 방패가 치밀하고 흥미진진하게 나타난다고 하네요.


하루키는 이런 가와카미 미에코씨의 집요하고 철저한 준비를 바탕으로 한 이 인터뷰를 하고는, 앞으로 몇 년간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하네요. 하루키 팬이면 꼭 읽어봐야 할 인터뷰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에 번역되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참고사이트1. http://webronza.asahi.com/culture/articles/2017071300008.html 

참고사이트2. http://nightlander.hatenablog.com/entry/20170519/149518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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