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인터뷰는 지난달 5월 뉴질랜드 오크랜드 작가 페스티발에 참석했던 하루키가 뉴질랜드 헤럴드 일간지의 주간지인 리스너와 가진 인터뷰입니다. 역시 인터뷰가 함께 패키지로 되어 있던 초청 행사였나봅니다. (농담입니다.) 반가운 마음에 서론은 그만 자르고 바로 인터뷰 전문 포스팅 시작할게요. 오크랜드의 한 호텔 리셉션실에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기사는 간접 인용 형식을 택했지만, 제 포스팅은 편의상 직접 인용 형식으로 변형했으니 참고해주세요.)
DREAM CATCHER
Listner: 무라카미씨는 꿈을 꾸지 않는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키: 네 전 꿈을 꾸지 않아요.
Listner: 전혀요?
하루키: 네. 때때로 조금씩 단편적인 꿈을 꾸긴 하겠지만, 기억은 나지 않죠. 그 대신 저는 작가로서 깨어 있을 때 꿈을 꾸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꿈을 독자들에게 설명해주는 역할을 하려고 하죠. 그게 바로 제가 작가로서 지니고 있는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Listner: 당신의 길고 장대한 이야기의 시작점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시작되나요?
하루키: 이야기가 먼저 앞서갑니다. 저는 그걸 따라가죠. 먼저 가는 이야기를 따라 나가며 그 다음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제 주인공들은 제가 그들에게 펜으로 지시를 내리기를 기다려주지 않아요.
Listner: 근작 <색체가 없는 다자키 쓰크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이하 <다자키 쓰쿠루>, 의 여주인공 사라에 대해서 얘기해보죠. 그녀는 이야기의 중반 즈음 쓰쿠루로 하여금 그가 학창시절 친구들에게 절교 당한 이유를 알아보러 나고야로 떠나라고 얘기합니다. 그녀는 "당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살 수는 없다"고 얘기합니다.
하루키: 저도 매우 놀랐어요. 전 단지 친구 그룹으로 부터 동떨어지게 된 한 남자와 사라라 불리는 그의 여자친구가 등장하는 짧은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사라가 쓰쿠루에게 나고야로 가라고 말했어요. 전 그녀가 그런 말을 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쓰쿠루와 작가인 저에게 동시에 얘기한겁니다. 전 그렇게 계속 이야기를 써나갔고, 그렇게 소설이 된겁니다.
Listner: 무라카미씨는 수 많은 단편과 그로 부터 발전된 장편들, 특히 <해변의 카프카>나 <1Q84> 같은 긴 이야기들을 통해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데요. 시간을 거스르는 오디세이, 소외 혹은 상실을 겪고 있는 주인공들, 읽어버린 고양이, 친구, 아내, 어머니 또는 애인 등 다양한 주인공들과 상황을 가지고 1인칭 시점으로 차분하고 분명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갑니다. 작가는 꿈을 꾸지 않는다고 하지만, 마치 주인공들을 항상 꿈을 꾸고 있는 듯 하고요. 동물들과 이야기를 하고, 컬트 단체의 리더가 등장하고, 신비한 능력이 있는 소녀가 나오고, 성적인 욕구를 과잉 표출하는 사람 등 꿈에서 곧 깨어날 것 같이 꿈의 촉수를 붙들고 있는 듯한 등장인물이 많이 등장합니다.
하루키: 같은 의미로, 전 신화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신화에는 영웅이 필요하게 되죠. 그 또는 그녀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제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고, 그런 일상 속에서 범상치 않은 장면을 겪게 되죠. 이것이 바로 '이야기story'에요. 평범하지 않은 장면 속의 평범한 사람들 말이에요.
Listner: 무라카미씨의 2004년작 <애프터 다크>가 떠오르네요. 자정 부터 새벽까지 도쿄 시내인 시부야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죠.
하루키: 그 누구도, 언제 어디서 심연의 어둠이 그들을 덮치게 될지, 언제 어디서 그런 기운들이 사람들 앞에 놓이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Listner: 이런 무라카미씨가 구축된 세계안에서 주인공들은 시간 관련성이 떨어지는 장소 속에서 일어나는 노골적인 섹스, 폭력, 설명하기 어려운 자살, 영구적인 사랑 등을 평범한 등장인물들을 통해 표현하고 계시죠.
하루키: 일본의 어딘가에 있는 독자들과 뉴질랜드 어딘가에 있는 독자들 모두는 동일한 제가 만들어 놓은 세계에 접근할 수 있어요. 어디서나 들어갈 수 있는 터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당신의 의식 속에 있는 터널이죠. 영국이나 뉴질랜드, 일본 어디에서든 당신은 이 터널로 들어 올 수 있어요. 이것은 일종의 '마음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제 소설이 세계 각국의 독자들에게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Listner: 문학교사였던 부모님 밑에서 고베 항구로 들어오는 다양한 외국 문학 서적들을 접하며 학창시절을 보내셨죠.
하루키: 당시 처음 접하면서 빠져들었던 작품들은 영미 공상과학 소설과 탐정 소설이었답니다. 그런 저를 부모님은 좋아하지 않았죠. 그 분들은 일본 문학 교사였으니까요. 전 그런 상황으로 부터 빠져나오고 싶었어요. 그들의 문화로 부터 탈출하고 싶었던 거죠.
Listner: 와세다 대학 시절에는 영화를 전공하시면서, 다양한 영화와 체호프, 도스토프예스키, 프란츠 카프카 등의 작품을 접하셨고요. 그리고 22살에 결혼을 하시면서 소설가로 데뷔하기까지 재즈카페를 운영하셨죠.
하루키: 네. 그 재즈 카페일은 정말 힘들었어요. 정오 부터 새벽까지 샌드위치와 칵테일을 계속해서 만들고, 술 취한 사람들을 온전히 집으로 되돌려 보내는 일은 여간 힘든게 아니었죠.
Listner: 29살이 되던 해이죠. 1978년 당시 응원하던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경기를 보던 중에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대요.
하루키: 정말 아름다운 봄날이었어요. 야구 외야석 당시 잔디밭으로 되어있던 곳에 앉아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었죠. 그러면서 야구를 보고 있는게 너무 행복했어요. 정말 완벽한 오후였죠. 그런데 갑자기 멋진 2루타를 보고 갑자기 무언가 쓰고 싶어졌죠. 그길로 문구점에가서 원고지와 펜을 샀고,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리곤 이렇게 작가가 되어있답니다.
Listner: 그야말로 갑자기군요. 글을 쓰는게 처음에 정말 어려웠을텐데요. 당시의 어떤 노하우가 있었을까요?
하루키: 전 음악도 아주 좋아해서, 음악에 대해서도 소견이랄까 그런게 있었죠. 음악을 알았다고 할까요. 멜로디를 알고, 재즈의 즉흥적인 부분을 잘 캐치했죠. 그래서 글을 쓸 때에도 그 음악을 들었을 때의 리듬감을 기억하면서 한 문장 한 문장 써내려갔던 것 같아요. (테이블에 손을 올려 건반치는 제스쳐를 하며) 그래서 글을 써 내려갈 때, 항상 음악적인 부분을 항상 생각하고 있답니다. 글 역시 리듬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신기하다랄까. 영어로 번역된 제 작품에도 그 리듬이 그대로 유지되고있어요.
Listner: 글을 쓰기 시작하고, 4개월 정도 걸려서 첫 작품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나왔죠. 이후 <1979년의 핀볼>과 <양을 쫓는 모험>의 쥐 3부작으로 이어지는 정체불명의 양사나이를 추적하는 모비딕 스타일의 작품입니다.
하루키: 전 탐정 소설 매니아에요. 탐정은 항상 무언가를 찾고, 결국엔 그것을 찾아내지만, 그러나 그것은 그가 찾기를 기대했던 것이 아닌 경우가 많죠. 이게 바로 '구조'에요. 전 이런 어떤 '구조'를 제 소설에서도 사용하고 싶어요. 그러나 컨텐츠는 다릅니다. 전 탐정 소설이나 공상 과학 소설을 쓰고 싶진 않아요. 다만, 그 소설들을 받치고 있는 '구조'를 사용하고 싶은 겁니다.
Listner: 그 이후 리얼리즘 작품인 <노르웨이의 숲>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가져왔는데요. 이것에 대해 얼마전 오크랜드 작가 페스티발에서 '끔찍했던 경험'이라고도 얘기하셨죠.
하루키: 일본 문단의 멤버들은 <노르웨이의 숲>의 인기를 매우 싫어했었죠.
Listner: 그리고 일본을 떠나 유럽과 미국에 체류하면서, 프린스턴 객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태엽감는새>를 집필하셨고요. 오크랜드 작가 페스티발에서 <태엽감는새>의 스파게티를 만드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것에 대한 질문에 나도 이 다음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잘 모른다고 하기도 하셨죠. 그리고 무라카미씨의 작품을 보면 <해변의 카프카> 처럼 동물들과 교감하는 모습들이 자주 등장하곤 합니다.
하루키: 전 동물을 정말 좋아해요. 제 소설 속에서 동물들은 저를 많이 도와주고 있죠. 그들은 제 주인공들에게도 도움을 줍니다. 전 항상 이런 동물들의 도움에 감사하고 있어요.
Listner: 무라카미씨는 일본 작가이지만, 소설 속 주인공들은 팝과 재즈를 듣고, 패스트 푸드를 먹고 캐쥬얼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죠.
하루키: 네 제 작품에서 기모노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제 소설의 메인 주인공들은 모두 리바이스를 입고 있어요. 그들은 모두 고도성장기에서 자라 온 세대이죠. 그들은 소니나 도요타에 관심을 두기 보다 그들의 정체성을 갖고 멋진 재즈바를 찾아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죠.
Listner: 부커상을 수상하기도 한,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역주: 하루키도 찾아 읽는 다는 영국에서 활동 중인 일본 작가)씨는 "(하루키의 작풍에 대해) 그건 꽤 진지하게, 부조리한 모습을 코믹하게 풍자하면서 초현실적 상황을 설정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현실의 여러 상황들을 부러뜨리고 싶어하는, 재미없는 일상을 살고 있는 중산층을 동시에 가정합니다"라는 견해를 보입니다.
하루키: 음, 글세요. 전 소설을 쓸 때, 무엇이 현실적인 것이고, 무엇이 초현실적인 것인지 인식하지 못한채 써 내려가요. 즉, 그들 모두는 저에게 현실이라는 인식을 갖고 이야기를 진행시켜요. 현실과 비현실 저에겐 모두 동일합니다.
Listner: 하지만 현실과 비현실을 오고 가는 것을 통해, 주인공들은 무언가 변화합니다.
하루키: 그건 중요한 포인트에요. 주인공이 무엇을 찾았는지가 아니라, 그들이 그것을 경험하면서 어떻게 변화했는가이죠.
Listner: 리얼리즘 소설인 <노르웨이의 숲>에서도 주인공 와타나베는 일종의 통과의례를 겪게 되죠.
하루키: 그는 일종의 림보를 통과한 거에요. 그는 계속 성장해 나갈 겁니다.
Listner: 미국의에서 체류를 마치고 1995년 일본으로 돌아오면서 무라카미씨의 작가관에 큰 영향을 준 두 개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고베 대지진과 도쿄 지하철 사린 테러가 그것인데요. 무라카미씨는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만 했다고 하셨죠.
하루키: 네 맞아요. 무언가를 해야만 했어요. 내 나라를 위한 게 아닙니다. 내 주위의 사람들을 위해서였죠.
Listner: 그런 생각은 <언더그라운드>라는 사린 테러의 피해자와 가해자였던 옴진리교에 몸담았던 신도들의 인터뷰집이었죠.
하루키: 피해자 대부분은 매일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샐러리맨이었어요. 전 그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출근하고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어요. 전 <언더그라운드> 작업을 하기 전에는 지하철의 사람들을 보면 그냥 낯선 사람들이라는 정도로 밖에 인식하지 못했는데, 그들의 많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제 소설을 읽어주는 독자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이제 저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동료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건 정말 좋은 일이었죠.
Listner: 무라카미씨는 지금 도쿄의 사무실과 교외의 집에서 작업을 병행하고 계신데요. 요즘도 새벽에 일어나 커피와 함께 작업을 시작하는 등 정해진 하루 일과를 소화하시나요?
하루키: 내 모든 하루 일과가 정해져있어요. 새벽에 일어나 4~5시간은 매일 작업을 합니다. 수학 퍼즐과 같다고나 할까요.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Listner: 아내 요코 여사와의 관계는 어떠신가요.
하루키: 그녀는 제 첫 작품을 혹독하게 비판한 이래로 지금까지 제 초안의 첫번째 독자로서 역할을 해오고 있어요. 아주 잘 하고 있습니다. 전 아내와의 신뢰가 있어요. 편집자는 계속 바뀌지만 아내는 그렇지 않죠. 언제나 함께에요.
Listner: 무라카미씨는 또한 많은 외국 작가들의 번역 작업을 계속 해오고 계시죠. 레이먼드 카버, 팀 오브라이언, 스콧 피츠제럴드, JD샐린저, 존업다이크, 트루먼 카포티 등등
하루키: 전 챈들러로 부터 유머 감각을 배울 수 있었어요. 정말 감사한답니다. 특히 은유와 직유에 대해서 그로 부터 정말 많이 배웠어요.
Listner: 올 해 캐나다를 비롯해서 몇 개의 국가에서 무라카미씨의 초기작들이 다시 번역되어 나오기도 합니다. 이 소설을 쓸 당시 무라카미씨는 이 소설이 캐나다 독자들에게 읽히리라고는 생각 못하셨겠죠.
하루키: 제가 첫 소설과 두번째 소설을 완성했을 때는, 아 조금 더 괜찮은 소설을 쓸 수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했었어요. 제 능력의 20% 정도를 쓴 느낌이었다랄까요. 그런데 수 많은 독자들이 제 소설을 읽어주었죠.
Listner: 그렇게 다져진 독자들이 최근엔 무라카미씨의 새 소설을 조금이라도 빨리 읽어보기 위해 자정부터 줄을 서는 일도 자주 일어납니다. 팬들은 하루키스트라는 이름으로 자발적으로 분석하고 토의하고 의견을 공유하는 활동을 활발하게 하죠. 그렇게 무라카미씨의 작품도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하루키: 제가 <노르웨이의 숲>을 썼을 때가 제 능력의 75%를 사용했던 것 같아요. 꽤나 야심차게 준비했던 소설이었으니까요. 지금은 90% 정도가 아닐까 싶네요.
*하루키라는 작가의 지금까지의 작품 활동을 짚어 본다는 정도의 기사로, 깊이는 조금은 떨어지는 인터뷰였습니다. 하루키가 아직 그의 능력의 10%는 안 쓰고 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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