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2009년 예루살렘상 수상 연설을 번역해 보았습니다. 2011년 출간된 <잡문집>에 정식으로 실리기도 한 연설문이지만, 제가 직접 정리해보며 내용을 곱씹어 보고 싶어 시작하게 되었네요. 하루키는 예루살렘상 수상 연설의 '벽과 계란'이란 연설문을 시작으로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페인 카탈로니아상 연설에서 핵 발전에 대한 일본인들의 망각과 무지에 대한 각성을 촉구했었고, 최근에는 일본에는 공개되지 않은 오스트리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후쿠시마 발전소에 대한 정치가들과 도쿄전력 관련자들을 매우 강도 높게 비판했죠. 또한 노벨문학상과 미국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노이슈타트 문학상도 수상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가운데, 제 개인적으로는 그의 또 다른 연설에 대한 기대도 가지고 있답니다.
http://www.salon.com/2009/02/20/haruki_murakami/
"벽과 달걀"
-무라카미 하루키 2009년 예루살렘상 수상 연설
저는 오늘 이곳 예루살렘에 전문적으로 거짓말을 일삼는 소설가로서 왔습니다. 물론, 소설가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정치가도 거짓말을 곧잘 합니다. 외교관이나 군인도 때에 따라 거짓말을 하기도 하죠. 자동차 세일즈맨이나 정육점 가게 주인, 건축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소설가의 거짓말은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소설가가 아무리 거짓말을 늘어 놓아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거짓말이 더 크고, 더 교묘할 수록 대중과 비평가들에게 칭찬과 호의적인 반응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저와 같은 소설가들은 거짓말을 하면서 즉, 현실에 가까운 허구를 만들어 내어 진실을 어딘가로 끌어내어 새로운 곳에 빛을 비추는 일을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진실이란 것은 우리 손 안에 명확하게 쥐어지는,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진실을 그 은신처에서 끌어내어 어떤 가상의 장소로 옮겨, 작가가 생각하는 어떤 형태로 구성하여 진실의 끄트머리라도 붙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진실을 찾기 위한 작업을 수행하기 전에 먼저,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진실에 대해서 명확하게 해 두어야 합니다. 이것은 뛰어난 거짓말을 만들기 위해 갖춰야 할 중요한 자격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거짓말을 하려고 이 자리에 온 것은 아닙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정직하려고 합니다. 1년 중 제가 거짓말과 상관없이 지내는 날이 얼마 없는데, 오늘이 그 날 중 하나입니다. 최대한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본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예루살렘상을 받으러 이스라엘에 가지 말라고 충고를 해주었습니다. 심지어 예루살렘상을 받으러 이스라엘에 가면 제 책에 대해 불매 운동을 하겠다고 경고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죠. 물론, 그 이유는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격렬한 폭격과 전투 때문입니다. 유엔의 리포트에 따르면 가자지구내에세 천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들 대부분은 비무장 상태인 노인들과 어린이들의 일반 시민이라고 합니다.
수상 통보를 받고 전 스스로에게 수 없이 물었습니다. 이런 시기에 이스라엘을 방문해서 예루살렘상을 받는 것이 적절한 행동일까? 그런 내 행동이 지금의 가자지구의 분쟁 상황하에서 어느 한 쪽을 지지하는 것으로 비춰지지는 않을까? 내가 엄청난 압도적인 군사력을 행사하도록 하는 정책을 집행하는 한 나라의 결정에 동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물론 전 이런 인상을 주길 원하지 않습니다. 전 그 어떤 전쟁도 찬성하지 않습니다. 또한 어떤 특정 국가를 지지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제 책들이 한 나라에서 불매 운동의 대상이 되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오랜시간 심사숙고 끝에, 전 예루살렘에 방문해 상을 받기로 결정했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가지말라고 충고해 준 것도 이유 중 하나입니다. 아마도 다른 소설가들 처럼, 저 역시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는 반대로 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거기는 가지마. 그건 하지마. 이렇게 충고를 하거나 특히, 경고를 하면 오히려 그곳에 가보고 싶고, 그것을 해보고 싶어집니다. 그것이 저의 타고난 습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러분들께서 당신도 소설가니까 그렇겠지요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가들이란 참으로 독특한 부류에요. 자기 눈으로 직접 보지 않거나, 손으로 직접 만져 보지 않은 것은 진심으로 믿지 못하는 기질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지금 여기 서 있는 이유입니다.
이곳과 멀리하기 보다는 오기로 결정했습니다. 시선을 돌리기 보다는 직접 와서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침묵하기 보다는 무언가 제 생각을 말하기로 했습니다. 정치적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 온 것은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물론 소설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이기도 합니다만, 이러한 판단을 독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할까에 대한 방법은 각자의 필자에게 달려있습니다. 저를 본다면 초현실적인 이야기로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런 저의 판단을 이야기의 형태로 표현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직접적인 정치적인 메세지를 표출하지 않는 것은 이런 사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 개인적인 얘기만을 하는 것에 대해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소설을 쓸 때 항상 마음 속 깊이 지니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글자로 적어 벽에 걸어두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제 마음의 벽에 선명하게 깊게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높고 단단한 벽과 그 벽에 부딪쳐 깨지는 달걀이 있다면, 저는 언제나 달걀 편에 설 것입니다."
네. 아무리 벽이 옳고 달걀이 잘못되었다고해도 달걀 편에 설 것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사람마다 일단 판단을 해봐야하지 않겠냐고 말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그것은 시간과 역사가 해주지 않을까요. 어떠한 이유이든, 벽의 편에 서서 작품을 쓰는 소설가가 있다면 그런일에 어떤 가치가 있을까요? 제가 한 벽과 달결의 비유는 무엇일까요. 그 의미는 매우 간단하고 또 명확합니다. 폭격기, 전차, 로켓, 백린조명탄은 높고 단단한 벽입니다. 달걀은 그 무시무시한 무기들에 의해 짓밟히고 총살을 입어 불타는 비무장 일반 시민들입니다. 이 의미가 전부는 아닙니다.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 모두는 각자 하나의 달걀입니다. 우리 각자는 모두 깨지기 쉬운 껍질 속에 담겨진 둘도 없는 고유한 대체되어 질 수 없는 영혼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여러분 각자이며, 저 역시도 진정한 저 자신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모두 어떠한 높고 단단한 벽과 마주하고 서 있습니다. 그 벽에는 이름이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시스템'입니다. 이 시스템이란 것은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이 스스로 힘을 얻게 되어 마구 활개를 치며, 우리를 죽이거나 우리가 다른 우리를 죽이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그 작용은 아주 잔인하고 효과적으로 또 체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저는 소설을 쓰는 단 하나의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이 지닌 영혼의 존엄성을 드높여, 각 개인의 영혼이 눈부신 빛을 발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들 각자의 영혼이 시스템에 종속되어 멸시당하지 않도록 항상 경보음을 울리고 시스템에 빛을 비추어 감시하여 경종을 울리는 것, 이것이 바로 이야기의 역할이자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소설가가 이야기를 만들어 냄으로써 우리 각각의 영혼의 고귀함이 유지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그들의 아주 중요한 역할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것은 소설가가 이야기를 씀으로 해서 유지됩니다. 삶과 죽음의 이야기, 사랑 이야기, 독자를 울리고 무서움에 떨게 하고 웃게 하는 그런 이야기들 말이죠. 이것이 소설가가 매일매일 가상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려고 철저한 노력을 해 나가는 이유입니다.
제 아버지는 작년 90세의 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퇴직한 학교 교사였고, 사찰의 승려로도 일했습니다. 대학원 시절 징병되어 중국의 전쟁터로 보내졌죠. 전쟁이 끝난 후 제가 태어났고, 전 아버지가 매일 아침 마다 집 안의 불단 앞에서 손을 모으고 꽤 긴 시간 묵념을 하는 모습을 보곤 했습니다. 이유를 묻자, 아버지는 전쟁터에서 죽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적이건 아군이건 죽은 모두를 위해 기도한다고 말이죠. 불단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전 주위를 맴도는 죽음의 그림자를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와 함께 그가 지녔던 기억들도 함께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절대 알 수 없는 기억들 말이죠. 하지만, 아버지의 주변을 맴돌던 죽음의 존재는 제 자신의 기억 속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아버지로 부터 물려 받은 몇 안되는 것 중 하나이며, 매우 중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단 한 가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며, 국적과 인종과 종교를 초월한 개인입니다. 시스템이라 불리우는 단단한 벽을 마주하고 있는 깨지기 쉬운 달걀이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 개인이 그 벽을 이기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벽은 너무나 높고, 단단하며 또한 냉혹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시스템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볼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혼이 고귀하며 절대 대체 불가한 것이라고 믿는 것과 우리 모두의 영혼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따스함으로 부터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잠시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우리 모두는 각자 만져지듯이 느낄 수 있는 살아 숨쉬는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스템은 절대 가지지 못하는 것이죠. 시스템이 우리를 부당하게 이용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됩니다. 시스템이 스스로 활개치도록 하면 안됩니다. 절대 시스템이 우리를 창조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하고 싶은 말의 전부입니다.
예루살렘상을 저에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계의 많은 곳에서 제 책을 읽어주는 독자 여러분에게도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끝으로 오늘 이 자리에게 여러분들에게 제 생각을 이야기 할 기회를 갖게 되어 정말 기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2009년 2월 15일, 예루살렘.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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