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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인터뷰

하루키 '야쿠르트 스왈로즈' 명예회원 선정 기념 기고

야구와 맥주를 좋아하다가 작가가 된 무라카미 하루키가 일본의 프로야구 팀인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명예회원으로 위촉되어, 팬심 가득한 에세이를 홈페이지에 기고했습니다. 야쿠르트 스왈로즈는 우리나라 임창용 선수도 뛰었던 구단이죠. 하루키의 야구 사랑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재밌는 글입니다. 야구팬이시라면 200% 공감하실 수 있고, 한화팬이시라면 500% 공감하실 수 있습니다. :D 




*원문은 야쿠르트 스왈로즈 구단 홈페이지에서 참고했습니다.

http://www.yakult-swallows.co.jp/swallowscrew/honorarymember_murakami.html



<구장에 가서, 홈팀을 응원하자>


야쿠르트 스왈로즈 명예회원, 무라카미 하루키 (번역 도움: @maynotea)


야구를 관전하기에 앞서 나만의 룰 같은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저에게는 몇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가능한 구장에 직접 가서 시합을 본다.

둘째, 그 구장의 홈팀을 응원한다.

셋째, 약할 때에도 강할 때에도 똑같이 응원한다. 


저는 어렸을 때, 오사카와 고베 사이의 니시노미야-아시야에 살아서, 시간날 때 고시엔 구장으로 야구 시합을 보러 갔습니다. 당연히 초등학생때는 '한신 타이거즈 크루' 에 가입했죠.(들지 않으면 학교에서 이지메를 당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랄까요) 입장권을 손에 꽉 쥐고, 계단을 오르거나 눈 앞에서 외야의 녹색 잔디가 확 선명하게 펼쳐지는 때의 감동은 몇 번을 경험해도 멋졌습니다. 그것은 야구장에서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종류의 감동이죠. 그래서 저에게는 '야구를 본다'는 말은 바로 경기가 열리는 그 현장의 구장으로 발을 옮기는 것 입니다.


그런 이유로 18세때 대학 진학을 위해 도쿄로 왔을 때, 저는 진구구장을 다니고, 산케이 아톰즈(당시에는 이런 이름이었죠..)를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고시엔에서 진구 구장으로 장소를 바꿨을 뿐 입니다. 1968년의 일이네요. 포크 크루세다즈의 노래 '돌아온 술주정뱅이'가 히트하고 국제 반전 데이를 맞이해 신주쿠역이 대학생들로 점거되었던 해인데, 그런거에는 전혀 관심 없는 사람이 많았죠. (몰라도 상관없지만요) 어차피 당시의 아톰즈는 사실 팬들로 부터 존재감도 없었던 약한 팀이었어요. 스타 선수도 없었고, 구단도 매우 가난했었죠. 구장은 언제나 -요미우리 자이언츠은 예외로 두고- 뭐랄까요. 멋이라고는 없었습니다. 그 때는 가와카미 감독이 있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단의 전성기로 홈구장은 언제나 초만원 이었고, 같은 센트럴 리그에서 도쿄를 연고로 한 야구팀인데, 우리 아톰즈 보다 자이언츠의 인기가 더 많다는 것에 대해 정말 안타깝게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저는 시간이 날 때면(거의 시간이 많았지만) 진구 구장에 가서 혼자 조용히 아톰즈를 응원했습니다. 이기는 것 보다 지는 쪽이 물론 많았지만(3번 중 2번은 지는 것 같았어요) 외야석의 잔디밭에 아무렇게나 누워 뒹굴며 (당시는 아직 좌석이 없고 초라한 '잔디의 스포츠'였다) 맥주를 마시면서 야구를 관전하고 있으면 그걸로 꽤 행복했습니다. '아, 인생 뭐 지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도 중요하니까'라고 체념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지금도 가끔씩 드는 생각이지만요..)


그럭저럭 지내다가 이듬해 1969년에는 구단 경영이 산케이 신문에서 야쿠르트 식품으로 옮겨져, '야쿠르트 아톰즈'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미하라 오사무 감독 체제로 바뀌고, 그 때 부터 팀이 점점 재미있어졌죠. 팀 전력이 약한 것은 변함 없었지만, 무엇보다 팀에서 눈을 뗄수 없어졌어요.. 마츠오카, 야스다, 와카마츠 등 젊고 재능 있는 선수들이 등장했고, 투수 오야마 요시아키가 대타로 자주 나온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깜짝 놀랐죠. 그리고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공을 세 번 밖에 던지지 않은 선발 투수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이른바 '미하라 매직'으로 약한 팀이니까 그런 식으로 할 수 밖에 없는 것도 있겠지만, 그래도 팬의 입장에서 보면 그저 얌전히 약소한 팀에 만족하고 있기 보다는, 과감하게 한 번 경기를 흥미있게 만들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관객으로 부터 입장료 를 받으니까 그 정도 서비스는 있어도 좋지 않을까요.



그리고 나서 히로오카 감독의 시대가 오는데, 이 때는 진짜 짜릿했어요. 무엇보다 구장에서 그라운드를 잘 둘러보고, 유니폼이 가장 잘 어울리고 야무지고 단단하게 자세도 좋은 사람이 선수가 아닌 감독으로 있었으니까요. 야구 감독이라기 보다는 전쟁의 실전 부대의 지휘관처럼 보였죠. 감독으로서 하나의 철학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고 그것을 확실히 내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좋고 싫음은 있겠지만, 그런 것은 지휘관으로서 하나의 중요한 자세가 아닐까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1978년 첫 우승을 하던 해, 저는 센다가야에 살고 있었고 10분만 걸으면 진구구장에 갈 수 있어서 정말 자주 야구를 보러 갔습니다. 그 때에는 8시 반이 지나면 무료로 외야석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 때, 야쿠르트 스왈로스는 구단 창설 29년 만에 처음으로 리그 우승을 합니다. (그리고 일본 시리즈도 재패했고) 저는 29세에 처음으로 소설을 써냈습니다. 그것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라는 소설이고 그 때부터 저는 소설가가 되었습니다. 물론 우연의 일치이지만 그래도 야구의 힘도 있을거라 조금은 생각합니다. (웃음)


구장에 가서 실제로 경기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몇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보고 싶은 곳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야수가 어떻게 커버를 도는지, 외야수가 타자에 따라 혹은 주자의 행보를 따라 어떤 식으로 포지션을 바꿀까, 그런 것 하나하나 자신의 눈으로 체크할 수 있다는 점. 이런 것은 텔레비전을 보면 일단 모릅니다. 텔레비전은 거의 같은 앵글의 영상만 보여주니까요.


그리고 구장에 있어 좋은 점 또 한가지는, 진짜 소리가 들린다는 것입니다. 저는 계속 진구구장에 다니고 있었어서 방망이가 공에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타구의 각도를 보면 그게 홈런인지 거의 알 수 있습니다. 야구 경기에서의 소리는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소리는 진짜와 비슷하면서도 사실 많이 다릅니다. 저는 텔레비전으로 야구를 볼 때면 자주 소리를 끄고 보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연히 시원한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것. 집에서는 안타깝게도 맥주를 마실 수 없어요. 진구 구장에서 한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경기에서 원정팀 팬의 수는 홈팀인 야쿠르트 팬을 웃도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에요. 이건 매우 부자연스럽고, 불편한 것이고, 전혀 용서할 수 없는 겁니다.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까지는 아니지만, 어떤 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면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래서야 홈팀의 의미가 어디있어라고 항상 생각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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