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루키 인터뷰

하루키 아사히 기고 전문; 한중일 영토 분쟁에 대해

하루키가 처음으로 작품 속에서가 아닌 일반 신문 기고글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에 대해 얘기를 꺼냈습니다. 지난 카탈로니아 수상 연설에서 일본의 원전 정책을 비판하면서 사회적 이슈에 대한 발언을 꺼내긴 했지만, 이번에 국가 간 특히 자국의 영토 분쟁에 대해 언급했다기에 조금 놀라기도 했습니다. 오늘자 아사히 신문 1면 탑기사인데요. 전문을 정리해 준 일본 블로거의 글을 번역해 봤습니다. 오늘 문화일보 석간 신문에도 기사가 실렸네요.


평소 매스미디어의 노출을 꺼리고, 어떤 단체에 소속되기를 거부하며 정치적인 발언을 삼가왔던 하루키가 지난 원전 사태로 인해 많이 바뀐 모습이죠.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한 선배 작가 오에겐자부로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만, 그것 보다는 자국의 여러 좋지 않은 상황에 대해 작가로서의 책임감을 많이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외부의 압박에 움직일 분은 아니니까요.



아사히 신문 9/28일자  1면 탑과 3면 기사 @totorosoo 님의 트위터


국경을 넘나드는 영혼의 길

- 무라카미 하루키 아사히 신문 기고글- *오/의역 감안해주세요.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분쟁이 과열화되는 가운데 중국의 많은 서점에서 일본 서적이 퇴출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 명의 일본 저자로서 적지 않은 충격을 느꼈습니다. 그것이 정부 주도하에 진행되는 일인지 서점 자체적으로 판단한 일인지 자세한 내용은 아직 모릅니다. 이 일에 대한 저의 의견을 말하는 것은 현 단계에서는 보류하고 관련한 다른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근 20년 동안 동아시아 지역에서 제가 느낀 가장 기쁜 일 중 하나는 동아시아 고유의 '문화권'이 형성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을 가져 온 큰 원인으로는 중국이나 한국, 대만의 눈부신 경제 발전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각국의 경제 시스템이 더 강하게 확립됨으로써 문화의 등가 교환이 가능하고, 각국의 문화적 성과(지적 재산권)가 국경을 넘나들게 된 것이죠. 


일반적인 공통의 규칙에 정해짐으로서, 한때 기승을 부린 해적판도 점차 사라지고(혹은 수가 급격히 줄어든) 저작자에 지급되는 선급금이나 인세 부분도 이제 정당하게 지불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자신의 경험에 근거해 보면 이런 여건까지 오는데 여정이 꽤 길었구나라고 느껴질 정도로 이전 상황은 그만큼 열악했습니다. 얼마나 심했는지 여기에서는 구체적인 언급은 피합니다만(더이상 문제를 얽히게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최근 이런 문화적 환경이 크게 개선되면서 '동아시아 문화권'은 더 풍부하고 안정된 시장으로 꾸준히 성숙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몇 가지 문제는 남아있지만, 이 문화 시장에서 각국간 음악이나 문학, 영화, TV 프로그램이 기본적으로 자유롭게 등가교환 되고 많은 수의 사람들이 쉽게 받고 즐겁게 누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TV드라마가 히트 한 것으로, 일본인은 한국 문화에 대해 이전 보다 훨씬 친근감을 갖게 됐고, 한국어를 학습하는 사람의 숫자도 급격히 늘었습니다. 그것과 같은 것이랄까, 미국 프린스턴 대학 시절 많은 한국, 중국인들이 제 사무실을 방문해주었습니다. 그들은 열성적으로 내 작품을 읽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런 바람직한 상황이 마련되기 위해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이 심혈을 기울여 왔습니다. 나도 한명의 당사자로서 미력이나마 나름대로 노력을 계속해왔고 이러한 안정된 교류가 계속 되어지면, 우리와 동아시아 이웃나라 사이에 존재하는 몇 가지 사안도 시간은 걸릴지 모르겠지만 점차 원만한 해결을 향해 가고 있다는 기대를 안고 있습니다. 이런 문화의 교환은 "우리는 비록 말이 달라도 기본적으로 감정이나 감동의 공유가 뒤섞여 교류하는 인간이라는 의식을 하나의 중요한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국경을 넘어 영혼이 오가는 길인데, 이번 센카쿠 열도 문제나 독도 문제가 그런 충실한 달성을 크게 파괴하는 것을 한 명의 아시아 작가로서 또 한 사람의 일본인으로서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경선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이상 불행히도(라고 할 수 밖에 없겠지만) 영토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이슈입니다. 그러나 실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이슈인 것이고, 또한 실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이슈가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토문제가 실무 과제임을 넘어 '국민 감정'의 영역에 발을 들이게 되면 그것은 종종 출구 없는 위험한 상황을 가져오게 될 수 있는 것이죠. 그것은 '값싼 술'을 먹었을 때와 같은 겁니다. 술을 몇 잔 마시면 사람들의 머리는 피가 오르고 목소리가 커지게 되고 행동이 난폭해집니다. 논리는 단순해지고 자기 반복만을 거듭하게 됩니다. 그러나 화려하게 떠든 뒤 날이 새면 남는 것은 두통 뿐이 없죠.  


그런 술을 먹는 행동과 소란을 부추기는 유형의 정치인과 논객에 대해 우리는 주의 깊게 바라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1930년대 아돌프 히틀러가 정권의 기초를 다졌던 것도 1차 대전을 통해 잃어버린 영토 회복을 일관되게 그 정책의 근간에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번 센카쿠 열도 문제에 있어서도 상황이 심각한 단계까지 나아간 요인을 양국에서 냉정하게 검증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정치인과 논객은 위세 좋은 말을 늘어 사람들을 부추기는 것만으로 끝납니다. 하지만 실제로 상처 받는 사람은 현실에 처한 개별 인간입니다. 


저는 1992년 작품 <태엽감는새>에서 1939년 만주에서 일어난 만주국과 몽골 사이에 일어난 '노몬한 전쟁'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국경 분쟁이 빚어 낸 짧지만 치열한 전쟁이었습니다. 일본군과 몽골, 소련군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진행되며 모두 2만에 가까운 수의 병사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소설을 쓴 후 그 지역을 방문해서, 탄피와 유품이 아직도 흩어져있는 황폐한 땅의 한 가운데에서 "왜 이런 아무것도 없는 메마른 땅을 둘러싸고 수 많은 사람들이 의미없이 죽어나가야 했는가" 심각한 무력감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도 언급했듯이 중국의 서점에서 일본 서적이 퇴출되는 것에 대해 제가 어떤 의견을 말할 입장은 못됩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국내 문제이죠. 한 사람의 저자로서는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지금 분명히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중국의 반응에 대해 보복 행동을 취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뿐입니다. 만약 그런 일을 하면 그것은 우리의 문제가 되어, 다시 우리 자신에게 되돌아 올 것이 분명합니다. 반대로 "우리는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해 비록 어떤 사정이 있더라도 존중할 수있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라는 겸손한 자세를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소중한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값싼 술의 취기'의 정반대에 위치하는 것입니다.


값싼 술기운은 언젠가 깨게 됩니다. 하지만 영혼이 오가는 길을 막아 버려서는 안됩니다. 그길을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긴 세월을 걸쳐 피나는 노력을 거듭해 온 것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유지해야 하는 소중한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참고자료

http://blogs.yahoo.co.jp/jnqdp615/39764621.html *일본 블로그(전문)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092801030132023002 *문화일보 기사

http://book.asahi.com/booknews/update/2012092800001.html *아사히 신문 기사(일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