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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7월 문예춘추가 발행하는 월간 문학지인 '문학계'를 통해 하루키의 단편 3편이 발표 됩니다. 14번째 장편인 <기사단장 죽이기>를 발표하고 1년 반 만에 발표한 단편인데요. 보통 하루키는 하나의 장편 소설을 발표하면, 잠시 쉬어 가는 시기에 번역이나 단편 소설을 쓰곤 하죠. 그리고 이렇게 쓰여진 단편이 나중에 장편 소설로 확장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독자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노르웨이의 숲>도 그렇고,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나 <태엽감는새> 등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 말을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이 글의 끝 부분에서 다시 설명할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단편 3편의 제목은 <돌베개에>, <크림>, <찰리파커ㆍ플레이ㆍ 보사노바>이고, 이 중 <크림>이 올 1월 뉴요커지에 하루키의 영문 번역 파트너인 필립 가브리엘 교수에 의해 번역되어 실립니다.

 

<크림>은 화자인 '나'가 고등학교 졸업 후 재수 시절, 고향인 고베의 언덕에서 겪은 기묘한 일을, 젊은 친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젊은 친구가 누구인지는 특정되지 않습니다. '나'는 재수를 하던 그해 가을, 지역의 도서관에서 입시 준비 보다는 긴 소설을 읽으며 보내고 있는데요. 어느날 중학교때 같이 피아노를 배우던 동급생으로 부터 그녀의 피아노 연주회에 초대를 받게 되고, 당일 초대 받은 장소로 가지만 연주회장은 굳게 닫혀 있고, 그녀도 보이질 않습니다. 애초에 편지로 초대를 받았기 때문에, 그녀가 실재하는 지도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하루키식 '상실'로 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하릴없이 인근 공원으로 발걸음을 돌려 잠시 앉아 있는데, 마치 큰 확성기로 말하는 듯한 메세지가 들려 옵니다.

 

"모든 사람은 결국 사라질 것입니다. 그 누구도 죽음과 그 이후의 심판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죽은 후에는 그의 죄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하루키가 작품 속에서 이렇게 종교적인 메세지를 직접적으로 인용한 경우는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확성기의 메세지는 좀 더 인용이 되는데요. 크리스쳔이나 예수그리스도 같은 특정 종교의 메세지가 직접 언급이 됩니다. 이 지점에서 조금 놀랐습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면, 나는 공원에서 갑자기 밀려 온 극심한 피로감과 함께 호흡 곤란을 겪게 되고 이내 몸을 추스립니다. 그리고나서 맞은편에 한 노인이 앉아서 이쪽를 바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마치 <해변의 카프카>에서 트럭을 몰고 다카마츠에 도착한 호시노와 나카타 노인 앞에 커넬 샌더스가 '펑'하고 나타난 듯한 느낌이었을까요. 나는 그 노인을 이렇게 묘사  합니다.

 

"그 노인은 푸른 회색 모직 가디건, 갈색 코듀로이 바지 그리고 네이비 블루 스니커즈를 신고 있었어요. 모두 꽤 오래 입은 듯한 옷이었지만, 누추해 보이지는 않았고 오히려 세련되어 보였어요. 그의 회색 머리카락은 두껍고 뻣뻣했고, 귀 주변에는 새들이 물가에서 깃털을 물에 담근 모습처럼 털이 감싸고 있었어요. 안경은 쓰지 않았죠."

 

이 묘사를 듣고 떠오르는 인물이 있으신가요. 저는 퍼뜩 '무라카미 하루키'가 생각났습니다. 가와이 하야오 선생의 학예상 제정을 기념한 교토대 공개 강연회에 참석했던 복장이나, 해외 인터뷰에 등장하는 그의 캐쥬얼한 옷차림이 떠올랐습니다. 하루키는 작가 데뷔 40주년을 앞두고 <크림>이라는 제목의 단편을 통해, 1967년 고베에서 재수 생활을 하고 있던 고교생 하루키에게 지금의 자신을 보내 무언가 메세지를 보내려고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창생 그녀에게 주려고 샀던 꽃다발은 어찌보면 당시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고, 조금 확대해 보면 여러가지 인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있는 수 많은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메세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크림>을 통해 과거의 하루키의 모습을 한 후배 세대들에게 들려 주고 싶은 하루키의 메세지는 어떤 것일까요? <크림>의 주인공 나에게 나타난 노인은 알 수 없는 말을 두 가지 건넵니다. 

 

"많은 중심이 있는 원, A circle with many centers"
"크림 중의 크림, Crème de la crème"

 

본디 원은 오직 하나의 중심과 원주(둘레)로 이뤄집니다. 그런데, 소설 속 노인으로 분한 하루키가 말하는 원에는 중심이 무수히 많고, 둘레 또한 없습니다. 제한 혹은 한계가 없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반대로 얘기하면 그 존재가 지니는 '확장성', "가능성" 일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말하는 한 가지의 방향, 목표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부모님이 원하는 국립대에 가기 위해 재수를 하고 있던 1967년의 고베의 하루키 본인을 직접 등장시키는 강수를 두면서 까지 말이죠. 또한 소설 속 노인은 자신만의 원의 중심을 설정해 끊임없이 노력하면 보이지 않던 원의 둘레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고, 바로 그것이 '인생의 크림'이 될 것이라고 얘기해 줍니다. 'Crème de la crème'은 최고 중의 최고라는 의미의 프랑스어인데, 한국말로는 '백미' 정도가 됩니다. 자신의 인생의 '크림', '백미'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내가 직접 설정한 원의 중심으로 부터 나의 영역(원의 둘레)을 직접 구축해야 한다는 메세지 입니다. 뉴요커지에 <크림>이 실리고 가진 인터뷰에서 하루키는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힌트를 주는데요. 그것은 바로 '믿음'이라고 얘기합니다.

 

<크림>은 하루키가 70살을 앞둔 여름에 쓰여졌습니다. <기사단장 죽이기>가 출간되기 전 인터뷰에서는 이제 1~2개 정도의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라고 했고, 하루키의 말과 본인의 느낌이 맞다면 이제 마지막 1개의 장편 소설이 남은 시점입니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보여진 하루키의 '작가적 친절함'에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도 육체적 나이를 먹어가고 그에 따라 여러 일들을 겪으며, 물러나야 할 때를 염두해 두고 있는 것 아닐까란 생각은 과한 것일까요. 1995년 도쿄 사린 테러 당시에는 피해자와 가해집단 구성원들을 인터뷰 했고, 고베 대지진의 상흔을 찾아가며 함께 슬퍼하고 연작 소설집을 썼습니다. 2010년 동일본 대지진 후에는 해외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일본 정부와 행정가들을 혹독하리만큼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그로 부터 영향을 받은 <기사단장 죽이기>를 통해 '위로'와 '치유'의 메세지를 전달했습니다. 하루키의 작가 이력의 주요 변곡점이 이제는 마지막 한 지점을 향해 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하루키 자신이 1960년대 거닐었던 고베 언덕에 지금 다시 나타나 자신이 하던 '스토리 텔러'로서의 역할을 후배 세대에게 이어 주려 뜻으로도 읽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크림>을 쓰고 몇 개월뒤 모교인 와세다 대학에 수집한 레코드와 워드프로세서로 쓰기 전인 <노르웨이의 숲>까지의 자필 원고 등을 기증하기로 했는데, 그 이유를 자녀가 없어 본인이 죽으면 자료가 흩어져 버릴까봐라고 했죠. 이제 한 세대를 이끌었던 소설가의 역할을 내려놓고 자신이 줄곧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했던, 선사시대의 동굴 속에서 모닥불을 쬐며 '스토리텔러'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던 바로 그 역할을 후배 세대에게 '바톤-터치'하는 하루키만의 '의식 Ceremony'으로서 이번 단편 <크림>을 바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문학계에 함께 실린 다른 두 개의 단편의 내용을 보면 '바톤-터치'의 의미를 좀 더 뒷받침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크림>을 포함한 총 3편의 단편은 모두 화자인 '나'가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분명히 하루키 본인인 것으로 읽힙니다. <돌베개에>는 대학교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만나 하룻밤을 보내고 헤어진 여자가 본인이 지은 단가집을 보내온 이야기이고, <찰리파커ㆍ플레이ㆍ 보사노바>는 1955년 죽은 찰리 파커가 계속 살아서 1963년 보사노바 앨범을 냈다고 가정하고 그 앨범에 대해 비평글을 쓴 '나'가, 15년 후 뉴욕의 레코드샵에서 가상 비평을 쓴 그 타이틀의 레코드를 실제로 발견한다는 이야기인데요. 세 작품 모두 죽음을 주제로 '이야기의 영속성'에 대해 말하는 듯 보입니다. 보통 죽음은 단절을 가지고 온다고 여겨지지만, 하루키는 이 3개의 단편을 통해 '아니 전부 그렇지는 않아. 이야기는 살아 남아 계속 되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단편이 실린 순서를 보면 <돌베개에>, <크림>, <찰리파커ㆍ플레이ㆍ 보사노바> 인데요. 각각의 이야기가 순서대로 과거, 현재, 미래를 구성하고, <크림>이 가운데 즉 원의 중심에 배치되어 '바톤-터치' 의식을 진행 중인 현재 상태를 의미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과거인 <돌베개에>는 고전인 단가를 짓는 여자가 등장하고, <찰리파커ㆍ플레이ㆍ 보사노바>는 찰리 파커가 죽은 이후에도 그의 연주는 세상에 살아있는 듯한 암시를 줍니다. 고전으로 부터 영향을 받은 하루키가, 현재의 후배 세대에게 계승하는 의식을 거쳐 미래에 까지 그의 문학 혹은 정신 세계가 살아있는 잘 짜여진 의식이라고 보입니다. 단편 3편 중 유독 <크림>이 뉴요커지에 실린 이유도 가장 대표성을 띠는 작품이기 때문이겠죠.

 

하루키는 이렇게 40년 동안 지속해 온 '스토리텔러'의 역할을 다음 세대에 넘긴 다음, 도쿄 아오야마 거리에 다시 재즈바를 내고 싶어 합니다. 귀가 솔깃해집니다. 지금까지의 인터뷰에서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는데, 2015년 가와카미 미에코 작가와의 인터뷰 이후, 해외 언론사 인터뷰에서도 종종 재즈바에 대한 꿈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아오먀마에 하루키의 재즈바가 오픈하기 전, 그의 장편 소설을 더 볼 수 있는 가능성은 높으니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바톤-터치' 의식의 완성 유무 혹은 정도에 따라, 마지막 장편 소설은 <크림>의 이야기가 확장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1982년 <양을 쫓는 모험> 집필에 들어가기 전, 전업 작가로의 결심을 하며 담배를 끊고 달리기를 시작한 그의 치밀함이 작가 생활의 마지막 종착지까지 이어져 후배 세대들에게 진중한 울림을 주는 결실을 맺기를 바랍니다.

 

"소설을 쓰지 않게되면 아오야마 근처에 재즈클럽을 열고 싶어요. 험프리 보가트 처럼 나비넥타이를 매고 하우스 피아니스트에게 말하는 거죠. '그 곡은 치지 말라고 했잖아. 샘'" -2015년 7월 인터뷰집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fin.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하루키를 찾아가는 여행>은 하루키 여행지를 찾아가는 저의 이야기였다면, 이번에 하나 하나 써 내려갈 글들은 오로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이야기들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블로그를 통해 계속해서 전해드렸던 그의 인터뷰를 단초로 작가 하루키와 인간 하루키에 대해 소상히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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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부크 2019.05.12 17:56

    바톤터치라니 너무 아쉽네요. 항상 무라카미씨는 세대를 뛰어 넘는 현역인 느낌이 있는데요. 그래도 푸른점과 같은 인생이기에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겠지요. 좀 더 시간이 흐른후에는 하루키의 새소설을 볼 수 없다면 조금은 슬퍼집니다. 준비하고 있는 책도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