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가 덴마크의 수도 오덴세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바로 2016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어 10월 30일 수상식을 가졌답니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문학상은 2007년 파울로 코엘료를 시작으로 2년 마다 수여 되었으며, 2010년 JK롤링, 2012년 이사벨 아옌데, 2014년 살만 루시디에 이어 다섯번째로 하루키가 수상했습니다. 이번에 덴마크에서의 하루키의 활동이 지금까지의 여느 문학상 행사와는 다르게 많이 여유로운 모습이고, 또 다양한 취재에 응하는 듯 예년 보다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도 눈에 띄는 부분입니다.
The meaning of shadow 그림자의 의미
-하루키 16년 안데르센 문학상 수상 연설(2016.10.30)
최근에 제 작품의 덴마크어 번역가인 메테 홀름 작가의 추천으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작가의 <그림자>라는 작품을 읽게 되었습니다. 메테 홀름 작가는 제가 분명히 흥미있어할 것이라고 얘기해주었죠. 사실 <그림자> 읽기 전 까지 저는 안데르센 작가의 작품 중에 이런 작품이 있는 줄 알지 몰했습니다. 추천을 받고 일본어 번역본으로 <그림자>를 읽고서 받은 첫 느낌은, 놀랍게도 강력하고 무시무시한 플롯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이었습니다. 안데르센 작가는 사실 대부분의 일본 독자들에게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동화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저역시 마찬가지였고 그런 안데르센 작가의 작품 중 <그림자> 같이 어둡고, 희망이 보이지 않은 판타지 작품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답니다. 그리고 뒤이어 자연스럽게 저에게 다가오는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왜 안데르센은 이런 느낌의 작품을 써야겠다라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을까?
이야기의 주인공인 젊은 학자는 북쪽의 고향을 떠나 낯선 남쪽 외국 땅으로 여행을 나서게 됩니다. 그러면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그는 자신의 '그림자'와 완전히 떨어지게 됩니다. 그는 물론 혼란에 빠지고 화도 났지만, 결국 새로운 그림자를 다시 만들어내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그와 완전히 떨어져있던 그림자가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다시 돌아온 그림자는 주인공을 떠나 독립하면서 지혜와 힘을 얻게 되었고,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그의 이전 육체적 주인이었던 주인공 보다 훨씬 뛰어난 상태가 되어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이전 주인이었던 주인공과 그림자의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이죠. 그림자는 주인공도 흠모했던 옆 나라의 공주와 결혼하여 왕이 되고, 결국 그림자의 정체를 알고 있는 이전 주인이었던 주인공을 살해하고 맙니다. 그림자는 살아남아 큰 성공을 이루게되고, 이전 주인이었던 소설 속 주인공 학자는 결국 슬프게 소멸되고 맙니다.
안데르센 작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독자층을 염두하고 이런 이야기를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 독자들이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은 그때까지의 쌓아올린 아이들을 위한 동화작가라는 명성을 어떻게 일정 부분 포기하고 <그림자>를 쓸 수 있었을까에 대한 궁금증일텐데요, 제가 느낀 바로는 그때까지의 안데르센을 포기하고 어른을 위한 우화의 형식을 차용하여 안데르센 작가의 마음 속에 있던 자유로운 개인으로서의 자신의 마음을 과감하게 쏟아 부은 것이 바로 <그림자>란 작품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제 저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전 소설을 쓸 때, 플롯이나 스토리의 어떤 계획도 없이 진행해 나갑니다. 제 소설은 언제나 하나의 장면이나 아이디어가 저에게 오면서 시작됩니다. 그렇게 소설을 쓰는 중에도 장면과 아이디어는 계속해서 저보다 앞서 나갑니다. 그렇게 전 자연스럽게 그 장면과 아이디어를 따라갑니다. 제 머리만 의지하지는 않는거죠. 다시 말해, 저에게 오는 아이디어에 따라 이야기가 자연스레 진행되고 그 프로세스에 따라 제 손이 타이핑을 치게 되는 겁니다. 글을 쓰면서 저는 의식의 세계 보다 무의식의 세계에 더 가치를 두고 이야기를 진행시킵니다. 그래서 전 제가 쓰고 있는 이야기의 다음 얘기를 저도 잘 모릅니다. 그렇기때문에 이야기의 결말도 알 수 없습니다. 어떻게보면 제가 쓰는 이야기이지만, 저 역시 제가 쓰고 있는 다음 이야기의 목격자일지도 모릅니다. 저에게 소설을 쓰는 것은 '발견의 여행'인 것 같습니다. 마치 아이들이 재미있는 이야기의 다음 스토리를 궁금해하며 귀를 기울이는 것 처럼, 저 역시 제 이야기의 다음 스토리가 어떻게 될지 흥분하며 기대하게 된답니다.
제가 <그림자>를 읽고 받은 첫 느낌은, 안데르센 작가 역시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해 이 작품을 썼다는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안데르센 역시 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결말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한채 소설을 써 내려갔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답니다. 당신의 그림자가 당신을 떠난 다는 개념을 사용하며 이야기를 시작하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그림자가 다시 돌아오는 등의 이후 이야기에 대해 명확히 하지 않고 써내려간 느낌이었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비평가들과 꽤 많은 수의 독자들은 소설의 이야기를 분석적인 방법으로 접근해 읽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학교나 사회의 학습을 통해 그런 독서 방법이 올바른 독서 방법이라고 트레이닝되었던 것이죠. 사람들은 학문적 관점, 사회학적 관점,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텍스트를 분석하고 비평합니다.
그런데, 소설가가 소설을 쓰면서 이야기의 구조를 분석적으로 구축하려고 한다면, 이야기는 결국 고유의 생명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작가와 독자사이의 공감은 한계에 부딪힐 겁니다. 종종 우리는 비평가들에 의해 격찬을 받는 소설을 접하게 되면 독자들도 대게 관심을 갖고 읽게 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비평적으로 훌륭한 소설의 경우 독자들로 하여금 자연스러운 공감을 이끌어 내는데에는 실패하는 것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안데르센의 <그림자>의 경우 우리는 자기 발견의 여행이라는 비교적 다가가기 쉬운 분석을 제공하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안데르센 작가 본인에게는 쉬운 여행이 아니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그것을 찾아가는 것은 자신의 보이지 않는 혹은 피하고 싶은 것에 다가가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직하고 성실한 작가인 안데르센은 혼돈과 두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그림자'앞으로 나간 것입니다.
저 역시 소설을 쓸 때, 이야기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만 합니다. 그럼 전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나게 된답니다. 안데르센 작가가 그림자 앞에 선 느낌과 같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전 그 상황에서 전 그 그림자를 적확하게 또 솔직하게 묘사해야 하는 것을 요구 받습니다. 그것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논리적인 분석이 아니라 제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여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그림자의 힘에 억눌려 제 자신을 잃어버릴 정도가 되면 안됩니다. 당신은 그림자를 흡수하여, 사람으로서의 당신의 아이덴티티를 잃어 버리면 안됩니다. 그림자는 당신이라는 사람의 일부분 일 뿐입니다. 이런 과정을 당신의 독자도 경험합니다. 그리고 독자들과 그 느낌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소설가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안데르센이 살았던 19세는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21세기에도 우리는 필요하다면 그림자와 얼굴을 맞대고 직면해야 합니다. 그렇게 그림자도 함께 작동해야한 합니다. 그것은 옳은 방향으로서의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물론 이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때때로 위험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림자를 피하기만 한다면 사람들은 진정으로 성장하고 성숙할 기회를 함께 잃어버리게 됩니다. 최악의 경우 <그림자>의 주인공 학자 처럼 자신의 그림자에 의해 파괴되고 그렇게 소멸하게 될 것입니다. 그림자를 직면하고 대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은 비단 개인 뿐만이 아닙니다. 사회와 국가도 그들의 '그림자'와 대면할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그림자가 있듯이, 사회와 국가에도 모두 그들만의 어두운, 피하고만 싶은 '그림자'가 존재합니다. 밝고 빛이 나는 부분이 있다면, 그 이면에는 반드시 어두운 부분이 있습니다.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부정적인 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그림자, 즉 부정적인 부분에서 우리의 시선을 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니면 이러한 측면면을 인위적으로, 강제적으로 제거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혹은 사회, 국가는 가능한한 어둡고 부정적인 면을 피하고 싶어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이, 우리가 견고하게 입체적인 상태가 되려면, 그림자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림자를 피하고 멀리하려 한다면, 당신은 평면적인 환상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림자를 수반하지 않은 빛은 진정한 빛이 아닙니다.
아무리 벽을 높게 쌓아 외부 침입자를 막아보려해도, 아무리 외부인들을 엄격히 제재하려고 해도, 아무리 역사를 다시 써서 우리에 맞게 수정하려해도 종국에는 우리 스스로 상처 입고 가슴 아파하는 일이 생길 것입니다. 우리는 참을성 있게 그림자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안에 있는 어둠을 관찰해야 합니다. 때로는 어두운 터널 속에서 자신의 어두운 면을 바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 않아, 당신의 그림자는 당신이 깨닫지 못한 사이에 더 강해져서, 어느날 밤 당신에게 돌아와 노크하며 '내가 돌아왔어요.'라고 속삭일 것입니다.
뛰어난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많은 깨달음을 줍니다. 그런 교훈은 시간과 문화를 초월합니다.
*안데르센의 소설 <그림자>를 하루키가 아주 적절하게 비유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 무난하지만 가슴 깊이 와닿는 수상 연설이었습니다. 그림자를 사람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숨기고 싶은 어두운 면으로 지칭하며, 개인을 넘어 국가나 사회에서도 이런 어두운 과거를 숨기지 말고 대면하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메세지입니다. 특히 유럽 일부 국가의 난민 정책에 대한 비판과 역사를 수정하는(rewrite history) 행동을 언급하며, 좋은 면만을 보고 싶어하는 하루키의 자국인 일본에게 던지는 중요한 의미있는 메세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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