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그의 에세이나 소설을 읽어 보면 서구 문화에 대한 영향을 크게 받아 해외 뮤지션이나 작가들이 매우 자주 언급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단 하루키는 서구 문화에 갖는 관심에 비해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을 것이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겠죠. 일단 자신의 나라가 아시아 국가기도 하고요. 그리고 80년 그의 첫번째 단편집 <중국행 슬로보트>에도 나오듯이, 어렸을 때 부터 살고 있던 항구 도시 고베에서 무역업에 종사하던 중국인들과 곧잘 접할 수 있었던 탓에, 아시아는 중국이란 나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여 한국에 까지 관심을 가지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고요.
<스푸트니크의 연인> 中
<스푸트니크의 연인>은 두 여자와 한 남자간의 얽힌 그리스 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러브 환타지 소설입니다. 두 명의 여자 중 연상녀로 등장하는 뮤가 바로 한국인으로 나옵니다. 위 내용으로 한동안 하루키가 한국을 싫어한다는 것이 정설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죠. 그러나 고양이에 관한 내용 외에 소설 속 한국에 대한 묘사는 지극히 객관적인 수준입니다. 한국을 싫어한다고 생각하기에는 일단 근거 부족입니다.
국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인이었지만 이십대 중반에 결심을 하고서 공부하기까지 한국어는 거의 하지 못했다.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고 프랑스 음악원에 유학한 탓에 일본어 외에도 프랑스어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뮤의 남편은 다섯살 연상의 일본인으로, 서울대학 경제학과에 이 년 동안 유학한 탓에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인품은 온후하고 일처리도 극히 유능해서 실질적으로는 그가 뮤 회사의 조타수를 맡고 있었다.
<스푸트니크의 연인> 中
8년여의 유럽, 미국 생활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온 1996년, 하루키의 주요 작품을 번역 작업한 김난주씨와의 일본 자택 현지 인터뷰에서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김난주: 한국 소설을 읽은 적이 있습니까?
하루키: 유감스럽게도 없군요. 옛날에는 책을 꽤나 읽었는데, 스스로 소설을 쓰게 된 이후로는 별로 읽지 않게 되었습니다.
김난주: 한국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씨의 작품이 어느 정도 팔리고 있는지, 독자는 어느 정도 있는지 정보가 들어옵니까?
하루키: 그런 일은 별로 없습니다. 꽤 많은 분들이 읽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정확한 숫자까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계약을 한 작품에 한해서는 앞으로는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겠지요.
(일본 패전 후) 일본 민간인 포로 대부분은 그 얼마 뒤에 일본으로 송환되었지만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노동자로 그쪽에 송출된 조선인이었기 때문에 일본으로 돌려보내주지 않았어. 일본 정부가 그 거래를 거부했거든. 종전과 함께 한반도 출신자는 더이상 대일본제국의 신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참 너무한 얘기지.
<1Q84> 中
보신 것 처럼, 소설 속이나 인터뷰에서 언급된 한국에 대한 하루키의 인식은 반한 감정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단순하게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은 물론, 고양이 고기로 유명한 중국에 대해서도 정확히 모르는 것 같죠. ^^ 일찍이 해외 작가의 소설을 탐독하며 성장한 그에게는 아시아에 관심을 둘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설명 아닐까요. 우리가 몽골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가지지 못하는 것 처럼요. 그래도 하루키의 방한을 바라는 팬들은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과연 그가 생전에 한국을 방문하게 될까요?
그리고 몇 개월 후, 예스24에서 <1Q84> 3권 출간에 맞춰 하루키 초청 댓글 이벤트가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댓글은 200여개가 달렸는데요, 초청하기엔 조금 모자란 수였을까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위의 모든 방한 가능성을 종결 짓는 인터뷰가 있었죠. 작년 여름 <1Q84>를 출간한 신쵸사와의 롱인터뷰입니다.
<문학동네> 2010 가을호 中
국내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의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뭐 이마저도 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한 말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요. ^^ 국내의 가장 큰 규모의 대회는 봄에 열리는 동아마라톤이죠.
그리고 미국 출간 당시 작가 투어 시행 여부를 두고 싸울 뻔 했던 일화도 같은 인터뷰에 실려있죠.
처음단계 부터 나는 그런 건(지방 순회 낭독회, 사인회 등) 못한다고 확실하게 전했습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에 출연하지 않고, 낭독도 투어도 하지 않는다고요. 계약에 작가의 홍보활동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지요. 나는 일절 움직이지 않으니까 비난이 심했어요. 다들 하는 일인데, 존 업다이크도 홍보활동에 나서는데 전혀 하지 않겠다니 어쩔 생각이냐, 네가 뭔데, 이렇게 싸움으로 번질 뻔했던 적도 있어요. <문학동네> 2010 가을호 中
끝으로, 최근 발간된 하루키의 연설, 인사말 등의 잡다한 글들을 모아 놓은 <잡문집>에 실린, 한국 대학생들에게 전하는 글을 소개해 봅니다. <도너츠를 베어 먹으며>란 제목으로 실린 이 글은 2000년 당시 한국 KBS 국제 라디오에서 한국 대학생들에게 가장 만나고 싶은 일본인 2위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선정되었는데, 그것을 기념하여 방송국에서 하루키에게 인사말을 의뢰한 것에 대한 그의 감사의 답글입니다. 도대체 1위는 누구일까하고 하루키도 궁금해 합니다. ^^
<도너츠를 베어 먹으며> 무라카미 하루키, 2000년 3월.
1991년 부터 95년까지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에 연구원 자격으로 강의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1주일에 1회 1시간씩 '오피스-아워'란 것이 운영되고 있었죠. '오피스-아워'는 미국 대학 특유의 제도 입니다. 주중에 일정 부분 정해진 시간에는 누구나 교수님의 연구실 문을 노크하여, 학생과 교수라고하는 직함의 테두리를 떨쳐버리고 뭐든지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입니다. 매우 캐쥬얼한 분위기로 그야말로 자유로운 시간이죠.
'오피스-아워' 기간 동안 여러 학생들이 제 연구실에 방문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커피를 마시고 도너츠를 베어 먹으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미국 학생도 찾아 왔고, 일본 학생도 왔고, 중국 학생도 제 연구실을 찾았습니다. 한국 학생들도 많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때, 미국이나 혹은 한국, 중국, 홍콩, 대만에 제 소설이 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열심히 읽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조금 놀랐었습니다. 물론, 저의 소설이 번역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독자가 그렇게 많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거지요.
그렇게 찾아 온 학생들과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들은 제 소설을 "어딘가 먼 외국의 소설"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의 일부로 생각해 아무런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읽고, 또한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한국과 대만의 젊은 학생들과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나라나 혹은 문화, 언어가 다르다는 의식을 하지 못했었죠. 물론 차이는 존재하겠지만요. 그렇게 우리들은 주로 차이 보다는 공통점을 주제로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이 이런 친근한 기분으로 저의 책을 읽어 주고 있는 것을 알고 전 매우 기뻤습니다.
제가 소설을 쓰는 하나의 큰 목적은 이야기라고하는 하나의 '살아있는 생물'을 독자와 공유하고, 그 고유성을 작지만 하나의 지렛대로 삼아 마음과 마음 사이에 '퍼스널'한 터널을 굴착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그 누구여도, 나이가 몇 살이든, 어디에 있던지(도쿄에 있든, 서울에 있든) 하는 것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쓴 이야기를 여러분들이 '자신의 이야기'로서 제대로 감싸 안아주는 것. 단지 그 것 뿐입니다.
원래, 저는 적극적으로 대외 활동을 하며 이야기를 하는 성격은 못되기 때문에, 보통 소설을 쓰고 있는 때에는 거의 사람을 만나지 않습니다. 특히, 첫 대면의 젊은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전무라도 해도 좋을 정도이죠. 그래도 미국 대학의 '오피스-아워' 덕분에 여러 사람들과 특히나 외국의 젊은 세대와 만나 친근하게 이야기를 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그것은 저에게 있어서 크나큰 재산이 되었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쓸 수 있으면, 여러가지 일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실제로, 여러분이 저를 만나고 이야기를 해도, 실망해 버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내심 해봅니다. 저는 그렇게 재미있는 사람도, 멋진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만나고 싶은 사람으로 뽑아 주셨다니 매우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피스-아워' 같은 것이 쭉 계속되어 함께 도너츠라도 먹으면서, 오후의 한 때를 마음 편하게 보낼 수 있으면 정말 좋을텐데 말이죠.
지금까지 하루키가 언급한 한국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루키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인 한국에 방문하지 않은 것은 역설적으로 가장 가깝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유럽, 미국 등 거리가 먼 여러나라를 여행했던 그에게 가까운 한국은 그가 성장하면서 흠모한 다른 서구 나라에 비해 흥미가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여행이 아닐 경우, 방문할 일이라곤 공식 스케쥴일텐데 그 역시 지극히 꺼리는 분이니까요. 여하튼, 이제는 한 번 쯤 방한하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뭐 하루키가 방한하지 않는다면, 팬의 입장에서 직접 그를 만나러 가볼만도 하지 않을까요? ^^
*하루키를 만나 보려면? (가능성이 높은 순서대로 다섯 가지를 꼽아 봤습니다.)
1. 작년까지도 하루키가 참가한 매년 가을 열리는 일본 무라카미시 트라이애슬론 대회 참관
2. 일본 가나가와현 하루키 집 근처에서 러닝 (하루키 집 위치는 비교적 자세히 알 수 있죠.)
3. 지금부터 열리는 굵직한 국내 마라톤 대회 참관
4. 국내 출판사들의 하루키 방한 이벤트 (출판사 관계자 분들 능력을 보여주세요!)
5. 국내에서 제정한 문학상에서의 하루키 수상 (이건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깝겠네요.)
이상, 거창한 타이틀과는 달리 하루키 팬심으로 작성한 소소한 방한 기원 포스팅이었습니다. ^^
'하루키 인터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무라카미 라디오 2> '오믈렛을 만들자' (8) | 2011.08.13 |
---|---|
무라카미 하루키 2007년 와이키키 인터뷰 - 아르젠 LA NACIÓN (7) | 2011.07.24 |
일본 교과서에서 접할 수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은? (2) | 2011.07.08 |
26살 재즈 카페 주인 하루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인터뷰 (4) | 2011.06.23 |
안자이 미즈마루가 뽑은 하루키 글 삽화 베스트 30 (1) (8) | 2011.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