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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인터뷰

하루키 22년 4월 마이니치 신문 인터뷰 (후편: 전쟁을 멈추고 음악에 마음을 맡긴다)

by finding-haruki.com 2022.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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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마이니치 신문과 가진 하루키의 롱 인터뷰 후편 시작합니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 부터, 90년대 미국 진출 이야기 그리고 옴진리교 사린 테러 25년을 맞이한 소회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가 계속 됩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https://mainichi.jp/articles/20220422/k00/00m/040/159000c

 

Q: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무라카미씨는 3월 DJ를 맡고 계신 도쿄 FM '무라카디 라디오'를 통해 특별 프로그램인 "전쟁을 멈추기 위한 음악"을 진행하셨는데요. 어떤 생각에서였나요.

 

하루키: 그 방송을 통해 소개된 노래들은 제가 어렸을 때인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반전, 저항의 노래들이랍니다. 그런 것들이 어느 한 순간 다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요. 젊은 세대는 신선했던 것 같아요. 이런 저항의 노래가 있었다고 감탄한 사람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또 어느 나이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향수를 불러 일으켰던 것 같고요.  

제가 생각했던 것은 이런 것이었어요. TV에 나오는 평론가들도 그럴테지만, 모두 자기 의견을 말하죠. 이것이 좋다, 나쁘다, 이것이 맞다, 맞지 않다고요. 저는 그런 것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제 의견을 말하는 대신 음악에 모든 걸 맡기고, 이런 음악입니다라고 소개만 한거죠. 음악을 걸고 제 의견은 말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좋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제가 해설가나 평론가는 아니기 때문에 직접적인 것은 가능한 한 말하고 싶지 않아요. 무언가에게 제 마음을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의견을 말하면 책임을 져야하고 책임을 진다는 것은 매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로 하는 것이죠. 물론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제 의견을 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소설을 쓰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이고, 좀 처럼 그렇게 까지 시간을 들일 여력이 없기에 무언가에 제 마음을 맡기는 형태로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아요. 

 

Q: 그 방송을 들은 청취자들의 마음 깊은 곳으로 충분히 전해진 것 같습니다.

 

하루키: 음악의 힘이라는 것은 정말 크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언제나 열심히 선곡하고 가사도 스스로 번역하고 있답니다.

 

Q: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서는 제 3차 대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데요.

 

하루키: 코로나를 겪고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겪으면서 세계가 크게 변화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어요. 저는 뭐랄까요. 어떤 크게 일어난 일을 소재로 소설을 쓰는 타입이라기 보다는, 그 일이 가져온 공기의 변화 같은 것을 가지고 소설을 쓰는 타입이라 이런 최근의 변화가 제 작품에 반영되려면 시간은 조금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Q: 무라카미씨의 독자 중에는 러시아 사람도 많고, 우크라이나에도 번역된 작품이 있죠.

 

하루키: 우크라이나 번역본도 여섯 작품이 있어요. 7번째가 <기사단장 죽이기>인데, 계약은 되었지만 지금 출간할 상황은 아니지요. 우크라이나에도 독자가 있고 러시아에도 있고, 이런 면에서는 역시 슬픈 감정이 듭니다.  

 

Q: 한시라도 빨리 전투가 끝났으면 합니다.

 

하루키: 네, 진심으로요.

 

Q: 무라카미씨의 동명 단편 소설이 영화화 된 <드라이브 마이카>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 장편 영화상을 수상했는데요.  

 

하루키: 저로서는 집으로 치자면 처마끝 정도를 빌려 준 것 정도였으니까요. (웃음) 제 이야기를 잘 바꿔서 만들어준 것 같아요. 제가 아무리 원작자라고는 하지만, 뭔가 제 작품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다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어요. 전 단지 틀을 빌려 준 것 뿐이고, 나머지는 하라구치 감독이 자유롭게 만들어 냈다고 생각해요. 저도 영화를 직접 보았는데요, 소설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에 재밌게 봤답니다. 전 제가 쓴 소설 속 대사가 음성으로 전해지면 불편한 기분이 들어요. 쓰는 말과 말하는 말은 다르지 않나요? 글로 쓰여진 말이 그대로 스크린을 통해 전해지면 역시 불편한 느낌이 들 것 같아요. 그런 점이 없어서 좋았어요. 

 

Q: 소설 속의 대사를 완전히 인용하는 듯한 대사도 있었습니다만.

 

하루키: 거의 눈치 채지 못했어요. 그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어주면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런데 원작의 대사를 가급적이면 그대로 가져와 많이 쓰자는 생각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제 개인적인 생각은 원작을 바탕으로 영화로 만드는 사람의 감성으로 보다 더 자유롭게 만들어 조금은 바꾸어 지는 편이 기쁘답니다. 

 

Q: 하마구치 감독은 무라카미씨 원작의 '상실로 부터의 재생'이라는 이야기에 공감을 일으킨 것은 아닐까라고 이야기하는데요. 

 

하루키: 하마구치 감독이 좋은 말을 해준 것이 아닐까요.(웃음) 저는 소설과 영화는 역시 별개의 산물이라고 생각해요. 

 

Q: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에는 체호프의 연극 <바냐 아저씨>의 대사들이 대담하게 인용되고 있는데요.

 

하루키: 매우 영리한 감독이라고 생각했어요. 3시간 가까운 영화가 전혀 길다고 느껴지지 않게 만드는 수완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보통 저는 2시간이 지나가면 지루해저 버리거든요.(웃음) 

 

Q: 원작 소설 <드라이브 마이카>가 수록된 연작집 <여자 없는 남자들>이 출간된 2014년 인터뷰에서 '외로움 孤絶' 하나의 주제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그것은 계속해서 지금 사회의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주제 의식이 아닐까란 생각이 듭니다. 

 

하루키: 잘 기억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여자 없는 남자들>의 작품들 속에 들어간 공통된 테마는 손을 뻗어 좀 더 가까이 가고 만지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라는 느낌의 이야기 인 것 같아요. 손을 뻗어 만지려고 하는 의식은 있지만 그것이 때로는 정말로 잘 안되기도 하죠. 그런 공통의 의미를 지니는 일종의 컨셉 앨범 같은 단편집인거죠. <1인칭 단수> 역시 '1인칭 단수'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공통점이 있는 단편집이고요. 연작은 아니더라도 하나의 테마로 1권분의 단편을 쓰는 것을 비교적 좋아해요. 장편 소설을 쓰는 것도 물론 좋아하지만, 그런식으로 단편을 쓰는 것 역시 매력이 있죠. 단편 하나하나를 공백기를 오래 두고 쓰는 것 보다는 단번에 몰아서 쓰는 것을 선호하기도 하고요.

 

Q: 무라카미씨는 1992년 미국에서 에어젼트를 결정하고 knopf 출판사와 계약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영어로 번역 출간하기 시작하셨죠. 이제 30년이 되었는데요. 그 기간을 되돌아보면 어떠신가요.

 

하루키: 처음에는 꽤나 고생했죠. 지명도는 거의 없었고, 그 전까지는 코단샤 인터내셔널을 통해 몇 권 정도는 출간되었었지만, 미국 출판 시장에서는 좀 처럼 정면 돌파가 쉽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미국의 대형 에이젼시인 ICM사의 아만다 어반씨를 에이젼트로 해서 knopf 출판사와 전속 계약을 할 수 있게 되었죠. 그랬더니 확실히 점점 독자가 늘게 되었죠. 처음에는 아만다씨도 일본 작가를 담당하는 것이 처음이었고, 저 역시도 미국의 사정을 몰라 모든게 잡히지 않는 상황이었죠. 그때 부터 벌써 30년간 계속 함께 일하고 있고, 개인적인 친구이기도 하고요. knopf의 저명한 문예 편집장이었던 사니 미터가 사망하고 편집자가 바뀌었지만, 스탭들과는 계속 일을 해 오고 있기 때문에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부분이 많죠. 역시 30년간 계속 같이 일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서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일본의 경우 편집자가 출판사의 직원이니까 부서 이동도 하고 정년도 있고 아무래도 계속 변하게 되죠. 미국의 경우에는 프리랜서로 독립한 전문직으로서 편집자이기 때문에, 갑자기 어디로 가 버린다던가 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일하기 편합니다. 미국의 출판 시장은 돈을 중심으로 한 차갑기만 한 비즈니스 사회라고들 생각하지만, 그렇지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출판/문예 사회 역시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일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랄까요. 그런면에서 여러 방면의 지인도 생기고 여러가지 연결점들이 생겨서 저로선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Q: 미국을 시작점으로 해서 다른 나라로 까지 퍼져가는 것이겠죠.

 

하루키: 결국 뉴욕이 허브라고 생각해요. 유럽의 많은 사람들이 미국 문화를 싫어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영어로 된 제 작품을 읽어 본 후, 괜찮은 작품이라고 판단되면 자신들의 언어로 번역하는거죠. 역시 공통 언어는 영어이고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뉴욕이라는 것은 상당히 강하다고 생각해요.

 

Q: 영어로 번역된 작품을 유럽의 각국의 언어로 번역하기 위해 먼저 읽어 본다는 거군요.

 

하루키: 처음에는 전부 그런 방식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일본어에서 본인들의 언어로 직접 번역하는 나라가 거의 대부분이에요. 이제는 어떤 언어가 먼저였는지에 대해서 말할 필요가 없어졌죠. 일본에서 출간되면 네덜란드라고 치면, 네덜란드에서 일본어를 할 줄 아는 번역가가 그대로 네덜란드어로 번역하는거죠. 처음에는 중역이 이뤄지는 곳이 많았으나 지금은 대부분 원칙적으로는 일본어를 그대로 번역하곤 한답니다. 물론, 그런 방식이 힘든 경우도 있긴 합니다만. 

 

Q: 90년대와 현재를 비교해 볼 때, 미국에서의 무라카미씨 소설을 읽는 방식에의 변화가 있을까요?

 

하루키: 뉴욕 타임즈의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르게 되면서 부터 큰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명함을 내밀지 못했지만, 점점 끝자리 쯤에 얼굴을 내 비칠 수 있게 되었었죠. 제 작품을 기다리는 사람이 늘고 있다라는 체감이 들었던 것 같아요. 

 

Q: <색체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가 하드 커버 픽션 부문 1위에 올랐었죠. 

 

하루키: 네 그렇게 점점 제 소설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독자들이 늘어갔던 것 같아요. 책이 나오면 서점에 가거나 아마존에서 주문하거나 그렇게 해서 베스트 셀러 리스트에 올라가게 될테고, 이런 것들을 볼 때, '아, 기다리는 독자들이 있구나.' 라는 실감을 하게 되죠. 제 신간이 나오면 일본에서의 서점에서는 꽤나 책이 높게 쌓여져요. 세계 각국에서도 동일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요. 파티나 행사가 열리기도 하고요. 독자들의 생각은 비교적 전 세계에서 비슷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Q: 최근에는 카와카미 미에코 작가 등 무라카미씨의 영향을 받은 젊은 세대의 작가들도 해외에서도 읽히기 시작하는데요.

 

하루키: 일본을 벗어나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작가에게 매우 귀중합니다. 일본 출판 시장이나 문예사회라는 곳은 폐쇄적인 곳이라 그곳의 가치관에 갇혀 버리면 아무래도 시야가 좁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외국에서도 평가가 되고 외국 독자도 생기고 그렇게 수입이 생기게 되는 것은 그야말로 작가에게는 큰 일로 또 다른 가능성이 열리게 되죠. 저에게도 물론 크나큰 일이었고 지금의 젊은 독자들에게도 마찬가지 일겁니다. 예를들면, 외국에서도 작품을 출간하고 어느 정도 팔리게 되면, 다음 소설의 어드밴스 금액(선불금, 선인세)이라고 하는 것이 꽤 정돈된 금액이 들어오게 됩니다. 이것은 일본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것으로, 경제적인 측면만으로 봐도 큰 부분이죠.

게다가, 일본에서는 다음에 이런 작품을 쓰면 평론가들로 부터 어떤 말을 듣게 될까라던가, 다음에는 어떤 상을 노려볼까라던가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죠. 또 돈 뿐 만 아니라 지금까지 해 왔던 것 이상의 높은 수준에서도 도전을 해 본다라는 기쁨도 있죠. 다른 가능성이 활짝 열리는 느낌이랄까요. 다만, 외국에서는 한 두 권을 내는 것은 쉬울 수 있으나, 그것은 1,20년 계속해서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쌓아가는 것은 역시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스포츠도 마찬가지지만 역시 '지속'이라는 것은 중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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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와세다 대학 국제 문학관 (무라카미 라이브러리) 오픈 6개월이 되었는데요. 4월 20일에는 지난 19년에 세상을 떠나신 일러스트레이터 와마 마코토씨의 레코드 컬렉션을 소개하는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셨는데요.

 

하루키: 와다씨가 세상을 떠난 후, 와다씨의 방대한 레코드 컬렉션을 인수해서 그 중에서 제가 고른 음악을 라디오 방송을 통해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꼬박 이틀이 걸렸죠. 아내분이신 히라노 레미씨가 도움을 주셨고요. 특이한 레코드도 참 많고 와다씨는 워낙 꼼꼼한 성격이어서 레코드도 아주 깨끗하고 상처 하나 없었답니다. 재즈에 관해서는 저의 컬렉션과 많은 부분 겹쳤기 때문에, 제가 가지고 있지 않은 뮤지컬의 오리지널 캐스트판이라던지 보컬 중심의 음반으로 저 혼자 이틀에 걸쳐 365장을 골랐답니다. 그 음반들을 <와다 마코토 컬렉션>이라는 명칭으로 와세다에 기증해 주셨어요. 아무래도 흩어져 버리게 된다면 아쉬우니까요. 이 중 제가 가장 청취자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을 선별해 라디오를 통해 방송하려고 합니다.

 

Q: 이번에 번역 출간하신 피츠제럴드의 <마지막 대군>의 표지에도 와다 마코토씨의 일러스트가 사용되고 있네요.

 

하루키: 저는 피츠제럴드의 번역본에는 와다씨에게 부탁을 많이 했었어요. 이번에도 와다씨에게 부탁하고 싶었는데, 돌아가셨기 때문에 아내분께서 남겨진 여러 그림을 보여주셔서 이 일러스트가 왠지 딱 맞다고 생각해서 사용했답니다. 매우 만족스러워요.

 

https://www.kinokuniya.co.jp/f/dsg-01-9784120055027

 

最後の大君

非情なまでの辣腕と、桁外れの熱意、全盛を極めハリウッドに君臨するこの男を待ち受けるのは―運命の出会い、そして悲劇の影。“ギャツビー”の先を目指した最後の長編小説。

www.kinokuniya.co.jp

 

Q: 옴진리교에 의한 도쿄 지하철 사린 테러 사건의 피해자를 취재하신 논픽션 <언더그라운드>의 출간이 25년이 되었습니다. 사반세기 동안 일본과 세계의 여러 상황들이 바뀌었지만, <언더 그라운드> 작업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면 어떠실지 궁금합니다.

 

하루키: 약 1년 정도의 긴 작업이었죠. 그 인터뷰 작업을 통해 제가 배운 것이 실로 많았어요. 그것은 지금까지도 저에게 계속해서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인터뷰했던 60명의 목소리가 제 안에 계속 남아 있기 때문이에요. 그 음성을 자신 안에 지니고 있는 것은 중요한 일이에요. 살아있는 목소리를 듣는 기회, 무언가를 겪은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별로 없는 기회이기 때문에 매우 귀중했답니다. 한 층 더 귀중한 것은 인터뷰에 응해 주셨던 그 분들은 우연히 그날 아침 그 지하철에 타게 된 사람들이고, 모두 출근을 위해 지하철에 몸을 실은 사람들이었다는 거죠.

바꾸어 말하면 모두 '보통의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그런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을 기회가 있을까요? 의외로 없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었냐면, 그 날 아침 일어나서 무엇을 하다가 집을 나섰고 어떤 길을 통해 지하철을 탔고 그러다가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그냥 그것을 듣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런 목소리라는 것은 나중에라도 확실하게 제 안에 남아있게 되었어요. 뭐랄까요. 저수지 같은 느낌으로 제 안에 쌓여 있답니다.

 

Q: 단지 작품을 집필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 뿐 만 아니라..

 

하루키: 더 깊은 것이죠. 어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것을 쓰지 않으면 안된 다는 의식이 그곳에서 발현된다고 할까요. <언더 그라운드>는 기본적으로 제가 그 날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스스로 알고 싶었던 동기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오히려 그 이상의 것을 저에게 주었다고 생각해요. 당시에도 옴진리교에 관한 그리고 지하철 사린 테러에 관한 매스 미디어의 취재 기사가 넘쳐났죠. 물론 모두가 각각의 의견을 이야기했겠지만, 결국 그런 코멘트들이 모두 같은 이야기가 되어 버리는 것 같아요. 즉 모두가 각자의 의견을 얘기하지만 결국 같은 얘기인 것이라, 무언가를 움직일 엄청난 힘은 되지 않는 느낌이죠. 

그래서 의견이 아닌 것을 쓰고 싶었어요. 그런 시도는 없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임팩트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언더 그라운드>에서 저는 제 의견을 거의 쓰지 않았어요. 그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단지 기술하고 싶었을 뿐이죠. 물론 이런 이유로 상당히 비판도 받았지만, 나는 그것이 소중하다고 생각했답니다. 제가 쓴 책을 다시 읽고 운다거나 그런 일을 일절 없지만, <언더 그라운드>만 다시 읽으면 울어 버리게 돼요. 그런 의미에서는 저에게 매우 소중한 책이랍니다. 제가 제 작품 중에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유일한 작업이에요. 분명 의미있는 영화가 될테지만 뭐 여러가지 문제가 있어 어렵겠지요. 

 

Q: 끝으로, 일본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커뮤니케이션의 본연의 자세랄까요. 그런 것이 크게 바뀌어버려, 지금 시대는 인간이나 우리 사회가 어떻게 존재해야하느냐의 문제, 그 이상을 어디에 두고 요구하면 좋을지를 판단하기 어려운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가운데 무라카미씨가 생각하시는 문학의 역할, 소설의 역할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하루키: 가만히 생각해보면,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도 소설을 쓰는 의미라는 것은 '이야기'를 지어내고 듣고 싶어하고 하는 것으로 그점은 옛날 부터 일관되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각각의 시대에 맞는 공기와 시대상에 의해서 조금씩 이야기의 형태와 질이 바뀌어 갈 순 있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방식이 바뀔 뿐이고 이야기의 본질적인 의미와 기능은 변하지 않는 것이죠. 그냥 이야기를 쫓아가면서 그것을 문장으로 만들어 나갈 뿐이에요.  그 이야기가 무엇을 상징하고 의미하고 암시하고 있는지는 저도 몰라요. 하지만 분명히 뭔가를 상징하고 뭔가를 암시하고 있겠죠. 그런 의미를 독자가 모른다면 쓰는 행위의 의미는 어느 정도 퇴색 되어 버릴 수 밖에 없어요. 그런 점에서 독자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느끼는지는 확실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분명히 이 부분은 이 점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이것을 상징하고 있죠.' 라는 것이 있으면 좋다고 생각해요. 쓰는 작가 입장에서도 그 부분을 느끼고 있고, 그것을 의식하면서 쓰고 있는 것이니까요. 말로 하는 것은 비평가가 하는 것이고 작가도 말로 해버리면 지루해져 버립니다. 막연한 것을 던져주고, 막연하게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저는 비평가도 아니고 평론가도 아니기 때문에 의견도 없고 분석도 할 수 없어요. 의견을 말할 수 없고 분석을 할 수도 없는 것을 건네주는 것이 저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이 세계에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물론 영향은 받긴 하겠지만, 제가 하고 있는 일은 변함이 없습니다. 

 

Q: 코로나든, 전쟁이든 물론 여러가지 느끼고 있는 것들은 많지만 그것을 의견으로서 말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로 들립니다. 

 

하루키: 네 하지 않습니다. 물론 소설가에 따라서 다르겠죠. 전쟁이 일어나면 전쟁을 소재로 이야기를 쓰고, 코로나를 소재로 쓰는 작가로 있을 것이고요. 모두 각자 나름의 방식인거죠. 저는 단지 그런 방식을 취하지는 않는 다는 이야기입니다. 

 

Q: 한신-이와이 대지진이나 옴진리교 사건에 대해 그랬던 것 처럼, 수 년이 지나고 어떠한 형태로도 작품으로 반영되는 것은 가능성이 있을 수 있겠지요.

 

하루키: 그렇네요. 다만, 그 경우에도 직접적으로 묘사하기 보다는 한 단계 변환해서 이야기의 형태로 그리게 되겠지요.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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