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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인터뷰

하루키 22년 4월 마이니치 신문 인터뷰 (전편: 희망을 갈구하는 마음)

by finding-haruki.com 2022.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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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지난 4월 마이니치 신문과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스콧 피츠제럴드가 집필 중에 세상을 떠나 미완의 작품이 된 <마지막 대군, The Last Tycoon>의 번역 출간을 기념해 진행된 인터뷰이고요. 이전 포스팅으로 소개해드린 산케이 신문과의 인터뷰 보다는 좀 더 긴 시간 깊이 있게 인터뷰가 진행되었으니 좀 더 상세한 내용을 접하실 수 있을 겁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D

 

원문 클릭 https://mainichi.jp/articles/20220422/k00/00m/040/228000c

 

Q: 지난 4월 피츠제럴드의 <마지막 대군>을 번역 출간하셨는데요. 무라카미씨 데뷔 직후인 1981년 <마이 로스트 시티>를 시작으로 그의 대표작 <위대한 개츠비>까지 열심히 계속해서 번역해 오고 계시죠. 무라카미씨의 독자는 무라카미 문학의 하나의 계열로서 무라카미씨가 번역한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함께 읽어 오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루키: 네 꽤 많은 작품을 번역 했네요. 

 

Q: 미완의 유작인 <마지막 대군> 번역은 이전 부터 계획하고 계셨던 건가요? 

하루키: 아니요. <위대한 개츠비>는 제가 번역하지 않으면 안되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었지만, <마지막 대군>은 어떻게 할까 계속 고민이었어요. 피츠제럴드의 마지막 완결 장편인 <밤은 부드러워>는 꽤 길어서 번역을 시작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고 또 다른 번역 작가에 의해 제대로 번역되기도 했죠. 그런데 <마지막 대군>은 다른 번역본도 물론 나와있지만 점점 뭐랄까요 제가 직접 번역하고 싶어졌답니다.

미완의 소설을 번역하는 건 어떨까라는 기분도 있었지만, 다시 읽어 보니 역시 굉장히 좋은 이야기라고 재평가하게 되고 결국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시바타 모토유키씨가 "무라카미씨, 언젠가 <마지막 대군>을 번역해보면 어떠세요?"라고 한 말을 기억하고 있기도 했고요. 그리고 넷플릭스에서 하고 있던 <마지막 대군> 드라마를 보기도 했답니다. 내용은 많은 부분 각색 되었지만, 꽤나 재밌게 봤어요. 그 드라마를 보고 다시 작품을 읽게 되었던 것 같아요.

 

Q: <마지막 대군>은 피츠제럴드 연구가인 매슈 브루콜리씨에 의해 새롭게 편집된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판을 바탕으로 20년도에 일본에서도 번역된 책이 있는데요. 역시 무라카미씨는 피츠제럴드의 친구이기도 한 에드먼드 윌슨판으로 번역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하루키: 네 맞아요. 역시 에드먼드 윌슨판으로 번역하고 싶었답니다. 제가 처음 읽은 것이 윌슨판이었고, 브루콜리판을 읽으면 역시 뭔가 다르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죠. 어느 쪽이 좋고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저는 역시 개인적으로 윌슨판을 쭉 좋아했답니다.  

 

Q: 에드먼드 윌슨의 편집 작업이 들어갔지만 역시 그래도 이쪽이 좀 더 진짜 이야기로서 읽을 수 있다는 느낌일까요. 

하루키: 그렇네요. 만약 저도 소설을 쓰다가 죽게 된다면, 누군가 제 작품에 대해 잘 아는 솜씨가 좋은 사람이 들어와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완성되지 못한 초고를 그대로 출간하기 보다는 일종의 보수 공사를 하고 내보내는 편이 고마울 것 같아요.

 

Q: 무라카미씨는 피츠제럴드가 죽은 나이인 44세 때 장편 <태엽감는새 연대기>를 집필 중이셨는데요. 이 소설을 도중에 완성할 수 없다면 매우 유감이었을 것이라고 하셨었습니다. 

 

하루키: 장편 소설을 쓰고 있는 와중에 죽게 되면 정말 싫을 것이라고 항상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저는 몇 번이나 다시 고쳐 쓰는 타입이므로, 재작성 할 기회가 없는 것은 굉장히 힘들거에요. 그래서 전 마감이라는 것을 절대 두지 않는 답니다. 마감이라는 것을 정해버리면 재작성하는 시간도 그만큼 한정되어 버리기 때문이죠. 마감을 정해 두지 않는 일의 방식을 택하고 있죠.

 

Q: 스스로, 이 정도면 하나의 작품으로서 완성했다고 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기 전까지는 만족을 못하시는거죠.

하루키: 다시 쓰고, 잠시 시간을 두고 다시 읽고 다시 쓰고 또 잠시 시간을 두고, 그렇게 시간을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간을 둘 여유가 없으면 곤란해요. 그래서 제대로 완성해서 이제 됐다라고 해서 최종본을 편집자에게 건네 줄 때 까지는 살아 있고 싶다고 항상 생각한답니다. <마지막 대군>을 읽으면 피츠제럴드도 쓰는 과정에서 계속 수정하면서 소설을 쓰고 있었다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가 남긴 문장이 꽤나 완성도가 높아서 조금 쓰고 그것을 제대로 고쳐 쓰고 난 다음, 다음 문장으로 나가게 되는거죠. 그런데 저의 경우엔 조금씩 써나가면서 끝까지 다 쓴 다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고쳐쓰는 방식이랍니다. 

 

Q: 확실히, 미완이라고는 해도 자세히 읽다보면 <마지막 대군>은 꽤나 완성도가 높은 작품임에 틀림 없습니다.

 

하루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저의 방식과는 다르게 문장과 문단을 써내려갈 때, 세밀하고 정중하게 재작성하면서 진행해 나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이번에 번역하면서 느낀 것은 문장이 정말 수려하게 잘 조직되어 있다는 것인데요. 44세의 나이에 죽었지만, 그 전보다 문장 기술이 확실히 높아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이 끝까지 완성되지 못한 것이 정말 유감이랍니다. 번역하는 중에도 계속해서 그의 문장의 맛을 한결 같이 느낄 수 있었어요.

 

Q: 저 역시 독자로서, 작가의 너무 이른 죽음으로 완성되지 못한 부분이 많이 아쉽습니다. 만약 작가의 손으로 완성되었다면 틀림없는 명작이 탄생했을텐데요.

하루키: 미국 문학사에 남는 대작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Q: 아마 피츠제럴드가 작품을 완성했다면 '주인공의 너무 이른 비극적인 죽음'이 <마지막 대군>에도 등장하지 않았을까요.

 

하루키: 그렇네요. 개츠비 처럼 배신 당해 실의에 빠져 죽음을 맞이하는 이야기가 되었을 거에요. <마지막 대군>은 그것이 암시되는 정도로만 끝이 나죠. 

 

Q: 소설의 주인공인 먼로 스타는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프로듀서였던 어빙 살버그가 모델인 것으로 여겨지는데요. 개츠비 보다 더 존재감 있는 인물을 그리는 것이 이 작품의 중요한 지점이었을까요? 

하루키: 피츠제럴드의 작품은 대체로 작품 속에 화자가 있고, 그 화자가 걸출한 인물에 대해 독자에게 전해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죠.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대군>을 서술하는 방법에서는 무리가 있다고도 생각돼요. 화자가 여성인데, 그녀가 보지 못하는 것은 말 할 수 없는 구조상의 결함이 있을 수 밖에 없는거죠. 그녀가 말하지 않으면 독자는 먼로 스타의 인간상이 좀 처럼 떠오르지 않게 되어버립니다. 1인칭으로는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거죠. 피츠제럴드가 죽은 후, 미완성된 후반부가 이어져 쓰여졌지만 이 부분은 어떻게 건드릴 수 없는 것이고요. 기법적으로는 꽤 무리가 있는 구조이지만, 그래도 계속 읽게 됩니다. 일종의 미국의 영웅전, 로맨스를 피츠제럴드는 쓰려고 했던 것이라고 생각해요.

 

Q: 주인공은 아메리카 드림의 실현자인 것 같습니다.

 

하루키: 꼭대기에 올라 파티를 즐기지만 결국엔 그 꼭대기로 올라갈 수 있었던 사다리가 사라지면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라는 이야기로 흘러가게 되는거죠.  

 

Q: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 있어 어느 특정 시대의 종말을 상징하는 인물을 그리려고 했을까요.

하루키: 1930년대 이전 미국 영화계는 광산업계가 쥐락펴락하고 있었을 겁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운에 맡겨 보자는 식의 사업이 마구 진행되었죠. 그래서 승승장구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만 무너져 버리는 사람도 있었을테죠. 그런 것들이 점차 합쳐지면서 큰 비즈니스가 되어가게 됩니다. 소설 속 먼로 스타는 영화 제작의 모든 단계를 본인이 참여하는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데 이런 시스템도 이미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는 거죠. 소설은 1929년의 세계 대공황 이후 30년대의 불황 시기가 끝났을 무렵이 배경이고, 당시 공산주의에 영향을 받은 노동조합 운동도 먼로 스타의 방식의 영화 제작과 대치하게 되는거고요.  빅 비즈니스와 노동운동 사이에 끼어 버린거죠.

불황시대에 미국에서 유행한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요. 바로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댄서 가수인 프레드 아스테어 그리고 공산주의입니다. 프레드 아스테어의 경우 대중들로 하여금 그의 노래와 춤을 보고 있는 동안은 생활의 비참함을 잠시나마 잊게 만들어 주었죠.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호경기였던 20년대의 화려함을 버리고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힘으로 문학을 선도해 나갔고요. 그리고 공산주의가 힘을 지니게 되어 갑니다. 30년대는 피츠제럴드에게 있어 우울한 시대였어요. 작가로서 별로 평가되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힘들어지고요. 그가 살아서 <마지막 대군>을 완성하고 출간했다면 다시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네, 40년대로 넘어가게 되면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르지요. 

 

하루키: 그런 피츠제럴드의 실제 삶과 소설 속 주인공인 먼로 스타가 30년대 말 부터 40년대에 접어 들어가는 시점을 대비해 보는 재미도 있답니다. 

 

Q: 피츠제럴드가 먼로 스타에 본인을 투영하려고 했을까요? 

하루키: 어느 정도는 그랬다고 생각해요. 그도 무명의 가난한 청년 시절을 거쳐 인기 작가에 올랐으니까요.

 

Q: 거기에 시대 배경도 더해지게 되는 거죠.

하루키: 피츠제럴드가 시대의 변화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영화계가 어떤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는지가 정말 리얼하게 그려지고 있어요. 제가 이 작품을 번역하려고 생각한 이유는 할리우드라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피츠제럴드의 의지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에요. 그는 그때까지 유럽이나 미동부의 사교계라든가 아내 젤다에 관련한 것들을 쓰다가, 할리우드로 오게 되면서 오랜만에 작가로서 어떤 의욕이 불타올랐을 거라고 생각해요. 당시 피츠제럴드가 돈을 쫓아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일로 할리우드로 가게 되면서, 모두가 그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피츠제럴드 자신은 거기에서 오히려 작가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을 겁니다. 

피츠제럴드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밖에 쓸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좋든 나쁘든 자신이 체험하지 않은 것은 쓸 수 없고, 쓴다고 해도 서투르죠. 삶의 소재를 모아 이야기로 바꿔가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아무래도 소재가 한정되어 버리면 이야기는 거기서 끊겨 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이야기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새로운 로맨스가 시작되는 거죠. 그리고 30년대 주로 활동했던 작가들은 대체로 공산주의에 매력을 느꼈다고 생각해요. 피츠제럴드 역시 작품 속에 나오는 것 처럼 관심을 보이기도 하고요. 공산주의가 어느 정도 사회적인 공정함을 목표한 운동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피츠제럴드 자신은 그런 구체적인 활동에는 크게 몸을 담지 않고, 성격적으로도 그런 활동과는 맞지 않았을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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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소설 속에 공산주의 운동가도 등장합니다만, 나쁘게 쓰고 있지는 않죠.

하루키: 네, 나쁘게 쓰지 않기도 했고, 자본주의의 악의 요소도 제대로 그려져 있어요. 작가 자신은 그 한가운데에서 어느 쪽으로도 편향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 자신의 위치를 두는 방식도 그 시대 특유의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먼로 스타가 자본가 측에 설 수도 없고 노동 조합 측으로 갈 수도 없어, 그 결과 결국 몰락해 간다는 것은 피츠제럴드 자신 스스로도 느꼈던 부분이 아니었을까요. 

 

Q: 소설에서는 유대인 차별에 대한 배경도 있습니다.

하루키: 네, 당시 시대의 유대인에 대한 묘사는 대체로 모두 돈에 민감하여 절약을 하며 장사에 능하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죠. 다만 피츠제럴드는 아일랜드 카톨릭계이지만, 그런 고정관념이 사로 잡힌 묘사는 많이 하고 있지 않아요. 인종이나 종교에 따른 편견이 없이 단지 작가로서 흥미를 가지고 어떤 의미에서는 공감을 하며 바라보는 느낌입니다. 

 

Q: 유대인들의 영화계의 중심이 되는 이유가 있었네요.

하루키: 피츠제럴드 자신은 할리우드로 넘어가서, 할리우드에 대해 뭔가 쓰려고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일로 주어진 시나리오 쓰는 작업에는 진심을 다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는 각본을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피츠제럴드가 혼자 제대로 쓴 시나리오는 남아 있지 않죠. 

 

Q: 피츠제럴드의 다른 장편을 번역하실 계획은 또 있으신가요?

하루키: 현재로선 없네요. 피츠제럴드를 좋아하지만 단편, 장편 전부를 번역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리적으로도 힘들지도 모르고, 지금 시점에서 볼 때 번역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도 차이가 있을 것 같고요. 레이먼드 카버(1938~1988)의 경우와는 다르죠. 카버는 전부 번역해버리자고 생각을 해서 동시대에 하나 하나 번역해 나갔지만, 피츠제럴드의 경우 죽은 후 많은 시간이 지났으니까요. 제 상황에 따라 어떤 작품이 떠오르면 다시 읽어 보고, 반대로 어떤 것은 가라 앉게 되면 그것은 또 가라앉게 그대로 두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Q: 무라카미씨에게 있어서 피츠제럴드의 특별함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곳에서 말씀하셨지만, 이번에 <마지막 대군>을 번역하시면서 다시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궁금합니다.

하루키: 피츠제럴드의 소설의 요소 중 제가 좋아하는 것은 로맨스의 감각이 강한 부분이에요. 로맨스의 감각은 바로 무언가를 강하게 갈구하는 마음일 겁니다. 그 대상이 대부분은 돈이나 이성일텐데, 주인공이 그것을 갈구하고 어떤 경우에는 결국 손에 넣기도 하죠. 그런데 그것을 손에 쥐고 나서 다시 잃을까 걱정하고 혹은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면서 파멸해 갑니다. 어쨌든 결말은 슬픈 경우가 많죠. 결말은 슬프지만 그것을 갈구해 나가는 과정에서의 에너지랄까, 생명의 약동 혹은 살아가는 힘 같은 것은 확실하게 나중에 남게 됩니다. 그 부분이 제가 말하는 로맨스라고 생각해요. 

이런 로맨스를 그린 현대 소설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이른바 현대 문학의 상징성이라든지 탈구축 이라든지 그런 기교와 구조적 방식을 빼고 매우 직설적으로 로맨스를 추구하는 작법이 요즘엔 없습니다. 저도 그런 소설을 쓰고 싶지만, 저에게는 또 저만의 스타일이 있으니까 다른 방향으로 (웃음) 돌아가다가 다른 세계도 나오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제 나름대로는 그런 마음의 움직임을 갈구하는 그런 로맨스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은 강하게 가지고 있답니다. 

 

Q: 무라카미씨 작품에도 여자 주인공이 사라져 버린 후라는 설정은 있습니다. 

하루키: 누구에게나 그런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아내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할 수 있는 한 그런 무언가를 갈구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 계속해서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답니다. 소설로서 그것을 잘 풀어낼 수 있을지 없을지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서 말이죠. 그렇게 독자의 마음에 제가 파고 들어가는 것이 저에게는 중요합니다.  

 

Q: 그 점을 피츠제럴드는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라는 말씀이시죠.

하루키: 네, 훌륭합니다. 어쨌든 피츠제럴드는 문장이 너무 좋으니까요. 로맨스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서투른 문장이면 안됩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죠. 뭔가 향기가 발산되는 듯한 문장이 있어야 제대로 전해지게 됩니다. 

 

Q: 이전에, 헤밍웨이는 흉내 낼 수 있지만 피츠제럴드는 그럴 수 없다라고 얘기하셨는데요.

하루키: 네 할 수 없어요. 이 점은 직접 번역을 해보면 알 수 있는 부분인데요. 피츠제럴드의 문장은 실체가 잡히지 않는 것이 꽤 있습니다. (웃음) 읽고 있는 동안은 정말 수려하고 아름답다고 느끼지만, 막상 번역하려고 보면 어떤 단어로 연결되는지를 찾는 것이 꽤나 어려울 경우가 있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그런 향기를 지닌 발산되는 문장을 어떻게든 일본어로 전하는 것이 도전적이랄까요, 재미있고 흥미로운 작업이에요. 그렇게 번역을 하다보면 일종의 '덩어리'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 덩어리를 며칠이고 작업을 통해 풀어가야 하죠. 물론 빠르게 진행되는 부분도 있지만요. 그렇게 어려운 덩어리 부분과 빠르게 진행되는 부분의 조화가 피츠제럴드 작품의 번역 작업에 있어서 정말 좋은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Q: 막힘없이 쭉 흐르는 부분이 있다면, '덩어리'도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하루키: 어느 한 쪽으로만 가도 소설은 지루해지죠. 진지하게 굳어져 풀리지 않는 것이 있고, 그 밖에 나머지는 쑥 흘러가고, 그러다 보면 다시 '덩어리'를 마주하게 되고. 그런 리듬이랄까요. 그런 점은 저도 소설을 쓸 때 공부가 되었답니다. 

 

Q: 그런 글쓰기의 리듬은 피츠제럴드로 부터 영향을 받으셨군요. 

하루키: 그 부분은 번역을 하면서 배우게 된 거에요. 뛰어난 작가는 그런 리듬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로서 고집스러운 부분과 그저 흘려버리는 부분이 구분 되어져 있는거죠. 이런 면은 레이먼드 챈들러도 매우 좋습니다. 트루먼 카포티도 마찬가지고요. 

 

Q: '덩어리'라는 것은 감각적으로는 무슨 말인지 알겠지만, 번역하려고 하면 어려운 부분이라는 의미이죠.

하루키: 네 그런 부분도 많습니다. 단어와 단어는 알고, 이미지도 알지만 그 연결점의 순서가 어렵달까요. 얘기하고 있던 것이 도중에 끊겨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던지, 그것 자체가 이미 '피츠제럴드 세계'가 되어 버린 것이지만요. 시바타씨(*역주: 일본 영미번역가이자 하루키의 번역 선생님)에게 번역한 것을 보여주면, "이 부분은 일본어로 잘 표현된 것 같네요."라고 얘기를 해주시는데요. 영문학의 학술적인 관점에서 번역을 하게 되면 분명히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 같은 소설가 입장에서는 문장을 읽었던 그때의 감각적인 부분을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독자에게 마음이 전해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너무 정확하게 번역을 하려고 하다보면 일본어로서의 의미와 통하지 않게 되어 버리는 일이 있기 때문이에요.

 

(인터뷰는 후편으로 이어집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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