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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통신/하루키 관련 기고글

하루키 자전적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 프리뷰북 리뷰

지난 4월 일본에서는 하루키의 자전적 에세이인 <고양이를 버리다>가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이 글은 단행본 출간으로부터 1년전인 작년 4월 일본 문예지인 <문예춘추> 6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어린 시절 하루키가 배트를 들고 타자 자세를 취하고, 그 뒤에 아버지가 포수 자세로 앉아 있는 흑백 사진과 함께 실린 이 글은, 일본 내에서 <기사단장 죽이기> 이후 또 하나의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적어도 일본 언론이나 평단을 제외한 일반 독자들에게는 말이죠. 이 글이 처음 일본에서 공개된 작년 4월 그 즈음 '파인딩 하루키' 보완 여행차 일본에 머무르고 있던 저는 문예 춘추 6월호에 실린 동명의 글로 화제가 되었던 일본 서점 풍경을 기억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작년 9월 하루키를 미국에 처음 소개해준 <뉴요커>지에 전문이 실리게 됩니다. 번역은 역시 하루키의 영어 전문 번역가인 필립 가브리엘 교수가 맡았습니다. 이 기사는 지금도 뉴요커지 웹 기사로 읽을 수 있는데, 이 기사의 종이 신문 버전에는 하루키 팬들에게는 깜짝 놀랄 만한 사진이 실리기도 했답니다. 바로 하루키가 두 발을 가지런히 모아 고양이를 조심스럽게 들고 있는 사진인데, 고양이를 얼마나 아끼고 친구 처럼 지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는 사진이랍니다. 지금까지 언급된 2개의 사진을 한 번에 모아 봤습니다. 평온하고 부족함이 없는 가정에서 사랑 받으며 자랐다는 것이 사진을 통해서 묻어 나오는 것 같죠.

 

 

사실 이 글 <고양이를 버리다>는 길지 않은 글이고, 이미 <문예춘추>와 영문이긴 하지만 <뉴요커>지에 전문이 실렸기 때문에, 단행본으로 출간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단행본 소식이 나오자, 추가적으로 관련된 다른 글이 있나 찾아봤지만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하루키는 저자의 말을 통해, 다른 글들과 함께 싣기엔 성격이 애매한 글이라 단행본으로 내기로 결심했다고는 하지만, 이 얘기는 에둘러 하루키식으로 돌려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루키는 이 글 <고양이를 버리다>를 통해 일본 독자를 비롯한 일본인 모두에게 굵직한 메세지를 강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곧은 의지가 발현되어, 하나의 단행본으로 구성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과연 어떤 메세지 인지, 이 책 <고양이를 버리다>를 읽어 보면 잘 알 수 있게 됩니다. 

 

*이 책은 감사하게도 비채출판사에서 김난주 번역가님의 손을 거쳐 곧 번역 출간될 예정입니다. 정식 출간전, 비채출판사에서 프리뷰북 리뷰어 모집을 진행했고, 감사하게도 20명 중의 리뷰어로 선정되어 이 포스팅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하루키의 나이 70세, 작가 생활 40년을 넘긴 시점에서  되돌아 보는 한 사람의 역사 그리고 일본의 역사

하루키는 작가 초기 자신의 내면으로 집중하며 일궈낸 1인칭 기법과 기존 일본 문학계의 룰을 깨뜨린 그만의 '하루키 스타일'로 당시 젊은 독자들의 무국적 지향 문화를 뒷받침 하며 미국의 팝 컬쳐 같이 술술 읽히는 글 잘쓰는 소위 컬트 작가로 큰 각광을 받습니다. 초기 쥐 3부작과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대표적인 초기 작품입니다. 

 

그런 그가 일본을 떠나 유럽 체류 기간에 집필한 <노르웨이의 숲>이 밀리언셀러가 되어 더욱 유명해지고, 뒤이은 미국 체류 기간 동안, 일본 밖에서 바라 본 자신의 나라에 대한 객관적인 자각을 하게 됩니다. 이 부분은 하루키에 대한 세간의 공통된 인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그의 의식은 미국 프린스턴 대학 연구 교수 시절 집필을 시작한 <태엽감는새>를 통해 본격적으로 드러납니다.

 

그는 대중적인 인기 작가라는 타이틀을 버리고 역사의 한 가운데에서 자국 일본의 역사적 과오에 대해 보다 면밀하게 객관적으로 보고자 하는 작가적 여정에 들어갑니다. <태엽감는새>를 통해 과거 일본의 침략 전쟁의 역사에 대해 환기를 시키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몽고인 장교에 의해 살갗이 벗겨지는 야마모토의 끔찍한 장면이 오버랩되는 독자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 이후 논픽션 <언더그라운드>, <해변의 카프카>, <애프터다크>, <1Q84>를 통해 굵직한 사회 현상과 2차 세계대전 발발 전의 중일 전쟁의 역사에 대해 지속적으로 사회 환기 작업을 병행하고, 각종 국내외 인터뷰를 통해 역사의 제대로 된 인식 혹은 자각의 필요성에 대해 자신의 소신을 밝히기도 합니다. 

그리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상처 입은 일본  독자들을 위해 일종의 치유와 화해의 메세지를 던졌다고 보여지는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는 비로소 본인의 소설 작품 속에 일본 침략 전쟁의 상징인 난징 대학살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기에 이릅니다. 이 일로 일본 극우주의자들로 부터 거센 비판을 당하고, 일부 서점에서는 그의 코너가 축소되는 일도 있었다는 일본 언론 보도도 있었습니다. 

 

<고양이을 버리다>의 부제는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 할 때'입니다. 말 그대로 하루키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간 치밀한 기록입니다. 2008년 아버지 무라카미 치아키씨가 돌아가시고, 몇 년 뒤 아버지의 성장 과정과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역사를 친지들을 찾아다니며 조사하게 됩니다. 하루키는 인터뷰와 저자 후기를 통해,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차마 글로 쓸 생각은 하지 못했고, 돌아가신 후 쓰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하루키는 작가로 데뷔하고 나서 아버지와 소원해졌고 왕래도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와세다 대학을 나와서 일반적인 일본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길 원했던 아버지와 바램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작가라는 삶을 선택한 아들이 탐탁치 않았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하루키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 일종의 화해 같은 것을 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 부분이 소설 <1Q84>에 덴고의 아버지의 장례 장면 등을 통해 투영 되기도 하죠. 

 

<고양이를 버리다>를 통해 하루키는 할아버지로 부터 시작된 아버지의 성장 과정과 전쟁 속에서 징집된 과정, 그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사실 관계들 그리고 어머니와의 결혼, 할아버지의 죽음, 삼촌 들과의 관계들 까지 본인 가족의 역사에 대해 매우 소상히 기록해 나갑니다. 글의 2/3 분량이 이런 가족 역사의 한 줄기를 있는 그대로 활자로 옮깁니다. 마치 옴진리교 사린 테러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그의 논픽션 <언더그라운드>를 읽어 나가는 묵직하고 먹먹한 기분도 듭니다. 

 

 

하루키는 왜, 이 글 <고양이를 버리다>를 쓸 수 밖에 없었을까

 

이 책 <고양이를 버리다>를 차분히 읽어 내려가면 중반 이후, 하루키는 도대체 왜 이 이야기를 썼을까라는 의문이 자연스레 생기게 됩니다. 나이 70을 넘기면서 단순히 자신의 역사를 기록하고 싶어서 족보를 써내려가는 느낌으로 썼을까요? 아니면 출판사의 어떤 청탁이 있었을까요? 얘기는 <기사단장 죽이기> 출간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기사단장 죽이기>에는 난징 대학살의 중국 민간인 피해자 수를 언급하며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일본의 역사적인 치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소설을 통해 계속 해오던 일본 역사적 과오를 환기 시키는 작업의 강도를 확 끌어 올린 것입니다. 그 반응은 초기에 있는 듯 싶더니, 일본 언론과 평단에서는 오히려 뜨뜨미지근하게 반응을 하며, 사회적 관심을 더 키우지 않은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즉, 쉬쉬하면서 더이상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이슈되는 것을 차단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일본 일부 평론가들의 합리적인 의심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루키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시작했던 그 만의 작업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글로 옮기기로 결심을 하게되고, 어떻게 보면 지극히 개인사로 치부될 수 있는 이야기를 꾹꾹 눌러 하나의 울림있는 글로 완성시켰습니다. 이를 통해 하루키는 어떤 메세지를 던지고 싶었떤 것일까요. 

 

먼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각자 모두 어떤 우연의 사건을 통해 지금 이 세상에 놓여져 있다는 점입니다. 무수히 많은 빗방울 중에 하나인 것이라는 비유를, 자신의 아버지가 전쟁 속에서 죽었더라면 본인은 물론 자신의 쓴 작품들도 없었을 것이란 얘기를 들며 합니다.

 

둘째, 그런 우연의 산물인 개개인 모두들도 엄연히 그들만의 역사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하루키 본인이 우연의 산물이지만, 아버지로 부터 이어 온 역사가 있듯이 말이죠. 

 

셋째, 그런 개개인의 역사는, 한 국가의 역사 더 나아가 세계의 역사 속에서는 한 낱 작디 작은 역사이지만, 세계의 역사를 구성하고 있는 하나의 역사로서의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개인의 역사도 성실히 묵묵히 다음 세대로 계승을 해야한다고 명백하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이런 이야기의 흐름을 통해 하루키가 결국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역사를 있는 그대로 계승하려고 하지 않고, 왜곡하여 후세에게 잘못된 역사를 교육하고자 하는, 역사 수정주의자들을 정면 비판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가나 사상가가 아닌 작가의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고양이를 버리다>에서 발췌한 하루키의 육성을 남기며 포스팅을 마무리 합니다. 

 

"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내리는 방대한 빗방울의,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유하기는 하지만, 교환 가능한 한 방울이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 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서의 책무가 있다. 우리는 그걸 잊어서는 안 되리라." - 무라카미 하루키 <고양이를 버리다>

 

비채출판사를 통해 곧 출간 될 정식 버전을 기다려 주세요. :D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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