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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일본 마이니치 신문사와 가진 인터뷰 2편 포스팅 이어갑니다. 1편에서는 코로나 시대 속에 음악과 문학의 힘을 믿어야 한다는 위로의 메세지와 일본 정치권의 잘못된 역사 인식 등에 대한 날선 비판이 있었습니다. 2편 인터뷰는 신작 단편집 <1인칭 단수>와 하루키 부친의 전쟁 참전에 대한 소상한 기록인 <고양이를 버리다>에 대한 내용이 이어집니다. 

 

https://news.cgtn.com/news/3d3d774d34496a4e34457a6333566d54/index.html

 

하루키 20년 7월 마이니치 인터뷰 2편
"책무로서 기술한 아버지와 전쟁"

 

Q: <고양이를 버리다>는 다소 충격적인 에세이였습니다. 역시 70세를 기해 써보자고 생각했던 것이었나요?

지금 써 두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솔직히 가족의 일은 좀 처럼 쓰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은 남겨두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쓴겁니다. 글을 쓰는 사람의 하나의 책무로서 말이죠. 

 

Q: 그것은 무라카미씨의 부친이 3번 소집된 전쟁 이야기 때문이겠죠. 특히 일본의 중국 침략에 관한 것이기 때문 아닐까요.

그것은 굉장히 큰 하나의 역사적인 일이에요. 그런 일이 없었다는 식으로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은 제대로 써두지 않으면 안됩니다. 역사를 자기들 입맛대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건 상당히 위험한 일입니다. 아버지가 살아계 실 때,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2008년 돌아가신 후 잠시 시간을 두고 쓴 겁니다. 

 

Q: 아버지가 난징 대학살이 자행된 전투에 참가했을 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으로 부터 시작되어, 기록을 바탕으로 사실을 검증해 보고 싶어하셨고, 결국 그 대학살을 자행한 부대에는 소속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런 이유도 있었지만, 지금까지만 좀 처럼 작가로서 손을 대지 못한 부분이 있었는데, 이제는 정말 쓰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쓰기로 결정하게 되었고요. 기록을 보면, 아버지의 부대는 중국의 우한까지 진출을 했었더라고요. 코로나 관련 뉴스로 우한이 나오는 것을 보고 다시금 생각이 났습니다. 

 

Q: 중국에 대해서는 무라카미씨의 초기 작품에도 다양한 형태로 다뤄져 다소 무거운 주제로 다가오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네요. 중국에 관해서는 물론, 하나의 테마랄까, 모티브가 있습니다.

 

Q: 아버지가 징집된 부대에서 자행된 중국 국인 포로를 처형하는 얘기를 직접 들은 경험도 컸을까요?

그런 잔인한 이야기는 역시 어린 아이들에게는 충격이랄까, 그런 것들이 잔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Q: 그리고, 오랜 기간 부자 지간이 꽤나 냉랭해졌었던 이야기도 놀랐습니다. 

그 이야기를 쓰는 것은 정말 어려웠어요. 제 자신에 대해 쓴다는 것은 매우 힘든 작업입니다. 어떤 식으로 쓸지, 그 방식과 태도를 결정하는데 시간이 꽤 걸립니다. 

 

Q: 고양이에 얽힌 사연이 있었기 때문에 좀 더 접근하기 쉬웠을까요.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가져와서 전체의 균형을 잡아 독자에게 읽을 만한 거리를 제공해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간신히 기술적인 측면으로는 가능한 것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작가 초기에는 작품의 주제로 쓸 수 없는 것이라는 게 많았는데, 그래서 자연스레 쓸 수 없는 것은 피해 다니고 있었다랄까요. 그런데 이제는 지금까지는 쓰지 못했던 것들을 점점 쓸 수 있게 되어가고 있답니다. 첫 작품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같은 경우, 쓸 수 없는 것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그런 소설이 나오게 된 겁니다. (웃음)

 

Q: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당시 젊은 세대의 독자들로 부터 팝음악의 자유로움이 묻어난 문장을 가져온 문학이 드디어 탄생했다고 지지를 받았습니다. 

네, 당시에는 제가 가지고 있는 것 밖에 쓸 수 없었다라는 걸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작가라고 한다면 기본적으로 그렇게 해서는 발전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문장을 좀 더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도록 노력했고, 드디어 여러가지 일들에 대해 내 생각대로 쓸 수 있게 되었다라고 요즘 생각하고 있답니다. 

 

Q: 말씀하신, 자유롭게 쓸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신게 언제인가요? <1Q84>에서도 꽤 자유롭게 쓰신 것 같았습니다.

글세요. 그러네요, 비교적 편하게 쓸 수 있게 되었다라는 느낌은 그 때에도 가졌던 것 같아요.

 

Q: <1Q84>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덴고와 아버지의 화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자연스레 기고글 <고양이를 버리다>에 담겨진, 돌아가시기전에 화해한 무라카미씨와 아버지가 떠오릅니다. 단편 <토니 타키타니>에서도 중국에 관한 부자 관계를 그리고 있죠. 

그렇네요. 그런데 한 작가가 쓰고 싶은 것, 쓰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제한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많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것을 여러 각도에서 여러 방법으로 계속 쓰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Q: 곧, 6년만의 단편 소설집 <1인칭 단수>가 나옵니다. 수록 작품 8편 중 7편은 18년 부터 3년에 걸쳐 발표된 작품이고, 신작은 1편입니다. 그만큼 시간을 들여 마무리 된 느낌인데요.

기분이 내키면 써 내려갔던 것 같아요. 특별한 마감이라는 것 없이 말이죠. 처음 3개의 단편을 몰아서 썼던 정도입니다. 

 

Q: 이야기 하나가 마무리 되는 대로 발표했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죠.

 

Q: <1인칭 단수>라는 제목으로 된 단편의 의미는 다시 1인칭으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의도의 표현인가요? 

1인칭을 다시 한 번 제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8작품 모두 각각 다른 1인칭 관점이랍니다. 모두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1인칭으로 얘기합니다. 하지만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비교적 복잡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Q: 이야기의 각 장치가 뭔가 하나의 포인트로 모인다는 느낌도 들고, 무라카미씨 본인의 이야기 인 것은 아닐까라는 느낌도 받게 되고요.

음, 뭐 여러가지의 가설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 같은 느낌은 맞는 것 같습니다. '나'는 아니지만, 내가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라는 일인칭 관점의 주인공이라는 느낌이 가까울 것 같네요. 

 

Q: 1985년 단편집인 <회전목마의 데드히트>의 경우, 소설가이자 화자인 무라카미씨로 여겨지는 사람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형식입니다. 

네 맞아요 그런 설정이 있었습니다.

 

Q: 그래서 이번 <1인칭 단수>의 작품들 역시 모두 무라카미씨의 실제 이야기라고 생각되어 지게 만들고 있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죠. 게다가 1인칭 시점이고 동시에 음악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도요.

음악,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찰리 파커, 슈만, 비틀즈, 그리고 단가가 등장하는 이야기 하나, 시집이 등장하는 단편도 있네요. 각각의 이야기에 그런 장치들이 하나씩은 있는 것 같은 느낌이네요. 

 

Q: <찰리파커 플레이 보사노바>를 읽고, 이야기에 등장하는 곡을 다시 들어보면, 예전과 느낌이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단편의 경우에는 즐기면서 썼다는 느낌이 강하게 남아 있답니다. 쓰지 않으면 안되니까 썼다라기 보다,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왠지 자연스럽게 술술 써 버렸다는 느낌이 강하네요. 저는 쓰고 싶지 않을 때는 쓰지 않거든요. 소설을 쓰고 싶지 않을 때는, 번역을 해버리는 편이라, 소설을 정말 쓰고 싶을 때 쓰게 된답니다. 기본적으로는 굉장히 편하죠. 역시 마감이라는 것이 있다라고 생각하면, 정말 힘듭니다. 그래서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다른 것을 하면 되지라는 생각이 들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역시 다시 쓰고 싶어집니다. (웃음) 그것은 참 고마운 일이라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Q: 게다가, 제대로 단편을 써낸 후에는 중간 정도 이상의 장편이 쓰고 싶어 지기도 하고요.

네, 쓰고 싶어 지네요.

 

Q: 다음 작품의 경우엔, 대장편의 로테이션 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다시 장편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게 되면, 다시 가게라도 할까라는 생각도 하곤 합니다. (웃음)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데, 쓰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 만큼은 역시 피하고 싶으니까요. 

 

Q: 장편 <기사단장 죽이기>도 1인칭 소설이었는데요, 역시 1인칭으로 다시 돌아오신 건 나이에 대한 의식이 있었나요? 

다시 원래의 시작 위치로 돌아가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것,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답니다. 제 소설은 1인칭으로 부터 시작해서 3인칭으로의 변화를 가져왔는데요. 다시 1인칭으로 돌아가서 예전에는 할 수 없었던 것을 1인칭으로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예전에는 1인칭으로도 쓸 수 없던 것들이, 지금은 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시도해 보고 싶습니다. 

 

Q: 다음 작품은 역시 중편이나 장편이 될까요?

네 그럴거라고 생각됩니다. 아직 생각 속에만 있지만, 아마 뭔가를 쓸 것 같습니다.

 

Q: '무라카미 라디오'는 장편 소설을 쓰시는 중에도 계속 하실 생각이신가요?

라디오는 계속 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은 재미있고 그 속에서 여러가지 것들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좀 더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Q: 번역과 라디오 진행, 그리고 소설 쓰기 3가지를 동시에 하신다고요?

네, 그런데, 그렇게 바쁜 것은 아니랍니다. (웃음) 오히려 그렇게 하고도 여유도 좀 더 있는걸요.

 

Q: 음악을 듣기 시작한 50년대 말 부터 60년이 지난 현재 까지 무엇이 바뀌었고, 무엇이 바뀌지 않았을까요.

글세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린 시절에는 시시한 음악도 꽤나 듣고 있었답니다. 지금 보면 왜 이런 음악을 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음악도 있어요. (웃음) 그런데 그런 재미없는 시시한 것들을 듣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 것을 듣지 않으면 정말 좋은 것이 무엇인지 모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소설도 마찬가지고 음악도 마찬가지 입니다. 지금 젊은이들이 즐겨 듣는 음악이 저에게는 시시한 음악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비판할 거리가 되지 않죠. 무엇이든 젊은 시절 듣고 읽는 것들은 좋은 영향을 준다고 믿습니다. 저도 같은 길을 걸어왔고요. 최근에는 저 역시도 듣거나 읽는 것들이 다소 편협해 지긴 했습니다만, 계속해서 그런 문화적인 것들에 있어서는 다양성을 열어 두고자 생각하고 또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고글 <고양이를 버리다>에서는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은 것들이, 인터뷰를 통해 드러나는 모습을 보며, 의미있는 인터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가 침략 전쟁을 일으킨 아버지 세대의 과거 일에 대한 적극적인 추적과 역사적 사실에 대해 숨기지 않고 드러내려는 작업의 일환으로 여겨져 더 소중한 인터뷰라고 생각됩니다. 다시 장편 소설 모드로 돌아오고 싶다는 하루키상 응원합니다. 그런데 라디오 DJ는 적당히 하고, 그만 하실 줄 알았는데 잘못 짚었네요. :D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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