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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인터뷰는 일본 신문사인 마이니치 신문사와의 인터뷰입니다. 일본 내 공식 인터뷰는 17년 <기사단장 죽이기> 출간 기념 특집 인터뷰 이후 처음 인 것 같네요. 1편과 2편으로 나누어져 있는데요. 먼저 1편은 도쿄 FM에서 무라카미 라디오를 2년 넘게 진행해 오면서의 소감이나 음악과 문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2편에서는 최근 단행본으로도 출간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인 <고양이를 버리다>와 곧 출간 될 신작 단편집 <1인칭 단수>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1편에서는 오늘 국내 언론에서도 뉴스화가 된, 하루키의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대한 선동하는 잘못된 '말'의 위험성에 대한 언급이 등장합니다. 인터뷰의가 꽤 길어, 2개의 포스팅으로 나눠서 진행하겠습니다. :D

 

https://news.cgtn.com/news/3d3d774d34496a4e34457a6333566d54/index.html

하루키 20년 7월 마이니치 인터뷰 1편
"음악과 문학의 힘을 믿는다"

 

Q: 2년 전 부터 도쿄 FM의 라디오 프로그램 '무라카미 라디오'의 DJ를 맡고 계십니다. 오늘은 10평 남짓한 공간의 스튜디오에서 8월에 방송될 방송을 녹음하셨는데요. 방송국 직원들과도 매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호흡도 매우 잘 맞는것 같습니다.

그렇네요. 직원들도 계속 고정이기도 하고 꽤나 기분 좋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2난 2번의 방송은 코로나 때문에 스테이-홈 특집으로 제 집에서 저 혼자 진행했는데, 이번 부터는 원래대로 스튜디오 녹음으로 돌아왔습니다. 

 

Q: 오늘 인터뷰는 먼저 '나의 DJ 경험'이란 주제로 이야기하려고 하는데요. 먼저, 무라카미씨가 학창 시절 부터 들어온 라디오 프로그램을 얘기하자면, 중고생 시절에는 '라디오 간사이'의 신청곡 프로그램을 즐겨 들었다고 하셨고,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도 그 프로그램의 장면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전 라디오와 함께 자랐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텔레비젼도 봤지만, TV의 경우 예전에는 집에 한 대만 있는 것이 보통이어서, 가족 모두가 함께 본다라는 느낌이 강했죠. 하지만 라디오라는 것은 1:1 이고, 전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라디오라는 것이 가장 개인적이고 굉장히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미디어라고 생각해요. 라디오를 통해 아주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자랐답니다. 

 

Q: 트랜지스터 라디오 였나요?

작은 트랜지스터 라디오 였죠. 게다가 AM 방송이었답니다. FM 방송이 나온 것이 제가 고교생을 마칠 때 쯤 이었어요. 그 이전은 모두 AM의 중파 방송 뿐이었죠. 그래서 음질이 좋지는 않았답니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도 열심히 귀기울이며 들었죠. 그 당시는 레코드도 저에겐 고가였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 살 수는 없었죠. 라디오에서 들을 수 밖에 없는 거죠. 지금 처럼 스트리밍이나 다운로드한다는 개념도 없었고요. 그만큼 열심히 소중하게 음악을 듣고 있었던 거죠. 

 

Q: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도 하셨나요?

그 당시에는 카세트 테이프도 없었고, 오픈 릴 테이프도 없던 시대에요. 그래서 그런 것도 할 수 없었죠. 조금 뒤에 튜너 데크에 녹음하거나 더빙이 가능하게 되었고, 카세트 테이프도 나왔죠. 

 

Q: 어쨌든 그 당시에는, 열심히 귀 기울여 듣는 방법 밖에는 없었던 거네요.

맞아요. 그 것 밖에는 없었죠.

 

Q: 무라카미씨 방에서 혼자 라디오를 듣기 시작한 때는 언제 부터 였나요?

초등학교 5학년 정도일까요. 작은 소니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선물 받아 듣기 시작했을 거에요. 1959년 정도, 1960년 전입니다. 그때 부터 계속 라디오를 듣고 있었죠. 그리고 중, 고등학교에 오면서 조금 더 큰 라디오로 바뀌죠.

 

Q: 처음 부터 서양 음악을 들으셨나요?

네 맞아요. 서양 음악이죠. 전 '고베 문화권'에서 자랐기 때문에, 당시 그 근방은 서양 문화권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죠. 도시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모두 서양 음악이었고, 문화적으로 그런 토양을 바탕으로 자랐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별로 의식한 적은 없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느낌입니다. 

 

Q: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우셨죠?

네 배우고 있었죠. 연습이 싫어서 그만 둬 버렸습니다. (웃음) 초등학교 몇 학년일까, 그 때 부터 중학교까지 피아노를 배우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지금도 악보는 기본적으로 볼 수 있고,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좋았던 시절이라고 생각해요. 또 연주는 하지 못하지만, 음악을 들으면서 피아노의 화음을 찾거나하는 것은 좋아합니다. 음악이라는 것은 계속해서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안되 잖아요. 피아노 연주나 발레나 계속해서 꾸준하게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긴 시간 연습을 해야 겨우 모두가 인정하는 수준에 도달하게 되죠. 그 기간이 적어도 몇 년은 걸릴테고요. 조금이라도 연습을 게을리하면 바로 뒤쳐지게 되고요. 하지만 글쓰기라는 것은 연습하지 않아도 바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연습을 안해도 되는 편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Q: 음악은 대중음악을 들으셨던거죠?

초등학교 때 부터 중학교 15세 정도까지는 계속 팝음악만 들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재즈를 듣게 되어 빠져 들었고, 거의 동시에 클래식 음악도 듣기 시작했어요. 라디오로는 팝음악만 들었답니다. 그리고 재즈카페를 하면서 레코드로 재즈를 듣고 클래식도 듣게 되었죠. 그렇게해서 3가지의 음악을 골고루 듣는 3가지 음악 장르 체계로 바뀌게 되었던 거죠. 

 

Q: 무라카미씨가 12살 정도에, 집에 스테레오 시스템이 있었던 거죠?

네, 집이 아시야에서 이사를 갔을 때 였어요. 당시에 레코드를 사서 집에서 듣곤 했어요. 그런데 당시엔 레코드 가격이 비싸서 듣고 싶은 음악을 다 사지는 못했죠. 그래서 라디오를 통해 다양한 팝음악을 듣고, 직접 사고 싶은 레코드는 신중하게 골랐었답니다. 

 

Q: 무라카미씨가 처음 손에 쥔 레코드는 빙 크로스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라고 하셨죠?

그 앨범은 스테레오 시스템을 샀을 때, 덤으로 같이 주었던 레코드였답니다. 제가 직접 돈을 지불하고 처음 산 레코드는 진 피트니의 LP였죠. 중학교 2학년 쯤이었을 거에요. 그렇게 첫 LP가 제 레코드 콜렉션에 들어오고나서, 50년 동안 레코드를 수집하고 있죠. 지금은 이미 차고에 차도 주차 시키지 못할 정도로 쌓여 버렸어요. 책은 한 번 읽으면 대체로 헌책방에 다시 판다거나 해서 처분해 버리는데, 레코드는 계속 소장하고 있습니다. 보통 작가라면 그 반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제 경우엔 책엔 그렇게 집착이 생기질 않네요. 초판이라든지 그런 것들도 전혀 관심이 없답니다. 하지만, 레코드의 경우엔 1st 에디션 위주로 찾곤 하죠. 레코드의 경우엔 수집가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Q: 장서가는 아니신가요?

네, 장서가는 아니에요. 레코드랑 책을 같이 수집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 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Q: 팝음악을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가사를 번역하기 시작하셨다고 하셨는데요.

네 팝을 들으면서 가사를 듣고, 가사를 기억하고, 가사를 번역하면서 점점 영어에 친숙해진 느낌이 있습니다. 지금은 번역가로도 활동을 오래 해오고 있는데요. 번역의 첫 시작점은, 하나의 노래의 모든 영어 가사를 머리 속에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었어요.

 

Q: '무라카미 라디오'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요? 출판사 담당 편집자의 제의를 통해서 였죠.

네 라디오 진행이라는 제안을 받고서는, 저도 TV 출연은 싫지만, 라디오라면 어떻게든 해 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레코드나 CD도 산만큼 가지고 있고, 음악도 대체로 집에서 혼자 듣고 있는데, 사실은 재미는 없죠.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하면서 듣는다고 생각하면 좋다고 생각은 하지만, 좀 처럼 제 주변에 같이 그럴만한 사람도 없었고요. 저는 예전에 재즈 카페를 했었기 때문에, 손님이 와서 레코드를 걸고 혹은 연주를 하고, 혹은 어떤 음악을 들려달라고 요청이 오고 그렇게 누군가와 함께 듣는 것은 꽤나 익숙해져있었죠. 그런 것들이 가게를 그만 두고 나서는 계속 없었기 때문에, 그런 장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라디오라면 그런 일을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걸고,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얘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하겠다고 승낙을 했던거죠. 

 

Q: 작가 데뷔전, 와세다 재학 시절인 1974년 부터 7년간 재즈 카페를 운영하셨는데요. '무라카미 라디오'는 2018년 8월에 첫 방송이 되었습니다. 

처음 부터 제가 테마를 정하고, 레코드를 선택하고 어떤 이야기를 할 지 정하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이 계속 되고 있답니다. 레코드와 CD는 모두 제가 소장하고 있는 컬렉션 안에서 방송하고 싶다고 얘기도 되었고요. 이런 형식의 프로그램은 요즘 라디오에서는 이상하게도 좀 처럼 없네요. 셀렉샵 같은 느낌으로 무엇이든 있어요라는 느낌의 가게가 아니라, 물건은 모두 주인이 선택한 '이 쪽의 취향대로 진열되어 있으니 마음에 들면 또 오세요'라는 것이죠. 그래서 청취자의 취향에 맞으면 다시 들으러 오고, 그렇지 않은 청취자는 다시 오지는 않는 그런 느낌의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Q: 기존에 참고했던 프로그램이 있었던 건가요?

아니요. 특별히 없습니다. 미국에서 밥딜런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는데요. 상당히 차분한 곡을 모아서 들려주곤 했습니다만, 저는 차분한 곡은 잘 수집하지 않아요. 이건 제가 음악 전문가가 아니라 단지 작가이기 때문에, 즉 어디까지나 취미로 하는 것이기에 비교적 대중적인 곡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밥 딜런의 경우 음악 전문가이기 때문에 꽤나 심도 있는 곡도 선곡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청취자 친화적인 방송을 하고 싶답니다. 제가 여기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버리게되면 오히려 청취자는 떠날 것 같다랄까요. 

 

Q: 벌써 2년 동안 15번 정도의 방송을 진행하셨는데요.

사실은, 더 많이 하고 싶었어요. 평소에는 제가 외국을 자주 나가게 되어, 라디오 진행이라는 것 자체가 하기 쉽지 않았는데,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외국에 가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 계속 하고 있답니다. 마음 같아서는 1개월에 한 번 하고 싶습니다. 하고 싶은 기획은 1~2년 정도 쌓여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있답니다. 라디오는 새로운 시도로서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원칙적으로는 라디오는 1:1 대화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을 걸면 같이 말할 수 있고, 듣는 쪽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응답이 들려오고 음악을 들으면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좋습니다. 요즘은 인터넷 중심의 사회이다 보니 화상회의 시스템 Zoom이라던가 Skype라던가 성행하고 있지만, 그런 방식은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다랄까요. 저는 음악도 CD라던지 스트리밍 보다는 LP 레코드를 좋아하고 자동차 운전도 수동 변속을 좋아합니다. 아날로그인거죠 결국. 그래서 저에게는 라디오가 딱입니다.

 

Q: DJ 경험을 통해 라디오의 재미를 재발견하신거군요.

그렇네요. 음악과 목소리를 통해 의사 소통하는데에 관심이 있고, 굳이 표현하자면 제 목소리로 에세이를 쓰는 느낌이랄까요. 스피치는 자신이 없기 때문에 강연에 나서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데 마이크와 전파를 타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재밌다고 생각합니다. 홈페이지를 통해 독자와 상호 작용한 결과물들을 정리한 책도 출간했는데요, 그것의 음성 버전 같은 느낌이랄까요.

 

Q: 팝에서 재즈, 클래식까지 장르를 초월한 독특한 선곡 뿐 아니라, 음악과 연주자와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들도 화제가 풍부하여 청취자 입장에서는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제 기본 방침은 일단 다른 방송에서는 나오지 않는 음악을 되도록 선정하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라디오 프로그램의 상황을 파악해 보면, 대부분 80% 이상이 J-POP이죠. 그래서 보통의 라디오 프로그램도 청취자의 신청곡이 우선이기 때문에 J-POP이 80% 비중을 차지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일겁니다. 하지만 그럼 재미는 없죠. 저는 나머지 20%를 목표로 (웃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또 제대로 준비하면 확실하게 효과가 나타납니다. 이 이 DJ가 선곡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이 DJ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뭔가 안심이 되고 신뢰감 같은 것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고등학교 시절 '라디오 간사이'의 전화 리퀘스트 프로그램 DJ 였던 Irie Kazuo 씨의 경우 재즈 비평가 였지만, 팝 음악을 계속 걸었었죠. 그러다 가끔 재즈가 나오면 열심히 설명하는거죠. 그것을 듣고 아 이런 것도 좋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재즈가 점점 좋아지게 되었던 거죠. 이런 방식은 음악 듣기에 있어 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노래는 이래서 좋아, 이 노래는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과 관련이 있어서 좋아요 같이 청취자에게 제대로 설명을 하고 음악을 틀게 되면 듣는 쪽도 제대로 들어주게 되죠. 바로 그런 커뮤니케이션입니다.

 

Q: 작년 6월에는 라디오 공개 방송 '무라카미 JAM'도 진행하셨습니다. 그리고 프로그램 중간 중간 청취자로 부터 받은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해주는 꽤나 친밀한 방식도 꽤 인상적이고요.

대체로 호의적인 반응이 많은 것 같아 다행입니다. TV에 비하면 라디오는 그다지 많이 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확실히 라디오이기 때문에 더 친밀한 느낌이 드는 것은 있습니다. 클래식 방송을 해달라는 요청도 많이 있는데요. 음 1회 정도는 특집으로 클래식 방송도 해보려고 생각 중입니다. "5분안에 즐길 수 있는 멋진 클래식 음악 특집" 같은 타이틀로 말이죠. 

 

Q: 때때로는 소설에 대한 배경도 말씀하시면서 청취자의 귀를 쫑긋 세우게도 하십니다.

너무 제 작업에 대해 일부러 알리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관련된 어떤 질문이 있다면, 그에 충분히 대답하면서 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은 있습니다. 저는 작가로 데뷔한 30살에 가게를 운영하면서 소설을 쓰고 있었고, 2년 뒤에 전업 작가가 되었죠. 그러면서 제 나름대로 정해놓은 원칙이 있었답니다. 글을 쓰는 것 외에는 다 하지 않기로 했었죠. 그래서 미디어에 등장하지 않았고, 토론회에 나가지 않았고, 강연도 하지 않았습니다. 글을 쓰는 것 외에는 가급적 하지 않고 계속 글만 쓰면서 70세가 되기까지 40년을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70세가 지나면서 (웃음) 라고 하기엔 조금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이전까지는 글쓰기 외의 작업들이 본업인 글쓰기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란 생각에 꺼려 왔던 것들이 이제는 글을 어느 정도 쓸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다른 것들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조금은 제 스스로의 마음이 조금은 열렸다고 생각됩니다.

 

Q: 확실히 2년 전 부터 와세다 대학의 '무라카미 라이브러리' 설립 기자회견이나 일본 내에서 낭독회도 진행하시는 등 대중들 앞에 나서시는 모습이 늘긴 했습니다. 역시 이런 배경은 말씀하신 나이의 영향이 있다고 볼 수 있나요?

네, 나이인 것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물론 글을 쓰는 것이 제 생활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만, 다른 방법으로도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것이 좋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코로나 감염이 크게 확산되었던 4월에 방송된 '무라카미 라디오'에서는 자영업자들의 휴업이나, 일을 하지 못한 사람들의 괴로움에 대해 동정하는 코멘트를 하셨습니다. 5월에는 2시간 이상 진행되었던 '스테이-홈' 스페셜 방송에서는, '조금이라도 힘이 났으면 하는 노래'라든지 '마음이 편해지는 음악'을 주제로 방송을 하셨죠. 청취자들의 마음을 울린 방송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떤 생각을 담은 방송이었나요?

음악의 힘이라는 것은 꽤 크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지식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2시간의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여러가지 음악을 들려드리면서, '굉장히 기분이 편안해 졌다'라든지 '구원 받은 기분', '상당한 위로를 받았다'라는 피드백이 많았어요. 방송을 통해 음악을 틀고, 제 이야기를 차분히 하면서 저 역시도 점점 기분이 나아지고 왠지 구원받는 듯한 느낌도 분명히 있었죠. 물론, 기분이 나아지고 편안해진다고 해서 지금 놓여진 상황 자체가 나아진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음악이라는 것은 역시 그런 것과는 별개로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힘을 저는 믿고 싶어요. 멋진 말로 메세지를 발표하고, 격려하고 응원하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단지, 단어로서 끝이 나는 경우도 많죠. 그것은 논리이니까요. 하지만 음악은 논리를 초월한 것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공감이 바탕이 되는 것으로, 그 힘은 마치 공명하는 것과 같이 큰 울림을 가져와서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꽤나 크다고 믿습니다. 소설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어도 마음에는 와닿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이야기라는 것의 힘이 직접적이지 않고, 시간이 조금은 걸릴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저는 음악과 소설을 쓰는 일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Q: 즉각적인 결과와는 다른 것이네요.

그렇습니다. 스테이트먼트 즉 성명서 같은 문서들을 저는 너무 믿지 않으려 해요. 그런 것들을 일단 신뢰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는 무조건적으로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원하는 것은 제가 선택한 곡 혹은 선택한 곡들의 조합을 어떤 메세지를 통해 설명해 드리지는 않지만, 제 마음이 패키지로서 포함되어 있다고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습니다. 얼마나 전해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웃음)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 마음이 전해진 것 같은 청취자의 반응은 꽤 있었답니다. 

Q: 지난 방송에서는 요즘 시대의 사람들이 폐쇄되어 있고 자신의 국가나 지역에만 틀어 박혀 고립되어 버리는 것에 대한 무서움에 대해서도 얘기하셨죠.

지금은 미국 대통령 트럼프와 같이 트위터와 같은 SNS로 제한된 문자로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는 행태가 소통의 중심인 것 처럼 되어 있어요. 저렇게 짧은 문장으로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절대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방식이 아닌 긴 글을 통해 제 메세지를 만들려고 하는거에요. 

 

Q: 그 방송의 다음 회의 마지막 멘트로 히틀러의 선전 문구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사리 분별 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얘기하셨죠.  

어느 정도 저도 작가로서 제 안의 메세지를 발산해 나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인 부분은 너무 많은 부분까지 일일이 다 얘기할 수 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너무 단정 지어 얘기하기 보다는 저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도의 톤으로 말이죠. 저는 6,70년대 학원 투쟁 시대에 '말'이 혼자 너무 앞서서 마구 달려 나가던 시대를 겪었습니다. 그렇게 강하고 선동적인 '말'이나 '단어'가 혼자 앞서 나가는 상황은 거부감이 들고 또 무섭기도 합니다. 결국 그 시대가 지나고 나서는 앞서 나갔던 '말'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냥 내 던진 말일 뿐,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보고 왔기 때문에, 그런 '말'을 또 다시 내 뱉는 상황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정치적으로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마찬가지입니다. 특이 이렇게 코로나 시대의 위기가 동반되어 있는 상태에는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관동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 처럼 사람들이 이상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들 가능성도 농후한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진정시키고 바로 잡아 나가는 것이 미디어의 책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Q: 전쟁이나 자연 재해, 펜데믹 상황 등 재난 속에서 문학과 음악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분명히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음악이나 문학은 바로 직접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떤 소설이 쓰여지고, 어떤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어떤 효용이 있거나 어떤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을지 보다는 그 속에서 그런 문학과 음악이 만들어지면서 차차 어떤 의미있는 것들이 만들어 지게 될지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그것과는 별도로 제가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제 생각을 청취자에게 얘기하는 것도 좋은 하나의 방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가장 조심하는 것은 잘난 척하지 않는 것이랍니다. 청취자와 동일한 높이에서 같은 느낌으로 눈과 눈을 맞춘 채 이야기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상대의 시선이 위로 부터 온다면 사람들은 거부감이 들게 마련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라는 자세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에세이를 쓸 때도 항상 같은 자세로 쓰고 있는데요, 라디오도 거기에 가깝다면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소설 보다는 에세이에 더 가까운 느낌일까요?

그런 것 같아요. 소설을 어쨌든 제 자신이 좋아하는 것, 쓰고 싶은 것을 쓰게 되어, 읽는 독자의 눈 높이 같은 것은 일단 별로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에세이 라든지 라디오와는 전혀 다르네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사교성이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라디오라면 더 친밀감을 느끼게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와세다 대학 <무라카미 라이브러리>가 내년 개관 입니다.

제 책이나 자필 원고, 수집 자료, 레코드 등을 단계적으로 옮길 예정인데요. 그런 자료 들이 단순히 전시되는 것이 아닌, 독자들이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순환 구조의 도서관을 만들고 싶습니다. 레코드와 CD는 정기적으로 들을 수 있도록 청음회 혹은 콘서트를 한다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대여를 할 수 있다거나, 또는 세미나룸을 적극 활용하게 한다거나, 해외에서 온 일본 문학 전공자들을 위해 언제든 개방 되어 있는 그런 유기적으로 순환하는 장소로 만들고 싶습니다. 어쨌든 일반적인 문학 도서관이 아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적극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학살에 대한 언급은 저 역시도 놀랐습니다. 의도적인 과거 지우기로 극우를 향하고 있는 일본 현 정부에 대한 강한 비판이자, 그런 정부의 선전 문구에 호도되고 있는 많은 일본 국민들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으로 보여집니다. 하루키는 이제 더이상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비교적 더욱 직접적으로 발언을 이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팬으로서 응원합니다. 인터뷰는 신작 단편집 <1인칭 단수>와 근간 기고글 <고양이를 버리다>에 대해 이야기 나눈 2편으로 이어집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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