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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인터뷰

하루키 14년 디벨트 문학상 수상 기념 인터뷰 in 도쿄

하루키의 2014년 독일 벨트문학상 수상 연설을 이전 포스팅으로 소개해 드렸는데요. 이번 포스팅은 같은 디벨트지의 편집자와 도쿄에서 가진 인터뷰입니다. 수상자로 선정되고 디벨트의 수석 편집자인 리차드 캐멀링이 직접 도쿄로 건너가 인터뷰를 진행했고요, 쿠마 켄고가 디자인한 한 카페에서 진행되었네요. 이 인터뷰기사는 하루키 수상식이 있던 며칠전 공개되었답니다. 그 인터뷰 내용을 블로그로 옮겨 봤습니다. 독일어-영어-한국어의 중간 과정이 들어가 워싱 작업에 시간이 꽤 소요됐네요. 오역도 감안해주셔야 합니다. :D


Foto: Androniki Christodoulou/Agentur Focus


디지털 시대의 이야기의 힘

무라카미 하루키 2014년 11월 디벨트지 인터뷰(원문 링크)


디벨트: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지 25주년이 되어갑니다. 무라카미씨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때 어디에 계셨나요?


하루키: 그때는 로마에 있었어요. 그 즈음에 텔레비젼에서 동독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로 이탈하는 것에 대한 리포트 프로그램이 계속 방영되었던 것 같아요. 꽤 흥미로운 시간이었죠. 그때는 도대체 무슨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제대로 몰랐었지만요.


디벨트: 무라카미씨에게 베를린 장벽과 같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무엇이 있을까요?


하루키: 물론 2001년 미국의 9.11 사건이에요. 9.11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을거에요. 모든 사람의 생각이 한 순간에 바뀌어 버렸죠. 그리고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요. 자연재해이자 동시에 핵 사고였죠. 동시에 두 종류의 재난이 일어난거에요. 일본인들은 정신적으로도 매우 큰 충격을 받았어요. 하지만 이 두가지 종류의 사건 중 하나는 미리 막거나 원만하게 처리할 수도 있었습니다. 자연재해로 발생한 어쩔 수 없는 운명적인 사건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낸 재앙이기 때문이에요.


디벨트: 독일의 경우 탈원전의 움직임이 정부 차원에서 가시적으로도 많은 진척이 있습니다만, 일본은 후쿠시마 이후에도 이상하게도 원자력에 계속해서 의존하는 모습인데요.


하루키: 그 점에 대해서는 저로서도 매우 충격적이고 불안한 심정이에요. 솔직히 일본 정부의 원전 정책에 대해 왜 일본인들이 저항하지 않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희미하게라도 이유를 모르겠어요. 아마도 전 그런 일본인들에 관해 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 자리에서 더 길게 말하지는 못하겠네요. 말하는 순간 매우 긴 이야기가 될테니까 말이에요.


디벨트: 새 장편의 소재인가요?


하루키: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전 원전 정책과 일본인들의 의식에 대해 무언가 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일본인들의 영혼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아마 소설의 형태가 될거라고 생각되요. 


디벨트: 그런데 무라카미씨는 이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나 2011년 같은해 카탈로니아 수상 연설에서 정치적으로 일본 정부에 메세지를 보냈습니다.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 이후 핵을 포기했어야 한다고 말이죠. 


하루키: 맞아요. 그러나 전 그런 연설이나 성명을 통해 메세지를 전하는 것에 매우 주의하고 있어요. 제 직업은 소설을 쓰는 것이니까요.


디벨트: 그런데 무라카미씨는 다른 지식인들 보다 더 대중적인 인기와 명성이 있기에, 그런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하는데 있어서 수월하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을 것 같은데요.


하루키: 아니오.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전 작가로서 명확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전 그 때 그 때의 이슈, 사안에 대해 제 의견을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1995년 옴진리교의 지하철 사린 테러 사건에 대해 <언더그라운드>라는 논픽션을 펴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에 관해서는 예루살렘상 수상연설로 무력 공격에 대한 비판을 하기도 했고요. 이런 형태로 때때로 연설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어요. 이런 저의 의사 표출 방식에 매우 회의적이에요. 이제는 제 주 작업인 소설을 통해 제 의견을 전달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디벨트: 무라카미씨는 이제 정치적 견해를 표출하는 작가로 간주되어 지고 있다고 보는데요. 이런 견해는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하루키: 전 줄곧 정치적인 사람이었어요. 대학 초년이었던 1968년 전 세계는 혁명의 시대였어요. 일본도 마찬가지였죠. 전 매우 이상적이고 낙관적인 사람이에요. 전 세계는 계속해서 좋은 방향으로 나아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디벨트: 그런데 지금은 일부 위에 언급된 일들로 인해 회의적으로 바뀌신건가요?


하루키: 우리는 비관적인 생각을 가지기에 충분한 많은 이유가 있죠. 하지만 전 아직 믿어요. 제 가슴 속에 남아있는 이상주의의 힘을 말이에요. 


디벨트: 이제 무라카미씨의 글쓰는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죠. 무라카미씨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인데요. 그런데 이야기는 일본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죠. 주인공들의 세계 문화를 받아들이며 생활하지만 역시 근간은 일본에 있어요. 일본 작가로서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하루키: 제가 어렸을 때 부터 일본 사회에 대해 질식할 것 만 같았어요. 사회 시스템이 너무 갑갑했죠. 전 그런 것들을 견디지 못해요. 전 서른살 때 첫 소설을 쓰고 무작정 일본을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리스에 갔고, 이탈리아에서 체류하기도 했죠. 그 당시 전 내가 스스로 일본 작가가 되려고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점점 쓰면 쓸 수록 일본어가 가지는 매력에 빠지게 되었어요. 일본에 있을 때는 일본어로 글을 쓰는 것이 불편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일본을 떠나 있다보니 제가 일본어로 소설을 쓰는 일본작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지금 전 일본어를 사랑해요, 저의 강력한 무기로서 말이에요.


디벨트: 이번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은 매우 직접적으로 주인공의 감정을 전달합니다. <독립기관>의 성공한 성형외과 의사 토카이의 경우에는 계속해서 연인을 바꿔가면서 깊은 사랑에 빠지려하지 않지만, 강렬한 힘으로 진정한 사랑에 빠져 그만 그 안에서 무너져 버리죠. 


하루키: 새로운 단편집의 이야기들은 이전 제 작품들의 초현실적인 이야기들과는 또 다릅니다. 주인공들은 매우 현실적이에요. 그러나 이것은 단지 밖으로 표출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렇지만, 이야기의 내적인 면은 여전히 초자연적 혹은 초현실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디벨트: 작가 해롤드 브로키는 단편 소설집은 '클래식 모드의 이야기'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요. 이번 무라카미씨의 단편 소설 역시 저에게는 대부분 클래식하다고 느껴집니다.


하루키: 어쩌면 제가 나이를 먹은 건 아닐까요. 젊었을 때는 거칠고 파괴적인 것에 좀 더 끌린 것 같아요. 지금은 땅일 일궈 경작을 하듯이 제가 쓰고자 하는 것들을 빌딩을 건설하듯 만들어가고 싶어요. <독립기관> 같은 이야기도 그런 느낌으로 썼던 것 같아요.  이 이야기는 처음 부터 끝까지 현실적인 이야기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뭐랄까 여전히 조금은 이상한 이야기에요.


디벨트: 무라카미씨의 이전의 작품들은 보통 다자키 쓰쿠루가 기묘한 일들을 겪는 것과 같이 무언가 불안하고 또는 무언가를 초월하는 듯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의 경우 기존의 영적인, 어두운 기운이 있는 이야기에서 벗어나 일상의 로맨틱한 이야기를 쓰면서 휴식을 갖는 느낌이랄까요.


하루키: 전 평범한 보통 사람들을 좋아해요. 그 이유는 저 역시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전 작가로서 그런 보통의 사람들을 볼 때면 항상 그들이 지니고 있는 의식안의 비범한 무언가에 대해 찾고 싶은 욕구가 생겨나요.


디벨트: 그 작업은 어떻게 할 수 있나요? 보통 사람들이라면 무라카미씨에게 그들의 의식 속의 비밀들을 알려주지 않을텐데요. 


하루키: 소설가는 치료사와 같다고 생각해요. 보통 사람들은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더 쉽게 여기죠. 전 말을 하는 것을 썩 좋아하지는 않아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듣는 쪽이 좋습니다. 제가 <언더그라운드>를 쓸 때, 사린 테러 피해를 입은 64명의 사람들과 각각 3,4시간 정도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전 그들이 저에게 얘기를 들려주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좋았습니다. 물론 심각한 테러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성장하고 이 거대 도시 도쿄에서 어떻게 생활을 하고 있었는지 소상히 듣고 싶었어요. 테러 당일 그들은 모두 평범하게 출근하는 길이었죠. 3,4시간 동안 이야기를 계속하면서 그들은 저에게 있어 무언가 특별하고 비범한 존재가 되어 있었죠.

 

디벨트: <여자 없는 남자들>은 단순하게 얘기하자면, 헤밍웨이의 단편집에서 영감을 받은 걸로 보이는데요. 하지만 좀 더 자세하게 들어가보면 단순하지 않은 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합니다. 예를 들면 결혼한 주인공이 전 애인이 자살한 소식을 듣고서 버려진 듯한 외로운 기분에 사로 잡히게 된다던지 말이에요.


하루키: 전 이번 단편집에서 사람들의 고립감, 외로움에 대해 쓰고 싶었어요. 헤밍웨이의 <여자 없는 남자들>이란 타이틀은 일단 제 머리에 들어 온 후 다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죠. 그래서 전 이 타이틀 아래 이야기들을 채워나갔죠. 정확히 어떤 이유로 이 타이틀을 채택했는지에 대해서는 글세요 저도 명확히 얘기 못하겠어요.


디벨트: 그래서 정확히 말하면, 컨셉만 가지고 왔다는 것이군요.


하루키: 네, 그래요. 저는 종종 같은 방식으로 작업을 해왔어요. 일단 제목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죠. 아주 작은 아이디어에서 두꺼운 이야기를 써 내려 갈 수 있어요.  


디벨트: 제목을 정하고나서는 어떻게 단편집에 들어갈 컬렉션들을 발전시키셨나요? 몇 년간 사이드 프로젝트로서 진행되어 온 건가요?


하루키: 아니요. 한 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어서 쓴 거에요. 쓴 순서대로 단편집이 구성되어 있죠. 한 편당 2주 정도의 시간이 걸렸고, 6편이니까 약 2달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매우 빠른 속도로 작업했어요.


디벨트: 놀랍군요!


하루키: 하지만 전, 이야기를 쓸 때 다른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에세이도 쓰지 않죠. 아무것도 전혀요.


디벨트: 일기도 쓰시나요?


하루키: 음, 매우 여러번 시도해봤어요. 그런데 하지 못했죠. 이유는 간단한 것 같아요. 전 기본적으로 저 스스로도 매우 지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하는지 모두 지루해요. 전 아침 일찍 일어나서 4-5시간 동안 글을 씁니다. 그리고 조깅을 하고 음악을 듣고 저녁 10시면 다시 잠자리에 들죠. 이거 정말 지루하죠! 지루하지 않은 유일한 것은 글을 쓰는 거에요. 전 매우 평범한 사람이고 평범한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어요. 그런데 글을 쓸 때면 제 머리 속에는 평범하지 않은 세계가 펼쳐지는 거죠.   


디벨트: 무라카미씨의 작품의 기본적인 모티브는 평행 세계(패러럴 월드)의 존재입니다. 당신의 긴 장편 <1Q84>도 달이 두개 떠있는 세계가 존재하는 패러럴 월드가 주 배경이죠. 이런 두 세계가 공존하는 것이 문학적인 의미에서가 아닌 무라카미씨의 삶에도 존재하는지 궁금합니다. 


하루키: 전 매일 이 쪽면과 저 쪽면을 변환해가며 지내고 있어요. 소설을 쓸 때는 항상 지금 세계의 반대편으로 갑니다. 이렇게 되지 않으면 전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없어요. 그래서 다른 측면으로 이동해서 그곳에서 본 것들을 다시 이 쪽으로 돌아와서 본 것들에 대해 묘사를 하고 설명을 하죠. 그렇게 소설이 완성되어 갑니다. 


디벨트: 은유(메타포)의 다른 측면으로 이해가 되는데요.


하루키: 어쩌면 쓰기(writing)에 대한 은유일 수도 있겠네요. 제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두 세계가 함께 존재합니다. 성형외과 의사 토카이는 정상이고 매우 행복한 사람이에요. 갑자기 그는 사랑에 빠지고, 세계의 다른 측면으로 들어가게 되는거죠. 그리고 모든 것이 변합니다. 이런 일들이 저는 물론 당신에게도 매우 자주 일어날거라고 생각해요. 독자들 또한 나에게도 그런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따라가게 되고 즐거움을 느끼게 되리라 믿어요.   


디벨트: 그런데 무라카미씨의 작품을 다 읽고 나면, 그 두 세계의 논리적인 관계성에 대해 명확히 설명되지 않아 불평을 갖고 있는 독자들도 있어요. 어느 지점까지는 설명을 해주지만, 결국은 철학적이거나 신학적인 요소로 매듭이 지어집니다.


하루키: 서양의 경우 매우 논리적인 그리스-로마 문화 유산 아래에 있었지만, 제가 속한 아시아의 경우 좀 더 복잡한 문화를 이어 받았다고 생각해요.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모두 승려로서 일부분 몸 담아 왔어요. 종교적인 감성이나 인식이 분명히 저에게도 물려져 왔다고 생각해요. 물론 일상 생활 속에서는 그것을 감지하지 못하죠. 서양의 전통적인 인식과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디벨트: 독자들로 하여금 다른 경험을 갖도록 해주는 의미로도 볼 수 있을까요?


하루키: 제가 두가지의 다른 세계를 묘사할 때, 아시아 독자들은 대부분 쉽게 받아들입니다. 분석하려 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정서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읽을 때, 같은 상황에 놓여요. 사람들은 그의 소설을 '매직 리얼리즘'이라고 하죠. 그런데 제 생각에 그것은 마법이 아니에요. 작가의 실재하는 현실인 겁니다. 전 매직 리얼리즘이나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콜리니얼리즘에 대해서 잘 몰라요. 이것은 단지 이야기 일 뿐이에요. 그리고 그 이야기가 좋다면, 독자는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거죠.


디벨트: <1Q84>는 선과 악의 힘이 대치하는 종교적인 구원을 바라는 영지주의 세계관이 기본 바탕이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하루키: 한 쪽 세계에 대해 쓸 때에는 그 세계에 집중해야 해요. 완전하게 그 한쪽의 세계에 속해야하죠. <1Q84>가 전형적으로 그렇게 진행해나갔죠. 당신이 혼자 체스를 두는 상황을 생각해보세요. 블랙말과 화이트말이 있죠. 당신이 블랙말을 움직일 때는 화이트말을 움직였을 때 했던 생각을 완전히 잊어버려야 해요. 그 반대의 상황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야만 온전히 혼자 두는 체스의 재미를 느낄 수 있어요. 이 작업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다면, 아마 당신은 융이나 프로이트 보다 더 그들이 알려고 노력했던 것들에 대해 더 잘 설명할 수 있게 될거에요. 영혼의 분리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분리된 각 부분은 완벽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신 분열증에 가깝다고 이해해도 좋습니다. 그 영혼의 분리 작업에서 다시 밖으로 나올 수 없다면 당신은 영혼에 지는 게 되고, 다시 나올 수 있다면 당신은 작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의 표상은 제 일부분이지만 동시에 생경한, 이질적인 것도 됩니다. 이런 감각의 구분은 저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에요.


디벨트: '자유 의지(free will)'에 관한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무라카미씨의 주인공들은 종종 그들의 운명이 이미 정해져있다는 듯이 행동합니다. 예를들면, <색체가 없는 다자키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 쓰쿠루는 그의 운명이 무엇인지 찾아 헤매죠.

 

하루키: 서양에서 인터뷰를 하다보면 많은 기자들이 물어 봅니다. 왜 당신의 주인공들은 수동적이기만 하냐고요. 그런데 그들은 절대 수동적인 인물들이 아니에요.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고 있어요. 전 그들의 자유의지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요. 보통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삶을 살아 나갑니다. <다자키쓰쿠루>는 짧은 이야기에서 시작되었어요. 오직 쓰쿠루가 고등학교 친구들과 겪은 일에서 시작되었죠. 그런데 그의 앞에 한 여성 사라가 나타납니다. 그녀는 쓰쿠루로 하여금 과거로 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바닥까지 내려가 보게 이끌어요. 그런데 쓰쿠루 뿐 만 아니라 작가인 저 역시 그녀에게 의지하기 시작해요. 그 이후 이야기는 그녀에 의해 주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녀에 의해 저는 쓰쿠루에게 나고야로 돌아가 그의 친구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아보라고 보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쓰쿠루에게 자유의지는 없었다고 볼 수 있죠.

 

디벨트: 말씀하신 스토리에 관해 정말 아무런 계획도 없으셨나요? 

 

하루키: 전 소설을 쓸 때 기본적으로 아무런 계획이나 구조를 갖지 않은 채 시작합니다. 단지 그냥 쓰는거에요. 그 와중에 갑자기 사라가 나타났고 어디로 어떻게 가라고 얘기를 해줍니다. 누군가에 기대어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운 경험이에요. 전 사라가 다시 말을 걸때 까지 다시 기다립니다. 이것이 소설가가 수행해야 할 주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자유 의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당신 스스로에게만 의지하려면 무언가 더 큰 존재가 있어야만 할겁니다.

 

디벨트: 무라카미씨의 이런 생각은 서양 문화와는 많이 다른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루키: 얼마전 런던에서 사인회를 가졌어요. 정말 다양한 문화권의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와 주었죠. 그 중에는 이스탄불에서 저를 보기 위해 특별한 여행을 떠나 온 커플도 있었어요. 정말 놀랐죠. 분명히 이야기는 보편적인 언어에요. 전 때때로 2십만년전의 어두운 동굴에 사람들이 둘러 앉아 누군가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해요. 지금 제가 같은 일을 하고 있어요.

 

디벨트: 이야기가 보편적인 것이라면, 지금의 디지털 시대에서도 살아남겠죠.

 

하루키: 물론 저는 하지 않습니다만, 일부 인터넷 컨텐츠와 페이스북 등이 이야기를 대체할 순 있겠죠. 우리는 수천년 동안 이야기를 전해오고 들으며 살아왔어요. 거대한 전통이죠. 그것을 인터넷이 따라 올 수는 없습니다. 

 

이상 독일 벨트지와의 인터뷰였습니다. 집필 방식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도 있었는데, 역시나 하루키만의 확고한 신념으로 대수롭지 않게 지나간 것 같네요. 하루키가 얘기한 작가의 영혼을 분리하는 정신분열증적인 상황에 대한 몰입은 다시 생각해도 놀라운 것 같습니다. 저는 자신이 없지만요. 일본인들의 정신 혹은 영혼에 대한 새로운 그의 이야기가 곧 시작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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