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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인터뷰

하루키 14년 영국 텔레그라프지 인터뷰 - 다시 모험을 하고 싶어요

올 10월에는 하루키가 처음으로 에딘버러 북페스티벌에서 강연을 하면서 유럽 여러 나라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면서 주요 매체들과의 인터뷰를 계속 포스팅했는데요. 이번 인터뷰는 그 와중에 진행된 영국 텔레그라프지와의 인터뷰입니다. 이 시기에 진행된 인터뷰이다보니 내용이 크게 새로울 건 없어 포스팅을 하지 않으려다가, 하루키 인터뷰의 '기록'으로서의 의미를 더 부여한 포스팅으로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Photo: Rick Pushinsky


소설은 내가 왜 여기에 있는가를 풀어가는 과정

무라카미 하루키 2014년 영국 텔레그라프지 인터뷰(원문 클릭)


*인터뷰는 원문과는 달리 하루키의 말을 직접 인용하는 방식으로 재구성했습니다. 내용은 더도 덜도 없이 그대로 옮기며, 역시 오역은 감안해주세요. :D


텔레그라프: 에딘버러 북페스티발의 인상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다른 일정으로 워터스톤 서점에서 사인회도 가지셨죠. 서점 직원은 클린턴 대통령과 데이비드 베컴 외에 이렇게나 사람들이 붐볐던 적이 없었다고 하더군요. (웃음) 그런데 무라카미씨는 실제 나이보다 10년은 젊어 보이시네요!


하루키전 전업 작가가 되기로 결심을 한 후, 담배를 끊고 매일 같은 거리 만큼 달리기를 하고 수영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왔어요. 30년 동안 해왔죠. 달리는 거리는 계속 유지되어 왔지만, 기록은 점점 떨어지고 있죠.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전기(biography)로서 진행되고 있어요. 그러나 동시에 전 소설 속에서 모든 것을 바꿔 버리죠. 다른 관점으로 얘기해보면, 다음 장면 혹은 다음 소설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될지를 찾아가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건 바로 제가 왜 '여기'에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과도 같아요. 


텔레그라프: 그런데 적지 않은 당신의 독자들은 무라카미씨의 형이상학적인 허구에 바탕을 둔 스토리 혹은 메타포(은유)에 당혹감을 느낄 때도 있는 것 같아요. 


하루키: 그건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당신도 알겠지만요. 전 제가 쓰고 싶은 것을 써 나가고요. 쓰고 있는 동안 제가 무엇을 쓰고 싶어하는지 찾아낼 수 있어요. 


텔레그라프: 무라카미씨의 예전 단편 <이상한 도서관>이 최근 영어 번역본으로 출간되었는데요. 이 작품에서도 역시 무라카미씨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기묘한 알 수 없는 주인공들이 등장합니다. 팬들은 역시 무라카미씨의 이런 방식에 열광하기도 혹은 의아해하기도 할텐데요. 


하루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제 글에 대해서 포스트 모더니즘이나 매직 리얼리즘이라고 보통 말하는데요. 하지만 전 그런 것들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전 소위 말하는 포스트 모더니즘 작가인 토마스 핀천의 열성적인 독자도 아닌걸요. 


텔레그라프: 토마스 핀천이 실망하겠는데요.


하루키: 그걸까요? (웃음) 전, 마르케스를 좋아해요. 그러나 그의 작품이 매직 리얼리즘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당신도 알겠지만, 그것은 단지 그의 스타일일 뿐이에요. 마르케스는 단지 그가 속해있는 세계를 매우 자연스럽게 그리고 리얼하게 그리고 있는 것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단지 그가 보는 리얼한 것에 대해 썼다고 생각해요. 저도 마찬가지로, 전 리얼리즘으로 소설을 쓸 때면 제 리얼 월드 속에서 이야기를 진행시키게 되요. 만약 그 와중에 예측불가능한 일이 일어나면, 그게 바로 당신이 지금 제대로 된 세계를 그리고 있는가를 증명해주는 일이 될 겁니다. 일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봐도 되는거죠. 저의 경우를 좀 더 들자면, 제 초기 작품에서는 양사나이가 자주 등장했는데요. 그는 작가인 저에게 있어서는 '진짜'였어요. 상징적인 의미도 은유적인 의미도 아닌 오로지 저와 양사나이가 대면하는 겁니다. 


텔레그라프: 하지만 무라카미씨의 작품 속에서 갖는 다양한 상징적인 메타포들은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무라카미씨는 에딘버러 축제의 강연에서 청중들에게 내 평생의 꿈은 우물 바닥에 앉아 지내는 것이라고도 하셨죠. 


하루키: 네. 맞아요. (고개를 끄덕이며) 전 항상 소설을 쓸 때면, 어두운 우물 바닥으로 내려가는 느낌을 가지고 작업을 진행해요. 오직 어두움 속에 들어가야만 다음에 올 이야기를 볼 수 있어요. 전 작가로서 특별한 선물이나 특별한 재능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 어둠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안다는 점 정도가 재능이라면 재능이랄까요. 지하실과 같은 거죠. 제 경우엔 지하실 밑에 지하실이 또 있는거죠. 많은 사람들이 저와 같이 지하실로는 내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지하실에서 그 밑의 지하실로 다시 한 번 내려가게 됩니다. 그것은 매우 어두워요. 제 작품 <태엽감는새>에서는 깊은 우물이 등장해요. 주인공은 그 속에 들어가 앉아서 어둠과 고독과 고립감을 느끼게 되죠. 그것이 바로 제가 매일 소설을 쓸 때 가지는 느낌이에요.   


독자들을 위한 작가들 각각의 방식은 다르겠지만, 제가 이야기를 쓸 때 가지는 가장 큰 관심사는 바로 '내 자신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에요. 전 올해 65세인데요, 여전히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에 대해 호기심이 많아요. 제 안에는 무엇이 있고,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등에 대해서 말이죠. 당신도 알겠지만 전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소설가에요. 35년간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왔으며, 전 세계적으로 읽히면서 비교적 성공한 케이스라고 말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전 여전히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저에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에요. 제 생각에 전 훌륭하거나 스마트한 사람도 그렇다고 재능이 있는 사람도 아니에요. 단지, 글을 쓸 수 있을 정도죠. 전 단지 저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그 이유를 너무 찾고 싶어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저에 대한 거에요.  


텔레그라프: 무라카미씨는 <해변의 카프카>를 집필할 당시, 팬들이 궁금한 것들을 자유롭게 묻고 무라카미씨가 직접 답변을 할 수 있도록 웹사이트를 만들기도 하셨는데요.


하루키: 네 그 질문과 답변은 나중에 <소년 카프카>라는 제목으로 책으로 엮기도 했어요. 전 그 작업은 일종의 민주주의라고 생각했어요.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 처럼 사람들은 광장에서 만납니다. 제 독자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었어요. 하지만 피곤한 일이기도 했죠. 전 그 이후 편집자들에게 독자들과의 만남은 그걸로 충분하다고 해왔어요. (웃음) 당시의 경험으로 '진정한 이해는 오해의 축적'이라는 깨달음을 얻기도 했답니다. 각각 개별 독자들이 저에게 그들의 궁금증을 물어왔어요. 많은 독자들이 저와 맞지 않는 의견들을 보내기도 했죠. 이게 바로 오해일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고, 그런데 천장이 넘어가는 독자들의 의견을 다 읽다보니 '독자들이 나를 이해하고 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래서 전 독자들을 신뢰하게되었죠. 개별 독자들 각각을 다 신뢰하는 건 다른 문제에요.


텔레그라프: 무라카미씨는 어떤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작업을 시작하지는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루키: 네, 저의 경우엔 하나의 문장, 비쥬얼한 어떤 장면, 때때로는 짧은 비디오 영상일 수 도 있고요. 전 매일 그런 것들을 접합니다. 하루에 백번, 천 번 이상 계속해서요. 그러다가 갑자기 '그래, 이거야!'라고 하는게 있죠. 그럼 그 아이디어에 대해 소설을 써나가게 되는거에요.  


텔레그라프: 장편과 단편의 집필 시기 혹은 작업 과정상의 배치도 의도적인건가요?


하루키: 음, 그건 베토벤의 교향곡과 같아요. 홀수 교향곡과 짝수 교향곡이 있죠. 홀수 교향곡은 야심차고, 강하고, 크죠. 반면 짝수 교향곡은 온와하고 겸손해요. 제가 쓰는 장편과 단편다 이와 비슷한 형식으로 진행되요. 장편에 힘을 다 쏟고 나면, 좀 더 가벼운 이야기를 쓰게 되죠. 


텔레그라프: 장편을 끝내고 단편을 쓰는 게 아니라, 좀 더 휴식을 취하고 싶었던 적은 없으세요?


하루키: 전 다양한 목소리와, 다양한 사람들, 그들의 스타일을 소설 속에 가지고 올 수 있죠. 그리고 그것을 항상 즐기고 있어요. 동시에 그것은 좀 더 야심찬 작업을 위한 일종의 연습이 될 수도 있는 거죠.


텔레그라프: 무라카미씨에게는 분명히 당신도 모르는 다른 사람과는 다른 뛰어난 뭔가가 있지 않을까요? 


하루키: 글세요. 전 한 번도 제가 예술가로서 어떤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전 항상 일상적이고 고집을 요하는 일에 대한 경외감이 있었어요. 제가 우울감에 빠져있을때, 그 일상적인 일 즉 소설을 쓰는 일은 저를 외로움과 슬픔 속에서 구해주곤 합니다. 전 소설가라는 직업을 사랑해요. 기본적으로 전 작가가 아니라 엔지니어나 정원사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전 크리에이터가 아니에요. 그건 저에게 너무 무거운 짐 같은 느낌이에요. 전 단지 저의 루틴한 글쓰는 작업에 집중할 뿐이에요. 전 30년간 매일 같이 달렸어요. 그리고 그건 저에게 작가로서의 만족감 같은 또다른 특별한 무언가를 주었죠. 만약 당신이 같은 일을 매일 같이 해나간다면 분명히 당신에게도 무언가 특별한 것이 갈거에요.    


텔레그라프: 다음 작품은 장편이 될까요?


하루키: 올 해 안에 다음 작품을 위해 다시 책상에 앉게 될 거 같아요. 하지만 현재로선 다음 작품에 대해서 뭐라고 할 수 있는 말이 없어요. 전 소설의 아이디어가 될 수 많은 문장들이 빼곡히 담겨진 서랍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런데 확실한건 이번 작품은 말씀하신대로 홀수 교향곡 즉, 큰 소설(big book)이 될 것 같습니다. 전 다시 모험을 하고 싶어요! 


*이상 하루키의 텔레그라프지 인터뷰를 마칩니다. 다음 장편으로 모험을 떠나는 하루키의 의지가 참 반가운(?) 인터뷰였습니다. 다음 작품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더이상 인터뷰 소식은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데요. 지하실로 내려가 모험을 떠나는 그의 새로운 이야기를 즐겁게 기다려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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