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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통신/하루키 인터뷰

하루키 14년 마이니치 신문 인터뷰 - 현 시대 소설가의 역할

finding-haruki.com .
 
 

하루키가 오랜만에 일본의 미디어와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일본의 마이니치 신문이고요. 2009년 이후 두번째 인터뷰입니다. 2008년의 다른 인터뷰를 정리중이었는데, 최신 인터뷰가 나와 급하게 편성(?)을 바꿨습니다. :D 이례적으로 8시 뉴스에도 인터뷰 관련한 소식이 전해졌나봅니다.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의 잘못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 강하게 비판을 했는데요. 제 포스팅을 계속 보신 분이시라면 이미 하루키의 생각이나 견해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계실테지만, 이번 인터뷰가 새롭고 다소 놀랍기도 한 이유는 일본 내의 미디어와의 인터뷰라는 점입니다. 밖(외국)에서 아무리 얘기해도 알아듣지를 못하니 일본 미디어와 인터뷰를 해서 직격탄을 날린 셈입니다. 


Photograph: Sipa Press / Rex Features


소설의 역할은 혼돈의 세계에서 하나의 '가설의 축'을 제공해 나가는 것

무라카미 하루키 - 14년 11월 마이니치 인터뷰(원문 클릭)


마이니치: 무라카미씨의 <다자키 쓰쿠루>가 미국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는데요. 저도 매우 기쁩니다. 아시아는 물론 미국, 유럽까지 50여개의 언어로 번역이 되었죠. 현역 작가로는 참 이례적인 일입니다.


하루키: 올 10월에 약 1주 정도 이탈리아에 머물렀어요. 그 1주 동안 매일 같이 저를 알아본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이름을 불렸죠. 일본에서는 고작해야 1달에 2번 정도 그런일이 생길까 말까한데 말이에요. 80년대 후반에 잠시 이탈리아에서 지냈던 적도 있지만, 그 때와는 상황이 많이 변해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습니다. 더욱이 이번에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에 신작이 1위에 랭크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저역시 매우 감회가 새로와요. 80년대 말 제 작품이 처음 번역되었을 때는 그다지 많이 팔리지 않았죠. 그 이후 25년간 계속해서 쌓아와서 지금의 결과가 있다는 것. 점점 앞으로 나아가는, 성장하는 이런 방식도 매우 기쁩다고 생각해요.


마이니치: 무라카미씨의 작품이 미국에 처음 소개되었던 90년대 초반에는 작가 스스로 미국 에이전시나 출판사를 찾아다니며 자신을 알리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었을텐데요.


하루키: 먼저, 그 당시에는 더 이상 일본에서는 작가 생활을 못하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외국으로 나가게 되었죠. 일본에 있으면 책도 어느 정도 계속해서 팔리고 나름대로 해나갈 수 있었을 테지만요. 처음에는 홈그라운드를 떠나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는 것이니 힘든 부분도 많았죠. 예를들면, 외국에 처음 나가서 사인회라는 걸 했는데 12명 정도가 올까 말까 했었죠. 지금은 2천명은 족히 모이곤 하지만요.


당시 저는 일본의 문단 시스템이 좀 처럼 내키지가 않았어요. 받아들여지지도 않았고 소외감도 물론 느꼈죠. 그런 저에 대한 비판도 매우 강했어요.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던 시절이었어요. 제가 작가로서 하고 싶은, 얘기하고 싶은 것들과 당시 일본 문예 미디어와의 생각이 근본적이 맞이 않은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던 것 같아요. 어느쪽이 올바른가의 문제가 아님에도 쉽게 오해를 받았죠. 그렇게 겪은 좌절감이 쌓이고 쌓인거죠. 그러면서 문단내에서의 교제도 서툴게 되었고, 뜻을 같이할 만한 사람도 눈에 띄지 않았어요.    


마이니치: 무라카미씨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현실과 비현실이 교차하는 스토리의 흥미 요소가 있는데요. 국가나 지역에 따라 받아들이는 부분이 다를까요? 


하루키: 음, 서양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논리적으로 읽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이 소설은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리얼리즘이다라는 식으로 논리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전통적으로 강합니다. 저 같은 경우 그들의 판단에 따르면 '일본적 포스트모더니즘' 정도로 읽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스토리나 테마 보다는 문학적인 방법(method)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죠. 현실과 비현실이 어떻게 복합적으로 교차되어 스토리를 구성하는 가에 대한 것을 포스트모더니즘의 새로운 방법으로 평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같은 맥락으로, 일본 외의 아시아에서는 스토리가 독자들에게 끼치는 힘이 크다고 봐요. 스토리 라인의 역동성에 자연스럽게 매력을 느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또한 일부의 소설에서는 매우 세련된 도시적인 등장인물의 라이프 스타일이나 사물의 개념에 대한 흥미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로선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요. 예를들어, 제 작품 주인공이 우물 바닥에 앉아 있다는 것에 대해 서양 독자들은 '이게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이다, 매직리얼리즘이다'라고 해석하겠지만, 아시아 독자들은 '그럴 수 있지'라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거죠. (웃음)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아시아 독자들에게는 어떤게 현실이고 어떤게 비현실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해요. 이런식으로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풍토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해요. 


마이니치: 그런 풍토의 차이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루키: 기본적으로 스토리가 재미가 없는데 그 소설을 계속해서 읽는 독자가 있을까요? 그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재밌는 이야기 말이에요. '다음은 어떻게 될까?'라는 독자들에게 무의식적으로 페이지를 계속해서 넘기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계속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읽어 나갈 수 있게 드라이브를 줘야해요. 그렇지 못하고 독자를 멈추게 만드면 거기서 끝이에요. 그래서 전 되도록 '쉬운 단어'를 사용해서 복잡하고 깊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것이 저의 이상향이에요. 하지만 적어도 제가 처음 데뷔를 했을 당시만 해도 그런 생각은 순조롭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요.


마이니치: 올 4월 출간된 <여자 없는 남자들>의 단편 6편의 주인공들은 30대에서 50대까지 연령대가 비교적 폭넓게 그려지고 있는데요. 


하루키: 얼마전까지만해도 이렇게 다양한 연령대를 쓰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전 보통 2,30대의 주인공을 등장시켜 왔습니다. <해변의 카프카>에서는 정말 나이가 어린 소년을 그려보고 싶었고, 나카타 노인의 경우 특별한 캐릭터로서 드문 예였죠. 이번 단편집은 제 자신에 좀 더 가까운 나이의 인물도 그려 보자고 하는 것이 하나의 목표였어요. 일종의 도전이랄까요. <여자 없는 남자들>의 기본 테마는 '고독'이에요. 여자가 없는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구체적으로 실재하는 여자라기 보다는,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이 결여된 소멸된 고독한 상태를 떠안게 된 표상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젊은 시절의 외로움이라는 것은 나중에 채워지고 다시 회복할 수 있지만, 어느 나이 이상되면 그 외로움은 진정한 '고독'에 가까운 것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런 모습이랄까 상황이랄까 그런 느낌을 쓰고 싶었어요. 저도 이제 60대 중반이 되었고, 이런 것들을 이제는 쓸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마이니치: 내년은 전후 70년이 되는 해인데요. 무라카미씨는 작가로서 일본의 근대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쓸 수도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하루키: 저의 직접적인 의견을 말하게되면, 그것은 일종의 성명이 되어 버립니다. 소설가는 성명을 내는 쪽이 아니라, 픽션이라는 형태로 작가의 생각을 승화시켜 이야기라는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저는 일본이 안고 있는 문제에는 공통적으로 '자기 책임 회피'가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945년 종전에 관해서도, 2011년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 누출 사고에 대해서도 정말 아무도 그 어떤 책임을 가지고 있지 않잖아요. 전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면, 1945년 종전 후 결국은 그 누구도 사실은 나쁘지 않았다는 것으로 인식되어 버렸죠. 나빴던 것은 군벌 뿐이고, 천황도 그 군벌에 의해 이용당한 것이고, 국민들도 모두 군벌에 속은 피해자였다는 식으로 말이죠.  모두들 자신은 피해자였다고 여기고 있어요. 그렇게 되어 중국과 한국 사람들의 분노를 사게 되죠. 일본인들에게는 자신들이 가해자였다는 의식은 점점 희석되어지고 있고, 그런 경향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원전 문제 역시  도대체 가해자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아직까지도 그 어떤 책임도 지워지지 않고 있어요. 물론 원전 문제에 있어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섞여 있는 상황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발상이 지속된다면, 지진과 해일이 최대 가해자이고, 우리 모두는 모두 피해자다란 식으로 의식에 장착되어 버리지 않을까요. 전쟁 때 처럼 말이죠. 그 점이 가장 큰 걱정이자 문제에요. 


마이니치: 무라카미씨는 작품이나 여러 해외 인터뷰에서 냉전 붕괴 이후에는 세계는 혼돈 속의 상황에 놓여있다고 말해왔는데요. 지금도 그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하루키: 네. 맞아요. 냉전이 종식되고, 동쪽이나 서쪽이나 좌나 우나 그것을 정하는 축이 기울고 혼돈이 평상의 삶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죠. 제가 소설을 통해 이야기 하고 싶은 것도 이렇게 축이 사라진 세계에 대한 것입니다. 시기적으로 보면 베를린 장벽이 붕괴 된 이후 유럽에서 제 소설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했고, 미국의 경우엔 9.11 이후 였어요.  그 축을 잃었다는 것이 하나의 키워드로 작용한 것 같아요. 우리 세대는 60년대 후반에 세계는 계속해서 이상향을 향해 줄곧 나아가리라고 믿었어요. 그런데 지금의 젊은이들은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반대로 세계는 점점 더 여러 의미로 악화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죠. 물론 그렇게 쉽게 단언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만, 저 스스로는 어느 정도 사람이라면 '낙관적'으로 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이니치: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 고독해지는 것을 견뎌야 한다라는 것이 무라카미씨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픈 메세지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하루키: 일단 우리는 혼자가 되어 보아야, 즉 개인의 존재로서 선 다음에야 사람과 사람사이의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상주의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일이지만, 그것에 도달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우리는 혼자, 개인으로서도 존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이 세계가 점점 더 악화되어 가고 있다는 디스토피아적인 생각에 우리들이 이미 어느 정도 합의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에요. 저로서는 그런 젊은 세대들을 위해서도 소설을 쓰고 싶어요. 우리가 가졌던 60년대의 이상주의, 유토피아를 새로운 형태로 변환하여 전달하는 것도 저의 중요한 책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축이 없는 세계에 하나의 '가설의 축'을 제공해 나가는 것이 소설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 언론에서는 일본의 과거 역사 인식에 대한 비판 논조로 이슈를 만들었지만 (물론 일본내와 동아시아에서 중요한 발언이긴합니다만) 더 중요한 것은 하루키의 마지막 말에 있네요. 그의 다음 장편 소설이 기대됩니다. 





댓글
 
   
 
  • 꿈꾸다 올려주신 인터뷰 내용을 하나 하나 읽어나가며
    '아...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작가를 좋아할 수 밖에 없었구나.' 하고 절실히 느낍니다.
    하루키는 이러한 사람이고, 제가 마주한 작품들은 이러한 하루키가 쓴 것이니 말이죠.
    제 아버지뻘 되는 나이지만 제게 있어 하루키는 언제나 청년의 이미지입니다.
    시스템의 미래에 대해 디스토피아적인 생각에 갇혀 있는 사람으로서,
    하루키가 생각하는 작가 하루키로서의 책임감을 듣게 되니 정말 감사해지네요. (뭉클뭉클 합니다.^^)

    사이트 내에 올려주신 모든 내용들, 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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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inding-haruki.com 이 댓글을 왜 이제 봤는지 모르겠네요. 정확히 얘기하면 댓글을 달았는지 알았던 것 같기도 하고요. :D 하루키 인터뷰에 공감해주시니 저 역시 뿌듯합니다. 함께 계속해서 하루키를 응원하시죠! .
  • onjung221 하루키가 일본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소신을 밝히는 모습, 한국인에게는 더없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네요.. 인터뷰어의 말대로 종전과 관련된 소설이 나와도 무척 흥미로울것 같아요

    글 잘읽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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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inding-haruki.com 네 일본 언론과의 가장 강도 높은 비판 발언이었죠. 이렇게 까지했는데, 바뀌지 않는다면 이제 하루키는 정말 소설을 통해 이런 현 일본 상황에 대해 쓸 것 같아요. 어느 인터뷰에서는 이런 일본인들의 의식에 대한 작품을 쓰고 싶다고도 했답니다. 기다려보죠 :D .
  • mimesis 내부적으로 다 피해자라며 왜 한국의 피해자들을 더괴롭히는 가해자의 역활은 그렇게 철저히 하는가?
    이는 양심과 양식이 없는 자들이 일본의 권력층이란 얘기임.
    .
  • finding-haruki.com 네 말씀하신 내용이 하루키도 기본적으로 느끼고 있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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