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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통신/하루키 인터뷰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출간 기념 네덜란드 volkskrant 인터뷰

finding-haruki.com .
 
 

이번에 소개해 드릴 인터뷰는 하루키의 17년 상반기 장편 소설이죠. <기사단장 죽이기>의 네덜란드 출간 기념 volkskrant 신문사 인터뷰입니다. 네덜란드는 유럽 내에서 하루키 팬덤이 최고로 형성되어 있는 나라이죠. 네덜란드 신문사와의 인터뷰는 2014년 <색체가 없는 다자키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해> 출간 기념으로 NRC지와의 인터뷰 이후 두번째입니다. 확실한 소스는 아니지만, 하루키는 각 나라의 진보, 보수 언론과 공평하게 인터뷰 하려고 한다고 알고 있는데요. 신기하게도 14년 인터뷰인 NRC지는 보수 성향의 언론이고, 4년뒤 이번 인터뷰인 volkskrant는 진보 성향의 언론이랍니다. 인터뷰 시작하겠습니다.



"저에게있어 소설은 제 안에서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느끼게 해야합니다."


-무카라미 하루키 2018년 4네덜란드 volkskrant 인터뷰(원문 링크 클릭)


Q: 이번 장편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 이전에는 비교적 짧은 중편과 단편을 쓰셨죠. <다자키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와 <여자 없는 남자들>이 그것인데요. 이야기를 시작하기전에, 소설의 길이를 미리 가늠하고 시작하시나요? 


하루키: 저에게 있어 어떤 형태나 어떤 길이의 소설을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은 실로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점이 작가로서 저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전 보통 단편 소설, 중편 소설, 장편 소설을 모두 쓰는데요, 각각의 형태의 필요한 재료가 모두 다릅니다. 소설을 쓰면서 저는 이야기를 먼저 생각하고 써내려가지 않습니다. 음, 이번엔 이 정도 길이의 소설로 가야겠다라는 식으로는 작동하지 않아요. 그런 형식의 문제는, 제가 글을 써내려가는 그 순간 가지고 있는 이야기의 재료에 따라 정해질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 이야기 재료의 아이디어에 어떤 형식이 맞을지 결정하게 됩니다.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이고, 나머지 작업은 일반적으로 자연스럽고 단순하게 특별할 것 없이 글쓰는 작업이 진행됩니다. 물론 소설을 쓰는 허구의 무언가를 창작해 내는 것이 결코 쉬운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말이에요. 


이 세상에는 장편만 쓸 수 있는 작가가 있을 것이고, 또 단편만 쓸 수 있는 작가가 있을 거에요. 바그너는 피아노 소나타를 쓰지 않았고, 드뷔시는 교향곡을 작곡하지 않았죠. 물론 이 사실은 바그너나 드뷔시의 작곡가로서의 업적과 가치를 훼손하지는 않아요. 모든 평가는 장편이든 단편이든 각각의 작업 자체의 성과를 중심으로 이뤄지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작가라면 다양한 소설의 형태를 갖추는 것이 정신적으로 더 즐겁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제가 사람으로서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의 측면이 있는 것과 같이 제 생각 역시 여러가지의 색깔과 형태가 있답니다. 


Q: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씀하셨듯이, <기사단장 죽이기>의 주인공인 저택이 살며 주인공인 '나'에게 초상화를 의뢰하는 멘시키는, 무라카미씨가 좋아하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가 연상됩니다. 일본판으로 번역하기도 하셨죠. 멘시키란 주인공은 단지 <위대한 개츠비>를 참조한 것인가요, 아니면 오마쥬로서 또다른 개츠비를 당신의 소설에 등장시킨 것인가요?


하루키: 저는 많은 훌륭한 작가들의 영향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으며, 저에게 필요한 용기를 주기도 했습니다. 소설을 쓰는 것은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활동이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행동이기도 합니다. 당신도 과거로 부터 배우고 그것에 기초를 두어 당신의 미래에 연결됩니다. 저는 <위대한 개츠비>를 좋아하고, 부분적으로 그 소설에 대해 경의를 표하기도 하죠. 또한 이것은 일종의 '게임'과도 같아요. 그래서 <기사단장 살인>을 그런 형태의 이야기를 전하는 서술 형태로 봐주시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설 속 등장하는 또 하나의 단편인 우에다 아키나리의 <이세의 인연>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렇게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을 부분적으로 가져왔지만, 소설 <기사단장 살인> 그 나름대로의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Q: 무라카미씨의 소설은 본질적으로 창조의 힘을 바탕으로 쓰여지나요? 그 과정은 어떻게 작동하는지 궁금합니다. 그 과정은 직접적일까요 간접적일까요? 예를들어, 화가의 경우 눈 앞에 구체적인 모델이 있을 때가 아닌, 화가 본인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할 때 가장 인상적인 초상화를 완성할 수 있는 것 같이 말이죠.


하루키: 소설가 혹은 예술가의 작품은 창작자의 잠재 의식의 마음 속에서 그 주제 혹은 소재에 접근하는 방법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깊게 침투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가까이 접근 한다고 쉽게 찾아지는 것 또한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을 찾았다 하더라도 문장으로 가져와 효과적인 형태를 부여해야 하죠. 그리고는 독자와 친밀하고 강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소설을 써내려가게 됩니다. 그렇게 저의 잠재의식에 접근하는 것이 종종 저의 소설의 모티브로 사용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러나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옵니다. 정말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리고 소설이 길어질 수록 그런 경향은 더욱 강해집니다. 저에게 소설이란, 소설을 시작한 순간과 소설을 끝낸 순간 사이에 제에 무언가 변화가 있다고 느끼게 해야합니다. 그것을 위해 저는 제 자신 속으로 깊숙히 뛰어들어야 해요. 전 저의 그런 행동이 이야기의 주인공에 투영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무라카미씨의 소설은 때때로 동화 같은 이야기가 진행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상적인 상황을 세세하고 진지하게 묘사하기도 합니다. 이 둘간의 균형과 조화는 소설속의 챕터 제목으로 반영되는데요. 예를들면 2장 '다들 달에 가버릴지도 모른다'와 28장 '프란츠 카프카는 비탈길을 좋아했지.'를 들 수 있겠죠. 이런 장의 타이틀도 모두 의도적으로 구성하는 것인지요?


하루키: 기본적으로 저는 리얼리즘의 소설을 쓰려고 하지 않습니다. 일부 단편 소설과 <노르웨이의 숲>은 예외이지만요. 반면, 독자로서의 경우 리얼리즘 스타일의 소설을 쓰는 작가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작가들의 텍스트를 신중하게 연구하는 것을 정말 즐깁니다. 하지만 제가 제 작품을 쓸 때면 저는 보통 현실적인 리얼리즘 소설을 쓰지 않는 답니다. 그런 저의 리얼리즘 독서와 비현실적인 소설 쓰기의 분명한 불일치는 저의 작가로서의 동력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사단장 죽이기>의 주인공인 '나' 처럼 추상적인 상상을 통해 초상화를 그린다는 점에서 비슷할지 모르지만, 반대로 구체적인 스케치-소설로 이야기하면 묘사하고 서술하는 연구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디테일하게 묘사하는 것은 작가로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소설의 마지막에 주인공 '나'가 얘기한, '나에게는 믿을 힘이 있다 (...) 좁고 어둡고 황량한 황야에 버려진다해도 어딘가에 나를 이끌어줄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순순히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라는 구절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작가 혹은 독자 모두 비현실적인 것에만 종속될 수는 없기에 이런 신념은 꼭 필요한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이것은 종교적인 신념과도 비슷할까요? 아니면 주인공 '나'와 무라카미씨는 다른가요?


하루키: 저 역시 소설을 쓰는 동안 '나를 인도하는 무언가'의 존재를 믿는답니다. 그 확고한 신념 없이는 매일 계속해서 긴 소설을 쓸 수 없습니다. 제가 더이상 그 신념을 붙잡을 수 없게 될때는, 2달을 넘게 한 이야기를 계속 진행할 수 없을 만큼 두려워져요. 그러한 신념이 소설 속 주인공에게 '종교적인 무언가'에 해당하는지는 제 독자들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문제라고 봅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저는 특정 종교에 의지하지는 않습니다.


Q: 무라카미씨 소설은 갑작스런 반전과 같은 이야기 전개가 등장하는데요. 예를들면 갑작스런 만남이나, 갑작스런 헤어짐 혹은 사라짐과 같은 것 말이죠. 캐릭터들도 전혀 지루할틈이 없죠. 무라카미씨의 세계는 소설의 밖에 있는 사람들과 다를까요? 아니면 우리 모두가 평소와는 다른 세계가 정말로 이상하고 예측불가하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요? 


하루키: 일반적으로 우리의 일상 생활은 짜증스럽고 또 그런 일들이 계속해서 지속될 수 있어요.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았을 때, 그것은 놀라운 모순과 비합리성으로 가득차 있어요. 그리고 정기적으로 밤 중에는 이해할 수 없는 꿈에 압도 당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깊숙한 내면에는 일반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들이 끊임 없이 넘쳐 흐르고 있습니다. 기존의 생각과 방식으로는 대처하기 힘들죠. 우리는 이런 두 세계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소설은 이런 일상의 다른 면에 주목하고 그것을 확장시키는 것입니다. 단, 가급적 긍정적인 자세로 말이죠. 


Q: <기사단장 죽이기>의 소설 제목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가 모티브가 되었는데요. 어찌보면 오페라에 등장하는 기사단장과 무라카미씨의 소설 제목 <기사단장 죽이기>는 관련이 없다고 얘기해도 이상할 것이 없어보입니다. 서로 다른 문화 분야에서 수 세기전의 작품들은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 걸까요?


하루키: 우리는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수 많은 정보와 컨텐츠에 압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각자의 거대한 '문화 저수지'를 가지고 있죠. 그 저수지에서 소설의 모티브가 될 수 있는 것들을 집어 들어 이야기의 상징으로 기능하게 합니다. 예를들어, 제 전작인 <해변의 카프카>의 KFC 샌더스 대령이나 조니 워커는 문화나 정치 체제 혹은 이데올로기적 입장에서의 차이를 초월하고 즉시 모두에게 공유될 수 있다는 점을 좋아해요.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는 KFC 샌더스 대령 만큼의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 내리고 있습니다.


Q: 3부로 쓰여진 전작 <1Q84>의 마지막에 아오마메는 신비하게 아이를 임신하게 됩니다. <기사단장 죽이기>의 마지막에도 주인공 '나'는 헤어진 아내가 출산한 아버지는 누구인지 모르는 아이와 새로운 시작을 하게됩니다. 이야기의 결말에서 탄생을 통한 새로운 삶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요. 그것은 소위 말하는 '해피 엔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요?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를 쓴지도 벌써 2년이 넘어가네요. 저는 소설이 출간되고나면, 그 작품을 거의 다시 읽지 않는답니다. 전 오직 다음의 새로운 작품에만 집중해요. 결과적으로 전 이전에 쓴 작품의 플롯에 대해서 점차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답니다. 물론, 소설의 필수적인 부분이나 이야기의 진행 과정에서 제 자신이 크게 깨달은 상황 등은 기억하지만, 소설의 대부분의 이야기 플롯에 대해서는 점차 잊어 버리게 된답니다. 그래서 <기사단장 죽이기>의 하나하나의 플롯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왜 그렇게 이야기가 진행되었는지, 왜 순서가 바뀌었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혹은 아마도 의미가 없었던 것일 수도) 기억이 안납니다. 더 오래전에 쓴 <1Q84>에 대한 기억은 더 모호하고요. 미안합니다. 


Q: 무라카미씨의 많은 남성 주인공들은 소설 속에서 삶과 사랑에 있어 많은 역경을 겪게 되는데요. <기사단장 죽이기>의 주인공 역시 갑자기 이혼을 당하고, 화가로서의 창작 활동도 교착 상태에 빠지는 등 전형적인 무라카미씨의 주인공입니다. 무라카미씨는 수십년 동안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계신데요. 어디서 그런 소설 속 주인공들에 대한 영감을 얻으시나요?  


하루키: 음, 때로는 저 역시 현실의 상황이 무언가 부족한 듯한 경우도 발생한답니다. 천천히 제 주위를 살펴보며 제가 정말로 필요하지 않는 세상에 있다는 느낌도 자주 받고요. 그리고 소설을 쓰는 것은 '어쩌면 그럴 수 있었던 것'과 같은 느낌으로 다른 삶으로 안내해주는 인상을 받기도 합니다. 이건 정신 건강 측면에서도 좋다고 생각해요. 자기 치유의 의미도 되고, 제 내면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들을 곧게 펴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이야기를 통해 전혀 다른 맥락의 삶에 자신을 던지는 것은 소설가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통해 다른 상황에 처해보더라도, 끝내는 자신의 실제 상황은 결코 바뀌지 않습니다. 제 경우에는 꽤 참을성이 있는 성격이나 고양이와 음악을 사랑하는 것 같은 것 말이죠. 


Q: 끝으로, 현재 집필 중인 소설이나 번역하고 있는 작업이 있으신지요.


하루키: 지금은 몇 개의 단편 소설을 쓰고 있어요. (비록 그것이 끝날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리고 지금 존치버의 매우 매혹적인 단편 모음집을 번역 중이랍니다.  


이상, <기사단장 죽이기>의 네덜란드 출간을 기념해 신문사와의 인터뷰였습니다. 하루키의 답변은 일본어로 회신이 왔고, 그것을 네덜란드어로 번역한 것이라고 하네요. 제 기억으로는 언론 인터뷰에서 소설의 결말의 의미에 대해 직접적으로 물어본 건 처음 본 것 같습니다. 꽤나 신선했으나 하루키의 답변은 역시나 예상된 것이라 조금은 아쉬웠답니다. :D


 fin.

댓글
 
   
 
  • 모바일 정보창고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오늘도 날씨가 엄청 좋네요. ^^
    멋진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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