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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년 2월, 4년만에 다시 신작 장편 <기사단장 죽이기>를 출간한 하루키가 다시금 소설 휴식기에 들어가 있는데요. 보통 장편을 끝내고 몇 년간의 이 시기에는 단편 소설이나 에세이 혹은 번역 작업을 해오고 있죠. 하루키를 부지런함, 꾸준함의 상징으로 여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하루키가 이번에는 다소 의미있는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작년 말 그가 작가가되는데 크나큰 영향을 받은 작가 중 한 명인 레이먼드 챈들러의 7개 장편 소설 모두를 번역한 것인데요. 일본에서는 지금까지 저작권 문제로 1개의 작품이 번역이 안되었었는데, 하루키가 최초로 7개 장편 모두를 번역한 것이라고 하네요. 하루키 스스로도 그것에 대해 영광으로 생각한다고도 하네요. 


하루키는 첫 장편소설로 군상신인상 수상을 기념한 인터뷰를 통해, 처음으로 문학상을 수상한 기쁨과 함께, 이제는 좀 자유롭게 번역을 할 수 있다는 기쁨을 드러냈었죠. 그래서 그가 작가로 데뷔를 하고 바로 스콧 피츠제럴드의 작품 <나의 잃어버린 도시>를 번역하게 됩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레이먼드 카버, 존어빙, 크리스 반 알스버그, 트루먼 카포티 그리고 2007년 레이먼드 챈들러를 번역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10년간 챈들러의 7개 장편을 모두 번역한 것이죠. 


이번 기고는 10년에 걸쳐 레이먼드 챈들러의 7개 장편 소설을 모두 번역한 기념으로 닛케이 신문의 요청으로 기고한 글이랍니다. 본인이 좋아하는 작가, 좋아하는 소설, 좋아하는 일을 성취했을 때의 즐거움과 흥분감이 가득찬 하루키의 글을 보시죠.



 챈들러 장편 소설 7편의 모든 번역을 마치고

-하루키 닛케이 신문 기고글


[상]


레이먼드 손튼 챈들러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대부분 그의 인생 후반부 부터 였습니다. 첫 소설 <빅슬립>이 출가된 것이 1939년 그의 나이 50세가 지난 때였죠. 파란만장 까지는 아닐지라도 곳곳에서 다양한 인생 경험을 쌓고 여러가지 성공과 실패를 반복한 후, 옥신각신 끝에 겨우 소설가로서 이름을 낼 수 있게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미국은 불황의 한 가운데 있었고, 그것은 어떤 업종이든 삶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그렇다하더라도 50세에 본격적인 작가로 데뷔하는 것은 이례적으로 늦게 전업을 시작했다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1959년 70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 까지, 챈들러는 총 7개의 장편 소설을 출간했습니다. 모두 사립 탐정 필립 말로를 주인공으로 대도시 로스엔젤레스를 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인데, 많은 사람들은 그 소설 스타일을 '하드보일드 미스터리'라고 불렀죠. 펄프매거진에 기고하기 위한 글도 많이 썼지만, 그 글들은 빨리 써버린 글들이라, 질적으로 장편 소설에는 많이 못미치는 것이었을 거에요. 챈들러의 이름을 사람들이 알기 시작한 것은 역시 압도적으로 '필립 말로우'에 힘 입은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챈들러의 소설을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미스테리라는 장르 자체가 당시 일반 독자에게 다가가기가 어려웠고, 그렇기때문에 출판사에서도 그의 작품을 자신있게 출판 시장에 내놓을 수 없었던 상황이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래서 챈들러의 작품이 미국 본토에서 일부 독자와 평론가에 의해 꽤나 높게 평가되었지만, 생각대로 판매 부수가 크게 증가한 것은 꽤 시간이 지나서 였답니다. 당시의 일반 독자가 찾고 있던 오락 위주의 소설과 그가 제공한 독창성이 풍부한 작품 사이에 일종의 괴리가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것은 챈들러씨로 하여금 초초해하고 자신감을 흔들리게 만들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원래 그런 경향이 있었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과음으로 인해 알콜중독까지 이르게 된답니다. 


또한 한 때는,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를 쓰지 않으면 안되었던 시기도 있었어요. 그 결과 빌리와일드 감독의 <이중배상>이나 알프레도 히치콕 감독의 <열차안의 낯선자들> 등 뛰어난 시나리오를 집필해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트까지 되며 나름대로의 성공을 거둔 셈이지만, 거기에는 영화 업계 특유의 제약도 있고, 인간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커서 챈들러 스스로 그곳에서 빠져나오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소설가 챈들러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역시 시나리오를 집필하던 시기를 '유감스러운 우회'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년으로 갈 수록 그의 작가로서의 평가는 점점 높아지고, 특히 <롱 굿바이>는 그를 일류작가로 자리매김하게 되는데 중요한 작품이 되었죠. 드디어 세상과 챈들러가 같은 눈높이로 유지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련의 '필립 말로우' 시리즈는 지금도 꾸준히 판을 거듭하고 있으며, 그 작품은 일종의 신화적인 색체 마저 띠게 되었답니다. 챈들러의 뒤를 이은 많은 후배 작가들이 챈들러의 영향을 받아 그 문체와 스타일을 답습하게 되었고, 필립 말로우는 단순한 주인공에 머물지 않고, 하나의 상징으로 라이프 스타일의 기준이 되고, 도시 생활을 표방하는 보편적인 고유의 보이스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제가 번역 출판한 <호수의 여인>으로 레이먼드 챈들러씨가 남긴 7개의 장편을 모두 번역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저 이전에는 하야카와 출판을 통해 시미즈 슌지씨가 6개의 작품을 번역했는데요. 당시에는 <빅슬립>이 저작권 문제로 번역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일본에서 챈들러의 장편 7편 모두를 번역 출판한게 처음이라 개인적으로 부끄럽지만 기쁘기도 하고, 동시에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있어 무엇보다 기쁜 것은 번역 작업을 제대로 구석구석까지 즐기면서 완수했다고 것이랍니다. 물론 번역 작업이라는 것이 상당히 고된 작업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매우 보람되고 즐거운 작업이었답니다. 의미있는 고됨이랄까요. 챈들러의 긴박한 드라이브감은 정말 멋지지만, 곳곳에서 보이는 독특한 문체의 완고함과 그가 그리는 당시의 대도시의 풍속을 오늘의 일본어로 옮기는 것이 (변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답니다. 그러나 그만큼 쉽지 않았기 때문에 또한 보람도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챈들러씨의 장편을 번역한 것이 2007년 <롱굿바이>였고, 그 이후 10년간 제 본연의 소설을 쓰면서, 틈틈이 다른 작가의 소설을 번역할 수 있겠다라는 틈을 발견하고는 챈들러씨의 장편 번역을 계속해 온것인데요. 그동안 이제 그만 둬버릴까라고 생각하며 숟가락을 던져버리고 싶은 생각은 다행이 한 번도 없었답니다. 출판사에서도 한 번도 재촉하지 않았고, 제 페이스대로 꾸준하게 번역을 계속 해 올 수 있었습니다. 왜그랬을까를 생각해본다면 사실 강하게 저를 이끌었기 때문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답니다... 챈들러의 장편 7작품을 모두 번역하고 난 지금 이제 다 했구나라고 안심하고 있기도 하지만, 반대로 더 이상 번역할 작품이 없다는 사실에 왠지 실망해버리기도 한답니다. 그리고보니 레이먼드 카버가 남긴 모든 작품을 번역 완료하고 나서도 비슷한 감회를 느낀 것 같네요. 


[하]


번역작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부터, 챈들러 작품의 번역은 '언젠가는 도전하고 싶은 것'이라고 목표를 설정해두었었지만, 이미 앞선 작가들의 뛰어난 번역도 나오고 있었던 터라, 더 나이가 들고 번역가로서 실력을 붙이고 나서 시작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번역 작업을 하지 못한 많은 챈들러 이후의 작가들도 산적해 있었고 그렇게 무리해서 추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챈들러 작품의 번역을 할 나름의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이 든 2007년 처음 <롱 굿바이>를 번역하게되었지만, 제 신 번역본에 대한 비난은 의외로 힘들었습니다. <롱굿바이>는 이미 시미즈 슌지씨의 <長いお別れ>의 우수한 번역본이 선행되어 많은 독자들이 그 번역을 통해 챈들러를 즐겨왔던 것이죠. 이것은 노자키 타카시씨의 <호밀밭의 파수꾼>과 같이 얘기할 수 있을것 같은데요. 이처럼 이른바 신격화 된 뛰어난 이미 번역되어있는 작품의 경우, 신 번역본은 엄격한 역풍을 받게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인 것 같습니다. 그 번역서를 읽고 감명을 받은 독자는 자신의 신성한 영역에 낯선 세력이 침범한 것과 같은 불쾌감과 거부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이죠. 그 기분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역시 노자키 타카시씨와 시미즈 슌지씨의 번역서를 읽고 자란 세대니까요. 


다만 번역이라는 것은, '노화'에서 언제까지나 도망칠 수 없는 숙명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제 감각으로 보자면, 대략 반세기를 기준으로 어휘나 문장 같은 것이 점점 피로도가 쌓여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 번역한 것도 50년이 지나면 '조금 오래된 느낌의 문장인데'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독자들이 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후세에 남길만한 가치가 있는 뛰어난 고전 작품은 어느 정도의 세월이 지난 시점에 새로운 번역이 필요로 해집니다. 집을 보수하는 것과 같아요. 물론 번역자 자신이 그 보수 작업을 한다면 가장 좋겠지만, 불행히도 이미 세상을 떠났다면, 누군가가 새로운 번역을 준비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미국 작가 조이스 캐럴 오츠는 비평 에세이에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합니다. "챈들러의 문장은 자의식을 초월한 실로 웅변의 높이에 도달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접하는 이 문장이 단순한 액션 느와르가 아니라 확실한 비전을 가진 한 명의 문장가이자 작가라는 사실을 깨닫고, 무심코 마음을 바로잡게 된다".


그러고보면 이시구로 가즈오씨도 챈들러 소설의 팬이고 그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을 때는 항상 챈들러의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챈들러의 장편 소설을 번역해 나갈 때 마다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라며 기뻐하곤 했습니다. 그가 챈들러의 팬으로서 어떤 기분일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시구로씨는 다양한 종류의 이야기 스타일을 정밀하게 환골탈태해 나가는 것을 하나의 주제로 소설을 써 온 작가이며, 챈들러의 소설 스타일이 그를 사로 잡는 것은 당연하다고까지 할 수 있답니다. 


이와같이 챈들러의 영향을 받은 것은 비단 미스테리 분야의 작가에 머물지 않습니다. 많은 순수 문학 작가(조금 고리타분하지만,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습니다..)들도 그의 소설 스타일과 문체에 관심을 보이고 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죠. 그러한 의미에서 챈들러의 문학 유전자는 '하드보일드 미스테리'라는 협의의 장르를 초월한, '퍼블릭 도메인'으로서 문화 공유 자산의 경지에 까지 도달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모든 분야에서의 최선의 것은 각각의 고유 영역을 뛰어 넘는다"라고 괴테가 말하고 있지만, 실로 그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저는 그의 7개의 장편 소설을 미스테리 소설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20세기가 남긴 준 고전 소설"로 파악하고, 다양한 독자들이 각각 자유롭게 읽을 수 있도록 가능한 단어의 폭을 넓게 번역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 부분은 이전의 번역본들과는 형태를 달리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시미즈씨의 정통 하드보일드식 번역과도 다르고, 다나카 고미마사씨의 자유무쌍한 번역과도 조금 그 틀을 달리하고 있는 무카카미 저 나름대로의 챈들러 번역본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는 물론 독자의 자유이며, 문예계에 있어서는 그런 풍부한 선택지가 존재하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챈들러 작품이 많은 새로운 독자의 손에 들려 읽혀지는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고, 제 번역본이 그런 제 바램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그에 비할 기쁨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키라는 작가에게 번역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새삼깨닫게 되었네요. 하루키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문단에 데뷔하면서 '드디어 조금은 자유롭게 번역을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한 것과, 챈들러 작품의 번역을 본인이 소설가로서 일정한 능력을 겸비 후 시작한 치밀한 모습을 보면 잘 알 수 있죠. 2007년이면 <애프터 다크> 2004년에 쓰고, 2009년 <1Q84>를 집필하는 그 사이였네요. 확실히 소설가로서도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오른 상황에서 챈들러의 작품을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키의 장편 이력과 함께 번역 작업의 이력도 잘 살펴보면 더 깊이 하루키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새삼스런 깨달음을 얻게 해준 기고글 이었습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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