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23년 스페인 아스투리아스공주상 수상 AP통신 인터뷰
23년 스페인 아스투리아스 공주상의 문학상 부문의 수상자로 선정된 하루키가 지난 10월 스페인 오비에도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가했습니다. 2009년 산티아고 산클레멘테상과 2011년 카탈로니아 국제상 수상 이후 세번째 공식 방문이네요. 1981년 시작된 아스투리아스 공주상은 2014년까지 왕세자상으로 수상이 이뤄졌습니다. 스페인의 노벨문학상으로 불릴 만큼 다양한 분야의 수상자가 발표되는데요. 23년은 예술 분야에 배우 메릴 스트립, 스포츠 분야에 육상 선수 엘리우드 킵초게와 함께 하루키가 문학 부문의 수상자로 현장에 참가했답니다. 상금은 5만 유로네요. 총 8개의 수상 분야 중 엘리우드 킵초게와 메릴 스트립의 수상 연설만 진행 되었는데요, 하루키의 연설을 기대했던 팬들은 다소 아쉬웠을 것 같습니다. 아래 아스투리아스 공식 홈페이지에서 게시한 시상식 사진과 공식 유튜브 계정에 올라온 스케치 영상을 보면서 현장의 분위기를 대신 느껴 보시죠.
하루키는 시상식 주간에 현지 학생들과의 대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는데요. 마찬가지로 아래 링크에서 행사 스케치를 볼 수 있답니다. 행사를 통해 작가로 살아 온 자신의 삶에 대해 술회하고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는 세션으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아울러, 현지에서 AP 통신과 인터뷰를 한 내용이 있어 포스팅으로 소개해드리려고 하는데요. 깊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고 간 인터뷰는 아니지만, 최근의 하루키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기사는 간접 인용 형태로 되어있으나, 편의상 직접 인용 형태로 각색해서 포스팅 하겠습니다.)
Q: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이 유혈 출동은 우리가 얼마나 물리적으로나 비유적으로 '벽'으로 나뉘어져 있는지 보여주는 끔찍한 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루키: 이스라엘에 유대인 친구가 있답니다. 이스라엘에 방문했을 때 봤던 팔레스타인의 상황이 얼마나 비참한 상황인지도 잘 알고 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루 빨리 평화가 깃들도록 기도하는 일 뿐이에요.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는 판단하고 말할 수가 없어요.
Q: 아직 영어로 번역되지는 않았지만,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충돌은 무라카미씨의 신작 장편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하루키: 제 소설 속 '벽'은 실제 벽이에요. 동시에 비유적인 '벽'이기도 하고요. 저에게 벽은 매우 의미있는 것이랍니다. 저는 약간 폐쇄공포증을 가지고 있는데요. 좁은 공간에 갇혀 있으면 패닉 상태가 올 수도 있어요. 그래서 벽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합니다. 베를린을 방문 했을 때 베를린 장벽이 그대로 남아있었거든요. 이스라엘을 방문 했을 때 봤던 6미터에 달하는 장벽을 처음 봤을 때는 좀 겁이 났답니다.
Q: 금요일 (10/20일) 아스투리아스 공주상 시상식에 참석하시는데요. 위원회는 '야심차고 혁신적인 서사를 통해 일본의 전통과 서양 문화의 유산을 조화시키는 능력'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무라카미씨는 작가로서의 회고록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독자가 소설을 통해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에 대해 이야기 하셨는데요.
하루키: 지금 처럼 전 세계의 시대를 초월한 종교적, 국가적 갈등으로 복잡하고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는 저널리즘의 빠른 분석과 대응도 필요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유적이고 느린 정보도 필요해요. 예를 들어 가짜 뉴스와 같은 거짓 정보가 있어요. 저는 그것에 이야기로 소설로 대응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바로 소설의 힘이 아닐까 싶어요. 거짓 정보가 진실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긴 호흡의 이야기를 통해 진실성을 얻은 사람은 확실하게 거짓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현 세계 정세 속에서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기도 밖에 없는 상황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지만, 저를 비롯한 작가들이 쓰는 이야기와 소설이, 점점 더 복잡하고 위험해지는 시대를 이해하고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고, '벽'으로 갈라진 세상에서 '거짓말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쓸 뿐, 동양과 서양의 문화에서 어떤 역할을 맡거나 가교 역할을 하는 것에 사명감을 갖는 등의 글을 쓰는 행위 이외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답니다.
Q: 무라카미씨는 오랜 시간 동안 노벨 문학상을 받을 수 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여겨져 왔는데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올해의 수상자인 노르웨이 욘 포세와 같이 비교적 대중적으로 적은 독자층을 보유한 작가들에게 자주 전달되고 있는 경향이 있는데요.
하루키: 저는 작가로서 제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즉 글을 쓰는 일일텐데요. 오직 글을 쓰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그것이 저로 하여금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게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글을 쓰는 것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일종의 금욕적인 접근 방식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문학상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 방침이에요. 문학상은 심사위원이라고 불리는 타인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죠. 전 제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일에 관심이 많답니다. 물론 제가 이번에 아스투리아스 공주상을 받게 되어 영광이지만, 이는 결과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가장 멋지고 의미있는 일은 제 자신만의 이야기를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들려줄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Q: 열렬한 장거리 주자인 무라카미씨는 글을 쓰기 위해 책상에 묶여 있는 긴 시간을 견디기 위해 신체적 건강이 필요하다고 하신 적이 있는데, 노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인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루키: 저는 벌써 74세인데요. 소설을 얼마나 더 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어떤 글을 쓰든 소중하게 쓰겠다라는 생각입니다. 현재 새로운 프로젝트에 착수하기 전에 다양한 책을 읽고 번역을 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답니다.
Q: AI가 전세계적으로 화두인데요. AI를 사용하는 디지털 작가가, 창의적인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소설가의 영역에 도전한다면 어떨까요?
하루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해요. 저를 예를 들자면, 주인공을 둘러싸고 있는 복잡한 하나의 이야기는 단지 어떤 이미지를 통해 독자에게 의미를 제시하려고 시도할 뿐이기 때문에, 그러한 보여지는 혹은 전달되는 의미성 보다는 작가로서의 제 머리속에 있는 원관념이 절대 우위에 있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소설을 쓸 때면 머리 속이 마치 '벌레'로 가득 차 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계속해서 두뇌를 이용해 소설을 쓰고 있답니다. AI 컴퓨터가 저 만큼 머리 속에 'bug'로 가득 차 있다면, 그만 고장나 버리지 않을까요? 사람의 머리는 오류가 있어도 작동할 수 있지만, 컴퓨터는 그렇지 않아요.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