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신작 장편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 출간 인터뷰('23. 4월)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 이후 6년만의 장편이죠.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이 4월 13일 일본 출간을 했습니다. 초판으로 30만 부를 찍었다고 하네요. 신작이 공개된 당일 아침 5시에 인터뷰도 함께 공개가 되었는데요. 신작의 탄생 배경과 내용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본 인터뷰로 들어가기전에 신작 공개 3일 전인 4월 10일 하루키의 작품 관련 메세지가 신쵸사 홈페이지를 전해졌는데요, 그 내용 먼저 보고 가시죠.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본에서 맹위를 떨치기 시작한 2020년 3월 초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하여, 3년 가까이에 걸쳐 완성시켰습니다. 그 동안 외출하는 일도 거의 없고, 장기 여행을 하는 일도 없는 그런 상당히 이상한, 긴장을 강요 받는 환경 속에서 매일 이 소설을 끈질지게 쓰고 있었답니다. 마치 <꿈 읽기>가 도서관에서 <오래된 꿈>을 읽는 것 처럼 말이죠. 이런 얘기가 무언가를 의미할런지 혹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쩌면 무언가 하나 정도는 의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것을 피부로 실감하고 있습니다.
하루키의 작가 초기 미완의 중편이자, 장편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속 하나의 이야기로 발전된 것으로 알려진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과 제목이 동일하고, 신쵸사 홈페이지를 통해 언급된 작품에 대한 내용과 하루키의 메세지를 볼 때, 역시 같은 이야기에서 확장된 것이라는게 기정사실화 되었었는데요. 인터뷰를 통해 신작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이 어떤 배경에서 태어났고, 어떤 내용과 메세지를 담고 있을지 힌트를 얻어 보시죠.
https://www.buzzfeed.com/jp/harunayamazaki/haruki-murakami-2304
Q: 과거 미완성 소설인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을 재집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루키: 그 당시 작가 초기에는 아직 소설을 쓰는 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었어요.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쓰기 전 까지는 소설을 써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쨋든 생각한 것을 글로 써내고 그렇게 문학상을 받게 되었죠. 문장 혹은 소설의 쓰는 방법이라고 하는 것은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채로 소설가로서 달리기 시작했던거에요. 그 기세로 <1973년의 핀볼>까지 쓰게 되었고, 그 이후에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을 썼으니, 실질적인 세번째 작품이랍니다.
당시에는 제가 정말로 쓰고 싶었던 세계를 그리려고 시도했지만 아직 작가로서의 기술력이랄까 그런 것이 부족했었죠. 쓰고 싶은 것은 있었지만 전혀 쓸 수가 없었어요. 이런저런 사정까지 겹쳐지면서 어중간한 형태로 발표할 수 밖에 없었고, 그 당시에도 문예지에 발표하고 굉장히 후회했었거든요. 언젠가 제대로 된 형태로 완전히 끝맺음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계속 남아 있었답니다. 목에 생선 가시가 걸려 있는 것 처럼 말이죠.
Q: 그런데 그 이후 4번째 공식 장편 소설인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통해 다른 이야기로 재탄생 되긴 했습니다.
하루키: 그렇습니다. 그게, 1985년 이었죠? 당시에는 그 결말에 스스로도 납득했었지만, 그 이후 다른 방식으로 그 이야기를 그리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계속 들었답니다. 당시에는 제 머리속에 있는 것, 생각하고 있는 것을 문장으로 전환하는 능력이 부족했던 겁니다. 더 쓰고 싶고 더 써야 하는 것들이 있지만, 당시의 제가 쓸 수 있는 문장의 범위 안에서 밖에 쓸 수가 없었던 거죠.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다 쓰고 나서도, '앞으로 2년만 더 기다려보자.'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어요. 2년 정도 더 기다리면 좀 더 깊이가 있는 것을 쓸 수 있겠지 하고 말이에요. 쓰고 싶은 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 터득한 것 같은 시점에, 드디어 다시 한 번, 매듭을 짓지 못한 그 이야기와 마주서자라는 결심이 섰던 거죠. 문장을 쓰는 기술도 그 동안 많이 발전했을 거고요.
Q: 데뷔 초인 1980년대 당시의 작품들도 물론 독자들에게 많이 읽혔다고 생각됩니다만, 커리어를 계속 쌓아 온 지금은 또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하루키: 저는 어쨌든 계속해서 '문장이 잘 되어 가고 싶다.' '생각하는 것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고 싶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계속 노력을 해왔어요. 글을 쓰는 것 이외의 일은 거의 하지 않았죠. 강연도 잘 하지 않고, 취재도 최대한 응하지 않았답니다. 그 만큼 번 시간에 매일 달리고 번역하고 소설을 써 왔죠. 그렇게 해서 어느 시점에 '이제 어느 정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었구나.'라는 포인트가 온거죠.
Q: 그게 언제쯤 인가요?
하루키: 2002년 <해변의 카프카>를 썼을 때 조금 전 즈음이었을까요. 다소 미세한 불만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쓸 수 있게 되었다라는 생각은 있었어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썼을 시점에서는 아직 자유롭게 쓰고 싶은 것을 쓸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하지는 않았던 거죠. 문장을 쓰는 솜씨가 부족했어요. 그래서 제가 쓸 수 없는 부분은 어쩔 수 없이 건너 뛸 수 밖에 없었죠. 이번에는 이야기를 제대로 쓸 수 있겠다라는 느낌이 있었고 저 스스로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답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문장과 이야기의 불완전함을 좋아하는 독자들도 물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다시 쓴 이야기에 실망하는 독자나 혹은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독자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쓰기의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다라는 자부심은 분명히 있습니다. 이번 신작이 출간 후 혹은 더 긴 시간이 흐른 뒤에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Q: 1980년대 문예지에 발표했던 제목과 이번 신작의 제목을 그대로 가져간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루키: 전 이 제목을 좋아했어요. 처음 쓸 당시의 작품 자체는 만족하지 못했지만, 이 제목만은 마음에 들었어요. 아무래도 이 제목을 그대로 쓰고 싶었어요. 그 이외의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답니다.
Q: 2015년 <무라카미씨의 거처>라는 특설 사이트를 통해 독자의 질문에 답하는 시간을 가지셨는데요. 당시 "다시 쓰고 싶은 작품은 없나요?"라는 독자의 질문에 무라카미씨는 "저는 초기에 쓴 몇 개의 단편을 코단샤와 함께 펴낸 전집을 통해 일부 다시 쓴 적이 있답니다. 즉 2개의 버전이 있는 셈이죠. (중략) 하지만 앞으로는 더 이상 어떤 작품을 다시 쓰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생각됩니다."라고 하셨는데요.
하루키: 제가 그런 말을 했던가요? 무책임한 말을 해버렸군요. (웃음)
Q: 그 이후 몇 년 동안 마음이 바뀌신 것이겠죠. (웃음) 이런 대답을 하셨던 당시에는 어떤 마음이셨을까요? 이야기를 끝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다시 쓰기 전까지는 이야기의 전개에 대해 상상을 할 수 없었던 걸까요.
하루키: 아직 다시 쓸 시기가 오지 않았던거죠. '언젠가'라는 생각은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할까요. 이젠 다시 써 봐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것은 70세가 넘어서 였던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서 '남은 인생 과연 몇 편의 장편을 더 쓸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죠. 일종의 카운트 다운 같은 느낌이네요. '이제 슬슬 해도 되지 않을까?'랄까 "이제 하지 않으면 안되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할 수 있죠. 더이상 미완결인 채로 둘 수 없었다랄까요.
Q: 1980년 최초 버전의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의 스토리가 이어지는 것은, 이번 동명의 장편 1부에 해당하는데요. 주인공은 17세이고요. 17세인 주인공의 이야기인 1부에서 소설은 2부, 3부로 전개되며 주인공이 40대 독신의 중년 남성으로 변해갑니다. 그를 둘러싼 주변의 상황과 배경도 바뀌게 되죠.
하루키: 1부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완전히 다시 새롭게 쓰면서, 저 스스로도 제대로 다시 쓸 수 있게 되었다라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과연 이것만으로 다시 쓰는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졌죠. 이런 의문이 남았기 때문에, 일단 그렇게 1부만 다시 쓰고 그대로 두고 있었답니다. 원래 다시 쓴다고 해도 발표를 하든 안하든 상관 없이 저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서 쓴 것이니까요. 그렇게 반 년 정도가 지나가면서 왠지 계속 이야기를 쓰고 싶어지면서, 그 이야기에 다시 푹 빠져 버렸어요. 중년이 된 주인공을 이끄는 노인이등장하고, 10대 소년이 나오죠. 결과적으로는 3세대가 입체적으로 얽히게 되는 전개가 되었죠.
Q: 제 1부에서는 무라카미씨의 초기 작품을 연상시키는 소년 소녀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 이야기가 중심 입니다만, 그 이야기에서 방금 말씀하신 대로 '3세대의 이야기'로 양상이 바뀌어가는 지점이 흥미로웠습니다.
하루키: 저도 이제 면허증 갱신을 할 때 고령자 교습을 받지 않으면 안되는 후기 고령자이기 때문에,(웃음) 중년이나 노인을 좀 더 입체적으로 그릴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이건 40년 전인 30대의 저는 할 수 없었던 것이고, 지금 70대에 30대 시절 처음 쓴 작품을 다시 쓰는 것에 도전한 것도 이 소설이 지니는 외적인 의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Q: 노인으로 부터 중년의 주인공으로, 중년의 주인공으로 부터 다시 소년에게. 어떤 종류의 '계승'과도 같은 테마도 느껴졌습니다.
하루키: 그것도 물론 작가인 제 자신이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죠. 저는 자녀도 없고,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남기고 이어주고 싶은 일도 없지만, 어쨌든 이 사회안에서 살아 있는 한 무엇인가라도 '계승'해 나가는 일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확실하게 그것이 '계승'이다라고 까지 말하지 않아도, 어느 누군가의 마음 속 깊이 받아들여지는, 그 마음과 마음이 일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은 또 그것대로의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Q: 이번 인터뷰도 그렇고 라디오 DJ를 계속하고 계시거나, 와세다 대학 '무라카미 라이브러리'에서 낭독회나 음악회를 기획하시거나, 적극적으로 대중 앞으로 나오시는 기회가 늘어나는 느낌인데요. 지난 몇 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으셨을까요.
하루키: 역시 계속해서 문장만 써내는 삶에서 조금 여유가 생겼다랄까요. 조금 더 제 자신을 내어 놓아도 좋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저는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의식이 굉장히 강했기 때문에, 그 이외의 일은 일절 하지 않는다라고 제 자신을 묶어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요.
Q: 월 1회 진행하시는 라디오, 매우 즐겁게 회자되고 있어서 신선하고 흥미롭습니다.
하루키: 저는 음악을 매우 좋아해서 혼자서 깊이 파고 들어왔는데요. 이제 혼자 집중해서 듣는 것도 피곤해졌다랄까요. (웃음) 다른 사람들과 함께 편하게 듣는 것도 매우 기분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Q: '문장'에만 집중하던 시절의 작품과 비교해 볼 때, 뭔가 작품으로서 느껴지는 변화가 있으실까요?
하루키: 음, 그건 모르겠습니다.
Q: 인터뷰 서두에서도 '그리고 이제 몇 편의 장편을 쓸 수 있을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만, 작가로서 초조함을 느끼는 부분도 있으신가요?
하루키: 초조함은 없답니다. 충분히 많이 쓰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그렇지 않나요? (웃음) 저는 원고를 청탁 받고 글을 쓰고 있지 않기도 하고, 초조해 한다고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번역이나, 단편 혹은 중편 작업을 하면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반드시 장편을 쓰고 싶은 시기가 다가와요. 그것만을 기다리는 거죠. 그런 시점이 죽기 전에 몇 번이나 더 오게 될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요.
Q: 죽을 때 까지 소설은 계속 쓰고 싶으신가요?
하루키: 그런 마음도 있지만, 도중에 지쳐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웃음) 아무튼 소설을 쓰는 작업도 풀마라톤을 달리는 것과 같이 고된 일인거죠. 그래서 '이제 더 못하겠어, 여기서 그만두자.'라고 되어버릴지도 모르죠.
Q: 이전, 가와카미 미에코 작가와의 대담집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에서 'SNS에 대항 할 수 있는 것은 이야기 밖에 없다.'라고 하셨습니다만, 좀 더 자세하게 듣고 싶습니다. SNS는 연일 화제가 되고 트럼프 대통령이나 신형 코로나를 둘러싼 루머와 가짜 뉴스가 범람하고, 말의 힘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사용되는 것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말이죠.
하루키: 저는 SNS는 전혀 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저는 짧은 문장으로 과연 얼마나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고 의미하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소설은 완전히 다릅니다. 오랜 시간 가다듬고 독자에게 스며들면서 무언가를 말하고 무언가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죠. 문장으로 만들어 진 것도 곧바로 로지컬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도 많기 마련이어서, 며칠 몇 개월 몇 년인가를 거듭해 겨우 의미를 알 수 있게 되기도 하죠. 반대로 처음 읽고 10년 정도가 지나서 다시 읽었을 때, 아무렇지 않게 '아, 이런 내용이었구나.'라고 느끼는 이야기도 있을 것이고요. 저는 이런 것의 힘을 믿고 싶습니다. 문장 1개나 2개 정도로 설득하려고 하는 세계는 그다지 흥미가 없어요.
Q: 그런 짧고 강하게 어필하는 문장이 힘을 지니게 되는 상황에 위기감이나 대항하고픈 마음이 있으신가요?
하루키: 하지만, 그런 것들은 금새 사라져 갈 겁니다. 오랜 시간 뒤에 보면 남는 것은 그런 짧고 기세 좋은 문장이 아닐겁니다. 결국엔 소설과 같은 많은 문장으로 된 이야기가 남아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까지 걱정을 하지는 않아요. 다만, 그런 듣기에 좋은 말에 움직여버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 그것은 불안하긴 합니다. SNS가 처음 등장했을 때, 바로 이곳에서 새로운 민주주의가 태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죠. 하지만 그렇게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만 같은 느낌이 되었어요. 이 점도 무서운 것이라면 무서운 일이긴 한데...하지만 역시 저는 이야기의 힘을 강하게 믿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전혀 비관적이지 않습니다.
Q: 이번 신작 내용 중에 '역병'이라는 표현도 나오는데요. 소설을 쓰고 있던 시기가 확실하게 코로나 시기라고 생각됩니다만, 작품을 쓰시면서 어떤 점을 생각하셨을까요.
하루키: 역사의 흐름이 바뀌어 가고 있다라는 것을 느꼈어요. 그때까지 수십년은 글로벌화에 의해서 세계는 더 좋은 장소가 되어간다라는 분위기가 혹은 적어도 그럴지 모른다는 가능성이 널리 퍼져 있었다고 생각해요. 큰 전쟁도 없었고요. 그런데 코로나 펜데믹을 지나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있고 지금까지 당연하다라고 믿고 있었던 것들을 이제는 순진하게 계속해서 믿는다라는 것은 어려워졌다고 생각해요. 포퓰리즘도 팽배해지고 반글로벌리즘도 고조되고, 민족주의가 다시 각광을 받는 쪽으로 세계가 다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해지고 있죠.
이런식으로 세계가 불안정해지면, 좁은 세계로 숨고 도망가고 싶다라는 마음이 나오게 되는 것이죠. 바로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바깥 세상과 단절되어 벽에 둘러 쌓인 환상적인 거리'같이 말이에요. 이 장소는 좋은 장소일 수도 있고, 나쁜 장소일 수도 있어요. 잘 판단이 안되지만 어쨌든 현실 '이외의' 다른 세계 와의 교류랄까, 왕래가 있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벽에 둘러 쌓인 거리가 어디까지 좋은 세계인지 위험한 세계인지 주인공도 모르고 작가인 저도 모릅니다. 독자 한 명 한 명이 각각 느낄 것이라고 생각해요. 멋진 세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이곳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거에요. 하지만 주인공은 어찌되었든 이야기의 마지막에 한 쪽을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건 확실합니다.
인터뷰를 보면서 일단 가장 놀란 것은 하루키가 자신의 소설의 이야기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의 선택이나 이야기의 주제 의식을 비교적 알기 쉽게 언급을 한 점이 신선하네요. 역시 인터뷰 중에도 몇 번 언급되었던 작가의 물리적인 나이 때문인 것일지. 변화한 세계 정세 속에서 보다 알기 쉽게 독자들에게 본인의 생각과 메세지를 전달하고픈 마음일지. 작품을 직접 읽어보면 답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D
이번 인터뷰는 아사히 신문의 주도로 여러 언론의 공동 인터뷰였고, 그래서 매체마다 내용이 소폭 다르고 내용이 각각 빠지면서 전체 내용이 다른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메인 인터뷰사인 아사히 신문의 인터뷰 내용 파악이 되면, 포스팅을 보강해 볼게요.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