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미국 번역 출간 기념 인터뷰
오랜만에 하루키 인터뷰를 가지고 왔습니다. 하루키 본인이 직접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해서 솔직하게 털어 놓은 에세이죠.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가 이번에 미국에서 출간되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15년에 처음 출간되고 이듬해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된 책인데요. 미국에서는 다소 늦게 출간되었답니다. 영문 제목은 <Novelist as a Vocation>입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에세이의 내용을 읽고 제목을 지은 것 같습니다. 단순한 'Job'이 아닌 소명이나 천직의 의미를 지닌 'Vocation'을 썼네요. 하루키의 오랜 번역가이자 일문학 교수인 필립 가브리엘 번역이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인터뷰는 앤디 워홀이 공동 창립한 것으로 유명한 인터뷰 매거진에 실렸고요. 현지에서 10월 21일자로 소개되었답니다.
https://www.interviewmagazine.com/art/haruki-murakami
Q: 소설을 쓸 때,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 들어가 길을 잃어 버려 빠져 나오기 힘든 적이 있으신가요?
하루키: 보통 소설을 쓰다보면 그 세계에 완전히 빠져 든답니다. 하지만 소설을 쓰는 하루 일과를 마치면 평범한 세계로 다시 돌아와 평범하게 살아가죠. 전 다림질을 하고 지하철을 타고 중고 레코드샵이 들려요. 소설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을 경험을 한 적은 없답니다. 더욱이 결혼을 하게 되면 상황이 복잡해지기 때문에 일상으로 돌아와야만 해요. (웃음)
Q: 소설의 소재는 어떻게 처음 당신에게 다가오나요? 소설에 대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불꽃은 무엇이었나요?
하루키: 음, 소설을 쓰는데 있어서 어떤 영감을 받은 적이 거의 없어요. 단순히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내려갈 뿐이에요. "이 다음은 어떤 내용일까?"라는 궁금증이 이어지고 그렇게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계속 진행되죠. 그런 이야기의 아이디어는 계속 나오죠. 저도 제 머리 위에 '전구'가 탁 하고 불이 들어오는 처럼 영감을 경험해 보고 싶네요.
Q: 무라카미씨는 해외 체류 중에도 소설을 자주 쓰곤 합니다. 글쓰기에 가장 좋아하는 지역은 어디인가요?
하루키: 그리스의 어느 섬에서 소설을 쓰고 있을 때, 매일 창 밖으로 양떼를 보며 소설을 쓴 적이 있어요. 양들이 특별한 방법으로 소설을 쓰는 것에 도움을 준 것은 아니었지만, 열심히 쓰고 있는 저를 응원해 주었을지는 모르죠. 그때 쓰던 소설이 <노르웨이의 숲>이었답니다. 소설 속에는 양에 대한 이야기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지만요.
Q: 무라카미씨에게 '일본 작가'라는 분류는 얼마나 중요할까요?
하루키: 저는 일본어로 소설을 쓰기 때문에, '일본 작가'로 불리는 것 같습니다. 일본어로 소설을 쓰는게 가장 편하고요. 그 이상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맛있는 소바 가게가 많아서 일본에 있는게 좋답니다.
Q: 젊은 작가 시절 당신에게 영감을 주었던 음악이나 영화는 무엇이었나요?
하루키: 어렸을 때 부터 저는 온갖 영화를 보고, 온갖 음악을 들었고 그 모든 것들이 제 머리속에서 뒤섞여 일종의 습득, 교육 같은 것이 되었다고 생각돼요. 그래서 저는 영감을 받은 몇 가지만 고르는 것이 불가능하답니다. 저에게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음악과 영화들이 어떻게 제 안에서 혼합되어 있는지라고 생각해요.
Q: 지금 현재 무라카미씨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루키: 아쉽지만 새로운 것에 거의 관심이 없답니다. 제가 살아온 모든 시간 동안 빌리 할리데이를 능가한 싱어는 없었고, 어떤 연주가도 스탄 겟츠 보다 테너 색소폰을 더 잘 연주하지 못했죠.
Q: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과거로 가시겠어요, 미래로 가시겠어요?
하루키: 과거로 돌아가서 글렌 굴드의 마지막 콘서르를 듣고 싶네요. 그리고 클리프 브라운의 라이브도 듣고 싶고요. 찰리 파커의 연주도 듣고 싶긴하지만, 너무 기대가 커서 실망할까봐 두렵긴 하네요.
Q: 이번에 출간된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글쓰는 것과 관련된 마법 같은 일들을 묘사하고 소개해 주셨는데요. 이 세상에 그런 마법 같은 일이 또 있을까요?
하루키: 야구 경기 시즌 개막전에서의 하얗고 흠잡을 데 없는 선수들의 유니폼과 풀 마라톤 완주 후 처음 마시는 맥주, 여전이 지글지글하는 굴 튀김, 기차 안의 식당칸의 풀을 먹인 하얀 식탁보와 그 위에 올려진 빨간 장미 한 송이 그리고 1950년대 블루 노트 레이블 레코드와 케니 버렐의 기타 백킹 연주입니다.
Q: 무라카미씨가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일까요?
하루키: 제가 죽은 후에 '無'가 되지 않는 다는 점이에요.
Q: 무라카미씨는 평범하고 특별하 것이 없는 삶을 살아 오셨고, 작가인 친구가 많지 않다고 하셨는데요. 당신이 언급한 것 처럼, 작가로서 헤밍웨이가 방탕한 삶을 살았다는 낭만적인 신화를 깨트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요. 의도적으로 작가로서의 삶고 일상에서의 삶을 분리하려고 시도하신 건가요? 아직 시도하고픈 와일드한 모험과 같은 일이 있으신지도 궁금합니다.
하루키: 저는 관심있는 일만 하고, 그렇지 않은 일은 절대 하지 않아요. 제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제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고양이와 놀아주고, 적당히 괜찮은 레드 와인을 마시고, TV에서 중계해주는 야구 경기를 보는 것이에요. 그리고 1년에 한 번 풀 마라톤을 뛰고 가끔 여행을 가는 정도요. 저는 총으로 사자를 쏘거나 청새치를 잡거나 하지 않아요. 사는 것 자체가 모험이라고 생각한답니다.
Q: 데뷔 전 재즈바를 운영하면서 작가로서의 세계를 위해 뭔가 미리 준비를 한 것이 있나요?
하루키: 재즈바를 운영하고 있을 때 이미 수 많은 사람과 제 인생에 있어서 해야할 말을 모두 다 해버린 느낌이었어요. (어차피 서비스업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재즈바를 지인에게 양도하면서 앞으로는 '평생 말 없이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재미있는 건, 당시의 손님이었던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당시에 제가 말을 많이 안했다고 하더라고요.
Q: 작가는 뮤지션 보다 까다로운 캐릭터 인가요?
하루키: 전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 한 것은 너무 괜찮은 사람은 소설을 쓸 수 없다는 점이에요. 뮤지션들의 머리속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Q: 인류가 스스로 바로 잡을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하루키: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이야기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니까요.
Q: 무라카미씨가 받은 최고의 조언은 무엇인가요?
하루키: '남들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남들과 다른 언어를 써라.' 입니다. 정확한 출처를 기억하지 못해, 단어를 정확하게 인용한 것은 아닐 것 같지만, 스콧 피츠제럴드의 말이랍니다. 어렸을 때 이 문장을 읽고 제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었어요. 작가로서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 독자가 소설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당신의 소설 중에 무라카미씨를 놀라게 한 독자들의 반응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하루키: 저는 모든 오해의 합이 바로 진정한 이해를 이룬다고 정말로 믿고 있답니다. 그래서 독자들이 제 작품을 이해하지 못해도 속상하지 않아요. 그것을 두려워 하지도 않고요. 완전히 이해하기를 기대하지 않는 것. 그것이 제가 오래도록 소설을 쓰는 비결이라고 생각해요. 농담이 아닙니다.
Q: 소설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장 먼저 얘기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하루키: 아무에게도 하지 않아요. 혼자서 오랜 기간 생각하죠. 제가 계속해서 작가로서 가지고 있는 성격 중 하나랍니다.
Q: 소설로 쓰고 싶지만,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고 느끼는 주제가 있으신가요?
하루키: 어렸을 때 부터, 하드보일드 미스테리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는 이야기의 플롯을 미리 설계하고 구조하는 것은 어렵다고 느껴 시도하지 않았답니다. 저는 줄거리를 미리 짜지 못해요. '범인은 또 누구지?'라는 종류의 물음을 해소하기엔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중간에 제 스스로가 혼란이 올 것 만 같답니다.
Q: 집에 예술 작품이 있나요?
하루키: 그림을 수집하는 것이 제가 가진 유일한 사치랍니다. 제가 좋아하는 그림을 사는 것을 즐겨요. 그건 소유한다는 개념이라기 보다는 잠시 제가 맡아두는 느낌이 큽니다. 비교적 젊은 일본 작가들의 작품을 선택해 오고 있어요.
Q: 가장 높이 올라간 나무를 기억하시나요?
하루키: 고소공포증이 심하답니다. 높이 올라간 나무요? 정말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Q: 무라카미씨는 언제 가장 행복하신가요?
하루키: 풀 마라톤의 결승점에 있을 때에요. 제가 더 이상 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죠.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