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20년 12월 日 다이아몬드지 인터뷰 (1편)
이번에 소개해 드릴 인터뷰는, 코로나 펜데믹 상황이 끝날 줄 모르던 20년 12월 일본의 경제/금융 주간지 다이아몬드지와 가진 인터뷰입니다. 이번 인터뷰 기사는 원래 유료 페이지로 운영을 하고 있는데, 인터뷰 일부가 공개로 전환되면서 소개해 드릴 수 있게 되었답니다. 인터뷰는 모두 2편으로 나누어져있고, 먼저 공개된 1편에 대한 내용을 소개해 드릴게요. 주 내용은 코로나 시국 하, 각종 정책에서 실정하고 있는 일본 정치가들에 대한 비판 발언이 주를 이루고 있답니다. 도쿄 FM 무라카미 라디오를 통해 간간이 언급하던 비판 발언을 집약해 놓았다고 생각해주시면 편할 것 같네요 :D
Q: 처음 뵙겠습니다.
하루키: (기자의 명함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다이아몬드'는 월간지 였군요?
Q: 아니오, 주간지랍니다. '돈'에 관련된 것들을 주로 다루고 있죠.
하루키: 그렇군요. (웃음)
Q: 저희 주간지가 생소하실지도 모르지만, 모쪼록 오늘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2020년이 끝나가려고 합니다.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대 속에 사회의 일반적인 모습은 물론 역사 조차도 크게 바뀌는 것만 같은 한 해였습니다. 이 1년을 무라카미씨는 어떻게 보시나요?
하루키: 작가라는 직업은 원래 계속 집에 있으면서 혼자 작업을 하게 되기 마련이죠. 특히 저는 사람과 교제하는 범위가 좁은 이유도 있고, 코로나 펜데믹 상황이 되면서 제 일상이 크게 바뀌었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동네 근처를 달리고 일을 하고, 음악을 듣고, 맥주를 마시고, 잠자리에 드는 이런 제 자신의 삶의 방식은 거의 변하지 않았답니다.
다만, 외부 세상은 크게 변했다고 생각해요. 혼자서 집에서 일을 하고 있어도 그런 공기랄까요 그런 건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 저도 계속해서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코로나라는 것은 돌발적인 개별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세계가 변화해가는 다양한 요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IT 정보기술에 의해 새로운 산업혁명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기후 변화도 함께 진행 중입니다. 포퓰리즘과 함께 글로벌화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죠. 이렇듯 세계는 계속해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 흐름 속에 코로나도 하나의 변화 요인으로 더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정도로 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갑자기 코로나라는 재앙이 닥쳤다기 보다는, 계속 예감되어 졌던 언젠가 올 것이 그냥 왔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Q: 무라카미씨의 창작 활동에도 코로나가 영향을 주었을까요?
하루키: 물론입니다. 사람은 공기를 마시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공기가 바뀌게 되면 몸의 조성도 바뀌게 마련이죠. 다만 그 변화에 의해 어떤 작품이 실제로 쓰여질까에 대해서는 써보지 않고서는 모른다고 생각해요. 이럴 때, 작가로서의 대처법은 2가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이런 변화의 그 자체에 대해 쓰는 것입니다. 이번의 경우라면, 코로나로 인해 바뀐 무언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써나가는 것이죠. 다른 하나는, 일단 일어난 일을 의식 속에 가라앉히고 그것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보고 정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시간도 꽤 걸리고 어떤 식으로 발현되게 될지 전혀 예상이 되지 않죠.
어느 쪽의 방법이든 저에겐 소중합니다만, 조금 더 선호하는 방법은 후자입니다. 의식적으로 이렇게 바꾸어 보자라고 하는 것 보다는, 무의식 즉 의식의 밑바닥으로 부터 서서히 움직여 나타나게 하는 것에 더 흥미가 있답니다. 제 자신의 2020년 변화를 하나 든다면, 해외에 나갈 수 없었던 만큼 라디오 DJ를 제대로 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는 1년 중 1/3을 해외에 있었기 때문에 좀 처럼 방송을 할 수가 없었죠.
Q: 올 해 마지막날 송년 생방송에서는 야마기와 주이치(전 교토대 학장, 현 고베대 총장)와 야마가타 신야(교토대 교수, 노벨생리의학상 수상)가 출연한다고 들었습니다. 무라카미씨 추천에 의해 성사된 것인가요?
하루키: 그렇습니다. 이전 부터 두 분과는 함께 밥을 먹기도 하고 꽤나 친분을 쌓아왔죠. 이번 생방송은 교토의 스튜디오에서 진행하게 되어서, 가장 먼저 이 두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Q: 야마기와 주이치씨라면 일본학술회의를 둘러싼 큰 논쟁(*역주: 일본 정부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일본 내 영향력있는 학자들로 구성된 기초 학문 연구 집단으로, 보통 정치권의 개입 없이 승인이 되었지만, 아베 총리 때 부터 정부의 정책에 반하는 의견을 낸다는 이유로 승인이 거부된 사건) 의 중심에 있던 인물입니다. 이 논쟁도 올 한 해 일본 내에서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 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루키: 학술회의 논쟁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터무니 없는 이유로 추천된 사람들이 배제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학자라든가 예술쪽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어느정도 속세의 일과는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쪽 다리는 땅을 딛고 살아가지만 다른 한 쪽 다리는 어딘가 다른 세계를 향해 있어야 한다고 말이죠. 그 정도가 아니면 애초에 학자나 예술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사람들의 의견은 지금 세계에서도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저 너머 세상에 한 보 더 나아간 사람들의 의견이니까요.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의 의견과 생각은 반드시 '굳어진 생각'에 바람을 불어넣기 때문입니다. 즉, 정치가와 같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세계의 '일종의 총체로서의 의견'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그들의 의견을 '총체의 의견과 다르니까'라든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라고 말하면서 계속해서 배제하기 시작해버리면, 이 세상은 그대로 굳어버리게 됩니다.
Q: 굳어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하루키: 이 세상이 유연성을 잃어 간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것을 구실로만 따지고 든다면 일은 잘 되어가지 않습니다. 그것을 뛰어넘는 것이 들어오지 않으면 세상은 매끄럽게 돌아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터무니 없는 것 처럼 보이는 생각들이야말로 의외로 세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그런 터무니 없는 말을 하는 사람의 발언권을 빼앗아 배제 당하는 것 만큼 끔찍한 일이 없다고 생각해요. 학술회의에서 총체의 의견과 다른 어떤 문제가 있어도, 오히려 문제가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더 소중히 해야합니다. 지금의 시대는 SNS나 인터넷에 의해 사람들의 의견이 점점 매스(집단적)화 되는 것이 아닐까요. 이런 시대야말로 매스가 되지 않는 '개인의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무라카미씨는 픽션을 쓰시는 한편, 실제 사회에서 어떤 큰일이 일어났을 때 마다 논픽션이나 단편 소설, 스피치 등을 통해 메세지를 발신해 오셨습니다. 동일본 대지진 영향으로 도쿄 전력 후쿠시마 원전 누출 사고 때에는 '일본 사람들이 윤리와 규범을 잃었 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라고 하셨죠. 이번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는 무엇이 드러나게 되었을까요?
하루키: 우선 하나 큰 문제라고 생각되어지는 것이 정치의 질에 의문을 갖게 된 점입니다. 코로나와 같은 상황은 처음이기에 정치인들도 처음에 무엇부터 해야할지 모르거나 앞날을 잘못 내다 보거나 하는 일은 불가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초기 실패를 각국의 정치가가 어떻게 대처해 나갔는지를 비교해보면 일본의 정치가는 최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 구체적으로 어떤 측면에서 일본의 정치가가 최악이었을까요?
하루키: 일단 자신의 언어로 얘기하지 못했어요. 정치인 자신의 메세지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최악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혼란스런 상황이기 때문에 정치인도 사람이기에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실수를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아베 마스크를 배포한 건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라든가 'Go To 트래블을 지금 하는 것은 틀렸습니다'라고 제 때에 제대로 인정하는 발언을 했었다면 어땠을까요. 국민도 '이미 잘못 판단해 버린 일은 어쩔 수 없고, 앞으로 제대로 해주면 좋겠다'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많은 정치가들은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변명만 늘어 놓기 급급하죠. 그러니까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퍼져 나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이런, 일본 정치가의 근본적인 결함이 이번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 드러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노변담화 (뉴딜 정책 시행에 앞서 라디오를 통해 국민들에게 친근하게 설명해주는 시정 연설)를 적극 시행했고,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도 전쟁 중 라디오를 통해 국민과의 소통을 이어갔습니다. 이 두 사례는 모두 제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지만, 존 F. 케네디 라면, 당시 저는 중학생이었기 때문에 잘 기억하고 있답니다. 그도 제대로 자신의 말을 국민들에게 발신할 수 있는 사람이었죠.
일본인으로서는 다나카 가쿠에이 (64,65대 총리)씨가 말을 잘했었죠. 어디까지가 진심이었는지는 잘 알 수 없는 부분이 있었습니다만. 이런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지금의 많은 일본 정치가들은 어떻게 봐도 자신의 말로 얘기하는 것에 서툽니다. 지금 총리대신이라고 하는 사람도 쓰여진 원고를 읽기만 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
원래 일본 사람들은 주위를 신경써가며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가 전체의 분위기와 의견을 벗어나는 것 같으면 비난을 하는 부분이 있긴 하죠. 이런 가운데 어떻게 발언을 하고 표현을 하느냐는 정치가의 문제이기도 하고 동시에 표현을 직업으로 하는 이른바 예술가가 가진 문제이기도 합니다.
2편은 공개되는 대로 이어서 전해드리겠습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