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인터뷰

하루키 94년 미국 문예 계간지 Bomb 인터뷰(2)

finding-haruki.com 2015. 1. 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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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94년 <태엽감는새>를 한창 집필 중인 미국 체류 기간에 영국의 인디 뮤지션이자 작가인 존웨슬리하딩과 가진 인터뷰 2편 이어갈게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하루키 94년 미국 문예 계간지 Bomb 인터뷰(1)편 보기


Photograph: Eamonn McCabe


하루키 94년 문예지 Bomb 인터뷰(2)

Bomb 인터뷰 원문


JWD: 무라카미씨의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블레이드 러너와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느낌인데요. 그렇지 않나요?


하루키: 그건 어디에도 없는 도시에요. 당시 전 그런 도시가 필요했죠. 그러나 요즘은 저에게 소설을 쓰는 데 있어서 그런 도시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어요. 저 안에 스스로 그런 도시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죠. 10년전에는 일본 사회로 부터 벗어날 것이 필요했고, 전통, 관습이라는 것들에서도 도망가길 원했죠. 


JWD: 그러나 무라카미씨의 소설은 여전히 저에게는 일본성을 띄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하루키: 단편집 <코끼리의 소멸>의 <빵가게 재습격>에는 젊은 부부가 나옵니다. 그들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맥도날드를 습격하죠. 샷건을 들고 말이에요. 그런데 어떤 미국 독자들은 저에게 그런일은 여기 미국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JWD: 맞아요! (웃음) 지극히 평범한 일인걸요.


하루키: 그런데 일본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에요. 누구도 샷건을 들고 다닐 수 없고, 누구도 맥도날드를 습격하지 않아요. <빵가게 재습격>은 일본에서는 매우 이상한 이야기이지만,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죠. 


JWD: 무라카미씨의 작업은 비평가들로 하여금 일본을 강하게 비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전 그런 인종차별적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 비평들을 보면, 그들은 일본인 작가가 자국을 싫어한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해요. 무라카미씨는 제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하루키:  전 비평을 잘 읽지 않는 편이에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제가 국외거주자이고 일본을 떠나 있다는 것을 좋아하기도 해요. 하지만 저도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면 고국에 대해 좀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일본은 저에게 매우 특별한 나라에요. 전 '일본은 무엇인가', '일본인들은 무엇인가'에 대해 탐구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JWD: 일본을 떠나 있는게 도움이 되신다고 보시나요? 전 영국을 떠나 미국에서 생활 중이지만, 저 역시 영국을 떠나 있으니 보다 명확하게 영국이 보이긴 합니다. 


하루키: 전 단지 글을 쓸 수 있는 완벽한 장소를 원했던 거에요. 전 이전에 로마에도 있었고 그리스에도 있어 봤지만, 완벽하게 편안한 곳은 아니었어요. 전 이탈리아를 사랑하고 그리스 역시 사랑하지만, 그리스는 그리스인들을 위한 곳이었고, 이탈리아도 마찬가지였어요. 전 그곳에서 이방인일 뿐이었죠. 그런데 이곳 미국은 그렇지 않아요. 매우 편안하고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이것이 바로 제가 이곳에 머무는 단 하나의 이유에요. 이곳은 매우 편안하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저에게 언제쯤 영어로 소설을 쓸 거냐고 물어 보곤 하는데요. 전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고요.


JWD: 무라카미씨의 작가로서의 일상생활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제가 막연하게 생각하는게 맞을 수도 전혀 다들 수도 있겠지만, 무라카미씨는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분명히 폭격을 받으실 거 같은데요.


하루키: 폭격이요?


JWD: 영어 폭격이죠. 영어로 말하는 사람들, 미국 노래들, 미국 차 등등 이런 경험들이 무라카미씨의 작업에는 반영되지 않나요?


하루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이곳은 '어디에도 없는 도시(nowhere city)'인걸요. 


JWD: 밴 모리슨이 떠오르는군요. 그는 항상 'nowhere city'를 외치곤 했어요. 제 친구가 '내일은 어디서 공연해?'라고 물으면 그는 'nowhere'라고 대답했죠. 그러면 친구가 다시 단어를 바꿔서 '다음날은 어디서 공연해?'라고 다시 물으면 역시 'nowhere'라는 답변이 돌아왔어요. 그러면 친구는 질문을 바꾸어 '다음 공연은 어디선가하겠지?'라고 물으면 '3주 뒤에 런던에서 공연해. 런던 어디선가에서 말이야'라고 대답했어요.  


하루키: 전 비틀즈의 'nowhere man'이라는 노래를 좋아해요. <노르웨이의 숲>의 마지막 부분을 쓸 때, 'nowhere man'을 자주 들었어요. 그래서 전 <노르웨이의 숲>의 마지막 파트의 부제는 'nowhere'라고 여기고 있답니다. 이곳 미국은 저에게 어디에도 없는 장소이고 어디에도 없는 도시이며 어디에도 없는 거리에요. 


JWD: 음, 'nowhere street'는 노래 제목으로 아주 좋은 것 같아요! 계속해서 영화 얘기를 해볼까요? 데이빗 린치를 좋아하시나요?


하루키: 오 그럼요. 매우 좋아해요. 전 그의 열성적인 팬이에요.


JWD: 무라카미씨의 단편 <춤추는 난장이>는  데이빗린치의 <트윈픽스>의 꿈꾸는 시퀀스와 매우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하루키: 아 맞아요. 저도 <트윈픽스>를 보고 매우 놀랐었죠. 엄청난 우연이에요! 


JWD: <춤추는 난장이>는 언제 쓰신건가요?


하루키: <트윈픽스>를 보기 전이었어요. 


JWD: 무라카미씨의 다른 작품들을 보면 역시 데이빗 린치의 <블루 벨벳>의 상황과 많은 부분 비슷한 점이 발견되는데요. 예를 들면 평범한 남자가 보통의 장소에서 무언가 특별한 것을 찾아내는 것과 같은 상황 말이죠. 


하루키: <트윈픽스>가 개봉했을 당시 일본에서는 난리가 났었어요. 거의 미쳐있었다고 할까요. 빨간 커튼이 있는 방에서 춤추던 난장이를 기억하시나요? 전 그 방을 잠재의식으로 해석했어요. 그건 누구에게나 무언가 이상하고 특별한 존재라고 여겨질거라고 생각해요. 데이빗 린치는 그걸 보는 사람들 모두 같은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JWD: 그런데 무라카미씨의 작품은 상징성이 매우 강합니다. 어쩔때는 실수가 아니었을까 생각되어질 정도로 말이죠. 


하루키: 전 저의 잠재의식을 분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이건 저만의 자산이라고 생각해요. 설명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당신은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 꿈도 거의 꾸지 않아요. 꿈을 꾼다고 해도 기억하지 못해요. 그러나 전 꿈을 잠재의식을 만들어 낼 수는 있어요. (이것이 저의 자산이라고 생각해요.)


JWD: <양을 쫓는 모험>과 <댄스댄스댄스>에서 꿈을 쫓는 주인공이 도달하는 곳으로 묘사되는 돌핀 호텔이 있죠. 이곳은 이야기 전체의 키를 쥐고 있는 장소입니다. <댄스댄스댄스>에서 주인공이 돌핀 호텔을 다시 찾았을 때는 <양을 쫓는 모험>에서 묘사된 아름답고, 매력있지만 쇠락한 곳이 아닌 굉장히 서구화되어 버린 곳으로 묘사됩니다. 이 점에 대한 비평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하루키: 네 있어요. 제 어린시절은 1950, 60년대는 일본도 매우 가난했죠. 하지만 일본인들은 뭔가 이상향을 꿈꿨고, 점점 더 좋아질 거라 믿었죠. 그 믿었던 시간이 마침내 오고 우리는 돈으로 원하는 것을 살 수 있게 되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해요. 전 그런 소중한 것들 되찾고 싶어요. 그것을 잃어버림으로서 우리는 편안함을 얻기는 했을 겁니다. 어느 장소든 당신이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있어요. 그런데 뉴 돌핀 호텔은 그렇게 편안한 장소가 아니에요. 뉴 돌핀호텔은 패셔너블하고 눈부시게 영광스런 장소지만 당신이 있어야 할 장소는 아닌거죠. 당신은 당신에게 맞는 장소를 찾지 못해요. 그것은 매우 큰 호텔이에요. 전 예전의 돌핀 호텔이 그립습니다. 


JWD: 무라카미씨의 작품은 애수와 슬픔으로 가득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받은 감상으로는 <댄스댄스댄스>와 <노르웨이의 숲>은 매우 희망적인 결말이라는 생각이에요.


하루키: 말씀하신 두 작품은 모두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확실하게 알 수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도 이야기의 결말이 긍정적이거나 혹은 부정적이라는 느낌을 주면서 끝날지라도 그 이후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될 지 모르는걸요. 적어도 당신은 저에게 <노르웨이의 숲>의 결말이 긍정적이라고 말하는 첫번째 사람이에요.


JWD: 정말요?


하루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매우 슬픈 이야기라고 말하곤 합니다.


JWD: 음, 물론 슬픈 이야기이죠. 하지만 마지막 떠나오면서 와타나베는 전화를 하죠. 거기서 저는 일종의 '연결점(connection)'을 보았어요. 그 행동은 제가 그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행동이었죠. 


하루키: 당신도 소설을 읽어서 알겠지만, 그는 내내 어떤 단서를 찾고 있었어요. 일종의 사회화되거나 조직화되기 위한 단서를 말이죠. 이야기의 끝에 결국 그는 허공 속에서 단서를 발견해내 손을 뻗어 그것을 잡은 겁니다. 그것이 이 소설의 결말이라고 생각해요. 


JWD: 어떻게 주인공들은 긍정적이지 못하게 된 걸까요. <양을 쫓는 모험>의 주인공 '나'는 항상 외롭고, 아무런 목적도 없이 어떤 힘이 이끌려 양 사나이를 찾는 신비로운 일을 수행하는 영웅이 되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결국 홋카이도의 어느 산장까지 가서 양사나이의 털을 발견합니다. 이건 주인공의 의식있는 행동이었을까요? 


하루키: 전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쓰고 있을 때, 오르페우스 신화를 계속해서 떠올렸어요.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찾기 위해 지하 세계로 계속 내려갑니다. 그는 음악가이고 계속해서 음악을 듣습니다. 유럽의 오르페우스 신화와 비슷한 것이 일본에서는 이자나기-이자나미가 있어요. 이자나가기 남편이고 이자나미가 와이프에요.


JWD: 오르페우스와 그의 아내 에우레디케 신화 말이군요.


하루키: 네 맞아요. 에우레디케가 죽자, 그녀를 너무 사랑한 오르페우스는 지하 세계로 그녀를 다시 되돌리려고 내려갑니다. 하지만 그녀가 있는 세계는 죽음의 세계에요. 오르페우스는 지하로 내려가 결국 에우레디케를 찾지만, 그녀는 더이상 사람이 아니죠. 그녀의 얼굴은 죽은 사람 처럼 변해버렸어요. 그리고 그녀는 오르페우스가 그녀의 얼굴을 봤기 때문에, 하루에 천 명이 넘는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참 슬픈 이야기에요.  


JWD: 실제로, 작품 속에서 무라카미씨가 주인공들을 지하세계로 내려 보낼 때 마다, 토마스 핀천의 작품이 떠오르기도 해요.


하루키: 어떤 책이요?


JWD: <V를 찾아서>요.


하루키: 예, 예 저도 그 책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JWD: 주인공 베니 프로페인도 어떤 의미에서 '지하세계'와 떼어 놓을 수 없잖아요.


하루키: 네 악어와 함께 말이에요.


JWD: 그리고 또 한 다른 작가인 돈 드딜로도 연상되기도 해요. 토마스 핀천과 돈 드딜로는 모두 이 하나로 존재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이 세계의 갈라진 틈을 찾아 이야기를 만들어 내려고 시도합니다. 전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처음 읽었을 때, 일단 지하 세계로 내려가잖아요. 그 때 전 '아 이 작가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 영역으로 탐험을 가려고 하는구나'라는 기대를 했답니다. 이게 독자가 가질 수 있는 기대라고 할 수 있나요?


하루키: 음 아마도요. 전 지하 세계에 관심이 많아요. 왜 그런지는 제대로 설명을 못하겠지만, 그런 지하 세계에 자연스럽다고 밖에 말 못하겠지만 끌린답니다. 제가 지금 쓰고 있는 소설 <태엽감는새> 역시 주인공이 아내를 찾기 위해 우물로 내려갑니다. <양을 쫓는 모험>에서는 아내가 떠난 걸로 거기서 끝이지만, 이번 소설은 그렇지 않아요. 주인공은 아내를 찾을 것이고, 싸울 것입니다. 


JWD: 인터뷰를 끝내기 전에, 마지막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양을 쫓는 모험>에서 주인공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는 보풀을 떼어 던지는 일을 하고 있어. 누가 이 말의 본질에 대해 말해 줄 수 있겠어?'


하루키: 음, 기억을 못하겠는데요.


JWD: 그런가요. 사실은 무라카미씨는 쓰지 않았지만, 번역 과정에서 추가 된 걸 수 도 있겠네요.


하루키: 쓴 거 같기도 하고요. (웃음)


인터뷰 마무리가 좀 이상하지만.. 이상, 1994년 하루키가 미국에서 <태엽감는새>를 집필하는 중에 가진 인터뷰였습니다. 확실히 인터뷰어가 작품을 얼마나 깊이 읽고 인터뷰를 진행하느냐가 인터뷰의 질을 좌우하는 것 같네요. 다양한 작가의 작품과 영화 등과의 접점을 알기 쉽게 독자에게 제공해 준 참 쉽고 착한(?) 인터뷰가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다음 인터뷰로 다시 찾아올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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