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르몽드지 인터뷰 (2011)
http://www.freelens.com/ 뮌헨, 2010
하루키: 그 두사건과 2001년 9.11테러 이후 저는 사회 문제에 더욱 민감하게 되었어요. 사린가스 테러와 고베 지진은 일본 사회가 지니고 있던 어떤 폭탄이 터진 것으로 일본 사회 시스템의 강성한 모습의 끝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더이상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 세계에 대해 생각하면 안됩니다. 우리 각자 안에 자리잡고 있는 해악에 대해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루키: 지하 세계 집단의 망상에 빠진 개인이 받는 핍박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고베 지진과 사린테러 사건으로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던 지배적인 평온하고 차분한 개인 인식이 사라져버렸어요. 9.11테러로 우리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안전한, 세계에 대한 어떤 무의식적인 신뢰가 처참히 무너져 버렸죠. 그런 자신감이 혼란으로 순식간에 뒤바뀌어 버리게 된거죠. 동시에 통신 및 정보 시스템은 인터넷의 확산으로 혼란이 가속화 되고 있고요.
우리는 이런 디지털 문명과 세계에 압도 당해 혼란 스러운 상태에 놓여있으며, 뭐가 옳고 그른 것인지 구별해 내기가 쉽지 않은 세계 속에 놓여져 있습니다. 이런 극단적이고 큰 이야기의 흐름이 망가져 버린 세계에서는 각 사회 관계에 있어서도 그 현실감을 잃어 버리게 되는거죠. 그리고 또한 그만큼 조작도 쉬워졌죠.
하루키: 오웰의 소설과 제 소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제 소설은 현재에서 과거를 상정하고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1949년에 쓰여진 오웰의 <1984>는 미래를 예측하며 전체주의 시스템을 설명해 나갔죠. 지금은 그 소설 보다 더 많고 복잡한 시스템이 존재하지만,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 있을 뿐 그 시스템이 작용하는 것은 일정한 연속 운동과 같아서 계속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불안정과 유동성은 우리를 계속 어디론가 데리고 갑니다. 또한, 지금의 세계는 오웰의 세계보다 더 익명성의 탈을 뒤집어 쓰고 더 교활하고 음흉해 졌습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전 분명히 개개인이 진실을 찾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어요. 이런 혼돈 속에서 흑과 백을 구분 짓는건 쓸데 없는 짓입니다.
하루키: 많은 상황들이 명백한 논리 없이 연결되어 있어요. 우연이 많이 작용하며, 현실과 이상은 둘의 분명한 경계 없이 상호 작용합니다. 우리가 그 경계를 알 수도 없고요. 20년 전쯤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없는 현상에 대해 비판도 했지만, 글세요 지금은 그게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어떤 사안에 대해 진짜로 믿었던 것이 거짓인 경우가 허다하죠.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작가로서 현실을 반영하고 그것을 쓰려고 의도하겠지만, 사실 그럴 필요는 없잖아요. 제가 무역센터 빌딩에 비행기가 충돌하는 장면을 봤을 때는 뭐랄까 전혀 현실 개념이 없었어요. 하나의 인포그래픽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거짓은 매번 부드러운 모습으로 다가오곤, 어느 순간에 도망가 버리죠.
하루키: 저는 그들이 경험한 것을 이해하기 위해 애썼어요. 그들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고, 설령 그것이 진실이 아니더라도 제가 작업하는 '현실을 재구성'하는 것에 큰 문제가 되진 않습니다. 당신이 어느 사막에선가 밤길에 덩치 큰 괴한으로 부터 위협적인 상황을 당한 이야기를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진실은 몸집이 작은 사람일 수 있는거죠. 하지만 전 당신이 겪은 그 위협적인 상황을 듣고 싶은거에요. 현실과 비현실은 이렇게 명확히 구분지어질 수 없는 세계인거죠. 소설가로서, 사린 테러 피해자들의 인터뷰를 청취해서 그들의 입에서 나온 '집단 진실'을 재구성하고 싶었어요. 그들의 마음에 들어가 그 고통을 직접 느끼고 싶었습니다.
하루키: 저는 재즈 광팬이에요. 재즈를 들으면서 문학에 몰두하게 되었고, 그렇게 미국 작가들을 먼저 접하게 되었죠. 그리고 결혼을 했고, 제 아내는 일본 문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렇게 해서 일본 문학도 읽기 시작하게 된거죠.
하루키: 그는 내게 정말 중요한 작가에요. 10대였을 때 그의 세계에 매료되었었죠. 조용한 지역, 비이성적, 폭력이 동시에 전개되죠. 이런 혼란스러운 세계는 저와 가까운 것이었어요. 처음 프라하를 방문했을 때, 너무 익숙한 도시의 분위기에 놀라기도 했었죠.
하루키: 저는 표현을 길게 가져갈 수 있는 장편을 좋아해요. 어렸을 때 부터 이미 장편 소설에 익숙해졌다랄까요.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발자크, 디킨스의 작가들을 탐독했어요. 새 작품이요? 흥미롭네요. 짧은 이야기는 이제 지쳤어요.
하루키: 아니요. 전 쓰기 시작할 때, 아무런 계획이 없습니다. 머리가 비어 있는 상태죠. 내 안의 어둠 속으로 맹목적으로 파고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1Q84> 역시 도쿄의 교통 체증 속의 택시에서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는 주인공을 퍼뜩 떠올려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그 이후 부턴 내 소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전 그저 내가 이 이야기를 끝낼 수는 있겠다라는 믿음만 가지고 있을 뿐이에요. 오늘도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갔습니다. 당신이 집필 중인 소설이 무슨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생각해 보세요. 흥미진진하지 않나요? 다른 소설가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전 이 방식이 좋습니다.
하루키: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 그냥 일본 문학의 어떤 서클에 속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건 저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내 스타일은 일본 작가들과는 다르거든요. 그런 집단 활동을 할 생각도 없으며, TV에 출연한다거나 강의를 하지도 않습니다. 기사글을 쓰지도 않고, 제 책에 서명 조차 잘 하지 않습니다. 어느 문학상의 심사위원도 아니고요. 전 글을 쓰는 것 외에 어떤 단체에 대한 관심이 없어요. 제 친구들은 음악가, 예술가, 일러스트레이터 등이 있죠. 저는 보통의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당신도 알다시피 저는 작품 기록 수집, 집필, 아내와의 시간, 고양이 돌보기, 스포츠, 독서를 하며 마시는 맥주 때문에 어지간히 바쁩니다. 때때로 "사회적 책임"에 신중하지 못하다고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의 진짜 '사회적 책임'은 소설을 쓰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루키: 이스라엘의 제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상을 수상했습니다. 물론 거부하는 것도 쉬웠을 거에요. 하지만 그곳에 가서 하고 싶은 말을 하자라고 결정했죠. 그런데 그 일이 조금은 피곤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제 인생의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하루키: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 이는 수천년 동안 지속되어 왔죠. 작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마음을 구성'하는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혼돈 속에 살아가고 있고, 작가들이 그 속에서 어떤 지표를 던져 주어야 해요. 전 항상 소설을 쓸 때 우리 주변의 깊은 어둠에 대해 생각을 합니다. 즉, 좋은 이야기의 힘을 믿어요. 소설은 진실성을 보여주어 독자들에게 어떤 희망의 씨앗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루키: 제 작품의 독자들은 모두가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제가 예를들어, 중국과 일본의 영토분쟁에 대한 소설을 <태엽감는새>에서 다뤘는데, 이는 자연스레 중국어로 번역되면서 수백만의 중국독자가 생긴 것 뿐이죠.
하루키: 저는 일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질문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네요. 전 일본 국적입니다. 부모님도 그렇고요. 일본어로 소설을 쓰고 초밥을 매우 좋아하죠. 제가 미국에도 체류를 했고, 그 기간 동안 <태엽감는새>를 완성하기도 했습니다만, 어쨋든 전 일본에서 태어났어요. "일본어 작가"라는 타이틀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라마다 문화의 차이는 있지만, 사실은 그것을 넘어선 공통의 의식,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을 글로 표현해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것뿐이에요.
*올 4월 출간될 하루키 신작을 기다리며 2011년 르몽드지 인터뷰 포스팅을 마칠게요. 그리고 '파인딩 하루키' 프로젝트는 속속 진행되는대로 블로그를 통해서 소식을 알려드리겠습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