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2006년 GQ Korea 인터뷰 (2)
2007년 한국판 GQ에 실린 하루키 인터뷰 2편입니다. 1편에 이어 1년 만(!)에 포스팅하네요. (아 무슨 시간이 이리도 빠르게 가나요?) 1편의 11개의 질문에 이어 기존 인터뷰에서 나왔던 중복되는 질문은 빼고 정리해 봤습니다. 시작합니다.
Photographs by Mark Arbeit
무라카미 하루키 GQ 인터뷰 (2)
-2007년 10월 하와이 대학-
Q12: 30대에 쓰신 한 에세이에서 마흔 살이라는 나이는 인생살이에서 꽤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고비인 것 같다고 하셨죠. 그래서 더 이상 이런 소설은 쓸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할 만한 작품을 써 놓고 싶다고요.
하루키: 기억해요. 아마 <상실의 시대; 노르웨이의 숲>이 그런 책이었던 것 같아요. 서른 여덟쯤에 썼으니까.
Q13: 한국에서 당신이 일본 작가로는 유례 없는 인기를 얻게 된 데도 <상실의 시대>가 큰 역할을 했죠. 그 책을 읽는 있는 청순한 여자가 나오는 휴대폰 광고도 있었고, '하루키체'로 통하는 문체가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습니다. <상싱의 시대>가 없었다면 지금의 당신도 없었을까요?
하루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에요. 2백만 부가 팔렸대요. 일본 밖으로 제 이름이 알려지게 된 데에는 <상실의 시대> 역할이 크죠.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상실의 시대>는 제 작가 인생에서 일종의 디딤돌 같은 역할을 한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Q14: 당신의 소설 중 가장 많이 읽힌 책인 만큼 작품성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죠. 특히 기존 일본 소설에서 찾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섹스신에 대해서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설정일 뿐이라는 비판도 많지요.
하루키: 그게 참 묘한 게, 제가 그 소설을 쓰기 전에는 평론가들이 하루키의 책에는 섹스나 죽음 등에 대한 묘사가 없다고 엄청나게 공격했어요. 그래서 이걸 쓸 때는 좋다 내가 이 책에선 성 묘사와 죽음을 제대로 다뤄보리라 생각했어요. 도전이었죠.
Q15: 소설을 쓸 때마다 그런 과제나 목표치를 정하세요?
하루키: 어느 소설을 쓸 때나 마찬가지에요. <태엽감는새>에서는 스키닝(사람의 가죽을 벗기는 행위)를 묘사했는데, 그때도 독자들의 항의 전화를 엄청 받았어요. 대체 "왜! 왜! 왜! 하루키상은 어쩌자고 그런 역겨운 묘사를 하는 겁니까?"라고요. 그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잔인하고 폭력적인 묘사를 생생하게 써보자는 것이 도전이었죠. 스스로에게 던진 임무랄까. 운동하는 것과 같아요. 이번 달은 오른팔 근육, 다음 달은 허벅지 근육, 다음 달엔 어깨. 이런 식으로요.
Q16: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이나 <어둠의 저편>의 섹스신을 떠올려 보면, 당신은 이제 섹스신 묘사에는 통달한 게 틀림없어 보입니다만.
하루키: 하하. 그렇습니까. 많은 독자들이 내가 그런 묘사를 쓰는 걸 아주 즐긴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저도 쓸 때는 참 민망하고 부끄럽고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말하죠. 하루키, 이건 네일이야! 멈추면 안돼!
Q17: 전 세계적으로 6백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 <상실의 시대>를 쓴 후,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인가요.
하루키: 글쎄요, <상실의 시대>는 분명 잘 쓴 소설인 것은 맞아요. 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좋아해준다는 건 멋진 일이니까요. 사람들은 모두들 러브 스토리를 좋아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상실의 시대>는 사실 내 스타일의 문학은 아니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걸 나의 대표작이라고, 내가 쓴 최고의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언젠가부터 그런 염려를 하게 됐어요. 사실이 그렇지 않으니까. <상실의 시대>는 전형적인 리얼리즘 소설인데 전 스스로 리얼리즘 작가라고 생각지 않거든요. 내게 <상실의 시대>는 일종의 도전 같은 거 였어요. 나도 리얼리즘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었을 뿐이에요.
Q18: 그럼 어떤 소설들이 하루키 스타일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 <태엽감는 새> 같은 포스트모던을 추구하는 작품이죠.
Q19: 리얼리즘과 정반대 선상에 있는 그런 소설을 통해 당신이 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하루키: 전 독자들을 상상과 비현실의 세계로 안내하고 싶어요. 내가 제시하는 비현실의 세계를 읽으면서 그걸 현실의 일부로 느꼈으면 해요.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는 그런 비현실의 세상이 존재한다고 믿어요. 제 책을 통해 사람들이 그런 비현실의 세상을 바라보고 즐길 수 있다면 좋겠어요.
Q20: 한국에는 당신이 발표한 80여권의 책 중 번역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주요 작품, 약 50여권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중 많은 책의 저자 소개 페이지에는 "담담한 문체로 현대 사회의 소외된 인간상을 그리는 세계적인 작가"라고 하루키상을 소개하고 있죠. 맞는 설명인가요?
하루키: 그들이 그렇다면 그런 거죠(웃음).
Q21: 직접 저자 소개를 쓰게 된다면, 어떻게 표현하시겠어요.
하루키: 음, 제가 쓰고 싶은 건 한가지에요. 사람. 난 그들을 '내 사람들(my people)'이라고 불러요. 제 주변의 사람들에 관한 것. 일반적인 사람들에 관한 거죠. 그들이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죽는지, 어떻게 사랑하는지.
Q22: 그럼,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는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 하하, 좋은 걸요? 그런데 정말 제가 80권이나 되는 책을 썼나요?
Q23: 만약 누군가 한정된 시간에 당신과, 당신의 작품을 알고 싶다고 한다면 그 많은 책 중에 어떤 작품을 권하시겠어요?
하루키: 음, 어려운 질문이에요. 난 벌써 27년째 글을 쓰고 있잖아요. 긴 시간이죠. 시간대별로 작품의 성격이 달라요. 첫 10년, 다음 10년, 그렇게 블록으로 나눌 수 있어요. 굳이 뽑아보라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상실의 시대>, <태엽감는새>, <해변의 카프카> 정도를 말하겠어요.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은 작품이니까요. 한 번도 다시 읽은 적은 없지만, 이들 작품은 지금도 구석구석까지 잘 기억하고 있어요. 공을 많이 들였죠. 보통 단편은 닷새에서 일주일 정도면 끝나는데, 그래서 그런지 오랫동안 기억에 남지 않아요.
*하루키가 유일하게 한국 언론과 인터뷰한 GQ 코리아 인터뷰 2편은 여기까지입니다. 앞으로 3, 4편으로 더 압축해서 포스팅으로 소개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