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인터뷰

하루키X후루카와 히데오 몽키비지니스 대담 (2)

finding-haruki.com 2012. 1. 23.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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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와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스스로 얘기하는 후루카와 히데오 작가의 09년 몽키비지니스지 대담 포스팅 2번째입니다. 첫번째 포스팅(클릭)에서는 데뷔 시절 부터 몸을 단련하기 시작한 계기에 대해 얘기했는데요, 이번 2번째 내용은 소설 4편을 쓰고(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유럽으로 건너가게된 사연에 대해 회고 합니다.

 

[성장을 목표로 계속 나아가는]
-무라카미 하루키(당시 59세), 09년 春 몽키비지니스 롱인터뷰 



*번역은 역시 @maynotea가 도와줬고, 몽키비지니스지 전체 70페이지 분량의 대담 중 11~16페이지 분량입니다.

Chapter (2) 왜 해외로 갔는가? (*1988~1992)

 
 

후루카와: 그렇게 해서 마흔이 될 때까지 몸을 만들자라는 프로그램으로 계속 단련해 오고 앞에서 말씀하신 것 처럼 마흔 전후의 시기에 <노르웨이의 숲>과 <댄스댄스댄스>는 무라카미상이 일본을 떠나 해외에서 창작활동을 시작한 때이기도 하지요? 단지 몸을 단련시키는 것 뿐만이 아닌 해외까지 나가서 창작에 집중하기로 한 구체적인 결단의 원인은 무엇이었나요?


하루키: 음, 외국으로 간 것은 몇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는 일본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일은 어디에서든 할 수 있었으니까요. 어디든 좋은 곳으로 가서 여유롭게 일하자라는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그때는 문단이라고 하는 것이 세계적으로 큰 힘을 가지고 있었죠. 문단적인, 음 뭐랄까. 문단 계파의 힘 같은 것이 꽤 커서 그것에 거역하는 것은 여러가지로 힘들고 귀찮은 일이 많이 생기게 되어있었죠. 물론 지금은 그런 현상이 없을테지요. 잘은 모르겠지만 어떤가요?

  

후루카와: 네, 제가 느끼기에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하루키: 당시에는, 작가와 비평가 그리고 편집자가 서클 같은 모양이 되어 돌아가는 시기였어요. 그래서 어딘가의 서클에 속해 포지션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뭐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굉장한 절박감이라고 할까 고립감 같은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곳이 없었죠. 전 반문단까지는 아니지만, 그런 서클 같은 친분을 좋아하지 않아서 사람들과는 거의 친하게 지내지 않았어요. 그러다보니 그 때 문단적인 세계는 '친구가 아니면 적'이라고 하는 것이 있어서 저 같이 '아군도 추구하지 않고, 적군도 추구하지 않는' 원칙으로 지내다 보면 주위에 거의 적만 남게 되는 상황이 되어 버리죠. 별로 신경쓰지 않고 살아왔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꽤 고되기도 했어요. 저로서는 단지 '개인업'으로 혼자서 부지런하게 일하고 있었는데, 어째서 두드러지게 되었는지. 그래서 특별히 무슨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분위기상 더는 일본에서 어슬렁어슬렁 거려도 별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 때는 저도 손으로 직접 쓰고 있어서 어디에 가든지 연필과 노트만 있으면 글은 쓸 수 있다고 생각했죠. 딱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1985년)>가 나온 다음의 시즌 오프 때의 남유럽이라면 절약하면서 지내면 일단 반년 정도는 생활 할 수 있는 금전적 여유가 있었어요. 그래서 일단은 외국에서 일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일본을 떠났습니다. 

  

후루카와: 그런 풋워크의 가벼움, 좋음 이라고 하는 것이 무라카미상의 천성일까요?


하루키: 글세요. 전 어느쪽이여야만 한다면 농경민족형 장거리 러너라고 할까요. 고양이 같다고 할까요. 한 곳에서 계속 같은 것을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단지 그 때는 와이프가 '이제는 여기 있는다고 해도 소용없으니 어디든 나갑시다. 그 편이 좋을 것 같아요' 라고 말했고, 저도 '그렇게 말한다면 한 번 가볼까.' 그래서 가게 되었습니다. 뭐 장소를 바꿔 소설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가서 살아보면 그렇게 또 편하지도 않고 나름대로 힘들었죠. 

  

후루카와: 당시에는 지금과 완전히 달랐죠.


하루키: 달랐죠. 미국이라면 외국인을 받아들일 공간,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괜찮았지만 유럽 특히나 남유럽은 시스템적으로 엉망이었으니까요. 그곳에서 생활을 확립한다는 자체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고생을 말한다면 한도 끝도 없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곳에서 장편 소설을 두 개나 썼다는 것이 감격스러워요. 물론 즐거웠던 때도 있었지만 말이에요. 

  

후루카와: 주위에 일본어가 들리지 않는 환경에서 일본어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는 저항감 같은 것은 없으셨나요? 


하루키: 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유럽에 있다해도 정황상으로는 그다지 변화가 없었어요. 일본에 있을 때에도 가끔씩 외국에 있는 것 같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렇게 신경질적으로는 되지 않아요. 그러면  뻔뻔하잖아요.

  

후루카와: 그곳에서 <노르웨이의 숲(1987)>과 <댄스댄스댄스(1988)>를 쓰고.


하루키: 그 다음에 단편을 썼습니다. <낮잠(1989)>과 <TV피플(1989)>


후루카와: 그 때는 무라카미상 작품의 큰 변혁의 싹 같은 시기였죠.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에서는 머리 부터 발 끝까지 전부 '리얼리즘'으로 쓰자고 결정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어서 이대로 이른바 리얼리즘 작가와 같은 경계에서 싸울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건 꽤 컸어요. 하지만 마음 먹으면 된다라고! 그리고 나서 '나와 쥐' 4부작(*쥐 3부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의 결말로 <댄스댄스댄스>를 쓰고 그것으로 사이클이 하나 끝나는 실감을 했어요. 이탈리아와 그리스에 살면서 그 2개의 장편을 완성하고 일단 작가로서 기초적인 힘을 길렀기 때문에 이제부터 새로운 것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40대를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그런 기분으로 <낮잠>이나 그 즈음의 단편 작품을 쓰고 있었지요. 


후루카와: 그러면 <낮잠>이나 <TV피플>을 쓰고 있을 단계에서는 무라카미상 내적으로 <태엽감는새(1922~1994)> 같은 거인 같은 수준의 작품으로 걸음을 내딛는다는 의식이 있었습니까?


하루키: 네 그래요. 예를들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도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더 잘 쓸수 있는 이야기인데 당시의 저로서는 약간 실력 이상으로 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반대로 <댄스댄스댄스>는 너무 즐거웠어요. 라는 느낌도 조금 있었고, 뭐 물론 이 2작품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의미로 작가로서 다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없지는 않아요.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젊은 작가가 소설을 쓸 때 좋은 점은 문체가 빠진 것 같은, 척척 진행되는 것 같은, 가라앉은, 발란스가 조금 나쁘다던가 열의와 힘이 있다면 정면 돌파가 가능해요. 오히려 그 발란스가 좋지 않다는 점이 독자로 하여금 매력을 느끼게 되지요. 그것은 젊은 작가이기에 가능하지만 마흔인 작가에게는 불가능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후루카와: 저는 뭐 이미 마흔을 넘겨버렸지만(웃음). 재밌는 의견이네요.


하루키: 마흔까지는 어느 정도 잘 갑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흔이 넘어서도 같은 것을 하고 있으면, 사람들은 바로 읽어 주지 않아요. 좀 더 큰 것, 깊은 것을 쓰고 싶다는 마음과 그것을 쓰기 위해 테크닉이 병행하지 않으면 점점 독자는 사라지게 되죠. 이건 정직한거에요. 제 경우는 처음이 너무 심했다는 부분도 있지만, 마흔이 넘어 글을 쓸 테크닉도 그대로 몸에 붙어 있다는 실감을 했어요. 그리고 좀 더 야심찬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에도 충실했습니다. 신체도 건강했지요. 그 다음에 구체적인 이야기 거리를 찾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것을 위해 시간을 들여 단편 소설과 중편 소설을 몇 개인가 썼습니다. 그런 작품을 '탐색 바늘'처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단편집 <TV피플>이나 또는 중편에 가까운 장편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1992)>같은. 거기서 얻은 것이 최종적으로 <태엽감는 새>에 흘러들어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각각의 작품에 대해서는 저마다 평가가 있을거라고 생각하지만 저로서는 하나의 흐름으로 만들어졌다는 생각도 있네요. 


후루카와: 단편, 중편, 장편 그리고 대장편 저마다 볼륨의 소설을 겹쳐서 써가는 것에 '넥스트 레벨'에 전진하는 것도 제가 무라카미상에게서 배운 것 같은 영향 중 하나에요.


**하루키와 후루카와 히데오 작가의 대담 3편은 유럽 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태엽감는새>를 집필했던 때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 뵐게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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