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X후루카와 히데오 몽키비지니스 대담 (2)
*번역은 역시 @maynotea가 도와줬고, 몽키비지니스지 전체 70페이지 분량의 대담 중 11~16페이지 분량입니다.
Chapter (2) 왜 해외로 갔는가? (*1988~1992)
후루카와: 그렇게 해서 마흔이 될 때까지 몸을 만들자라는 프로그램으로 계속 단련해 오고 앞에서 말씀하신 것 처럼 마흔 전후의 시기에 <노르웨이의 숲>과 <댄스댄스댄스>는 무라카미상이 일본을 떠나 해외에서 창작활동을 시작한 때이기도 하지요? 단지 몸을 단련시키는 것 뿐만이 아닌 해외까지 나가서 창작에 집중하기로 한 구체적인 결단의 원인은 무엇이었나요?
하루키: 음, 외국으로 간 것은 몇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는 일본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일은 어디에서든 할 수 있었으니까요. 어디든 좋은 곳으로 가서 여유롭게 일하자라는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그때는 문단이라고 하는 것이 세계적으로 큰 힘을 가지고 있었죠. 문단적인, 음 뭐랄까. 문단 계파의 힘 같은 것이 꽤 커서 그것에 거역하는 것은 여러가지로 힘들고 귀찮은 일이 많이 생기게 되어있었죠. 물론 지금은 그런 현상이 없을테지요. 잘은 모르겠지만 어떤가요?
후루카와: 네, 제가 느끼기에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하루키: 당시에는, 작가와 비평가 그리고 편집자가 서클 같은 모양이 되어 돌아가는 시기였어요. 그래서 어딘가의 서클에 속해 포지션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뭐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굉장한 절박감이라고 할까 고립감 같은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곳이 없었죠. 전 반문단까지는 아니지만, 그런 서클 같은 친분을 좋아하지 않아서 사람들과는 거의 친하게 지내지 않았어요. 그러다보니 그 때 문단적인 세계는 '친구가 아니면 적'이라고 하는 것이 있어서 저 같이 '아군도 추구하지 않고, 적군도 추구하지 않는' 원칙으로 지내다 보면 주위에 거의 적만 남게 되는 상황이 되어 버리죠. 별로 신경쓰지 않고 살아왔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꽤 고되기도 했어요. 저로서는 단지 '개인업'으로 혼자서 부지런하게 일하고 있었는데, 어째서 두드러지게 되었는지. 그래서 특별히 무슨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분위기상 더는 일본에서 어슬렁어슬렁 거려도 별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 때는 저도 손으로 직접 쓰고 있어서 어디에 가든지 연필과 노트만 있으면 글은 쓸 수 있다고 생각했죠. 딱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1985년)>가 나온 다음의 시즌 오프 때의 남유럽이라면 절약하면서 지내면 일단 반년 정도는 생활 할 수 있는 금전적 여유가 있었어요. 그래서 일단은 외국에서 일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일본을 떠났습니다.
후루카와: 그런 풋워크의 가벼움, 좋음 이라고 하는 것이 무라카미상의 천성일까요?
하루키: 글세요. 전 어느쪽이여야만 한다면 농경민족형 장거리 러너라고 할까요. 고양이 같다고 할까요. 한 곳에서 계속 같은 것을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단지 그 때는 와이프가 '이제는 여기 있는다고 해도 소용없으니 어디든 나갑시다. 그 편이 좋을 것 같아요' 라고 말했고, 저도 '그렇게 말한다면 한 번 가볼까.' 그래서 가게 되었습니다. 뭐 장소를 바꿔 소설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가서 살아보면 그렇게 또 편하지도 않고 나름대로 힘들었죠.
후루카와: 당시에는 지금과 완전히 달랐죠.
하루키: 달랐죠. 미국이라면 외국인을 받아들일 공간,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괜찮았지만 유럽 특히나 남유럽은 시스템적으로 엉망이었으니까요. 그곳에서 생활을 확립한다는 자체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고생을 말한다면 한도 끝도 없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곳에서 장편 소설을 두 개나 썼다는 것이 감격스러워요. 물론 즐거웠던 때도 있었지만 말이에요.
후루카와: 주위에 일본어가 들리지 않는 환경에서 일본어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는 저항감 같은 것은 없으셨나요?
하루키: 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유럽에 있다해도 정황상으로는 그다지 변화가 없었어요. 일본에 있을 때에도 가끔씩 외국에 있는 것 같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렇게 신경질적으로는 되지 않아요. 그러면 뻔뻔하잖아요.
후루카와: 그곳에서 <노르웨이의 숲(1987)>과 <댄스댄스댄스(1988)>를 쓰고.
하루키: 그 다음에 단편을 썼습니다. <낮잠(1989)>과 <TV피플(1989)>
후루카와: 그 때는 무라카미상 작품의 큰 변혁의 싹 같은 시기였죠.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에서는 머리 부터 발 끝까지 전부 '리얼리즘'으로 쓰자고 결정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어서 이대로 이른바 리얼리즘 작가와 같은 경계에서 싸울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건 꽤 컸어요. 하지만 마음 먹으면 된다라고! 그리고 나서 '나와 쥐' 4부작(*쥐 3부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의 결말로 <댄스댄스댄스>를 쓰고 그것으로 사이클이 하나 끝나는 실감을 했어요. 이탈리아와 그리스에 살면서 그 2개의 장편을 완성하고 일단 작가로서 기초적인 힘을 길렀기 때문에 이제부터 새로운 것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40대를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그런 기분으로 <낮잠>이나 그 즈음의 단편 작품을 쓰고 있었지요.
후루카와: 그러면 <낮잠>이나 <TV피플>을 쓰고 있을 단계에서는 무라카미상 내적으로 <태엽감는새(1922~1994)> 같은 거인 같은 수준의 작품으로 걸음을 내딛는다는 의식이 있었습니까?
하루키: 네 그래요. 예를들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도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더 잘 쓸수 있는 이야기인데 당시의 저로서는 약간 실력 이상으로 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반대로 <댄스댄스댄스>는 너무 즐거웠어요. 라는 느낌도 조금 있었고, 뭐 물론 이 2작품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의미로 작가로서 다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없지는 않아요.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젊은 작가가 소설을 쓸 때 좋은 점은 문체가 빠진 것 같은, 척척 진행되는 것 같은, 가라앉은, 발란스가 조금 나쁘다던가 열의와 힘이 있다면 정면 돌파가 가능해요. 오히려 그 발란스가 좋지 않다는 점이 독자로 하여금 매력을 느끼게 되지요. 그것은 젊은 작가이기에 가능하지만 마흔인 작가에게는 불가능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후루카와: 저는 뭐 이미 마흔을 넘겨버렸지만(웃음). 재밌는 의견이네요.
하루키: 마흔까지는 어느 정도 잘 갑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흔이 넘어서도 같은 것을 하고 있으면, 사람들은 바로 읽어 주지 않아요. 좀 더 큰 것, 깊은 것을 쓰고 싶다는 마음과 그것을 쓰기 위해 테크닉이 병행하지 않으면 점점 독자는 사라지게 되죠. 이건 정직한거에요. 제 경우는 처음이 너무 심했다는 부분도 있지만, 마흔이 넘어 글을 쓸 테크닉도 그대로 몸에 붙어 있다는 실감을 했어요. 그리고 좀 더 야심찬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에도 충실했습니다. 신체도 건강했지요. 그 다음에 구체적인 이야기 거리를 찾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것을 위해 시간을 들여 단편 소설과 중편 소설을 몇 개인가 썼습니다. 그런 작품을 '탐색 바늘'처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단편집 <TV피플>이나 또는 중편에 가까운 장편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1992)>같은. 거기서 얻은 것이 최종적으로 <태엽감는 새>에 흘러들어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각각의 작품에 대해서는 저마다 평가가 있을거라고 생각하지만 저로서는 하나의 흐름으로 만들어졌다는 생각도 있네요.
후루카와: 단편, 중편, 장편 그리고 대장편 저마다 볼륨의 소설을 겹쳐서 써가는 것에 '넥스트 레벨'에 전진하는 것도 제가 무라카미상에게서 배운 것 같은 영향 중 하나에요.
**하루키와 후루카와 히데오 작가의 대담 3편은 유럽 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태엽감는새>를 집필했던 때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 뵐게요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