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인터뷰
오피스 아워 : <무라카미 라디오, 2010> - Anan 연재 중
finding-haruki.com
2010. 7. 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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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톤 교외에 있는 터프츠 대학(Tufts University)에서 일본문학을 가르치던 때가 있었다. 미국의 대학은 거의 주 1회 [오피스 아워・Office Hour]라는 것이 있어서 그 시간에는 학생이 교수를 찾아와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각각의 국적의 학생들이 오피스 아워에 나의 사무실에찾아와 커피를 마시거나, 도너츠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어느날, 여학생이 찾아와 "제가 쓴 단편 소설을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라고 했다. 보통 그런 귀찮은 일은 하지 않지만, 어쨋든 오피스 아워 이기 때문에 들어주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영어로 써있었지만, 긴 소설도 아니었고 제임스 조이스 같이 얽혀있는 문체도 아니기에 간단하게 읽을 수 있다.
그 여학생은 그 단편 소설을 크리에이티브 라이팅 클래스의 과제로 쓰기도 했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잘 썼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뛰어난 부분이 몇 개인가 있었다. 설명적으로 쓸데없이 길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부분이 살아있었다. 그런 작품은 비평하기에 딱 좋다.
[이 부분은 잘 쓰여졌지만, 여기는 별로 좋지 않아. 그러니까 여기를 이렇게 고치면 좋을거야]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전제적인 평균으로 그럭저럭 이면 곤란하다. 어드바이스를 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내가 그런 비판을 하니, 여학생은 당황해 했다. [하지만 선생님, 제 교수님은 전혀 반대의 이야기를 했어요.] 요컨대, 그 여교수와 여핵생의 작품에 대해서 내가 칭찬한 부분을 비평하고, 내가 비평한 부분을 칭찬했다.그렇게 말하면 정말 곤란하다. 내 입장에서는 그녀의 지도교수를 비평하는 것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 정당한 이야기로 둘러대서 시간을 때운다. 나중 일은 모른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창작이라고 하는 것은그 정도의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다. 음 이것은 꽤 극단적인 예 이지만, 무엇이 좋고 무엇이 좋지 않다고 하는 것은 장소에 따라 상대에 따라 달라진다. 확고한 가치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선생의 지도에 따라 작문법이 완전히 달라져 버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무섭군요.
하지만, 사실은 그렇게 무섭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결국, 자신의 신장에 맞는 것 밖에, 몸에 걸칠 수 없기 때문에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맞출 수는 있어도, 곧 자연스럽게 벗겨져 떨어져버린다. 그러므로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맞추는 것도 하나의 훌륭한 교육이라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것을 위해 비싼 수업료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따금씩, 오피스 아워를 하는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
늦가을의 오후, 좁은 대학의 사무실에 앉아, 종이컵에 연한 커피를 담아 마시면서, 누가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러 올까 기다리고 있다. 가끔씩은 그런 것이 있어도 좋다.
하지만, 제멋대로 일지 모르겠지만, 자작소설은 될수있는 한 가지고 오지 마세요.
2010.07
anan 村上春樹のエッセイ
翻訳:may
어느날, 여학생이 찾아와 "제가 쓴 단편 소설을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라고 했다. 보통 그런 귀찮은 일은 하지 않지만, 어쨋든 오피스 아워 이기 때문에 들어주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영어로 써있었지만, 긴 소설도 아니었고 제임스 조이스 같이 얽혀있는 문체도 아니기에 간단하게 읽을 수 있다.
그 여학생은 그 단편 소설을 크리에이티브 라이팅 클래스의 과제로 쓰기도 했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잘 썼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뛰어난 부분이 몇 개인가 있었다. 설명적으로 쓸데없이 길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부분이 살아있었다. 그런 작품은 비평하기에 딱 좋다.
[이 부분은 잘 쓰여졌지만, 여기는 별로 좋지 않아. 그러니까 여기를 이렇게 고치면 좋을거야]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전제적인 평균으로 그럭저럭 이면 곤란하다. 어드바이스를 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내가 그런 비판을 하니, 여학생은 당황해 했다. [하지만 선생님, 제 교수님은 전혀 반대의 이야기를 했어요.] 요컨대, 그 여교수와 여핵생의 작품에 대해서 내가 칭찬한 부분을 비평하고, 내가 비평한 부분을 칭찬했다.그렇게 말하면 정말 곤란하다. 내 입장에서는 그녀의 지도교수를 비평하는 것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 정당한 이야기로 둘러대서 시간을 때운다. 나중 일은 모른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창작이라고 하는 것은그 정도의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다. 음 이것은 꽤 극단적인 예 이지만, 무엇이 좋고 무엇이 좋지 않다고 하는 것은 장소에 따라 상대에 따라 달라진다. 확고한 가치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선생의 지도에 따라 작문법이 완전히 달라져 버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무섭군요.
하지만, 사실은 그렇게 무섭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결국, 자신의 신장에 맞는 것 밖에, 몸에 걸칠 수 없기 때문에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맞출 수는 있어도, 곧 자연스럽게 벗겨져 떨어져버린다. 그러므로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맞추는 것도 하나의 훌륭한 교육이라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것을 위해 비싼 수업료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따금씩, 오피스 아워를 하는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
늦가을의 오후, 좁은 대학의 사무실에 앉아, 종이컵에 연한 커피를 담아 마시면서, 누가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러 올까 기다리고 있다. 가끔씩은 그런 것이 있어도 좋다.
하지만, 제멋대로 일지 모르겠지만, 자작소설은 될수있는 한 가지고 오지 마세요.
2010.07
anan 村上春樹のエッセイ
翻訳: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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